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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것들이 뭘 아냐고? "꼰대질이 진짜 진로 방해"

[할많하않? 할많하! ②] 청소년 인권단체 아수나로가 만드는 신문 <요즘것들>

등록|2015.12.03 22:14 수정|2015.12.04 11:27
N포세대, 헬조선, 흙수저에 이르기까지... 청년세대의 절망을 표현하는 단어들이 넘쳐납니다. 청년들이 참 할 말 많은 세상입니다. 하지만 '어린 것이 뭘 아느냐', '사회문제에 신경 끄고 네 앞가림이나 해라'라는 '꼰대'의 말에 하고 싶은 말을 삼킬 때가 많습니다. '할많하않', 이 신조어는 '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겠다'의 줄임말입니다. '할많하않'이 아닌, 할 말이 많으니 하겠다는 청년들을 만나봤습니다. [편집자말]
싸가지, 버르장머리, 하여간. 한 포털사이트에 '요즘것들'을 검색하면 연관검색어로 나란히 뜨는 단어들이다. 자연스레 두 문장이 떠오른다. '하여간 요즘 것들은 싸가지가 없어' 혹은 '하여간 요즘 것들은 버르장머리가 없어'.

'요즘 것들'이라는 말엔 부정적인 뉘앙스가 담겨 있다. 하다못해 고대 동굴 벽화에도 '요즘 것들은 버릇이 없다'고 적혀 있다지 않나.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어떤 '것들'로 호명되며 무시당하는 일, 역사가 깊다.

그런데 이 '요즘 것들'이 제 목소리를 내겠다며 만든 신문이 있다. <요즘것들>은 청소년 인권 단체 '아수나로' 언론팀이 제작하는 청소년 신문이다. 지난 11월 28일 오후, 서울시 용산구 남영동의 한 카페에서 <요즘것들>의 필진 공현(필명, 28)씨와 밀루(필명, 18)씨를 마주했다.

청소년은 미성숙하고 보호해야 할 존재?

<요즘것들> 필진 공현씨와 밀루씨<요즘것들>은 청소년 인권 단체 ‘아수나로’ 언론팀이 제작하는 청소년 신문이다. 지난 28일 오후, 서울시 용산구 남영동의 한 카페에서 <요즘것들>의 필진 공현(좌)씨와 밀루(우)씨를 마주했다. ⓒ 김예지


<요즘것들>은 지난해 6월에 창간했다. 두세 달 간격으로 시기에 맞는 이슈를 선정해 신문을 발행한다. 이번 달에 나온 <요즘것들> 8호의 주제는 '진로방해'. 수능을 맞아 '한길만 가라고 강요하는 꼰대질이 진정한 진로 방해'라는 의미를 담았다. 공현씨는 <요즘것들>이라는 제호가 "흔히 청소년들을 가리켜서 말하는 '요즘 것들'이란 의미와 최근에 일어난 뉴스나 이야기를 담는다는 두 가지 의미"라고 설명했다.

<요즘것들>에는 청소년 인권 단체 '아수나로'의 방향과 고민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무한경쟁을 강요하는 사회와 개개인을 몰개성하게 만드는 교육에 대한 문제의식이 중심축이다. '아수나로'는 올해로 설립 9년째. 청소년 단체로는 '터줏대감' 같은 위치다. 아수나로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충분히 기존 언론을 통해 소개될 텐데, 무엇이 아쉬웠을까.

"저희의 목소리가 왜곡되는 경우가 많았어요. 기사를 쓸 때 이미 '청소년은 미성숙하다'거나 '보호해야 하는 존재'라는 편견을 거치면서 왜곡이 되는 경우가 있었죠." (밀루)

그래서 이들은 당사자의 목소리를 직접 전하는 창구를 만들었다. 이 목소리가 인터넷 상에서만 공허하게 떠돌지 않고, '손에 잡힐 수 있도록' 웹진 대신 지면으로 발행하는 신문을 선택했다. 초반엔 바이라인 자리까지 뺀 채 빽빽하게 글을 썼다. 4면짜리 신문으로 시작해서 나중엔 8면으로 확장했다. 그만큼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휴식 없는 삶, 빈번히 가해지는 체벌, 정해진 길을 벗어나면 낙오자가 되는 시스템. 이들의 눈에서 바라본 '청소년'이란, 그야말로 '극한직업'이다. 하지만 기사 주제를 학교와 교육으로 한정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연애 이야기를, 청소년과 마찬가지로 팍팍한 삶을 살고 있는 청년의 이야기를 다루기도 한다.

"K들에게 가능성은 '노오오오오력'을 한다고 펼쳐지는 것이 아니다. 1, 2등급도 결국에는 치킨을 튀기게 되는, 사회 안전망 없는 불안한 사회 속에서 우리는 누구나 K다. 대학을 붙든, 취업에 성공하든 늘 불안할 K다. 이런 K들을 위해 필요한 것은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꼰대질이 아니라, 다른 가능성을 상상할 수 있는 사회적 안전망이다." (<요즘것들> 8호, K의 이야기, 양지혜)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들이 이야기하고 있는 '청소년 문제'는 '청년 문제'와 본질이 다르지 않다.

"결국엔 이어지는 문제예요." (밀루)
"다른 세상에 사는 게 아니라 같은 세상에 사는 거잖아요." (공현)

청소년은 '극한직업', 청년 문제와 본질이 다르지 않아

청소년 신문 <요즘것들><요즘것들>은 청소년 인권단체 '아수나로'가 발행하는 신문이다. 사진은 올해 5월 발행한 요즘것들 5호. '과잉학습'을 주제로 했다. ⓒ 요즘것들


하고 싶은 말을 빈틈없이 채워 넣은 신문을 매호마다 8천 부씩 뽑는다. 주로 청소년 센터 등에 보내고, 학교 등하굣길에 직접 신문을 배포하기도 한다. 그럴 때면, 애독자까진 아니더라도 "또 나왔네, 이거 재밌다"고 말하며 신문을 받아가는 학생도 있다. 자유기고란인 '청소년의 눈으로'에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글을 보내준다. 그만큼 자신의 생각과 고민을 나눌 창구가 절실했다는 증거다.

"최근에 대전의 한 중학생이 학교의 잘못된 두발 규정과 체벌, 반인권적 처우를 비판하는 신문을 직접 만들어 등굣길에 배포했어요. 그것 때문에 징계위가 열렸고, 학교는 과거의 무단결석 기록이나 교사 지도 불응까지 걸고 넘어갔어요. 이런 식으로 학생들이 문제를 제기했을 때 압박하고 징계를 주는 학교가 있죠. 집에서도 눈치가 보이고요." (밀루)

내년이면 10주년을 맞이하는 아수나로.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동안 청소년의 권리를 외쳐왔지만, 여전히 바뀌어야 할 것이 더 많다. 아직도 제 목소리를 내는 것조차 '청소년'이라는 이유로 금지당한다. 밀루씨는 "계속 똑같은 얘기를 해야 한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옆에서 공현씨가 한마디 덧붙인다.

"근데 뭐, 아예 안 바뀌는 것보단 낫죠." (공현)

내년부턴 지원 끊겨... 제작비 충당 방법 고민 중

"쟤 바다보려고 꿈꾸는 거예요"<요즘것들> 6호에 실린 만평. 방학기간에도 학교에 나와 수업을 받아야 하는 학생들의 애환을 담아냈다. ⓒ 요즘것들 공기


태평하게 말했지만, 고민이 없는 건 아니다. 현재 <요즘것들>의 필진은 3명. 6명에서 시작해 딱 반이 됐다. 또 그동안은 아름다운재단의 '청소년 자발적 사회문화활동 지원사업'에 선정돼 신문 제작비를 지원받았지만, 내년엔 자비로 신문을 내야 한다. 해당 사업에 연달아 지원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현재 정기 구독자는 150명 정도. 하지만 구독료 수입이 그리 많지 않다. 구독료가 저렴(1년 정기구독료 1~10부 기준 6천 원)한 데다, 청소년에겐 구독료를 받지 않지 않는 경우도 있다. 당장 내년부터는 제작비를 충당할 방법이 없다.

공현씨는 "모두 지쳤으니 12월엔 좀 쉬는 방향도 생각해보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앞으로 어떤 신문을 만들고 싶으냐' 물으니 이런저런 구상을 늘어놓는다. 그런 공현씨를 보고, 밀루씨가 웃으며 한마디 던진다.

"16면 가야겠네요."

'요즘 것들'은 아직도 할 말이 많다. 

○ 편집ㅣ박정훈 기자

덧붙이는 글 김예지 기자는 22기 오마이뉴스 대학생 인턴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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