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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의 '스모그 지옥', 한국도 안심 못한다

[현지 르포] 초유의 홍색경보 속에서 본 베이징 스모그... 대기 바뀌면 한국도 불안

등록|2015.12.15 20:13 수정|2015.12.15 20:13
지난 7일 오후 1시, 기자가 탄 인천발 베이징행 항공기가 베이징 수도공항 활주로에 서서히 접근했다. 사람들은 고개를 내밀고 밖을 보려고 했다. 하지만 가시거리가 극히 짧아 볼 수 있는 것은 가까운 공항 시설뿐이었다.

입국 수속을 한 후 시내로 들어갈수록 하늘은 더욱 어두웠다. 오후 4시가 넘어가자 해가 지듯 사위는 어둠에 깔렸다. 그렇게 악명 높은 베이징 스모그와 오랜만에 재회했다.

7일 일몰 무렵. 베이징 톈안먼광장마스크를 쓴 채 광장을 걸어가는 이와 사람 대신 스모그가 가득찬 톈안먼 광장이 보인다. ⓒ 조창완


일행 중 처음 베이징에 온 이들을 위해 미세먼지에도 톈안먼 광장을 찾았다. 마침 일몰 시각에 맞춰서 국기 하강식이 열리고 있었다. 스모그 속 국기 하강식은 묵시록의 배경처럼 어두웠다. 하지만 대부분이 외지 방문자인 여행객들은 마스크를 쓰지도 않고 스모그와 일몰로 어두워지는 톈안먼을 즐기고 있었다.

베이징의 모든 것을 바꾼 스모그

이번 스모그는 2004년부터 5년여 동안 베이징에서 살면서도 경험해보지 못한 독한 스모그였다. 그렇다고 다음날은 좋아지리라는 기대를 할 수는 없었다. 정확성으로 정평이 나 있는 중국기상대는 기자가 베이징에 머무는 9일까지 스모그가 심할 거라는 예보를 내놓은 상태였다. 8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호텔 창밖을 바라봤다.

예보대로 더 강한 스모그가 닥쳤다. 호텔에서 300여m 앞에 있는 베이징한국국제학교는 형체도 볼 수 없었고, 맞은편 아파트 단지의 잔영만이 보였다. 중국기상대는 중국 대도시 역사상 처음으로 홍색예보(紅色豫報)(대기오염 최고 등급 경보)를 발령했다. 곧바로 자동차는 2부제가 시행됐다. 끝이 홀수인 차들은 베이징 5환선 내부 운행이 금지됐다. 유치원 및 초등·중학생들에게는 3일간의 휴교령이 발동됐다. 일반 사업장도 탄력적으로 운영하라고 지시가 떨어졌다. 당연히 베이징 인근 공장도 가동이 금지됐다. 먼지가 날 수 있는 공사나 화물차의 운행도 금지됐다.

어떤 상황이 사상 첫 스모그 홍색예보를 불렀을까. 일반적으로 중국에서 가장 높은 단계로 여겨지는 스모그 예보는 '스모그 황색예보'(霾橙色预警)다. 황색예보는 가시거리와 습도를 연결해 발표한다. 스모그 예보의 경우 스모그(霾), 오염심각(重度汚染) 등 표시가 다양한데, 이 판단은 베이징시 기상대가 한다.

하지만 이번에 발표된 홍색예보는 베이징시환경국 안에 설치된 '베이징시 공기중오염 긴급지휘부'의 건의에 따라 '베이징응급반'이 결정해 공포한다. 그리고 홍색예보를 모든 네트워크를 통해 긴급공포하는 것이 의무다.

기자의 중국 핸드폰에도 역시 긴급히 홍색예보 발령과 2부제 시행, 학교 휴교 등의 소식이 떴다. 이날 9시에 베이징 시내 중심에서 북서 방향으로 43여 km 정도 떨어진 회사에 가기 위해 호텔을 나섰다. 가는 내내 차 안에서도 마스크를 눌러쓰지 않으면 안 될 만큼 베이징은 잿빛이었다. 시내에서 벗어나면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예측은 전혀 맞지 않았다. 외곽도 마찬가지로 잿빛이었다. 팔달령 장성으로 가는 길목은 물론이고, 과수원, 평원 등 모든 것이 스모그에 덮였다. 베이징을 터전으로 살고 있는 후배가 입을 열었다.

"이번 스모그가 심각한 이유가, 이 시기에 부는 북서풍이 아닌 남동풍 때문에 베이징에 나쁜 공기가 갇히면서 벌어진 일이라고 언론들은 말해요."

맞는 분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베이징은 지형상 북쪽 옌산산맥(燕山山脈)이, 서쪽 예산포(野三坡) 등 높이 1000m에 가까운 산이 막ㅇ고 있다. 아래는 화북평원의 탁 트인 지대다. 그리고 화북평원 지역은 중국에서도 가장 산업이 발달한 탕산, 톈진, 스좌좡 등이 위치해 오염원이 가장 많은 지역이다.

이런 상황에서 겨울이 되면 대기는 잠잠해지고, 난방시즌이 되는 11월 말이면 일반 가정은 석탄을 연료로 난방을 시작한다. 멈춘 대기로 급속히 늘어난 자동차 매연, 가정용 연탄의 스모그, 공장 배출가스가 섞이면 순식간에 스모그 속에 빠진다. 중국 화북지방의 겨울 대기는 보통 일주일 단위로 바뀌는데, 이런 상태라면 격주로 스모그가 이 지역 사람들을 괴롭힐 가능성이 높다. 이번 베이징 인근 스모그는 화북평원의 도시들이 일제히 베이징을 향해 진격하는 형상으로, 베이징 일대의 하늘을 뒤덮었다.

한국도 안심할 수 없는 스모그

베이징 왕징의 스모그 상황7일 오후 5시경(위)과 8일 아침 8시(중간), 9일 아침(아래) 베이징 왕징의 모습. 아래는 비가 왔지만 자욱한 스모그가 눈에 띈다 ⓒ 조창완


중국의 기상 제어 능력은 정평이 나 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이나 금년 전승절 행사처럼 인공비 등 과학적 제어능력과 '공장가동 금지' 혹은 자동차 2부제 등을 통해 오염량을 조절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들도 스모그에서는 별 소용이 없다. 비가 미세먼지를 감소시키는 역할을 하지만 미세먼지를 제어할 만한 인공비는 양과 시간 문제 때문에 만들어내기 쉽지 않다. 기자는 지난해 '미세먼지가 황사보다 무서운 4가지 이유'라는 기사에서 미세먼지의 특징을 '대기오염의 집합체', '쉽게 사라지지 않는 특성', '시기의 예측 불가능', '대기의 정화작용 실패'로 꼽았다. 이런 우려는 이번 스모그에서도 그대로 재현됐다. 지난해 우리나라나 중국의 미세먼지는 황사가 오기 전인 2월 말에 심하게 왔는데, 중국에서지만 올해는 초겨울부터 미세먼지가 광풍을 일으키는 것에서도 확인된다.

그럼 중국 미세먼지가 한국에는 악영향을 주지 않을까. 이번에는 앞서 이야기한 남동풍과 이후 내린 비로 인해 미세먼지가 한국에 영향을 주지 않았을 뿐 금년은 물론이고 언제 어느 때라도 중국 미세먼지가 한국을 위협할 가능성은 농후하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올해는 남동풍이 베이징의 공기를 밀어올리면서 한국은 미세먼지에서 안전해졌다. 최근 기상현상에서 가장 놀라운 것 가운데 하나가 최근 한국이나 중국 중남부의 날씨 변화다. 세계 기상 당국은 올해 가장 큰 기상현상으로 엘니뇨를 꼽았다. 남미 페루 앞바다의 수온이 올라가면서 일어나는 지구대기 현상인 엘니뇨의 특징 중 하나는 내륙의 고온건조 현상이다.

그런데 올겨울 엘니뇨는 특이하게도 한반도와 중국 남부에 고온 현상과 강수를 가져왔다. 이로써 북태평양기단이 강해지면서 상대적으로 스모그가 한반도로 오는 것을 막았다. 그러나 슈퍼 엘니뇨는 기상이변이고, 통상은 겨울철에는 시베리아 기단이 강세를 띠면서 북풍이나 북서풍이 부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다. 언제든 중국의 대기가 한반도로 넘어올 수 있는 이유다.

당분간 중국 정부도 통제할 수 없는 스모그

발원지가 대부분 중국이나 몽골인 황사와 달리 국내에서 발생하는 스모그의 60% 이상은 우리나라에서 자체 발생한다. 건조한 겨울 공기와 자동차 가스, 난방 매연 등이 우리나라 황사 발생의 주원인이다. 그렇다고 중국발 스모그라는 요소를 안심하기는 이르다. 지금도 대기가 급속히 바뀌듯이 중국 화북지역의 스모그가 한반도를 향하는 것은 순식간의 일이다. 지난해 2월처럼 중국 화북 지방의 스모그가 한국을 습격할 가능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그럼 대책은 없을까. 중국은 다양한 방식으로 스모그를 줄이려 하지만 급증하는 자동차 수의 증가와 난방 연료 문제를 제어하기는 역부족이다. 현재 화북지방 일반 가정에서 연탄을 쓰는 비중은 60%이고, 이것이 스모그에 차지하는 비중도 상당하다. 난방연료 선진화가 시급하지만 2030년에도 이 비중은 50% 정도로 추정돼 개선될 여지가 크지 않다.

급증하는 자동차를 통제하는 것도 큰 문제 중 하나다. 베이징시는 2011년부터 연간 24만 대의 자동차 번호를 추첨으로 주는 야호하오(摇號)정책을 시행하다가 지난해부터는 15만대로 축소했다. 베이징 후커우(주민증)를 갖고 있는 등 자격이 부합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이 번호판 추첨은 경쟁률이 급증해 150대 1에 근접했다. 로또가 된 자동차 번호판 경매 때문에 지난해 11월 베이징법원에서 열린 11개의 자동차번호판 경매에는 4100명이 지원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베이징자동차 전기차 라인중국 전기자동차 판매 1위를 달리고 있는 베이징자동차의 전기차 라인. 중소형자동차의 경우 지원금을 받으면 일반 가솔린차와 큰 차이가 없다. ⓒ 조창완


그러나 베이징의 번호판 정책도 인근 톈진이나 허베이 번호판을 받은 차량이 베이징에서 운행되는 등 부작용이 발생하면서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이 때문에 베이징시는 내년부터 외지 차량의 베이징 진입을 제한하겠다고 발표했다. 또 시내의 오염을 줄이기 위해 발급하는 번호판 가운데 3만 대였던 전기차의 비중을 9만대로 3배 가량 올려 도심 공기를 관리하는 궁여지책도 동원했다.

8일 오전에 베이징 서북향의 중공업 공장을 면담한 후 오후에는 동남향에 있는 베이징자동차 전기차 부분을 방문했다. 베이징 자동차 입구에는 현재 사용되고 있는 전기차 모델이 늘어서 있었다. 현재 이 회사가 시장에 출시한 모델은 EV200(1회 충전후 거리 200km 주행), ES210(최고 시속 210km) 등 6종이었다. 일반 충전은 6~8시간이지만 급속충전 장치가 있는 곳에서는 30분에 80%를 충전할 수 있는 EV200은 보조금을 받으면 12만 위안(한화 2200만 원 가량)에 팔리고 있어 이미 경쟁력을 확보했다. 특히 베이징시의 1년 전기차 할당량이 3만 대에서 9만 대로 세 배 가량 늘면서 자동차 산업지형까지 변화시키고 있었다.

9일 아침 베이징 용허궁비가 내린 후지만 아직 스모그가 가시지 않은 베이징 용허궁. 향은 불을 붙이지 않고, 재 위에 꽂아야 한다. 불을 태우는 향로는 모두 뚜껑에 덮여 있다. ⓒ 조창완


베이징 일정의 마지막 날인 9일 새벽에도 호텔 커튼을 열면서 맑은 날을 기대했지만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거리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비가 스모그에는 별 효과가 없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처럼 사방은 여전히 스모그가 잔뜩 끼어 있었다.

용허궁이라는 라마교 사원을 들렀다. 평소 영험하기로 소문난 이 절의 입구는 다양한 크기와 모양의 향을 파는 이들로 문전성시를 이루는데 이날은 너무 조용했다. 입구에 들어서면서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바깥에서 향 반입을 금지하고, 입구에서는 무료로 친환경으로 만든 작은 향을 한 개씩 나눠주고 있었다. 이 향도 안으로 들어가 기도를 한 후 집합상자에 넣을 뿐, 불을 피울 수 없게 통제했다. 홍색경보는 베이징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종교의식까지 통제할 만큼, 위험하다는 것을 실감할 수밖에 없었다.

9일 오후 5시경 베이징공항 항공기 접안 장소밤에 가까울 만큼 어욱한 기운이 공항을 감싸고 있다. ⓒ 조창완


9일 오후 방문을 마치고, 다시 베이징 공항으로 향했다. 좀 나아졌다는 느낌과 달리 공항으로 가는 길은 더욱더 자욱했다. 지난 주에 스모그로 인해 항공기 100여 편이 취소되는 것을 포함해 수많은 연착 사고가 있어서 걱정했지만 우리가 탈 항공편은 다행히 정상대로 출발 예정이었다.

안전검사를 마치고 공항에 들어서 본 하늘은 여전히 잿빛이었다. 이윽고 상하이행 비행기가 떴다. 내 머리에는 익숙한 소설의 마지막 문구가 패러디되어 겹쳐졌다. "'당신은 지금 스모그 도시 베이징을 떠나고 있습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나는 심한 안도감을 느꼈다"


○ 편집ㅣ박정훈 기자

덧붙이는 글 관련 내용은 매주 화요일 8시 국민tv라디오 '민동기의 뉴스바'에서 진행되는 '달콤한 중국'을 통해서도 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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