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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과정 예산 갈등, 지자체·교육감 탓만

누리과정 예산 삭감 관련 신문·방송 모니터 보고서

등록|2015.12.25 17:11 수정|2015.12.25 17:11

▲ 누리과정 예산 삭감 관련 신문 방송 모니터 보고서 개요 ⓒ 민주언론시민연합


누리과정 예산을 둘러싼 교육청과 정부 간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지방 교육청은 중앙 정부가 예산을 책임져야 한다며 결단을 촉구하고 있고, 정부는 법규상 지자체와 교육청이 알아서 해야 한다며 맞서고 있는 것이다.

2013년 1월 31일 박근혜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보육사업과 같은 전국 단위 사업은 중앙정부가 책임지는 것이 맞는 방향"이라고 말했지만 정부는 집권 3년 만에 돌변했다. 교육부가 지난 10월 시행령을 개정해 누리과정 예산을 시·도교육청의 의무 지출경비로 돌린 것이다.

하지만 시·도교육감들은 교육부가 아닌 보건복지부가 관리하게 되어 있는 보육기관(어린이집) 예산까지 시·도교육청에게 떠넘기는 것은 상위법인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의 입법 취지를 벗어난다고 강하게 문제제기했다.

12월 24일 현재 서울, 강원, 세종, 광주, 전남, 전북 등 6개 지방의회는 어린이집 과정 예산을 편성하지 않았다. 이 중 서울, 광주, 전남은 어린이집만 편성하고 유치원에만 예산을 배정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며 누리과정 예산 전액을 삭감했다.

서울시는 정부가 어린이집 예산을 지원하면 유치원 과정 예산도 다시 편성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누리과정 예산을 지방에 지원하지 않기 위해 시행령까지 바꾸는 정부의 어깃장으로 인해 내년 초부터 보육대란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그러나 이 사태를 두고 정부의 책임을 묻는 언론은 경향·한겨레·JTBC뿐이었다. 보수언론과 지상파 3사는 지자체를 탓하기만 했고 심지어 교육과 관련 없는 다른 사업 예산을 들먹이며 본질을 흐렸다.

엇비슷한 보도량, 의견기사 논조는 정반대

23일과 24일에 걸친 5개 주요 일간지의 누리과정 예산 삭감 관련 보도량은 최소 3건(동아일보)에서 최대 5건(경향신문, 조선일보)을 보였다.(<표2>참조) 그러나 엇비슷한 보도량과는 달리 보도 논조는 매체에 따라 크게 갈렸다. 특히 사설과 칼럼에서 차이가 크다.

▲ 5개 신문 누리과정 예산 삭감 관련 사설/칼럼 제목(12/23~12/24) ⓒ 민주언론시민연합


경향신문과 한겨레는 누리과정 예산 삭감과 관련, 보육대란에 대한 책임을 정부에 물은 반면,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서울시에 전가하고 있다.

경향신문은 사설에서 "정부가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 책임을 시·도 교육청에 떠넘기면서 불거진 보육대란이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라며 "이번 사태의 책임은 어디까지나 박근혜 정부에 있다"고 강조했다.

한겨레도 사설에서 "무상보육 문제는 박근혜 정부의 정책 실패를 상징하는 열쇳말이 된 듯하다"며 당장 야당과 함께 이번 보육대란 사태의 해결책을 찾지 않을 경우 "이 정부는 헛공약으로 백년대계를 어지럽힌 '거짓말·무능 정부'로 지탄받아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조선일보는 <서울시 보육 예산 삭감, 아이들 인질 삼아 싸우는 건 횡포>(12/24, 39면)에서 "서울시의회는 청년수당 예산 90억 원, 서울역 고가 공원화 사업 예산 232억 원 등 박원순 시장표 예산은 통과시켰다. 누리과정 예산 때문에 자기들이 생색을 낼 수 있는 자체 사업을 할 수 없으니 누리과정 보육 예산은 중앙정부가 모두 부담해달라는 말이다"라며 서울시의회의가 누리과정 예산을 책정하지 않은 이유가 선거 때문이라고 트집 잡았다.

중앙일보는 <취재일기/보육비 다툼에 유치원은 왜 끼워넣나>(12/24, 33면, 천인성 사회부문 기자) 등을 통해 서울시 의회의 '유치원 누리과정 예산 삭감'에 대한 우려를 보도했다. "혼란의 근본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명확해지고 유치원 예산에까지 불똥이 튀면서 부모들의 불만이 정부를 향하고 있다"는 경향신문의 분석과는 달리 중앙일보는 "자녀에 대한 혜택이 사라지는 순간, 부모들의 분노는 정부·교육감·여야를 가리지 않고 쏟아질 게 분명"하다고 경고했다. 동아일보는 관련 의견기사가 없었다.

정부 책임 강조한 경향·한겨레, 청년수당·민노총 지원금 들먹인 조선·중앙

경향신문은 <'누리예산' 지방에 떠넘긴 정부 탓…어린이집 유치원 어쩌나>(12/23. 3면, 박용근·경태영·최승헌·정원식 기자)에서 누리과정 예산문제는 박근혜 대통령의 "무상보육은 국가가 책임질 테니 아이만 낳아달라"는 대선공약으로 싹이 튼 것이라고 지적했다. 공약대로 국가가 누리과정 예산을 도맡았으면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 경향신문 관련 보도 갈무리 ⓒ 민주언론시민연합


한겨레도 <'보육대란' 막을 방법은 뭘까요?>(12/24, 2면, 전정윤·홍용덕 기자)에서 "교육감들은 '대통령 공약인데다 정부의 교부금 전망이 틀렸고, 어린이집은 보건복지부 소관인 만큼 어린이집 예산이라도 정부가 지원해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와 "앞으로 정부가 어린이집 누리과정 추가 지원책을 내놓거나 교육청이 지방채를 발행해 어린이집 문제를 해결한다면 어린이집·유치원 보육대란은 함께 풀리게 됩니다"에 밑줄을 쳐서 보도했다. 이번 보육대란 사태의 근본 원인이 정부에 있다고 본 것이다.

반면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누리과정 예산 삭감 갈등의 근본책임을 서울시의회에 물었다. 특히 중앙일보는 이 과정에서 청년수당이나 민노총 지원금과 같은 여타 예산 정책에 대한 비교가 이어졌다.

중앙일보는 총 보도 4건 중 3건에서 청년수당을 제목에 언급했다.(<청년수당 50만원 누리예산은 0원 서울시 예산 통과>(12/23, 7면, 천인성·노진호 기자), <표 되는 청년 수당은 챙기고 누리예산은 "정부 소관" 발빼>(12/23, 7면, 천인성·노진호 기자), <복지부의 반격…박원순 '50만원 청년수당' 대법원 갈 듯>(12/24, 10면, 신성식·노진호 기자))

▲ 중앙일보 관련 보도 갈무리 ⓒ 민주언론시민연합


중앙일보는 서울시의회가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을 삭감한 원인에 대해서는 "어린이집과의 형평성을 맞추기 위해서"라고 간략하게 소개하는 것에 그친 반면, "3∼5세 무상보육은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 사항이다. 서울시의회는 총 105석 중 75석을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의원이 차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서울시의회가 정부 지침을 어겨가며 청년수당 예산은 편성하면서 누리과정 예산은 없애버리는 정략적 선택을 했다."는 익명의 교육부 관계자의 발언을 인용했다.

조선일보는 <민노총 지원금 15억, 또 되살린 서울시의회>(12/24, 10면, 최희명 기자)에서 "서울시의회가 누리과정 예산안은 전액 삭감하면서 당초 내년 예산에 포함되지 않았던 민노총 서울본부 지원금 15억 원을 예산 심의 과정에서 되살려 논란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앙일보와 마찬가지로 야당 의원이 과반을 차지하는 서울시의회가 표심에 도움이 되는 정책은 강조하고 누리과정 예산은 홀대했다는 억지인 것이다.

신문에 비해 무관심한 방송사, 내용도 부실

▲ 누리과정 예산 삭감 관련 6개 방송사 보도량(12/22~12/23) ⓒ 민주언론시민연합


방송사 저녁종합뉴스에 누리과정 예산 삭감 관련 보도량은 매우 적었다. 서울시의 예산 전액 삭감으로 논란이 컸던 22일부터 23일까지 TV조선이 3건으로 가장 많았고 나머지 5개사는 1건씩 보도했다. 적은 보도 건수보다 더 황당한 것은 보도 내용이다. 대부분의 보도가 누리과정 예산 문제를 여야 정쟁으로 규정하거나 배경 상황을 설명하지도 않고 지자체 탓으로만 돌려, 노골적인 편파성을 드러냈다.

KBS, MBC, TV조선, 채널A는 예산 삭감의 주체를 '야당' 또는 '진보'라 규정하고 예산 갈등을 정쟁 프레임에 가뒀다.

▲ 6개 방송사 누리과정 예산 삭감 관련 보도 목록(12/22~12/23) ⓒ 민주언론시민연합


KBS는 "야권 성향의 교육감과 지방의회가 있는 곳의 예산은 대체로 적게 편성"했다고 보도했고, MBC는 "누리과정 예산을 전액 삭감한 서울시의회는 야당 공약인 청년수당 90억 원과 박원순 시장이 추진하는 서울역고가 공원화 예산 232억 원은 원안대로 편성"했다고 전했다.

TV조선 <대통령 면담 요구…파국 치닫는 '누리 과정'>(12/23)은 "진보성향 교육감들이 긴급 기자회견"을 했다고 보도했고, 채널A는 "야당이 절대 다수인 서울시 의회가 박근혜 대통령 공약 사업인 어린이집과 유치원 지원 예산을 모두 삭감"이라며 예산 갈등의 책임이 마치 야권 또는 진보 진영에 있다는 듯 언급했다.

이번에도 박원순 탓? 도 넘은 MBC와 채널A의 왜곡

JTBC를 제외한 방송사들은 일방적으로 지방자지단체들의 탓을 하며 친정부적 편파성을 드러냈다. 특히 MBC와 채널A는 뜬금없이 박원순 시장을 공격하며 서울시의회의 결정에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처럼 호도했다.

MBC는 누리과정 예산에 대한 여야 공방을 전한 뒤 "누리과정 예산을 전액 삭감한 서울시의회는 야당 공약인 청년수당 90억 원과 박원순 시장이 추진하는 서울역고가 공원화 예산 232억 원은 원안대로 편성", "서울시 제출 원안에는 없는 민주노총 지원 예산 15억 원도 건전한 노조활동을 지원해야 한다며 예산을 배정"했다며 마치 서울시가 박 시장 공약 사업을 추진하려고 의도적으로 누리과정 예산을 삭감한 듯 보도했다.

▲ MBC 관련 보도 화면 갈무리 ⓒ 민주언론시민연합


채널A도 제목부터 <박원순 사업 '통과' 대통령 사업 '삭감'>라며 박원순 시장과 박근혜 대통령을 대비시켰고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 사업인 어린이 집과 유치원 지원 예산을 모두 삭감했습니다. 하지만, 서울역 고가 공원화 사업과 청년 수당 사업 같은 박원순 시장의 역점 사업 예산은 원안 그대로 통과"했다며 MBC와 비슷한 보도태도를 보였다. 예산 지원에 모르쇠로 일관하는 정부 태도는 문제 삼지 않고 서울시에만 책임을 전가하는데 혈안이 된 셈이다.

지자체·교육감 입장은 외면, 정부 편 드는 방송사들

타사 역시 편파적이기는 마찬가지이다. TV조선은 <전액삭감…'누리과정' 중단>(12/23)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누리과정 지원을 야당이 장악하고 있는 서울시 의회가 거부"했다고 보도했고, SBS는 "형평성 때문이라고 하지만 실은 정부와 국회를 압박"한 것이라며 정부가 수세에 몰린 것인 양 묘사했다.

KBS의 경우 "교육감들의 어떤 의지, 이런 것들이 중요하다고 보고 있거든요. 편성한 시·도 있지 않습니까. 그런 시·도는 돈이 남아서 편성한 게 아니거든요"라는 교육부 관계자 발언이나 "중앙에서 내려 보내는 교부금과 지방세가 늘어나는 등 지방교육 재정 여건이 개선됐다며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하지 않은 지역에 대해선 교부금을 삭감하겠다고 압박" 등 정부 입장을 설명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하지만 인건비 자연증가분과 지방채 원리금 상환 등 매몰비용을 감안하면 사실상 교부금 증가 효과가 없다고 반박한 지방 교육감들의 입장은 보도에 나오지 않는다.

반면 JTBC는 "혼란에도 교육부는 국고 지원은 없다는 원칙만 고수하고 있어 보육대란은 내년에도 되풀이 될 것"이라며 방송사 중 유일하게 정부 책임을 물었다. 하지만 1건의 보도로는 지방의회가 예산을 삭감할 정도로 절박한 상황을 설명하는 데 역부족이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민주언론시민연합 홈페이지(www.ccdm.or.kr)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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