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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도 '갑질 '고객이 될 수 있다

국수로 만나는 세상 ⑥] "사장 나오라고 해"라고 말하기 전에...

등록|2015.12.15 15:22 수정|2015.12.15 15:22
"여기 사장이 누구요?"

아침 홀 청소를 마치고 손님 맞을 준비를 하는 중에 개량한복인지 베옷인지 헐렁한 옷을 입은 건장한 아저씨가 홀 안으로 불쑥 들어 온다.

"예 전데요? 무슨 일 입니까?"

어느 영화에서 본 듯한 인상에 한 덩치의 아저씨는 다짜고짜 눈을 부라리며 다가선다.

"이런 썅! 장사를 하려면 조용히 하지 남의 차에 이런 걸 붙이고 *랄이야."

큰 덩치만큼 험악한 목소리가 홀 전체에 울려 퍼진다. 다짜고짜 나를 끌고 간 곳에는 좀 오래되어 보이는 중형차가 한 대 있었다. 그는 차 앞에 서더니 앞 유리를 가리키며 흥분한 목소리로 욕을 해댔다.

앞 유리창을 보니 우리 가게 홍보 전단지를 떼어낸 자국이 마치 주차위반 딱지 붙였다 떼어낸듯 지저분하게 붙어 있었다. 순간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 전단지는 접착력이 없는 그냥 일반 전단지였는데 스티커처럼 딱 붙어 있는 것이 도대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저씨 잠깐만요. 일단 알겠는데요. 우리 홍보지는 저렇게 접착력이 없는 일반 전단지인데요. 잘은 모르겠지만 설마 이것을 일부러 이렇게 붙였겠어요?'

좀 억울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아 변명 아닌 변명을 한 마디 했다.

"뭐야? 이게 분명 당신네 가게 것인데 뭘 이해가 안가? 이 양반이 장사하기 싫어? 내가 이 집 장사 망하게 한번 해봐? 당신 가게 앞에 똥이나 확 싸놓고 망할 때까지 가보지 뭐."

그러면서 아저씨는 더 험악한 쌍욕이 쏟아냈다. 분위기는 점점 일촉즉발의 상태로 흘러 가고 있었다. 참을 만큼 참았는데 그 순간 내 머리 위로 김 올라가는 소리가 들렸다. 나도 더는 참지 못하고 "아저씨" 하며 한발 다가 서는 순간, 누군가 옆구리를 잡아챘다. 조리실장이었다.

"사장님 죄송합니다. 많이 속상하셨겠어요. 우리 전단지 맞는데 아마도 비에 젖어 사장님 차에 붙었나 봐요. 죄송합니다. 제가 바로 떼어 드리겠습니다".

김 실장은 능숙한 솜씨로 들고 나온 홈키파를 차 유리에 뿌리면서 걸레로 닦아냈다. 신기하게도 차에 붙어 있던 잔여물이 깨끗하게 없어졌다. 계속 웃으면서 사과를 하는 조리실장이 나타자 새빨간 용암처럼 흘러 나오던 아저씨 욕이 잠잠해졌다.

마지막 잔여물을 걸레로 닦아내고 "죄송합니다 사장님" 인사를 건네자 살벌했던 아침 소란은 끝이 났다. 그렇게 누런 중형차는 가게 앞에서 사라졌다. 2호점 개점 축하 이벤트 둘째 날 사장 신고식 비스므리하게 겪은 일명 '갑질 똥 협박' 사건의 전말이다.

당신도 갑질 고객일 수 있다

백화점 갑질 고객 논란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인천의 한 백화점에서 일어났던 점원 무릎 사과요구 갑질 고객 논란. ⓒ jtbc뉴스 화면


국숫집 사장으로 살아가면서 새롭게 겪어야 하는 불편한 일 중 하나가 바로 가끔 이렇게 찾아와 "사장 나오라고 해" 하는 갑질 손님들이다. 얼마 전 손님이 백화점 점원을 무릎 꿇게 해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갑질고객 논란이 남의 일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이럴 때마다 '먹고 살려면 견뎌내야 하는 자존심이라는 놈을 어떻게든 인(忍)이라는 도로 제압해야 한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한편으로는 '아, 사장 되기가 쉬운 일이 아니구나'라는 것을 온 몸으로 체험한다.

이런 상황이 가게에서 발생하면 일단 무조건 고개를 숙여야 한다. 일단 그것이 직원들과 다른 손님들에게 피해를 최소화 하는 길임을 알기 때문이다. 상황 중에는 진짜 우리 직원의 실수도 있지만 오해에서 비롯된 일들도 많다.

막무가내로 소리부터 지르는 상황도 차근차근 대화해 보면 대부분 오해에서 비롯된 일임을 알게 된다. 하지만 그렇게 상항이 종료 돼도 이미 다친 사장의 마음은 금방 회복 되지 않는다. 주변 사장님들께 하소연 삼아 얘기하면 하나 같이 이리 말해준다.

"전 사장! 아직 멀었네. 손님 돈 받아 먹으려면 간, 쓸개, 마음까지 다 빼놓고 장사해야 해."

맞는 말이다. 하지만 아직 초보 국숫집 사장에게는 쉽지 않은 경지이다. 아직 사장으로 살아가기에 부족한 생각인지 모르지만 아무리 '고객이 왕이라도 이건 좀 아닌 듯싶다. 감히 말한다면 고객도 존중되어야겠지만 사장의 인격도 존중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끔 인터넷에 떠도는 갑질 고객 논란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런 갑질 고객이 생기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배려 부족이 그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왜냐면 그렇게 소리치는 고객도 어떤 분야에서 밥벌이를 하고 있다면 그도 곧 사장이 되고 사장인 나도 그의 고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고객의 인격은 소중하고 사장의 인격은 소중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모든 고객들이 내가 곧 그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한 번쯤 해본다면 이 세상 사장님들도 조금은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다.

이 땅 자영업자가 칠백만이 넘은 지 오래다. 그 많은 자영업자는 일년에 수도 없이 사장이 되었다가 제대로 사장 대접도 받지 못하고 망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초보 국숫집 사장으로 한 마디 부탁하고 싶다. 사장들도 잘해야 하겠지만 부디 '사장 나오라고 해'라고 말하기 전에 그 사장도 내 고객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불만이 있다면 제발 욕부터 하지 말고 차분하게 자초지종을 얘기해 주었으면 좋겠다.

갑질이 별것인가? '사장 나오라고 해' 한 마디도 어떤 사장에게는 갑질이 될 수 있다.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사장은 고객을 대하고 고객은 사장을 바라본다면 이 세상 갑질은 많이 줄어들 거라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초보 국숫집 사장으로서 이 세상 고객님들에게 한 마디 부탁하고자 한다. 세상의 모든 고객님들이여 불만이 있다면 흥분하여 말하기 전에 이 말만은 한 번 생각해보기 바란다.

'이 집에서 손님인 내가 왕이지만 당신의 업(業)에서는 여기 사장이 왕이 될 수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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