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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은 특별하게 기억 될 2015년 가을

자유학기제 글쓰기 교사로 교단에 서다

등록|2015.12.14 12:04 수정|2015.12.14 12:04
2015년 가을은 조금은 제겐 특별한 기억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지난 8월부터 12월까지 선생님이 되어 학생들을 가르쳐서입니다. 현재 정부가 시행 중인 '자유학기제'에 힘입어 충남 당진시 합덕면에 있는 합덕여자중학교에서 '글쓰기' 과목을 맡았습니다.

전 글쓰기를 업으로 하는 사람이지만, 경력이라곤 몇몇 인터넷 신문에서 일한 게 고작입니다. 그런 제가 학생들을 가르치게 됐다니 한편으로는 자랑스러웠지만, 수업 날짜가 다가오면서 긴장감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더구나 글쓰기는 누구나 어려움을 느끼는 일이어서 스마트 기기에 익숙한 요즘 아이들이 잘 따라올지 도통 자신이 없었습니다.

합덕여중은 전교생이 117명 밖에 되지 않는 시골학교입니다. 그러나 학생들 대부분이 스마트폰 하나쯤은 갖고 있었고, 부모로부터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아이들도 많아 시골학교라고 만만히 볼 수만은 없었습니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일이라면 조카가 가르칠 학생들 또래(여중 2학년)여서 아이들 정서를 살짝 들여다 볼 수는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고민은 적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요사이 아이들 사이에 오가는 말들이 너무 거칩니다. 욕설은 기본이고, 국적불명의 신조어들이 난무합니다. 그리고 어른들은 아이들의 언어습관을 보고 버르장머리 없다고 타박하기 일쑤입니다. 언론 역시 한글날만 되면 청소년들의 언어습관을 질타합니다. 그러나 곰곰이 따져보면 마냥 아이들만 타박할 수는 없습니다. 어른들이 좋은 말을 가르치지 않아서 벌어지는 일들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중학교 다니던 시절, 교사들은 폭력에 가까운 체벌을 가했습니다. 저와 비슷한 시기, 즉 71년과 72년에 태어난 또래들은 사상 최고의 입시경쟁이 펼쳐졌기에 교사들의 폭력은 일정 수준 당연시됐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아무리 입시경쟁이 치열해도 교사들의 체벌은 안 될 말이었지만 말입니다.

전 중학교 3학년 시절 수학교사의 막말을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한 번은 무작위로 문제풀이를 시켰는데, 지목 당한 친구가 제대로 풀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이 교사는 친구의 따귀를 때리며 "선생님들한테 총 하나 주고서 못하면 쏴 죽이라고 하고 싶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쳤었습니다. 비단 수학 시간 뿐만 아니라 모든 시간에서 좋은 말 보다는 이런저런 폭력에 시달렸던 기억이 더 많았습니다.

더구나 지금 어른들의 말은 참으로 민망한 수준입니다. 지난 10월 충암고등학교 급식비리가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습니다. 특히 학생들에게 폐식용유로 음식을 만들어 줬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여론은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이에 대해 학교 측은 "재탕은 했지만 삼탕은 안했다"는 기막힌 해명을 내놓았습니다.

어른들의 언어생활, 아이들 언어마저 오염시켜

어디 그뿐일까요? "규제를 단두대에 올려 처리하겠다", "혼이 비정상이다", "그런 기운이 온다"는, 주술사나 쓰는 말들이 대통령의 입에서 서슴없이 나왔습니다. 집권 여당 의원들의 언어는 더욱 심각합니다.

여당 대표는 "노조가 쇠파이프만 휘두르지 않았다면 국민소득 3만불 갔다"고 했고, 이 당 소속 의원은 "미국 경찰은 총을 쏴서 시민이 죽는다"고 했습니다. 사실 이런 말은 차라리 안 하느니만 못하다고 봅니다. 교육 현장, 그리고 한 나라를 이끌어가는 청와대와 집권 여당에서 막말과 궤변이 난무하니 아이들의 언어가 거칠어지는 건 당연한 귀결일 것입니다.

위와 같은 이유로 학생들에게 좋은 말을 가르치기 위해 많은 공을 들였습니다.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는 마틴 루서 킹의 연설에서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는 요기 베라의 명언, 그리고 귄터 그라스의 <양철북>, 윌리엄 진서의 <글쓰기 생각쓰기>, 미치 엘봄의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 등 학창 시절뿐만 아니라 인생을 살면서 한 번 쯤 읽어야 할 책들을 알려주고, 읽혀줬습니다.

또 에드워드 스노든의 사례를 들며 "명문대학 진학보다 자기가 서 있는 자리에서 옳은 일을 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도 했습니다(만약 학부모가 제 수업을 참관했다면 큰 충격을 받았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학생들이 그간 들려준 '좋은 말'들을 얼마만큼 기억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저 씨를 뿌리며, 그 씨가 학생들의 마음 밭에 잘 자라주기를 바라는 마음만 갖고 수업에 임했습니다.

마지막 시간, 학생들에게 그동안 수업하면서 느낀 점들을 적어 보라고 했습니다. 그중 한 아이가 이런 느낌을 적어줬습니다.

"선생님이 친절하게 대해 주셔서 더 마음을 열 수 있게 된 것 같다."

성적 부담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자유학기제

▲ 합덕여중에서 자유학기제 '글쓰기' 수업을 마친 뒤 학생들과 함께 찍은 기념사진 ⓒ 지유석


또 한 가지, 학생들을 보니 세월호를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세월호 희생자들 대부분이 어린 학생들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아이들 보니 미안한 마음을 억누를 수 없었고, 그래서 첫 수업시간에 "비록 큰 언론사에서 일하는 기자는 아니지만, 여기 이 자리에 있는 학생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2016년도엔 자유학기제가 전면 실시된다고 합니다. 자유학기제의 취지는 '아이들에게 성적 부담을 주지 않고 자신들의 적성과 미래를 탐색, 설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취지에 깊이 공감합니다.

그러나 수업을 진행해 보니, 중학교 1학년 학생 조차 학업 성적 부담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하는 모습이 역력했습니다. 시험이 임박한 시기인 경우, 글쓰기 수업보다 시험 공부하는 아이들이 자주 눈에 띄었으니까요. 또 꿈을 적어 보라 하니 많은 아이들이 벌써부터 취업 걱정에 전전긍긍해 했습니다.

이 아이들을 탓하려는 게 아닙니다. 모든 학사일정이 '입시'에만 맞춰져 있는 교육현실이 근본적으로 개선되지 않으면, 자유학기제는 그저 한 번의 체험에 그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실제로 입시를 준비해야 하는 3학년은 자유학기제 적용 대상이 아닙니다.

입시제도의 개선은 하루아침에 될 일은 아닐 것입니다. 단, 자유학기제도가 아이들이 입시 부담에 벗어나 '진짜' 자신의 꿈을 찾아 갈 수 있도록, 그래서 궁극적으로 입시위주의 교육을 개선할 작은 단초가 되기를 바랍니다.

끝으로 한 학기 동안 열심히 글쓰기 공부에 임한 합덕여중 1학년 1반 학생 모두에게 감사의 마음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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