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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하는 시대, 학교와 학교가 답하다

[리뷰] KBS <다큐1-학교의 진화>, <바람의 학교>가 던진 질문에 답하다

등록|2015.12.21 18:09 수정|2015.12.21 18:09

▲ 시험에 의존하는 기존의 학교 교육 모습 ⓒ KBS1


지난 11월 22일부터 12월 13일까지 4부작으로 방영된 <SBS스페셜-바람의 학교>는 스쿨픽션이라는 새로운 다큐멘터리 양식을 통해 현실 교육의 문제점, 현재 학교 속에서 벌어지는 소외의 문제를 짚었다. 그리고 그에 화답이라도 하듯, 12월 17·18일 양 일간에 걸쳐 KBS1을 통해 방영된 <다큐1>의 교육 혁신프로젝트 <학교의 진화>는 바로 그 문제 제기한 '학교'의 문제를 짚는다.

변화하는 시대, 변화를 요구받는 학교

▲ 직업 체험에 나서는 중학생들 ⓒ KBS1


우리 사회의 정규 교육 과정으로 인정받는 '학교'의 정체성을 가장 잘 대변해 주는 말은 무엇일까. 아마도 이제는 사라진 '국민학교'라는 말일 것이다. 이제는 단계별로 초등·중등·고등학교라는 말을 쓰지만, 사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교육 현장의 모습을 가장 잘 드러낸 것은 바로 그 '국민교육 헌장'을 외우던 시절의 '국민학교'이다. 산업 국가가 원하는 인재를 '공장에서 물건을 찍어내듯', 정해진 교육 과정을 통해 일정 수준에 도달하도록 교육하는 곳이 바로 현재 우리가 마주치고 있는 '학교'라는 곳이다.

철학자 푸코는 그런 제도권 교육의 학교를 '개인을 유용한 사회적 자원으로 키워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현대 사회 '규율 권력'의 실현체로 보았다. 그래서 학교는 현대 사회가 요구하는 '지식'을 생산해 내며', 나아가 '인간 자체'를 만들어 내는 기관으로, 공장, 감옥, 수도원, 군대 조직과 같은 '감금형'의 규율 지배적 공동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성격을 띤 학교에서는 규율과 그에 대한 제재가 우선적일 수밖에 없다. 교사는 '지식'의 전수자로서 학생들을 '억압'하는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게 푸코의 생각이다. 그리고 표현은 다르지만, 결국 오늘날 학교 현실에서 벌어지는 많은 문제는 바로 이 '푸코'의 냉정한 철학적 인식의 기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발전은 '절대적 지식의 전수와 그 실행인'들의 집합체로 사회가 구성되는 산업사회를 넘어섰다. 위계가 무색해지는 네트워크 중심의 혹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패러다임의 새로운 경제·사회 질서로 변화했다. 그 본질은 여전히 자본주의이지만, 더는 산업사회적 '지식'으로 현재 혹은 미래의 사회를 규정하거나 대처할 수 없는 상황으로 번져나간다. 당연히 이제 더는, '공장제' 식으로 찍어내듯 전달·전수되는 교육은 예측 미지수인 미래 사회에서 무기력할 수밖에 없다. 당연히 학교의 변화가 요구되고 있는, 아니 이제 더는 감금형의 교실에서 자신의 미래를 기약하지 못하는 아이들로 인해 변화가 강제되고 있다.

4부작 <SBS스페셜-바람의 학교>에서 시작은 이런 기존의 제도권 학교 교육에 적응하지 못하고 퉁겨져 나온 바람 같은 아이들에 대한 '대안' 모색이 그 시작이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찾은 것은 아이들 각자의 문제점이 아니었다. 아이들이 자신들의 꿈을 찾을 수 없는 학교, 꿈을 위해 견뎌야 할 이유가 없는 학교였다.

즉, 이제 현실의 학교는 그 교실에서 수년간 입시라는 골문을 향해 견뎌내는 아이들을 제외한 다른 꿈을 꾸는 아이들, 아니 입시라는 맹목적 목표에 쫓겨 가면서도 갈증을 느끼는 아이들에게 자신들의 꿈을 생각할 여지를 주지 못하고 있다. 그 어려운 <오이디푸스>도, 버거운 공연 과정도 아이들은 자신들이 하고 싶으면 짧은 시간에라도 기꺼이 해낼 수 있다는 것을 <바람의 학교>는 증명해 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이 다시 돌아간 학교는, 그 가능성을 숙제로 남겼다.

자유학기제 그리고 시험 없는 학교

▲ 스스로 문제 해결 능력을 키워가는 아이들 ⓒ KBS1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작은 답을 <다큐 1-학교의 진화>가 마련한다. 전국에서 뜻을 가진 20여 명의 교사들을 시작으로, '자유학기제'라는 새롭게 모색되는 제도 속에서, 교육 패러다임의 전환을 시도한다.

시험이 없는 학교는, '시험'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된다. 2016년 전국의 중학교에서 자유학기제가 시행될 예정이고, 이미 다수의 중학교에서는 시범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자유 학기제에서는 한 학기 동안 시험의 부담 없이 여러 가지 토론, 체험, 활동 중심의 수업 모형이 시도되는데, 이에 대해 '어른'들은 아이들이 공부를 게을리할까 걱정이 앞선다.

이런 어른들의 노파심에 대해, 학교라는 제도를 강제해 온 '시험' 제도에 의문을 제기하는 학자들이 있다. 이들은 묻는다. 도대체 무엇을 위한 시험이냐고? 막상 사회에 나오면 시험은 '운전면허 시험'말고는 없는 세상이다. 왜 어른들은 '시험'에 연연해 하는 것인가. 오히려 '시험'은 아이들이 애초 '공부'의 목적을 잊은 채, 시험만을 위한 '파블로프의 개'가 되게 한다. 자유학기제는 바로 그 공부의 목적을 '본말이 전도되게 한 '시험'을 떠나 아이들이 스스로 '꿈'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 시도하고자 한다.

시험과 수업 진도가 사라진 교실에서 선생님들과 아이들은 다양한 시도를 해본다. 다양한 직업 체험을 해보기도 하고, 프로젝트를 마련하여 각종 활동을 펼쳐나간다. 그 과정에서 놀란 것은 선생님들이다. 사실 다른 어른들처럼 시험이 없는 학교에서 아이들이 자칫 흐트러질까 봐 우려했던 선생님들은, 시험이 없어도 아이들이 즐겁게 공부를 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리고 아이들을 추동하는 본질의 힘은 시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자각을 하게 된다. '시험'이 아닌 '활동'을 하며 아이들도 자신을 새로이 발견해 나간다. 자신이 관심 있는 것들에 대해 '두려움'없이 움직인다. 생명 과학 교과서의 모형을 실제로 만들어 보면서 지식의 깊이는 총체적이면서 깊어져 가고, 직업 체험을 하며 비로소 자신의 꿈을 찾는다.

그렇게 수업 시간에 졸거나, 어떻게 하면 피시방을 갈까 골똘하던 아이들은 '자유학기제'라는 풀어진 물에서 자유롭게 헤엄치기 시작한다. 어느 학교는 아이들이 스스로 영어 공부를 위한 앱을 만들기도 하고, 또 다른 학교는 학교 방화벽에 부딪혀 죽는 새들을 위한 부딪침 방지 스티커를 기획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학교 내에 자치 시설을 위한 쉼터나 조리실을 기획하기도 한다.

이 과정은 아이들은 물론 선생님들도 처음 가보는 과정이다. 때로는 그 과정에서 '선생님'으로서의 '존재론'에 막막해 하기도 하고, 학생들은 시간이 흘러도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성취할 수 없기도 한다. 하지만 그 첫 발자국은 때론 실패라도 자신들이 디딘 것이다. 그 걸음의 웅덩이에서 스스로 빠져나와 또 다른 발걸음을 뗄 힘을 가지게 된다.

몇몇 학교, 뜻있는 선생님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자유학기제'를 다룬 <다큐1-학교의 진화>는 그저 교육부 시행령에 따른 자유학기제를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이 새로운 시도가 현재 교육 현실, 그리고 사회 발전의 과정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가를 규정하고자 애쓴다. 그것을 위해 실제 SAT를 반영하지 않는 미국 햄프셔 대학의 교육 과정에서부터 여러 전문가의 의견을 반영하고자 애썼다.

또한, 자유학기제를 실현하는 과정에서의 선생님들의 주저함과 고민을 가감 없이 반영하고자 노력했다. 그뿐만 아니라, 자유 학기제가 진행되는 학교 교육 현장 밖에서, 뒤처진 진도를 먼저 뽑아야 한다고 홍보하는 학원의 실상을 드러내며 학교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교육 풍토의 현실도 짚는다.

무엇보다 <학교의 진화>가 놓치지 않고 있는 것은 우리 교육 현장의 모순이다. '입시 교육'이라는 단 하나의 목표만을 위해 맹목적으로 달려가는 현실에서, 아이들은 스스로 꿈은 사치인 양 교실이라는 공간에서 숨죽여 자신을 짓누르고 있다. 자유학기제라는 쉼표를 통해 아이들이 '귀차니즘'을 떨쳐내고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주체적 인간으로 설 가능성을 열어 보였다. 더불어 활기 넘치는 공간으로서의 학교도 함께.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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