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뻘짓' 한 만큼 맛있는 벌교 꼬막
어민 통해 바다와 인간의 인연 찾아온 <바다맛 기행> 저자 김준씨
▲ 지금 이 계절에 가장 맛있는 숭어회. 〈바다맛 기행〉의 저자 김준은 책에서 왜, 이 계절에 숭어가 가장 맛있는지 말하고 있다. ⓒ 이돈삼
먹는 방송, '먹방'은 고전이 됐다. 이제는 출연자들이 직접 요리하고 만드는 법을 알려주는 '쿡방'이 대세다. 그만큼 요즘 사람들이 먹는 데 관심이 크다는 반증이다. 지인들도 방송을 보거나, 인터넷 검색을 하면서 요리를 해봤다고 자랑을 한다.
그럼에도 점심 때가 되면 '먹을 것이 마땅치 않다'고 푸념이다. 외식이라도 하려면 뭘 먹어야 하는지 고민이 된단다. 먹을 것이 넘쳐나는 시대지만, 역설적으로 먹을 게 마땅치 않다고 입을 모으는 요즘이다. 왜 그럴까.
<바다맛 기행>을 통해 실타래를 풀어본다. '바다에서 건져 올린 맛의 문화사'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책이다. 바다음식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바다맛이 지닌 생태와 문화, 역사까지도 아우르고 있다. 바다맛을 지키는 사람들의 삶도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김준(52)이 썼다. 저자는 반평생 섬을 드나들며 일상과 사고를 섬과 바다에 맞춰 살아왔다. 세상을 대상으로 더 많은 섬을, 더 많은 섬사람들을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 어촌사회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전남대와 목포대에서 해양문화를 연구했다. 지금은 광주전남연구원에서 일하고 있다.
▲ 〈바다맛 기행〉은 저자 김준. 저자는 반평생 섬을 드나들며 일상과 사고를 섬과 바다에 맞춰 살아오고 있다. ⓒ 이돈삼
<바다맛 기행>은 저자의 바다맛 기행기다. 어민을 통해 바다와 사람 사이에 지속되는 인연을 찾아온 결과물이다. 어민과 바다가 공존하면서 얻은 바다의 먹을거리를 소개하고 있다. 바다와 바다를 가꿔온 인간을 통해 어촌문화를 얘기한다. 바다생물과 바다를 터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 편의 문화사로 엮어냈다.
"섬은 작은 우주예요. 그곳에는 역사, 문화, 철학, 환경, 경제 등 모든 분야가 녹아 있어요. 갯벌생태, 염전과 천일염, 맛, 공동체, 사회적 경제, 갈등, 권력, 개발, 법이 씨줄날줄로 얽혀 있죠. 바다맛은 그 중의 일부분이고요. 어민들이 어패류를 채취하는 걸 직접 봤고, 그들이 사는 갯벌과 바다를 봤고, 어민들이 만들어 먹는 음식이야기를 들었죠. 바다맛 기행은 그렇게 만들어졌어요."
▲ 〈바다맛 기행〉은 김준의 바다맛 기행기다. 반평생 섬을 오가며 어민을 통해 바다와 사람 사이에 지속되는 인연을 찾아온 결과물이다. ⓒ 이돈삼
책은 두 권으로 엮었다. 2년 전 펴낸 1권은 월간잡지 '자연과생태'에 연재한 것을 묶었다. 진도곽(미역), 숭어, 젓새우, 병어, 전복, 오징어, 전어, 멸치, 명태, 홍어 등 지역특색이 담긴 것들을 소개했다. 갯벌천일염과 함초, 매생이, 감태 그리고 살아 못하면 죽어서 한다는 민어복달임 등 조상 대대로 즐겨온 해산물을 소재로 삼았다.
그 해산물에다, 어민들의 이야기를 입혔다. 음식이 가장 맛있는 때, 요리 방법에 따라 달라지는 맛, 그곳에서 먹어야 제 맛을 느낄 수 있는 명품 산지와 바다생물, 바다를 가꾸며 살아가는 어촌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한데 버무렸다. 날 것 같던 바다맛을 맛깔스럽게 무쳤다.
"가을엔 전어와 낙지가 맛있다고 하잖아요. 가을에 먹어야 제일 맛있다는 말인데요. 하지만 사람들은 왜, 그 시기에 그 해산물이 맛있는지는 잘 몰라요. 농산물의 파종과 수확시기가 정해져 있듯이, 해산물도 다 때가 있거든요. 바다생물이 물때에 맞춰 연안을 찾아오고, 몸을 불리고, 산란하고, 다시 먼 바다로 나가는 때가 있어요. 어부는 바다와의 오랜 교감을 통해 이것들이 가장 맛있는 때를 알아서 수확하는 거고요."
저자가 알려주는 제철 수산물이 맛있는 이유다. 저자는 또 "같은 음식이라도 알고 먹는 것과 모르고 먹는 것의 차이가 크다"면서 "해산물이 우리 밥상에 올랐을 때 그것의 이름과 생태, 어획 시기, 주요 어장, 음식이 된 역사적 배경을 알고 나면, 우리의 먹는 행위는 생계가 아니라 문화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결국 바다맛은 바다생물과 어민을 이어준 연결고리라는 의미다.
▲ 가을에 가장 맛있는 전어. '집 나간 며느리'까지도 불러들인다는 얘기가 전해지고 있다. ⓒ 이돈삼
▲ 민어는 여름철 최고의 보양식으로 알려져 있다. '민어복달임'이란 말도 그래서 나왔다. ⓒ 이돈삼
이번에 펴낸 2권은 서울신문에 연재한 '김준의 바다맛 기행'을 묶었다. 고등어, 삼치, 꽃게, 꼬막, 조기, 홍합, 바지락 등 우리의 밥상에서 흔히 마주하는 바다생물의 이야기들을 맛나게 풀어냈다. '맛'에 가려져 잊히기 십상이지만, 잊어서는 안 될 사연도 두루 살폈다. 밥상에 오르기까지 바다생물이 거쳐 온 여정과 오늘 우리 바다가 처한 현실, 그 바다에 기대 울고 웃는 어촌 사람들의 일상도 무게 있게 다뤘다.
'삼치를 양념장에 찍어 김에 싸서 묵은 김치를 얹어 먹는 것이 완도식이라면, 여수식은 삼치를 김에 싼 후 양념된장과 돌산갓김치를 올리고 마늘과 고추냉이를 얹어서 먹는다. 또 파릇파릇한 봄동(월동배추) 산지인 해남 땅끝에서는 봄동에 삼치를 올리고 묵은 김치를 더해서 먹는 방법이 인기다.' -〈바다맛 기행〉 2권 16쪽.
'꼬막섬인 벌교의 장도에는 한 집에만 뻘배가 서너 개 있다. 20, 30년은 기본이요, 50여 년 동안 뻘배를 탔던 어머니도 계신다. 매일 물이 들고 빠지는 갯벌에 기대어 살 수밖에 없었던 이들에게 뻘배는 손이고 발이었다. 시집 와서 밥 못 짓는 것은 용서받을 수 있어도 뻘배를 못 타는 것은 큰 흉이었다. 뻘배는 생활이고 생계 수단이었지만 며칠 만에 익힐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열심히 마을 어장을 오가며 뻘짓을 해야 익혀지는 것이 뻘배 타는 기술이었다.' -〈바다맛 기행〉 2권 111쪽.
▲ 꼬막섬 벌교 장도의 아낙네들이 뻘배를 타고 갯벌에서 나오고 있다. 이 섬의 아낙네들에게 뻘배는 자존심이다. ⓒ 김준
▲ 겨울에 제 철을 맞은 벌교 꼬막. 짭쪼름하면서도 달큰한 맛으로 미식가들을 유혹하는 바다맛이다. ⓒ 이돈삼
"한 번쯤은 바다생물이 어디서 태어나서 어떻게 자랐고, 우리 밥상까지 오게 됐는지 돌아보면 좋겠어요. 그게 맛과 영양으로 우리를 행복하고 건강하게 만들어 주는 존재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싶어요. 또 다양한 바다맛을 우리가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것도, 바다를 터전으로 살아가는 어민들 덕분이라는 사실도 잊지 않았으면 하고요."
저자가 그동안 바다생물의 생태와 역사를 기록하고, 바다생물이 우리 삶에 미친 문화적 영향을 추적해 온 이유다.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의 바다맛을 지켜주는 어민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는 것이다.
"도시민의 관심이 바다를 살릴 수 있어요. 손쉽게 마트에서 바다맛을 사는 것도 좋지만, 주말이나 여행길에 잠깐 어촌을 찾아가서 사오는 거죠. 맛이 있고 신뢰할 만하면 직거래도 하고요. 그것이 바다를 살리고, 도시민의 건강을 찾는 지름길입니다. 그렇게 되면 풍어제도, 당산제도 다시 시작될 수 있어요. 어촌문화가 되살아나는 거죠."
저자가 〈바다맛 기행〉을 기획한 진짜 이유다. 저자는 그동안 '해양관광자원의 특징과 활성화 방안', '조기 파시의 기억과 기록', '소금과 국가 그리고 어민', '대형 간척사업이 지역주민의 삶에 미치는 영향' 등의 논문을 발표했다. <갯벌을 가다>, <새만금은 갯벌이다>, <섬과 바다>, <한국의 갯벌>, <섬문화 답사기>, <어떤 소금을 먹을까> 등 책도 많이 펴냈다. 바다와 어촌을 살려보려는 저자 나름의 노력이며, 그동안 자신을 보듬어 준 어민들에 대한 보답이었다.
▲ 갯일을 마친 어부들의 퇴근. 물이 빠진 틈을 이용해 갯벌에 들어간 어부들이 갯일을 마치고 갯벌에서 나오고 있다. ⓒ 김준
○ 편집ㅣ최은경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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