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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진 가지에서 백합이, 그것도 겨울에

등록|2015.12.15 11:04 수정|2015.12.15 11:04

아름다운 백합허리가 꺾인 백합이 드디어 추운 겨울에 꽃을 피웠다. ⓒ 신병철


12월 중순, 우리집 마당에 나리꽃이 피었다. 저 꽃이 품종개량되어 백합이 되었단다. 우리집 주변에 야생하고 있는 백합을 옮겨 심었는데, 이쁜 꽃을 피운 것이다.

흰 바탕에 붉은 기운이 감도는 게 여간 이쁘지 않다. 함께 자란 다른 꽃은 모두 져서 사라진 이 겨울에 어떻게 저렇게 이쁘게 피었을까?

여름에 저 나리는 나에게 밟혀 중간 줄기가 부러져 버렸다. 뽑아버릴까 하다 귀찮아서 놓아 두었더니 동료들이 사라진 뒤에도 여전히 튼튼하게 견디고 있었다. 그런데 그저께 갑자기 신기하게도 꽃대가 보였다. 

키가 유난히 작은 겨울에 핀 백합줄기가 껶여져 짧달막한 백합이 엄동설한에 피었다. ⓒ 신병철


겨울에 핀 백합어느날 갑자기 백합이 이쁘게 피었다. ⓒ 신병철


자세히 보니 꺾여진 줄기 윗부분이 세 갈래로 나눠져 꽃대 마다 꽃을 피워내고 있었다. 이 겨울에 자란 수선화들 옆에서 외로이 혼자서 꽃을 피우고 있었다.

대단하다. 줄기를 높이 세워 키운 것은 오로지 꽃을 피워 씨앗을 만들기 위한 것. 줄기가 꺾여졌다고 숭고한 임무를 포기할 순 없다. 남은 줄기를 더욱 튼튼히 키워 때늦은 지금에야 꽃을 피우고 말았다. 여름에 핀 동료들의 꽃 못지 않은 화려하고 고결한 백합꽃을 피웠다.

사실 백합은 씨앗으로 번식하지 않는단다. 씨앗이 별로 번식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뿌리가 여러 조각으로 나눠 또 다른 개체로 늘어난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착같이 꽃을 피워야 하는 이유는 또 무엇일까?

어쨋거나 끝내 사명을 완수한 저 나리에게 찬사를 보낸다. 나, 이 집 주인으로서 나리에게 자신의 존재 임무를 완전하게 수행했음을 인정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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