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인들에게 진짜 갑은 중앙입양원"
[기획취재] 기지촌 출신 혼혈인의 삶과 희망 ⑦ 엄마 이름도 알기 힘든 입양정보 관리
한국과 인천의 형성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부평미군기지의 역사를 돌아보면서 기지촌 출신 혼혈인들의 삶과 그들의 절규를 담아내고자 기획취재를 진행했다. 이번이 마지막 기사다. - 기자 말
식민지배와 한국전쟁 직후 대한민국은 여러 가지 면에서 국가다운 모습을 갖추지 못했다. 지독한 가난도 문제였지만, 사회개혁을 이뤄내지 못했다. 친일의 역사를 청산하지 못했고, 가부장적이고 폐쇄적 유교문화, 그에 따른 심각한 남녀차별 등이 사회개혁 과제였다.
고아 수출(?)도 당시를 상징했다. 아니, 지금도 한국은 고아수출국이란 오명을 가지고 있다. 현재까지 한국에서 해외로 입양된 아동이 20만 명을 넘는다. 대표적 입양기관인 홀트아동복지회가 국외 입양 활동을 벌인 지 어느덧 60년이 됐다. 홀트아동복지회를 거쳐 해외로 입양된 아동만 8만여 명에 달한다.
한국이 경제개발협력기구(OECD)에 가입한 지도 꽤 오래됐지만, 여전히 해외 입양을 보내는 나라라는 불명예를 가지고 있다. 십분 이해해 궁핍했던 과거에 불가피하게 입양을 보냈다고 하더라도, 올림픽과 월드컵을 개최하고 세계무역대국을 자랑하는 현 시점에서도 여전히 해외 입양은 끊이지 않고 있다. 심각한 것은 한동안 감소했던 해외 입양아가 지난해 다시 늘었다는 것이다. 2006년 1800여 명이던 해외 입양아는 2013년 230여 명으로 줄었다가, 지난해 530여 명으로 늘었다.
더욱이 세계 최고 수준의 저출산 국가가 된 이 마당에 버려진 아이들을 국가가 책임지지 못한다는 것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정부와 정치권이 출산을 장려하면서 해외 입양을 수수방관하는 건 이율배반적이란 지적이 나온다. 국내 입양의 걸림돌이 되는 '입양 특례법' 개정이 시급하다.
한국 찾아왔지만 '엄마 이름' 알기도 쉽지 않아
해외로 입양된 사람의 20% 정도에 해당하는 4만여 명이 혼혈인이다. 혼혈아동들은 가부장적 한국사회에서 정착하지 못하고 대다수 해외 입양됐다. 미국과 서유럽 국가 등으로 입양됐는데, 절대 다수는 미국으로 입양됐다. 해방 이후 미군이 이 땅에 주둔하면서 잉태한 모순이다.
기자는 얼마 전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인천시 부평의 보육시설에 있다가 1979년에 미국으로 입양됐는데, 엄마를 찾고 싶다는 S씨의 사연이었다. 몇 차례 직·간접적으로 입양인의 가족 찾기를 돕다보니 온 연락이다. 어린 나이에 입양된 S씨는 이국에서의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 잘 성장해 안정된 직장생활을 하면서 행복하게 살았다. 그러다 우연한 계기에 한국에 살아있을 수도 있을 엄마를 찾고 싶어졌다.
그는 엄마를 찾기 위해 한국의 여러 기관에 연락했지만, 대답은 '정보를 제공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결국 S씨는 얼마 전 직접 한국을 찾았다. 그리고 자신이 입양 전 생활했던 인천시 부평구 소재 보육시설을 찾았다. 그런데 그곳엔 성당이 들어섰다. 다행히 그 곳에서 수녀님을 만나 잃어버린 기억 한두 조각을 찾을 수 있었다. 그게 그가 얻은 유일한 소득이다.
그는 자원봉사자와 함께 중앙입양원을 방문해 도움을 요청했지만, 역시 '어떠한 정보도 제공할 수 없다'는 대답을 들어야 했다. S씨가 요청한 정보는 하나다. 엄마의 이름. S씨와 관련한 친권 포기 각서엔 정보공개에 관해 전혀 언급돼 있지 않다. 그래서 S씨는 중앙입양원에 입양정보 공개를 신청했다. 하지만 실무자는 '신청해 봐야 공개되지 않는다'고 했다. S씨는 중앙입양원이 책임을 방기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법률에 근거해 친모의 동의 없이는 어떤 정보도 공개할 수 없다는 게 중앙입양원의 입장이다. 입양 특례법 5장(입양아동 등에 대한 정보의 공개)을 보면, 입양인의 친생부모의 동의를 받아 정보를 공개하게 돼있다. 생모가 정보공개에 동의하지 않을 경우엔 인적사항을 공개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친생부모가 사망이나 그밖의 사유로 동의할 수 없는 경우엔 의료상 목적 등 특별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만 입양정보를 공개할 수 있다.
S씨처럼 친생부모를 찾기 위한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지만, 중앙입양원의 대응은 소극적이다. 얼마 전 <한국일보>가 보도한 사례는 충격을 줬다. 해외 입양된 애니킴(28)씨는 친생부모를 찾기 위해 중앙입양원에 입양정보 공개를 신청했다. 중앙입양원은 "부모의 동의를 받지 못해 정보를 줄 수 없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지난 7월 직접 중앙입양원을 방문해 우여곡절 끝에 친생모의 주소를 알게 됐고, 직접 찾아갔다. 친모가 자신을 찾는 것을 싫어하면 어떻게 할까, 하는 걱정도 있었지만, 친모는 "입양기관이 보낸 편지에 본명이 잘못 적혀 있어 확인을 부탁했지만 답변을 받지 못했다"는 반응을 보였다. 친모가 애니씨를 만나는 것을 꺼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입양기관의 소극적 대응으로 친생부모의 정보 제공 의사 표시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사례가 많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달 26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최동익(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밝힌 자료를 보면, 친생부모를 찾고자 입양정보 공개를 청구한 입양인이 2012년 258명에서 2013년 1252명, 2014년 1626명으로 증가했다. 올해는 8월까지 1654명이었다.
2014년 이후 친생부모가 입양정보 제공에 동의하지 않은 비율은 69%(1009건)다. 정보 제공 미동의 사유 중 '친생부모가 상봉을 원치 않아'는 87건(9%)에 불과했다. 나머지 922건(91%)은 연락은 됐지만 회신이 없는 경우였다. 중앙입양원 쪽은 "배우자의 과거 입양 사실을 알고 친부모의 새 가정이 파탄 나는 등의 문제로 친부모의 의사를 묻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기에 어려움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최 의원은 "연락이 닿는 경우가 적은 것은 전보나 등기를 보내는 식으로 연락을 취하기 때문"이라며 "경찰 등과 협조체계를 구축해 적극적으로 친부모를 찾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지원 부족으로 손 뗀 입양기관, 가족 찾기 더 어려워져
한국의 대표적 입양기관으로 알려진 P기관에 취재 협조를 요청해 지난 10월 13일 방문하기로 했다. 대표이사 인터뷰까지 약속됐다. 기관의 요청으로, 기관의 활동 상황과 혼혈입양인의 정보가 어떻게 관리되는지 등을 묻는 사전 질의서를 작성해 방문 하루 전인 12일 전달했다. 12일 오전까지 만해도 인터뷰를 약속했던 P기관에선 같은 날 오후 연락해 취재에 응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혼혈입양인의 정보 관련 질의 때문이냐'는 물음에 대해서도 밝히기를 거부했다.
P기관은 국내 유명 입양기관이다. 지금은 다른 사회복지 사업에 매진하고 있다. 일부 혼혈입양인들은 이 기관을 찾아 친부모 찾기를 위한 정보 제공을 요청했지만,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받지 못하고 있다고 하소연한다.
입양인들의 가족 찾기를 돕고 있는 한 사람은 "세상에 진짜 '갑'은 중앙입양원과 입양기관이다"이라며 "먼 타국 땅에서 가족을 찾겠다고 온 이들에게 정보를 거의 제공하지 않아, 방문할 때마다 잃어버린 기억과 가족에 대한 정보를 겨우 한두 개 정도 얻어간다"고 털어놨다. 이어 "그들에게 잘못 보이면 있는 정보도 제공받지 못한다"며 "때문에 입양인의 가족 찾기를 계속 돕는 우리는 입양기관에 항의하지도 못한다"고 주장했다.
다른 입양기관에 종사하는 한 사람은 익명 처리를 전제로 인터뷰에 응했다. 그는 "입양기관들이 1980년대 후반부터 국제적 구호의 손길이 끊어지고 국내에서도 지원을 받지 못하면서 입양 사업에서 손을 뗐다"며 "종교나 사회복지 차원에서 입양했어도 입양인에 대한 서류조차 제대로 관리되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라고 털어놨다.
그는 이어 "입양 특례법도 문제다, 제도 개선 없이는 입양인들의 가족 찾기는 애를 먹을 수밖에 없다"며 "보건복지부와 지방자치단체, 경찰까지 아우를 수 있는 특별 기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중앙입양원도 문제가 많지만, 거기도 열악한 재정 문제가 있다"고 귀띔했다.
한편 일부 입양인은 가족을 찾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DNA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하지만 실효성이 의문이다. DNA 프로젝트는 입양아, 기지촌 여성, 미군들의 DNA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어 가족이 만날 수 있게 도와주는 프로그램이다. 성원선시오집에 버려진 스티브 워커란 입양인은 이 프로젝트로 1주일 만에 가족을 찾았다. 입양인 이지순씨는 DNA 테스트로 얼마 전 아버지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문제는 입양인이 이 DNA 프로젝트에 적극적인 반면, 한국 가족들의 참여도가 낮다는 것이다. 특히 혼혈입양인의 가족은 더욱 그렇다. 일부 혼혈입양인은 기지촌 할머니들이 생활하는 시설에서 DNA 프로젝트를 실시하고 싶어 하지만, 할머니들이 선뜻 동의하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 5000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대한민국. 대한민국 최대 명절 중 하나인 추석을 하루 앞둔 지난 9월 26일(현지시각) 미국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에 아메라시안(Amerasian) 200여 명이 모였다. 미국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한국인과 캠프타운 2015 컨퍼런스'에서 학생이 한국 무용을 선보이고 있다. 한인사회에서도 혼혈인관련 다양한 활동이 전개되고 있다. ⓒ 한만송
식민지배와 한국전쟁 직후 대한민국은 여러 가지 면에서 국가다운 모습을 갖추지 못했다. 지독한 가난도 문제였지만, 사회개혁을 이뤄내지 못했다. 친일의 역사를 청산하지 못했고, 가부장적이고 폐쇄적 유교문화, 그에 따른 심각한 남녀차별 등이 사회개혁 과제였다.
고아 수출(?)도 당시를 상징했다. 아니, 지금도 한국은 고아수출국이란 오명을 가지고 있다. 현재까지 한국에서 해외로 입양된 아동이 20만 명을 넘는다. 대표적 입양기관인 홀트아동복지회가 국외 입양 활동을 벌인 지 어느덧 60년이 됐다. 홀트아동복지회를 거쳐 해외로 입양된 아동만 8만여 명에 달한다.
한국이 경제개발협력기구(OECD)에 가입한 지도 꽤 오래됐지만, 여전히 해외 입양을 보내는 나라라는 불명예를 가지고 있다. 십분 이해해 궁핍했던 과거에 불가피하게 입양을 보냈다고 하더라도, 올림픽과 월드컵을 개최하고 세계무역대국을 자랑하는 현 시점에서도 여전히 해외 입양은 끊이지 않고 있다. 심각한 것은 한동안 감소했던 해외 입양아가 지난해 다시 늘었다는 것이다. 2006년 1800여 명이던 해외 입양아는 2013년 230여 명으로 줄었다가, 지난해 530여 명으로 늘었다.
더욱이 세계 최고 수준의 저출산 국가가 된 이 마당에 버려진 아이들을 국가가 책임지지 못한다는 것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정부와 정치권이 출산을 장려하면서 해외 입양을 수수방관하는 건 이율배반적이란 지적이 나온다. 국내 입양의 걸림돌이 되는 '입양 특례법' 개정이 시급하다.
한국 찾아왔지만 '엄마 이름' 알기도 쉽지 않아
▲ 1955년 2월<경인일보>(지금의 <경인일보>와는 다른 신문)실린 혼혈아 모집 광고. 대한민국 정부는 혼혈인들을 책임지지 않았다. 오히려 이들을 국외로 내보내서 돈을 벌었다. ⓒ 경인일보
기자는 얼마 전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인천시 부평의 보육시설에 있다가 1979년에 미국으로 입양됐는데, 엄마를 찾고 싶다는 S씨의 사연이었다. 몇 차례 직·간접적으로 입양인의 가족 찾기를 돕다보니 온 연락이다. 어린 나이에 입양된 S씨는 이국에서의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 잘 성장해 안정된 직장생활을 하면서 행복하게 살았다. 그러다 우연한 계기에 한국에 살아있을 수도 있을 엄마를 찾고 싶어졌다.
그는 엄마를 찾기 위해 한국의 여러 기관에 연락했지만, 대답은 '정보를 제공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결국 S씨는 얼마 전 직접 한국을 찾았다. 그리고 자신이 입양 전 생활했던 인천시 부평구 소재 보육시설을 찾았다. 그런데 그곳엔 성당이 들어섰다. 다행히 그 곳에서 수녀님을 만나 잃어버린 기억 한두 조각을 찾을 수 있었다. 그게 그가 얻은 유일한 소득이다.
그는 자원봉사자와 함께 중앙입양원을 방문해 도움을 요청했지만, 역시 '어떠한 정보도 제공할 수 없다'는 대답을 들어야 했다. S씨가 요청한 정보는 하나다. 엄마의 이름. S씨와 관련한 친권 포기 각서엔 정보공개에 관해 전혀 언급돼 있지 않다. 그래서 S씨는 중앙입양원에 입양정보 공개를 신청했다. 하지만 실무자는 '신청해 봐야 공개되지 않는다'고 했다. S씨는 중앙입양원이 책임을 방기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법률에 근거해 친모의 동의 없이는 어떤 정보도 공개할 수 없다는 게 중앙입양원의 입장이다. 입양 특례법 5장(입양아동 등에 대한 정보의 공개)을 보면, 입양인의 친생부모의 동의를 받아 정보를 공개하게 돼있다. 생모가 정보공개에 동의하지 않을 경우엔 인적사항을 공개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친생부모가 사망이나 그밖의 사유로 동의할 수 없는 경우엔 의료상 목적 등 특별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만 입양정보를 공개할 수 있다.
S씨처럼 친생부모를 찾기 위한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지만, 중앙입양원의 대응은 소극적이다. 얼마 전 <한국일보>가 보도한 사례는 충격을 줬다. 해외 입양된 애니킴(28)씨는 친생부모를 찾기 위해 중앙입양원에 입양정보 공개를 신청했다. 중앙입양원은 "부모의 동의를 받지 못해 정보를 줄 수 없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지난 7월 직접 중앙입양원을 방문해 우여곡절 끝에 친생모의 주소를 알게 됐고, 직접 찾아갔다. 친모가 자신을 찾는 것을 싫어하면 어떻게 할까, 하는 걱정도 있었지만, 친모는 "입양기관이 보낸 편지에 본명이 잘못 적혀 있어 확인을 부탁했지만 답변을 받지 못했다"는 반응을 보였다. 친모가 애니씨를 만나는 것을 꺼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입양기관의 소극적 대응으로 친생부모의 정보 제공 의사 표시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사례가 많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달 26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최동익(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밝힌 자료를 보면, 친생부모를 찾고자 입양정보 공개를 청구한 입양인이 2012년 258명에서 2013년 1252명, 2014년 1626명으로 증가했다. 올해는 8월까지 1654명이었다.
2014년 이후 친생부모가 입양정보 제공에 동의하지 않은 비율은 69%(1009건)다. 정보 제공 미동의 사유 중 '친생부모가 상봉을 원치 않아'는 87건(9%)에 불과했다. 나머지 922건(91%)은 연락은 됐지만 회신이 없는 경우였다. 중앙입양원 쪽은 "배우자의 과거 입양 사실을 알고 친부모의 새 가정이 파탄 나는 등의 문제로 친부모의 의사를 묻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기에 어려움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최 의원은 "연락이 닿는 경우가 적은 것은 전보나 등기를 보내는 식으로 연락을 취하기 때문"이라며 "경찰 등과 협조체계를 구축해 적극적으로 친부모를 찾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 어려서 덴마크로 입양된 박영랑씨가 가족을 찾기 위해 인천시 부평구 부평4동 일대에 10월 16일 유인물을 붙이고 있다. 그녀는 지난 번 <오마이뉴스>에 게재된 "혼혈아 모집" 일간지에 버젓이 실린 광고 기사와 관련해 자신을 입양혼혈인으로 오해할 수 있다는 우려를 밝혀왔다. ⓒ 한만송
지원 부족으로 손 뗀 입양기관, 가족 찾기 더 어려워져
한국의 대표적 입양기관으로 알려진 P기관에 취재 협조를 요청해 지난 10월 13일 방문하기로 했다. 대표이사 인터뷰까지 약속됐다. 기관의 요청으로, 기관의 활동 상황과 혼혈입양인의 정보가 어떻게 관리되는지 등을 묻는 사전 질의서를 작성해 방문 하루 전인 12일 전달했다. 12일 오전까지 만해도 인터뷰를 약속했던 P기관에선 같은 날 오후 연락해 취재에 응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혼혈입양인의 정보 관련 질의 때문이냐'는 물음에 대해서도 밝히기를 거부했다.
P기관은 국내 유명 입양기관이다. 지금은 다른 사회복지 사업에 매진하고 있다. 일부 혼혈입양인들은 이 기관을 찾아 친부모 찾기를 위한 정보 제공을 요청했지만,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받지 못하고 있다고 하소연한다.
입양인들의 가족 찾기를 돕고 있는 한 사람은 "세상에 진짜 '갑'은 중앙입양원과 입양기관이다"이라며 "먼 타국 땅에서 가족을 찾겠다고 온 이들에게 정보를 거의 제공하지 않아, 방문할 때마다 잃어버린 기억과 가족에 대한 정보를 겨우 한두 개 정도 얻어간다"고 털어놨다. 이어 "그들에게 잘못 보이면 있는 정보도 제공받지 못한다"며 "때문에 입양인의 가족 찾기를 계속 돕는 우리는 입양기관에 항의하지도 못한다"고 주장했다.
다른 입양기관에 종사하는 한 사람은 익명 처리를 전제로 인터뷰에 응했다. 그는 "입양기관들이 1980년대 후반부터 국제적 구호의 손길이 끊어지고 국내에서도 지원을 받지 못하면서 입양 사업에서 손을 뗐다"며 "종교나 사회복지 차원에서 입양했어도 입양인에 대한 서류조차 제대로 관리되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라고 털어놨다.
그는 이어 "입양 특례법도 문제다, 제도 개선 없이는 입양인들의 가족 찾기는 애를 먹을 수밖에 없다"며 "보건복지부와 지방자치단체, 경찰까지 아우를 수 있는 특별 기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중앙입양원도 문제가 많지만, 거기도 열악한 재정 문제가 있다"고 귀띔했다.
한편 일부 입양인은 가족을 찾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DNA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하지만 실효성이 의문이다. DNA 프로젝트는 입양아, 기지촌 여성, 미군들의 DNA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어 가족이 만날 수 있게 도와주는 프로그램이다. 성원선시오집에 버려진 스티브 워커란 입양인은 이 프로젝트로 1주일 만에 가족을 찾았다. 입양인 이지순씨는 DNA 테스트로 얼마 전 아버지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문제는 입양인이 이 DNA 프로젝트에 적극적인 반면, 한국 가족들의 참여도가 낮다는 것이다. 특히 혼혈입양인의 가족은 더욱 그렇다. 일부 혼혈입양인은 기지촌 할머니들이 생활하는 시설에서 DNA 프로젝트를 실시하고 싶어 하지만, 할머니들이 선뜻 동의하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 편집ㅣ손지은 기자 |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시사인천(isisa.net)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