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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에 문화유산 씨앗 뿌려... 옛 것 잘 활용해야"

[탐방] 사단법인 해반문화사랑회

등록|2015.12.04 10:17 수정|2015.12.04 10:17
인천에서 20년 넘게 활동한 문화단체가 있다. 인천을 상징하는 '바다'라는 뜻과 모든 것의 '반석'이 되자는 뜻으로 지은 해반(海盤)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인천의 문화예술 활성화와 문화유산을 지키는 반석이 되고자 활동해온 사단법인 해반문화사랑회(이하 '해반')가 그것이다. 지난 23일, 이명운(58) '해반' 운영위원장을 만나 20여년의 역사를 들었다.

지역사랑·문화사랑·인간사랑
   

▲ 이명운 ‘해반문화사랑회’ 운영위원장 ⓒ 김영숙


"1991년 해반갤러리로 시작했어요. 당시 부평구가 인천에서 가장 잘 사는 동네였는데, 이흥우 명예 이사장과 최정숙 이사장이 부평에 갤러리를 만들어 좋은 기획전을 많이 열었습니다. 그런데 보러 오는 사람이 별로 없어 실패했어요. 인천이라는 곳의 한계를 느꼈고, 아무리 좋은 문화도 즐기는 사람이 없으면 헛 일이라는 것을 깨달아 인천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을 고민하다가 지인들과 가족들이 모여 문화답사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발걸음이 1994년 '해반문화사랑회'라는 시민문화단체로, 1999년에는 사단법인 설립으로 발전했다. 사단법인 설립 이후 이흥우 초대 이사장을 시작으로 현재는 최정숙 5대 이사장이 '해반'을 이어나가고 있다. 초대 이사장은 현재 명예 이사장이라는 타이틀로 여전히 해반이 활동하는 곳이면 어디든 발걸음을 한다.

해반문화사랑회는 우리가 사는 인천의 문화를 사랑하자는 취지의 '지역사랑', 지역사랑의 기제로 활용한 '문화사랑', 그 모든 사랑의 중심에는 '인간사랑'이 있다는 마음을 담아 '지역사랑·문화사랑·인간사랑'을 모토로 삼았다.

"지인의 소개로 해반문화포럼에 참석했다가 회원이 됐어요. 그때는 30대였는데 벌써 50대가 됐네요. 내부 갈등으로 어려운 시기도 있었지만, 지금 제가 운영위원장으로 활동할 수 있었던 건 한마디로 의리라고 생각합니다."

이 운영위원장은 인터뷰에서 줄곧 '의리'를 강조했다. 구체적으로는 명예 이사장과 최 이사장에 대한 의리였다. 이흥우 명예 이사장이 초대 이사장이었을 때 홀로 애쓰는 모습이 안쓰러워 조금이라도 돕겠다는 마음으로 '해반' 활동을 시작했다.

2007년 인천의제21실천협의회 주관으로 인천 관광코스 21개를 엮은 '인천을 탐하라'는 책을 낸 이 운영위원장은 2012년 문화재청의 후원을 받아 인천근대문화재 둘레길 개발단장으로 활동했다.

"단장으로 활동하면서 명예 이사장님과 현 이사장님이 하시는 일에 작은 힘을 보태려고 한 게 운영위원장까지 맡게 됐어요. 처음엔 고사했는데 편안한 삶을 거부하고 활동하시는 두 분의 삶을 지켜봐왔기에 의리로 남아있는 겁니다."

인하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이 운영위원장은 매주 월요일 수업을 빼고 '해반' 사무실에서 상근한다. 이 운영위원장이 말한 의리는 '해반'이 내건 지역·문화·인간사랑을 달리 표현한 것이다.

인천에 문화유산이라는 씨앗 뿌려

"법인 이름은 해반문화사랑회라는 일곱 글자지만 이제는 '해반문화'라는 약칭을 쓰려합니다. 사랑의 열매를 맺었으니까요. 인천지역에 문화유산이라는 뿌리를 내렸고, 그 열매를 맺었다고 생각합니다. 근대문화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생겼고, 다양한 시민문화단체가 만들어지는 데 일조했다고 생각합니다."

법인 설립 후 '해반'은 해반문화포럼으로 인천 문화의 현주소를 진단하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모색해왔다. 지난달 28일에는 '강화 국방유적을 세계유산으로'라는 주제로 60회 포럼을 열기도 했다. 각계 전문가가 함께하는 '해반'은 이 포럼으로 인천시에 정책을 제안하고 조언도 했으며, 많은 부분 반영되기도 했다. 인천시의 근대건축물 보존계획 수립과 월미관광특구 지정, 동구 수도국산박물관과 중구 아트플랫폼 건립 등이 그 예다.

그런데 '해반'이 무엇보다 관심과 열정을 기울인 것은 '문화재와 문화유산'이다.

"인천을 설명할 때 개항으로 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개항장이 중구이고, 중구에 남아 있는 근대문화유산이 많잖아요. 그것을 알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답사하면서 인천을 돌아다녀보니 산업시설과 항만, 섬 등도 답사하게 됐고요. 일단 '해반'은 근대문화유산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이 부분을 제대로 알고 나서 다른 영역으로 확대하자'고 생각했는데, 일부에서는 '중구만 인천이냐'는 문제제기도 있었습니다. 이제는 인천지역에 다양한 문화예술단체가 생겼으니 다른 조직에서 다른 분야를 시도하면서 확장해도 될 것 같습니다. 우리의 능력만큼, 우리가 잘 할 수 있는 것을, 지치지 않을 정도로만 할 생각입니다."

'문화조급증' 버리고 옛 것 잘 활용해야
   

▲ 지난 7월에 해반문화사랑회가 진행한 ‘청소년 역사·문화·전통 프로그램’ 참가자들이 기념촬영을 했다.<사진제공·해반문화사랑회> ⓒ 김영숙


'해반'은 지난 2012년 인천 근대문화재 둘레길 코스를 개발했다.

"세 가지 테마인데 쉽게 이름을 붙여봤어요. 먼저 가톨릭과 개신교, 성공회성당 등, 근대 종교건물이 있는 종교길이 있고, 차이나타운에 있는 화교중산학교나 제물포고등학교 주변의 근대문화유산이 남아있는 학교길이 두 번째 길. 일본우선주식회사나 우체국, 일본은행 등의 근대문화유산이 있는 경제길로 나눠봤어요."

100여 년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이 길들을 실제로 측정했다고 이 운영위원장은 강조했다. 예를 들어 '경제길을 돌아다니는 데는 성인 걸음으로 2750보가 필요하고, 연인끼리 걸으면 걸음이 더 늘어난다'고 했다.

'해반'은 2013년 10회 대한민국 문화유산상 봉사·활용 부문 수상단체로 선정돼 대통령상을 표창하기도 했다. 문화유산을 전시나 책자, 체험학습 등으로 시민들에게 널리 알린 공로를 인정받은 결과다. 특히 학생 봉사시간을 활용한 청소년 문화재 지킴이 활동이 봉사·활용부문에 큰 역할을 했다.

'해반'은 2000년대 중반부터 학생들을 대상으로 인천 근대문화 방문교육을 꾸준히 해왔으며, 2013년부터는 학교 특별체험학습의 일환으로 문화재 현장에서 학생들이 해반 문화지킴이 해설사들과 함께 중요성을 느낄 수 있는 체험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미래의 주인공은 청소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들만으로는 한계가 있어 청소년 문화재 지킴이 멘토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청소년들을 대학생들과 연계시키고 대학생들을 성인과 연계시켜 서로 멘토가 되는 것입니다. 문화재 지킴이 활동을 했던 청소년들이 대학생과 성인이 되면서 재능기부도 할 수 있고 멘토 역할로 이어진다면 미래의 희망이 있다고 봅니다. 이 시스템이 중요하죠."

"우리는 남의 것을 베끼는 습성이 있습니다. '문화조급증'이라고 보는데요. 가령 벽화그리기가 붐을 이뤘던 적이 있어 여기저기서 벽화그리기 사업을 했어요. 그러나 보존도 안 되고 그 마을에 어울리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동네 축제도 모방이 아닌 개성을 살려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죠. 옛 것을 지키면서 활용하기 위해서는 지역 특성에 맞는 관광산업을 개발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중구의 북성부두와 동구의 만석·화수부두가 이어져 있어요. 한 코스로 연결해 개발하면 좋은데 동구와 중구의 협조와 의견 조율이 안 되기도 하고, 동구의 괭이부리말 지역의 빈 집을 활용해 게스트하우스로 이용하면 좋겠다고 우리 단체에서 제안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았죠. 좀 더디더라도 마을의 특성과 가치에 맞아야 문화 수준이 한 단계 올라가지 않을까요?"
덧붙이는 글 <시사인천>에 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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