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시내엔 공동묘지만 19개
[포토에세이] 프랑스 마지막 여정, 몽파르나스 묘지
▲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의 묘지몽파르나묘지에 있는 사르트릉화 보부와르의 묘지 ⓒ 김민수
"파리에 가면 제일 먼저 가보고 싶은 곳이 어디죠?"
"몽파르나스 묘지요."
"예? 거긴 누구를 만나러 가시는데요?"
"사르트르요."
사르트르(Jean-Paul Charles Aymard Sartre 1905-1980)는 프랑스 실존주의 철학자, 대표적인 실존주의 사상가이며 작가로 알려져 있다. 나는 그의 묘지가 보고 싶었다. 그 유명한 실존주의 철학자도 결국 한 줌의 흙이 되어 여느 평범한 사람처럼 누워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었다.
▲ 몽파르나스묘지한번 왔으면 다시 온 곳으로 돌아가는 것이 인생이다. ⓒ 김민수
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 그리고 Amor fati. 삶을 사랑하라.
다른 말이 아니라 같은 말이며, 죽음과 삶의 경계는 무의미해 보였고, 사실 무경계다. 막상 물어물어 찾아간 몽파르나스 묘지는 숙소와 아주 가까운 곳에 있었다. 어쩌면 먼 것처럼 느껴지는 죽음도 그렇게 가까이 있을 수 있겠다 싶었다.
▲ 몽파르나스묘지도심에 있는 묘지지만, 으스스한 느낌이 들기보다는 죽음을 사색할 수 있는 공원 같은 느낌이다. ⓒ 김민수
사르트르를 만나고(?) 나니 모파상(Guy de Maupassant 1850-1893)도 만나고 싶었다. 실존주의 철학자보다는 어쩌면 자연주의 작가를 만나는 편이 내겐 어울리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모파상의 묘지번호는 62번이었다.
찾기 어려울 것이라는 현지인의 말에도 자신있게 지도를 더듬어 갔지만 결국, 그를 만나진 못했다. 아쉬움으로 남겨둔다는 것은 다시 올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다.
▲ 몽파르나스묘지개인의 묘역부터 가족묘가지 다양한 모습으로 조성되어 있었다. ⓒ 김민수
파리에는 페르 라셰즈공동묘지와 몽파르나스공동묘지, 몽마르뜨공동묘지 등이 유명하고 파리 시내에는 작은 공동묘지까지 19개의 공동묘지가 있단다. 도시 외곽도 아니고 도심에 묘지가 있다는 것은 우리의 문화에서는 낯설다.
더군다나 조로주 외젠 오스만 남작의 의해 시작된 '파리 개조 사업(1853년경)'에도 불구하고 공동묘지가 여전히 남아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많았다. 당시 파리 개조사업을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채소밭, 과수원, 가축 농장 등을 없애는 일이었고, 노동자와 도시 빈민의 주거지를 외곽으로 옮기는 일이었다.
▲ 몽파르나스묘지죽은 자는 말이 없지만 살아있는 자들은 그들의 묵언을 듣는다. ⓒ 김민수
그 와중에 공동묘지는 이전 대상이나 철거대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여행을 가서 공동묘지를 간다는 것이 낯설어 보일 수 있겠지만, 프랑스의 공동묘지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들과 예술가들의 묘지가 많다.
어쩌면 이것이 근대화된 도시 파리, 파리개조사업에도 공동 묘지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힘이었을 것이다. 그곳은 우리네 공동묘지처럼 을씨년 스럽지 않았으며, 다양한 조형물과 조각상과 가족묘, 묘비에 쓰인 구절 등은 볼거리였으며 죽음에 대한 깊은 사색을 할 수 있는 철학적인 공간이었다.
▲ 몽파르나스묘지작가를 소망했던 이의 묘지가 아니었을까 싶은 상상력을 불러 일으킨다. ⓒ 김민수
묘비의 모습만으로도 '작가지망생'이거나 혹은 유명 작가의 묘비임을 가늠할 수 있다. 사랑을 많이 받았던 작가라는 것도 가늠할 수 있다. 어쩌면 사람은 살아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죽어서 말하는 것이다.
몽파르나스 묘지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순전히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로 때문이었다. 그는 죽어서 나를 그리로 부른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곳에서 공동묘지는 강력한 철학적 사색의 공간일 수 있다는 것을 마음에 새긴다. 죽음에 대해 사색할 수 있는 시간은 실존의 시간 외에는 없다. 그래서 우리는 죽음을 기억하면서, 현재를 사랑하며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 몽파르나스묘지묘지 중앙에 자리하고 있는조각상 ⓒ 김민수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도 죽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나도 죽는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반드시 죽는다는 사실이며, 지나가는 오늘은 죽음에 하루 더 다가간 날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망각한다. 내가 죽는다는 사실을.
▲ 몽파르나스묘지묘지들도 하나의 상징이고, 예술이다. 망자의 살았던 삶을 조금이라도 유추할 수 있는 모습들이 있다. ⓒ 김민수
묘지를 돌아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그들에 대해 좀 더 아는 것이 많았으면 하는 생각이다. '아는 만큼 더 많이 볼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 같은 아쉬움이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알았더라면 보지 못했을 것'을 보는 것이 모르고 떠난 여행길의 묘미가 아니런가?
▲ 몽파르나스묘지묘지에는 조형물도 많이 있었는데 저마다 의미들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 김민수
옹파르나스 묘지는 숙소에서 아주 가까웠다. 걸어서 10여 분 거리였는데, 지하철 노선으로 찾다보니 세 정거장이라 낯선 도시에서의 세 정거장이 멀게만 느껴졌던 것이다.
파리 여행의 마지막 밤, 프랑스 여행을 하면서 꼭 가보고 싶었던 몽파르나스 묘지를 결국은 보지 못하고 가는가 싶었다. 그러던 차에 구글지도를 검색했고, 도보로 환산하니 20여분 밖에 되질 않았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
파리에서 머무는 동안 이곳이 이토록 가까운 곳에 있는 줄 알았더라면 이른 아침에 운동삼아 매일 찾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것을 안 것은 마지막 날, 드골공항으로 출발하기로 약속한 시간을 두어 시간 앞둔 시점이었다.
▲ 몽파르나스묘지조심 속의 묘지, 잘 조성한다면 사색할 수 있는 소중한 공간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 김민수
물론, 그것만으로도 감사하다. 프랑스 여행의 마지막 여행지를 '몽파르나스 묘지'로 남겼다는 것도 나에게는 의미있는 일이다.
11월 13일 테러 여파때문에 프랑스는 다소 우울했다. 여행자로서도 마냥 여행의 즐거움에 흥겨울 수도 없었다. 그러나 덕분에 차분한 여행, 차분한 파리를 보고 돌아올 수 있었다. 이번 여행에서 가보고 싶었던 루브르박물관은 입장권까지 구입했는데 관람하질 못했다. 물랑루즈도 한 번쯤은 보고 싶었는데 그 역시도 취소했다. 파리에펠탑 전망대에 올라가 파리 전경을 바라보며 차 한 잔 하고 싶었던 계획도 무산되었다.
뜻대로 계획대로 되지 않은 것이 많았던 프랑스 여행길이었다. 그러나, 삶이 어디 사람 뜻대로 되는가? 내 뜻대로, 계획대로 진행된 여행은 아니었지만 그것도 그리 나쁘진 않았다.
덧붙이는 글
프랑스 여행기 마지막 편입니다. 지난 11월 9일-20일에 다녀왔습니다. 여행기를 정리하다보니 한달 이상 프랑스를 여행한 것 같은 느낌입니다. 관심을 갖고 읽어주신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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