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생하고 먹은 라면이 제일 맛있다
[다섯언니의 오키나와 가출여행기 2편] 자마미섬 탈출해 나하시로
'휘잉 휘잉' 평온하던 어제의 날씨와는 다르게 거세게 부는 바람소리에 뒤척이다 잠에서 깼다. 언니들은 벌써 일어나 이불 속에 앉아서 수다를 떨고 있고, 발코니 창문 뒤로는 빨래가 요란스럽게 빨랫줄에서 춤을 추고 있다.
"어제 식당에서 만난 한국인 청년들, 오늘 배 타고 잘 나가려나?"
"페리(고속선보다는 크다)는 뜬다고 하니까 그거 타고 나갈 거야. 아마."
거세게 부는 바람을 보고 어제 저녁, 식당에서 만난 한국 청년들을 걱정하는 대화였다. 세 명의 젊은 청년들은 대학생과 군인으로 여행 중이며, 내일 나가야 하는데 날씨가 안 좋아서 걱정이라고 했다.
식당에는 일본 현지인들도 있었는데, 다들 대화의 화두가 '내일 과연 배가 뜰 것인지가'였다. 섬에서의 날씨는 관광객들과 자마미섬 주민들 모두에게 중요한 부분인 것 같다. 우린 어차피 하루 더 묵고 나갈 것이기에 큰 관심 없이 밥 먹는 데에 집중을 했다. 그것이 어쩌면 앞으로 우리에게 벌어질 일의 큰 복선인지도 모르고.
"남 걱정 그만하고 조식 먹으러 가자."
민박집에 예약해두었던 조식을 먹으러 1층 쉼터로 갔다. 밖에는 바람이 많이 불고 있었지만, 울타리처럼 올라온 조경수가 큰 바람을 막아줘서 편히 식사를 할 수 있었다. 큰 나무 울타리로 인해 마치 숲 속에서 식사하는 느낌이 들어서 오히려 좋았다.
"내 입맛에는 딱이야."
특별할 것이 없는 계란 프라이와 소시지, 야채볶음, 된장국, 밥이었는데 Y언니는 너무나 만족스러워 했다. 어린이 입맛인 나도 맛있게 먹었다. 사실 어제 저녁, 민박집 스테프가 추천해준 현지 식당을 갔는데 모든 메뉴가 우리 입맛에는 너무나 짰다. 섬이고 사시사철 더운 지역이라 입맛이 좀 짠 듯 싶었다. 저녁도 부실하게 먹어서 약간 허기진 것도 있고, 즐겨먹던 메뉴가 나와서 맛있던 것 같다. 그런데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었다.
"남이 해준 밥이면 다 맛있어."
입맛에 맞냐고 물어보자 J언니가 한 명언이다. J언니는 이렇게 평온하게 아침을 먹어본 적이 언제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아침 식사 준비하고, 아이들 학교 보낼 준비하고, 자기 출근 준비까지도 하다보면 정작 언니는 아침을 먹기 힘들다는 것이다. 아직 어린 아이들이 셋인 Y언니의 아침은 말을 안 해도 알 것 같았다.
Y언니는 아침에 남편한테 아이들 옷 입히는 것만 도와달라고 싸운 적도 있다고 했다. 언니들이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면서 그동안 누리지 못했던 '아침의 자유'를 이 날 우린 만끽했다. 별거 없어도 좋다. 맘 편히 아침밥을 먹었으면.
식사를 다 마칠 때쯤 민박집 스태프가 좋지 않은 표정으로 왔다. 바다를 다녀왔는데, 파도가 너무 세서 오늘은 바다를 못 간다고 했다. 어젯밤 우리는 바다에 가서 해양스포츠를 하기로 스태프에게 이야기를 해둔 상태였다.
평소 수영을 좋아하는 H언니가 멋지게 스킨스쿠버를 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는데 아쉬웠다. H언니는 예전에 스킨스쿠버를 배웠다고 했다. 자마미섬에 간다고 하니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고 했다. 결국 언니는 자마미섬 기념품 가게에서 구입한 스쿠버 산소통 그림 스티커를 핸드폰에 붙이면서 아쉬움을 달랬다.
잠깐 커피를 마시러 방에 들르자 마을방송이 흘러나왔다. K언니가 통역을 해주었다. 마을 이장님이 오늘의 날씨와 파도세기, 배가 뜨는지와 임시로 뜨는 배의 시간을 알려주는 방송이었다. 그리고 일본어 방송이 끝나자 외국인도 들을 수 있게 영어로 방송을 해주었다. 영어 방송을 듣고 놀랐다. 외국인이 많이 오는 섬이라서 그럴 수도 있지만, 외국인까지 신경 쓴 방송에 배려심이 느껴졌다. 이것이 일본 특유의 세심함인 것 같다.
오후에는 비가 온다고 하니 서둘러서 물빛이 투명하기로 유명한 후루자마미 비치를 가기로 했다. 동네를 가로 질러 언덕을 걸었다. 우리 중에 분위기 메이커인 Y언니의 재치로 많이 웃으며 걷다가 뜬금없이 H언니가 Y언니의 성격이 부럽다면서 칭찬을 했다.
"남편이 이번에 여행간다고 하니까 내 성격이 무뚝뚝하다고 다른 아낙네들 하는 거 보고 배워 오래."
"뭘 배워?"
"애교같은 것 있잖아."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언니들은 남편들 이야기를 했다.
"언니네 남편은 언니가 안 놀아 준다고 삐친다면서?"
"우리는 늘 티격태격하느라 바빠. 남편이 나랑 있으면 지루할 틈이 없대."
"난 그게 부러워. 우린 재미가 없어. 그렇게라도 막 싸워보고 싶어."
사는 모습은 비슷해 보이는데 어쩜 이리도 부부관계는 다양한지 신기했다. 또한 자신의 배우자에게 없는 점을 다른 부부를 보며 부러워하는 것은 다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등에 땀이 나기 시작하자 멀리 후루자마미 비치가 보인다. 걸음이 빨라졌다. 해변 주위로 열대 야자수 나무들이 있고 그 사이로 애매랄드 빛 바다가 펼쳐진 후루자마미 비치.
"우리 정말 여행 온 것 같아!"
여름이면 파라솔과 사람들이 가득한 해변이겠지만 겨울이라 그런지 해변에는 우리밖에 없었다. 맑은 날씨였다면 더 눈부신 바다를 볼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움이 남았다. 우린 열심히 사진을 찍다가 바다를 앞에 두고 바닥에 앉았다. 앉아서 오키나와를 기억할 산호를 열심히 주웠다.
죽은 산호가 파도에 부드럽게 깎여서 밀려들어온 것으로 해변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오키나와는 '산호의 바다'라고 불릴 만큼 산호가 많이 서식하고 있고, 산호 관련된 관광상품도 많다(죽은 산호를 가져가는 것은 불법이 아니다).
산호를 줍다보니 K언니가 안 보인다. 해변가 끝쪽 건물에서 우리를 향해 손짓을 하는 K언니. 우린 걸어서 그 곳에 갔다. 그 곳에는 10명 남짓한 일본인 할아버지들이 있었다. 오키나와로 여행 온 분들이라고 하셨다.
일본인 할아버지들은 자미미섬의 순환버스가 있기는 한데 많이 기다려야 하니 항구까지 태워다 주시겠다고 하셨다.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우린 감사한 마음으로 버스에 탔다. 일본인 할아버지들은 한국 사람들을 만나 반가웠는지 마시려고 사신 맥주와 귤을 나누어주셨다.
항구에 내려서 '후두둑' 떨어지는 비에 빨리 숙소로 달려갔다. 숙소에 도착하자 민박집 스태프가 일본어가 가능한 K언니를 급히 찾았다. 파도가 더욱더 안 좋아져서 내일 오키나와 나하시로 가는 배가 뜨지 않으니 오늘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마지막 배가 뜨기까지 30분도 안 남은 상황이니 서둘러서 나가야 한다고.
우린 '번개 불에 콩 볶듯이' 눈에 보이는 짐들을 캐리어에 때려(?) 담기 시작했다. 부랴부랴 항구에 도착하니 자마미섬에 있는 모든 관광객들이 모인 것 같이 만원을 이루었다. 아침에 날씨 때문에 배타고 나갈 수 있을지 걱정했던 한국인 청년들도 만났다. '우리한테 벌어질 일은 생각도 못하고 식당에서 만난 한국 청년들만 걱정 하고 있었다니' 지금 상황이 어이가 없어서 언니들과 한참을 웃었다.
한숨 돌리고 있는 우리와 달리 K언니는 오늘 밤 묵을 숙소를 항구 안내소에서 알아보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오늘은 오키나와에서도 큰 행사인 나하 마라톤 대회가 열려서, 3만명이 넘는 선수들이 참가하고 선수들 가족까지 응원차 나하시(那覇市)에 오니 숙박 잡기가 하늘의 별따기 일거라는 것이다. 다행히 오키나와의 숙소를 알아보던 중 예약했다가 취소했던 숙소로 다시 연락해서 방을 잡았다. 드디어 나하시로 가는 페리에 앉으니 안심이 되어서인지, 파도에 멀미가 나서인지 우린 서로 머리를 맞대고 푹 잤다.
숙소에 도착해서는 비를 맞으며 이동했기에 간단히 씻고, 급히 나오느라 못한 점심식사를 숙소 탕비실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원래 계획으로 자마미섬의 민박집에서 여유롭게 먹으려고 산 주먹밥과 컵라면을 먹기로 했다. 일본 컵라면은 맛은 있지만, 우리의 허기를 달래주기에는 뭔가 부족했다.
'아 비 맞고 먹는 컵라면은 한국 라면이 최고인데.'
그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K언니가 한국에서 가져온 봉지라면을 급히 찾았다.
"우리 뽀글이 먹자!"
일본까지 와서 뽀글이(봉지라면에 뜨거운 물을 부어 익히는 방식)라니! 남자친구는 일본에 갔으니까 신선한 스시 많이 먹고 오라고 했는데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계속 웃음이 나왔다. Y언니는 남편과의 영상통화로 뽀글이를 먹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오늘의 고단함을 이야기했다. '뽀글이와 주먹밥' 우리의 여행 중에 가장 소박한 밥상이었지만, 같이 고생하고 먹어서일까 가장 맛있었고 가장 즐겁게 식사를 했다. 잊지 못할 추억이 생겼다.
허겁지겁 캐리어를 끌고 뛰어서 간신히 배를 타고 숙소에 와서 먹었던 그 뽀글이의 맛, 그 맛이 한국에 온 지금도 계속 생각이 난다. 언니들, 우리 뽀글이 먹으러 여행 또 갈까?
"어제 식당에서 만난 한국인 청년들, 오늘 배 타고 잘 나가려나?"
"페리(고속선보다는 크다)는 뜬다고 하니까 그거 타고 나갈 거야. 아마."
거세게 부는 바람을 보고 어제 저녁, 식당에서 만난 한국 청년들을 걱정하는 대화였다. 세 명의 젊은 청년들은 대학생과 군인으로 여행 중이며, 내일 나가야 하는데 날씨가 안 좋아서 걱정이라고 했다.
식당에는 일본 현지인들도 있었는데, 다들 대화의 화두가 '내일 과연 배가 뜰 것인지가'였다. 섬에서의 날씨는 관광객들과 자마미섬 주민들 모두에게 중요한 부분인 것 같다. 우린 어차피 하루 더 묵고 나갈 것이기에 큰 관심 없이 밥 먹는 데에 집중을 했다. 그것이 어쩌면 앞으로 우리에게 벌어질 일의 큰 복선인지도 모르고.
"남 걱정 그만하고 조식 먹으러 가자."
민박집에 예약해두었던 조식을 먹으러 1층 쉼터로 갔다. 밖에는 바람이 많이 불고 있었지만, 울타리처럼 올라온 조경수가 큰 바람을 막아줘서 편히 식사를 할 수 있었다. 큰 나무 울타리로 인해 마치 숲 속에서 식사하는 느낌이 들어서 오히려 좋았다.
▲ 자마미섬 민박집 조식메뉴. 남이 해준 밥은 다 맛있다. ⓒ 이애경
"내 입맛에는 딱이야."
특별할 것이 없는 계란 프라이와 소시지, 야채볶음, 된장국, 밥이었는데 Y언니는 너무나 만족스러워 했다. 어린이 입맛인 나도 맛있게 먹었다. 사실 어제 저녁, 민박집 스테프가 추천해준 현지 식당을 갔는데 모든 메뉴가 우리 입맛에는 너무나 짰다. 섬이고 사시사철 더운 지역이라 입맛이 좀 짠 듯 싶었다. 저녁도 부실하게 먹어서 약간 허기진 것도 있고, 즐겨먹던 메뉴가 나와서 맛있던 것 같다. 그런데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었다.
"남이 해준 밥이면 다 맛있어."
입맛에 맞냐고 물어보자 J언니가 한 명언이다. J언니는 이렇게 평온하게 아침을 먹어본 적이 언제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아침 식사 준비하고, 아이들 학교 보낼 준비하고, 자기 출근 준비까지도 하다보면 정작 언니는 아침을 먹기 힘들다는 것이다. 아직 어린 아이들이 셋인 Y언니의 아침은 말을 안 해도 알 것 같았다.
Y언니는 아침에 남편한테 아이들 옷 입히는 것만 도와달라고 싸운 적도 있다고 했다. 언니들이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면서 그동안 누리지 못했던 '아침의 자유'를 이 날 우린 만끽했다. 별거 없어도 좋다. 맘 편히 아침밥을 먹었으면.
식사를 다 마칠 때쯤 민박집 스태프가 좋지 않은 표정으로 왔다. 바다를 다녀왔는데, 파도가 너무 세서 오늘은 바다를 못 간다고 했다. 어젯밤 우리는 바다에 가서 해양스포츠를 하기로 스태프에게 이야기를 해둔 상태였다.
평소 수영을 좋아하는 H언니가 멋지게 스킨스쿠버를 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는데 아쉬웠다. H언니는 예전에 스킨스쿠버를 배웠다고 했다. 자마미섬에 간다고 하니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고 했다. 결국 언니는 자마미섬 기념품 가게에서 구입한 스쿠버 산소통 그림 스티커를 핸드폰에 붙이면서 아쉬움을 달랬다.
잠깐 커피를 마시러 방에 들르자 마을방송이 흘러나왔다. K언니가 통역을 해주었다. 마을 이장님이 오늘의 날씨와 파도세기, 배가 뜨는지와 임시로 뜨는 배의 시간을 알려주는 방송이었다. 그리고 일본어 방송이 끝나자 외국인도 들을 수 있게 영어로 방송을 해주었다. 영어 방송을 듣고 놀랐다. 외국인이 많이 오는 섬이라서 그럴 수도 있지만, 외국인까지 신경 쓴 방송에 배려심이 느껴졌다. 이것이 일본 특유의 세심함인 것 같다.
▲ 투명하기로 유명한 후루자마미 비치 ⓒ 이애경
오후에는 비가 온다고 하니 서둘러서 물빛이 투명하기로 유명한 후루자마미 비치를 가기로 했다. 동네를 가로 질러 언덕을 걸었다. 우리 중에 분위기 메이커인 Y언니의 재치로 많이 웃으며 걷다가 뜬금없이 H언니가 Y언니의 성격이 부럽다면서 칭찬을 했다.
"남편이 이번에 여행간다고 하니까 내 성격이 무뚝뚝하다고 다른 아낙네들 하는 거 보고 배워 오래."
"뭘 배워?"
"애교같은 것 있잖아."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언니들은 남편들 이야기를 했다.
"언니네 남편은 언니가 안 놀아 준다고 삐친다면서?"
"우리는 늘 티격태격하느라 바빠. 남편이 나랑 있으면 지루할 틈이 없대."
"난 그게 부러워. 우린 재미가 없어. 그렇게라도 막 싸워보고 싶어."
사는 모습은 비슷해 보이는데 어쩜 이리도 부부관계는 다양한지 신기했다. 또한 자신의 배우자에게 없는 점을 다른 부부를 보며 부러워하는 것은 다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등에 땀이 나기 시작하자 멀리 후루자마미 비치가 보인다. 걸음이 빨라졌다. 해변 주위로 열대 야자수 나무들이 있고 그 사이로 애매랄드 빛 바다가 펼쳐진 후루자마미 비치.
▲ 후루자마미 비치에서 주운 산호 ⓒ 이애경
"우리 정말 여행 온 것 같아!"
여름이면 파라솔과 사람들이 가득한 해변이겠지만 겨울이라 그런지 해변에는 우리밖에 없었다. 맑은 날씨였다면 더 눈부신 바다를 볼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움이 남았다. 우린 열심히 사진을 찍다가 바다를 앞에 두고 바닥에 앉았다. 앉아서 오키나와를 기억할 산호를 열심히 주웠다.
죽은 산호가 파도에 부드럽게 깎여서 밀려들어온 것으로 해변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오키나와는 '산호의 바다'라고 불릴 만큼 산호가 많이 서식하고 있고, 산호 관련된 관광상품도 많다(죽은 산호를 가져가는 것은 불법이 아니다).
▲ 한 폭의 그림 같이 잘 어울리는 후루자마미 비치와 언니들 ⓒ 이애경
산호를 줍다보니 K언니가 안 보인다. 해변가 끝쪽 건물에서 우리를 향해 손짓을 하는 K언니. 우린 걸어서 그 곳에 갔다. 그 곳에는 10명 남짓한 일본인 할아버지들이 있었다. 오키나와로 여행 온 분들이라고 하셨다.
일본인 할아버지들은 자미미섬의 순환버스가 있기는 한데 많이 기다려야 하니 항구까지 태워다 주시겠다고 하셨다.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우린 감사한 마음으로 버스에 탔다. 일본인 할아버지들은 한국 사람들을 만나 반가웠는지 마시려고 사신 맥주와 귤을 나누어주셨다.
항구에 내려서 '후두둑' 떨어지는 비에 빨리 숙소로 달려갔다. 숙소에 도착하자 민박집 스태프가 일본어가 가능한 K언니를 급히 찾았다. 파도가 더욱더 안 좋아져서 내일 오키나와 나하시로 가는 배가 뜨지 않으니 오늘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마지막 배가 뜨기까지 30분도 안 남은 상황이니 서둘러서 나가야 한다고.
우린 '번개 불에 콩 볶듯이' 눈에 보이는 짐들을 캐리어에 때려(?) 담기 시작했다. 부랴부랴 항구에 도착하니 자마미섬에 있는 모든 관광객들이 모인 것 같이 만원을 이루었다. 아침에 날씨 때문에 배타고 나갈 수 있을지 걱정했던 한국인 청년들도 만났다. '우리한테 벌어질 일은 생각도 못하고 식당에서 만난 한국 청년들만 걱정 하고 있었다니' 지금 상황이 어이가 없어서 언니들과 한참을 웃었다.
한숨 돌리고 있는 우리와 달리 K언니는 오늘 밤 묵을 숙소를 항구 안내소에서 알아보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오늘은 오키나와에서도 큰 행사인 나하 마라톤 대회가 열려서, 3만명이 넘는 선수들이 참가하고 선수들 가족까지 응원차 나하시(那覇市)에 오니 숙박 잡기가 하늘의 별따기 일거라는 것이다. 다행히 오키나와의 숙소를 알아보던 중 예약했다가 취소했던 숙소로 다시 연락해서 방을 잡았다. 드디어 나하시로 가는 페리에 앉으니 안심이 되어서인지, 파도에 멀미가 나서인지 우린 서로 머리를 맞대고 푹 잤다.
▲ 뽀글이 라면이 익기를 기다리는 중 ⓒ 이애경
숙소에 도착해서는 비를 맞으며 이동했기에 간단히 씻고, 급히 나오느라 못한 점심식사를 숙소 탕비실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원래 계획으로 자마미섬의 민박집에서 여유롭게 먹으려고 산 주먹밥과 컵라면을 먹기로 했다. 일본 컵라면은 맛은 있지만, 우리의 허기를 달래주기에는 뭔가 부족했다.
'아 비 맞고 먹는 컵라면은 한국 라면이 최고인데.'
그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K언니가 한국에서 가져온 봉지라면을 급히 찾았다.
"우리 뽀글이 먹자!"
일본까지 와서 뽀글이(봉지라면에 뜨거운 물을 부어 익히는 방식)라니! 남자친구는 일본에 갔으니까 신선한 스시 많이 먹고 오라고 했는데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계속 웃음이 나왔다. Y언니는 남편과의 영상통화로 뽀글이를 먹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오늘의 고단함을 이야기했다. '뽀글이와 주먹밥' 우리의 여행 중에 가장 소박한 밥상이었지만, 같이 고생하고 먹어서일까 가장 맛있었고 가장 즐겁게 식사를 했다. 잊지 못할 추억이 생겼다.
허겁지겁 캐리어를 끌고 뛰어서 간신히 배를 타고 숙소에 와서 먹었던 그 뽀글이의 맛, 그 맛이 한국에 온 지금도 계속 생각이 난다. 언니들, 우리 뽀글이 먹으러 여행 또 갈까?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