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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죽은 동물' 걸친 패셔니스타?

['고기 킬러' 채식 전도사 되다 27] '로드킬 모피' 표시 없으면 구분할 방법 없어

등록|2015.12.22 12:35 수정|2015.12.22 12:35

콩고기닭고기의 질감과 맛을 모방한 제품이다. 온라인 채식쇼핑몰에서 구입할 수 있다. ⓒ 조세형


혹시 '콩고기'라고 들어봤는가? 콩고기는 콩·밀·쌀 등의 식물성 재료로 만든 '인조'고기로 '채식인을 위한 고기'라고도 불린다. 국내 채식전문 기업들은 채식 햄·소시지·스테이크·커틀릿·맛살·장조림을 비롯한 다양한 콩고기를 판매한다.

채식을 하며 굳이 식물성 '고기'를 먹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본래부터 고기를 좋아하지 않는 채식인이라면 굳이 콩고기를 찾을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채식인 중에는 기자처럼 과거 '고기 킬러'를 자처했던 사람도 많다. 채식인은 아니지만 건강상 이유로 육식을 줄여야 하는 사람들도 있다. 콩고기는, 때때로 고기 생각이 나지만 막상 먹기는 꺼려지는 사람들을 위한 대안이라고 할 수 있다.

채식이든 육식이든, 건강을 생각한다면 햄·소시지 등의 가공식품은 되도록 멀리 하는 게 좋다. 그러나 육류 가공식품에 길들여진 식습관을 완전히 버리지 못한 채식인에게 채식 햄·소시지는 괜찮은 대안이다. 사람이 건강만을 기준으로 먹고 마실 것을 선택한다면 주류나 담배 산업은 진작 사라지지 않았을까?

롯데리아·맥도널드·버거킹을 비롯한 햄버거 체인점은 거의 모든 메뉴에 육류가 함유되어 채식인들이 멀리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외국에서는 이런 체인점들이 콩고기로 만든 채식메뉴를 갖춰 채식인 손님을 끌어들이고 있다. 기자가 교류하는 몇몇 채식인들은 애용하는 식당에 채식인을 위한 메뉴를 갖춰 달라고 제안하는 활동을 한다. 식당 입장에서는 채식인 손님을 늘릴 수 있으니 서로가 '윈윈'하는 전략이다.

콩고기만 있나? 인조모피도 있다!

로드킬 모피 교통사고로 죽은 동물로 만든 쁘띠뜨 모르 퍼(Petite Mort Fur)의 모피 제품. 유튜브 영상의화면 캡처. ⓒ 2015 Petite Mort Fur


인간의 공감능력은 '비건 패션'이라는 것도 만들어냈다. '비건'은 고기는 물론 우유·달걀, 심지어 벌꿀조차 먹지 않는 완전 채식인을 말한다. 비건 패션은 '동물을 입지 않는 패션'이다.

가죽·울(양모)·앙고라(토끼털의 일종)·다운(오리털이나 거위털)을 비롯한 동물성 의류소재는 그것의 재료가 되는 동물에게 막대한 고통을 초래해서 얻어진다. 채식주의와 마찬가지로 비건 패션은 동물의 고통을 소비하지 않는 실천이다.

그런데 비건 패션을 지향하는 사람도 가죽이나 모피를 입을 수 있다. 채식인을 위해 콩고기가 있듯이, 인조가죽·모피와 같은 대체 소재가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비건 패션은 채식보다 실천하기 쉽다. 대체 소재가 대중화 돼 있고, 채식처럼 하루 세 번의 선택을 요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육식을 해도 패션은 비건을 지향하는 실천을 '고기와 털가죽이 뭐가 다르냐?'며 폄하하는 사람들이 있다. 전 세계에서 기아·전쟁·재난 등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이 무수히 많은데 겨울철 구세군 자선냄비가 무슨 소용이냐고 말하는 격이다. 세상의 모순을 일소에 해결할 수 없을 바에는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주장이다. 이 세상은 무수한 개인들로 이뤄져있다. 그 중 하나인 내가 변하는 만큼 세상도 변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동물성 의류소재 가운데 특히 모피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이 많은데, 극단적으로 잔인한 생산 방식 때문이다. 모피농장에서는 동물을 아주 열악한 환경에 가둬 기르다가 산 채로 가죽을 벗긴다. 이런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한 모피 업체가 새로운 카드를 내밀었다.

'교통사고 당한 동물'은 입어도 될까?

도로에서 야생동물이 차량에 치어 죽는 사고를 가리켜 '로드킬'이라고 한다. 미국에는 로드킬로 죽은 야생동물의 모피로 의류를 만드는 회사가 있다.

'쁘띠뜨 모르 퍼(Petite Mort Fur)'라는 이 신생기업은 '어차피 버려지는' 동물로 만든 자사 제품이 동물의 고통 없는 '윤리적인 모피'라고 홍보한다. 틀린 주장은 아니다. 이 업체는 다른 모피업체들처럼 동물을 끔찍한 환경에서 기르거나 야생에 덫을 놓아 잔인하게 포획하지 않는다. 산 채로 가죽을 벗기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기자는 로드킬 모피가 좋은 대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업체가 모피업계에서 동물의 고통 없는 모피를 생산하는 자발적인 분위기를 이끌어낼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기 때문이다.

야생에 덫을 놓는 것은 물론이고, 모피를 위해 동물을 사육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학대를 야기한다. 동물을 참혹한 환경에서 사육하고 도축하는 이유는 동물에 대한 배려심이 부족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동물복지는 생산비용의 증가로 이어져 더 많은 이윤추구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동물을 먹기 위해 기르고 도축하는 산업과 마찬가지로, 모피산업에서는 동물의 고통이 무시된다. 

로드킬로 죽은 동물로 영리를 취하는 것을 '인도적'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어색하다. 로드킬은 동물의 입장에서는 비참한 죽음이다. 만약 모든 모피업체가 로드킬 모피만을 생산한다고 해도 문제다. 수요를 공급이 따라가지 못할 경우 로드킬로 죽는 동물이 늘어나길 바라야 하나? 이윤을 위해 어떤 편법이 생겨날지 알 수 없다. 

모피반대 캠페인의 핵심은 '멋'이나 '부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던 모피의 가면을 벗기는 데에 있다. '학대'와 '피 흘림'이라는 본모습을 각인시켜 남의 털을 빼앗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진짜 모피를 '패션'으로 여기는 것에 대한 문제제기 없이 동물의 고통이 줄어들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런 점에서 로드킬 모피는 동물학대를 근절하는 데 도움이 안 된다. 그것이 로드킬로 얻어졌다는 사실을 구매자만 알고 있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거리에서 마주치는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게 로드킬 모피는 동물학대로 얻은 일반 모피와 구별되지 않는다.

이런 맥락에서 기왕 모피에 반대한다면, 비록 인조라 할지라도 진짜 모피와 단번에 구별되지 않는 제품은 입지 않는 게 좋다.

동물단체 페타에 '로드킬 모피'에 대한 생각 물었더니...

동물보호단체 페타가 공개한 모피의 잔혹한 실상세계 최대 모피 생산국인 중국에서는 동물의 가죽을 산 채로 벗긴다. 그보다 환경이 낫다고 홍보하는 유럽의 모피농장 역시 페타의 조사에 따르면 동물학대의 온상지라고 한다. PETA가 유튜브에 공개한 영상 화면 캡처. ⓒ PETA


국제적인 동물보호단체인 '페타(PETA·동물을 윤리적으로 대하는 사람들)'는 농장 잠입 촬영을 통해 모피의 잔혹한 진실을 폭로하여 전 세계적인 모피반대 캠페인을 이끌어왔다. 페타가 로드킬 모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메일을 통해 물었다.

지난 16일, 페타 아시아 지부의 애슐리 프루노 선임 캠페이너가 답변을 보내왔다. 그는 "곧 죽어도 진짜 모피를 포기 못하는 사람들에게 로드킬 모피는 비좁은 농장에서 감금 스트레스로 서서히 미쳐가는 동물을 입는 것보다 한결 나은 선택"이라고 했다. 그리고 "페타 역시 최근 인조모피가 진짜와 구별되지 않아 진짜든 인조든 모피는 입지 않는 사려 깊은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런 점에서 "남들이 쉽게 알아볼 수 있는 방식으로 제품 앞뒤에 '로드킬 모피'임을 표기하면 좋겠지만, 디자이너가 그렇게 할 리는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따라서 "로드킬 모피임을 공개적으로 알리는 표식이 없는 한, 그것이 농장에서 평생 감금 당하고 매질을 당한 다음 산 채로 가죽이 벗겨진 동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제3자가 알 수 있는 방도는 없다"고 했다. 이에 "페타가 인정하는 모피는 오로지 인조모피"라고 못 박았다.

결국 모피로 인한 동물학대를 방지하려면 모피 수입과 농장 운영, 모피를 얻을 목적으로 야생에 덫을 놓는 것을 금지하는 게 최선일 것이다. 문명시대에 굳이 남의 털로 자신을 치장하는 것을 반성하는 의식의 진보도 필요하다. 모피반대 운동이 일찍이 시작된 서구에서는 이를 위한 진전이 상당 부분 이뤄지고 있다.

앞서 인조모피라도 진짜와 단번에 구별되지 않는다면 입지 않는 게 낫다고 했다. 이와 관련하여 콩고기 역시 채식 캠페인에 걸림돌이 되는 거냐고 물을 수도 있을 것이다. 기자가 보기에 그럴 것 같지는 않다. 둘 다 '동물'을 콘셉트로 하는 모조품이지만, 콩고기는 식품이고 인조모피는 겉으로 드러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패션이라는 점에서 소비의 맥락이 현저히 다르기 때문이다. 

물론 콩고기는 '진짜 고기 맛'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만족스러운 대안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혀끝의 즐거움만이 음식의 전부는 아니다.

콩고기는 몸을 앞뒤로 돌릴 수조차 없는 비좁은 감금 틀에 갇혀 사는 암퇘지를 상기시키지 않는다. 태어나기가 무섭게 부리가 잘리는 암탉을 떠올리게 하지 않는다.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도축장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있는 힘껏 버티는 소를 연상시키지 않는다. 최악의 근로환경에서 동물을 거칠게 다룰 수밖에 없는 축산 노동자들, 그리고 그들에게 마치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물건처럼 다뤄지는 동물들의 울부짖음을 떠올리게 하지 않는다.

기왕 두 가지 선택이 있다면, 마음이 편한 음식을 찾게 되는 건 이 때문이다. 2015년이 며칠 남지 않았다. 동물의 고통 없는 소비의 비율을 늘려나가는 것, 보다 인도적인 사회를 위한 새해 결심으로 어떨까?

○ 편집ㅣ최은경 기자

덧붙이는 글 조세형 시민기자는 동물보호단체 '동물을 위한 행동'의 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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