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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의 사랑만 믿고 떠난 1400년 전 공주

충북 진천 만뢰산 산행길에서 첫눈을 맞이하다

등록|2015.12.02 12:35 수정|2015.12.02 12:35

▲ 동화 속 겨울나라에 와 있는 듯한 하얀 숲길에서 첫눈을 맞이했다. ⓒ 김연옥


차가운 바람이 스산하게 불어 대는 날이면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일상의 소소한 일들이 발목을 붙잡아 순간순간 갈까 말까 망설임도 있지만, 어딘가로 떠남에 있어서는 용기와 결단이 필요한 것 같다.

지난달 27일, 마창백두산악회 회원들과 함께 진천 만뢰산(611.7m) 산행에 나서게 되었다. 오전 8시에 창원시 마산역을 출발하여 김유신장군 탄생지(충북 진천군 진천읍 김유신길 상계리, 사적 제414호) 부근 국궁장 '화랑정' 입구에 도착한 시간이 11시 20분께. 하얀 눈을 지붕에 이고 처마 끝에는 고드름이 줄줄이 매달린 화랑정 건물을 지나 김유신 태실(사적 제414호)이 위치한 태령산(451m) 정상부를 향해 올라갔다.

동화 속 겨울 나라에 와 있는 듯한 하얀 숲길

▲ 온통 하얀 눈으로 뒤덮인 김유신 태실(사적 제414호). ⓒ 김연옥


▲ 햇빛에 녹은 눈가루가 여기저기 흩날리고, 먼저 지나간 산객들이 남긴 발자국이 길을 열어 주던 숲속에는 벌써 하얀 겨울이 와 있었다. ⓒ 김연옥


계속 오르막이 이어져 다소 힘들었지만 첫눈을 맞이하는 기쁨이 더 컸다. 겨울에 설경을 보는 일이 가물에 콩 나듯 하는 지역에 사는 터라 뽀드득 눈 밟는 소리마저 즐거움을 주었다.

그렇게 40분 정도 걸어갔을까, 김유신이 태어날 때 나온 태를 보관해 둔 김유신 태실에 이르렀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태실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하는데 온통 하얀 눈으로 뒤덮여 있어 제대로 볼 수 없었던 게 지금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곳 계양마을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김유신은 신라의 삼국통일에 중심적인 역할을 했던 인물이다. 그는 법흥왕 19년(532) 신라에 투항한 금관가야 마지막 왕인 구형왕의 증손자이다. 김유신의 어머니 만명부인은 진흥왕의 아우인 숙흘종의 딸로 숙흘종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현재 진천 지역인 만노군의 태수로 부임하는 서현을 따라나섰다.

가락국 후예인 서현과 서라벌 공주인 만명의 사랑 이야기는 한 편의 소설 같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는 데 큰 업적을 남긴 김유신의 탄생 못지않게 1400여 년 전 오로지 한 남자만 믿고 떠날 수 있었던 신라인 만명공주의 용기가 참으로 대단하게 여겨진다.

▲ 흰 눈이 쌓인 하얀 세상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이런 것일까. ⓒ 김연옥


▲ 산행길에서 먹은 맛난 도시락. ⓒ 김연옥


김유신 태실로 올라왔던 길을 200m쯤 다시 내려가서 갈미봉 쪽으로 걸어갔다. 눈이 많이 쌓인 데다가 축축한 낙엽도 깔려 있어 상당히 미끄러웠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배낭서 아이젠을 꺼내 등산화 밑에 덧신었다.

산은 벌써 하얀 겨울이었다. 햇빛에 부서진 눈가루가 여기저기 흩날리고, 나뭇가지 위에 수북이 내려앉았던 눈더미가 갑자기 비 내리듯 떨어지고, 이따금 눈벼락이 되어 와실와실 쏟아져 내렸다.

마치 동화 속 겨울 나라에 와 있는 느낌이라 할까. 수북하게 쌓인 흰 눈이 달콤한 설탕처럼 보이기도 하고, 부드러운 아이스크림 같아 보이기도 했다. 먼저 지나간 산객들이 남긴 발자국이 길을 열어 주고, 눈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대로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이 되었다.

배가 출출하던 참에 마침 긴 의자 두 개가 놓여 있어 일행 몇몇과 함께 도시락을 먹었다. 어떤 여자분이 뜨끈한 장엇국을 챙겨 주어서 맛나게 먹었는데, 살림 잘하는 야무진 분이 있으면 얻어 먹는 즐거움도 있다.

▲ 침묵에 잠긴 숲속의 고요가 가슴속으로 밀려들었다. ⓒ 산기수


▲ 충북 진천 만뢰산(611.7m) 정상에서. ⓒ 김연옥


쥐눈이고개를 거쳐 오후 2시 20분께 갈미봉(568m) 정상에 도착하자마자 이내 만뢰산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소복소복 흰 눈이 쌓인 하얀 세상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이런 것일까. 침묵에 잠긴 숲속의 고요가 갑자기 가슴 속으로 밀려들면서 한동안 잊었던 시가 문득 떠올랐다.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  백석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일부

진천 연곡리 석비는 무슨 까닭으로 비문이 없을까

▲ 비문이 없는 진천 연곡리 석비(보물 제404호). ⓒ 김연옥


오후 3시께 만뢰산 정상에 이르렀다. 진천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충청남북도의 도계에 위치하고 있다. 진천 연곡리 석비(보물 제404호)를 보기 위해 도계 능선을 타고 절집 보탑사 쪽으로 하산을 서둘렀다. 눈덩이와 축축하게 젖은 낙엽이 자꾸 아이젠 밑으로 뭉쳐서 스틱으로 탁탁 털어 가면서 걸어야 했다.

1시간 남짓 걸려 보탑사(충북 진천군 진천읍 김유신길 연곡리)에 도착해 곧장 석비를 보러 갔다. 고려 전기의 석비로 추정되는 진천 연곡리 석비는 비문이 없어 일명 '백비(白碑)'로 불린다. 처음부터 글을 새기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쓴 글을 지워 버린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이 비의 주인공 또한 누구인지 확인되지 않고 있다. 받침돌도 일반적으로 거북 머리 모양인데 이 비는 말의 머리에 더 가깝다. 정말이지,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석비다.

▲ 보련산 보탑사 3층 목탑. ⓒ 김연옥


▲ 쓸쓸한 삶에 희망으로 내려앉은 연등꽃이 잊히지 않는다. ⓒ 김연옥


보련산 보탑사는 고려 시대 절터로 전해지던 이곳에 1996년 지광, 묘순, 능현 스님이 세운 비구니 사찰이다. 삼국 시대 목탑 건축의 전통을 잇는 보탑사 3층 목탑은 금당, 법보전과 미륵전으로 구성된 아름다운 건물로 높이가 무려 42.73m에 이른다.

목탑 앞에 심어 놓은 나무들을 보니 연등꽃이 피었다. 간절한 소원을 적은 종이를 나부끼며 작은 연등들이 나뭇가지에 주렁주렁 달린 모습이 꽃처럼 이쁘다. 쓸쓸한 우리들 삶에 희망의 등불로 곱게 내려앉은 연등꽃이 잊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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