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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은 햄버거집, 그 위엔 입시학원... 강남의 정석

[2015 청춘! 기자상] ③ 학원, 24시 패스트푸드, 병원, 부동산... 대치동의 도시 기호학

등록|2016.01.02 20:22 수정|2016.01.02 20:22
러시아 기호학자 유리 로뜨만은, '공간'을 "가장 오래된 고대어"라고 말했다. 특정한 공간은 단순히 물리적·지리적 공간이 아니라, 그 공간이 오래 간직해 온 문화적 상징들을 통해 '말을 걸어 온다'는 뜻이다. 어떤 도시에서 발견되는 각종 기호는, 그 도시의 역사적, 정치·사회적, 철학적 의미 등을 드러낸다.

지난 2015년 12월 28일, 서울특별시 강남구를 찾았다. 강남은 원래 유사시 서울을 '탈출'하려는 안보 불안감에서 개발된 공간이었지만, 2015년 강남은 도리어 탈출해야 할 곳이 됐다. 탈출에 순서가 있다면, 아이들부터 탈출시켜야 할 것이다. 예비 청년들의 오랜 입시 메카 대치동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이곳은 이제 아이들의 인간성을 잠식시키는 곳'이라고…. 잠시 1960~70년대 박정희 시대로 이야기의 시계를 되돌린다.

'한남대교-현대아파트-8학군'의 도시 기호학

▲ 1978년 강남 압구정동의 모습. 한편에서는 농부가 소를 몰아 밭을 갈고 있고, 다른 한 쪽에서는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건설이 한창이다. ⓒ 서울역사박물관


[탈출의 기호 - '한남대교'] 1966년 박정희 정권은, '제3한강교(한남대교) 건설계획'을 발표한다. 당시 강남은 인구 2만 명 미만의 변두리 농촌이었음에도(서울 통계정보 시스템에 따르면, 2015년 3/4분기는 약 58만 명), 한남동과 신사동을 잇는 다리가 건설된다는 건 군사적 의미가 컸다. 한국전쟁 당시, 북한의 남침 3일 만에 이승만 정권은 한강 다리를 끊고 도망쳤고, 서울시민들은 석 달간 인민군의 통치 아래에 놓였다.

시민들의 정신적 외상은 전쟁 이후에도 깊게 남았지만, 늘어나는 인구에 비해 다리의 수는 부족했다. 1964년 베트남 파병 이후 안보 불안이 고조되고, 북한 특수부대의 청와대 습격이나 푸에블로호 사건 등이 일어나며 안보 불안은 더 심해졌다. 강북에 집중된 기능을 분산시키고, 교통·주택난을 해결할 필요도 있었으므로1970년대는 본격적인 강남 개발의 시기가 됐다.

[욕망의 기호 - '현대아파트'] 개발독재를 '좋았던 시절'이라 부르며 향수를 느끼는 사람들은, 경부고속도로 건설이나 강남 개발 같은 대규모 사업을 거론하며 박정희의 치적을 높이 평가한다. 하지만 이러한 사업들은 오늘날 극심한 경제적 불평등을 담보로 이뤄졌다. 강남 개발 당시, 박정희 정권은 개발 비용을 들이지 않으려고 '체비지 장사'를 유도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강남에 땅을 소유했다고 하자. 그런데 도로개발 계획으로 일부를 내놓으면, 재산도 감소한 걸까. 아니다. 도로가 들어서 땅값이 내놓은 땅의 값어치를 상회할 만큼 오른다면, 손실을 메꾸고도 남는다. 개발사업자들이 원 토지 소유자가 내놓은 땅 중 일부만을 사용했다면, 미사용 토지가 바로 '체비지'이다.

개발사업자들은 이 체비지를 팔아 개발비용을 충당했다. 이 방식은 박정희 정권이 공공투자를 아껴 도시개발을 거저먹는 '신의 한 수'였던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이것은 양날의 검이었다. 체비지가 팔리지 않는다면 사업이 진행되지 못한다. 정권은 체비지가 많이 그리고 비싸게 팔리도록 발 벗고 나서 땅장사를 조장했고, 부동산 투기를 불러왔다.

▲ 왼쪽이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오른쪽으로 미도아파트가 보인다. ⓒ 김동환


시민들의 안보불안이 여기에 반응하며, 서울 상류층의 강남 이주가 촉진됐다. 왜 상류층인가. 여유가 있는 사람은 강남에 땅을 살 수 있고, 그렇지 못하면 사지 못했기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손가락만 쪽쪽 빨 동안, 헐값에 불과했던 강남구 땅은 전성기(?)에는 하루 사이에도 수십 배씩 폭등했다. 1978년 압구정 현대아파트 건설·분양은 투기의 정점이었다.

현대 기업 측은 아파트 건설 허가를 받을 때 절반을 사원용으로 쓰겠다고 했지만, 일부를 고위공직자와 언론인들에게 특혜 분양을 했다. 당시 현대아파트는 평당 수천만 원씩의 막대한 프리미엄(웃돈)이 붙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당시 법원은 프리미엄은 뇌물이 아니라는 판결을 내려 면죄부를 줬고, 강남은 전국적인 부동산 투기와 경제적 불평등의 진앙이 됐다.

그리고 오늘날 한국 사회의 부(富)는 상위 10%가 66%를, 하위 50%가 2%를 차지하고 있다(김낙년 <한국의 부의 불평등, 2000-2013: 상속세 자료에 의한 접근> 2015.10.28). '다 함께 잘살아 보자'는 없었다. 하지만 더 심각한 건, 한국 사회의 사회·의식구조가 '나만 잘 살고 보자'는 식의 각자도생으로 변질됐다는 점이다.

[경쟁의 기호 - '8학군'] 변질된 사회·의식구조를 재생산하는 것이 바로 교육이다. 강남 개발 당시, 유흥업소들이 대거 이전됐지만 사람들을 유인하기에는 불충분했다. 박정희 정권은 시민들을 이주·정착시키기 위해, 당시 명문이라는 경기고등학교와 서울고등학교를 각각 강남과 서초로 옮겨왔다. 이게 그 유명한 '강남 8학군'의 시작이다.

도시의 기호에서 드러나는 거주자의 욕망

▲ 1층은 24시간 영업을 하는 버거킹이 입점해 있고, 2~3층은 입시 학원들이 자리잡고 있다. ⓒ 하지율


입시학원은 번화가에서 떨어진 주택가 쪽으로(부모가 언제든 자녀를 돌볼 수 있도록) 들어와야 했다. 대치동 은마·우성아파트 인근의 '대치동 학원가'는 그렇게 형성된 곳이다. 2015년 12월 28일, 대치동 학원가를 찾았다. 기자도 이곳에 안 좋은 추억이 있는데(강남 거주자는 아니다), 오래간만에 와보니 격세지감을 느꼈다. 물론 안 좋은 쪽으로 그랬다. 수년 전이나 지금이나 학원이 많은 건 여전했다.

다만 기자의 눈길을 끈 건, '24시간 패스트푸드점'이 여러 개 입점해 있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1~2층은 패스트푸드점이, 2~3층은 입시학원이 자리잡고 있었다. 24시간 영업하는 패스트푸드점과, 입시학원이라니. 이렇게 기가 막힌 조합이 있을 수가. 경영경제의 기본상식이지만, 패스트푸드점은 수요가 충분하지 않으면 결코 입점하지 않는다.

다수의 언론을 통해 이미 잘 알려졌듯, 정부는 학원 심야교습(밤 10시 이후)을 금지하고 있다. 과도한 사교육을 줄이고 학생들의 수면시간을 확보하겠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이 조치는 학부모와 학원의 강한 반발을 사며, 유명무실해지고 있다. 시험 기간이나 방학마다 교육청 등이 수년째 단속에 나서고 있지만, 인력부족을 이유로 그조차도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 대치동 학원가에서 심야교습은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다.

더 정확한 사실 확인을 위해, 당사자인 학생들과 인터뷰를 시도했다.

기자 : "안녕하세요! <오마이뉴스> 하지율 시민기자라고 합니다. 학원 다니시나 봐요?"
학생 : "(당황한 듯) 네?"
기자 : "간단하게 뭐 좀 여쭙고 싶은데, 딱 3분만 시간 내주실 수 없으실까요. '도를 아십니까' 그런 거 아니고, 대치동에 대한 간단한 사실확인입니다. 신상 같은 건 묻지 않을게요."
학생 : "아, 제가 지금 학원 때문에 바빠서요. 죄송합니다."

▲ 1~2층은 24시간 영업을 하는 맥도날드가 입점해 있고, 3층은 입시 학원들이 자리잡고 있다. ⓒ 하지율


바쁜 학생들을 멈춰 세우고 인터뷰를 시도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백팩을 메고, 한 손에는 흰색 프린트를 쥔 학생들이 쉴 새 없이 학원가를 오갔지만 말 붙이기조차 쉽지 않았다. 그만큼 학생들은 여유가 없었다. 방법을 바꿔 패스트푸드점 한 곳에 들어가, 간단한 메뉴를 주문하면서 매장 직원에게 넌지시 물어보았다.

기자 : "저, 여기 24시간 영업하죠?"
직원 : "네, 그렇습니다."
기자 : "새벽에도 '학생들' 많이 오나요."
직원 : "저녁 때보다는 적어요."
기자 : "그래도 오긴 오나 보네요."
직원 : "꾸준하게 오죠."

▲ 1층은 서브웨이가 입점해 있고, 2~3층은 입시 학원들이 자리잡고 있다. ⓒ 하지율


결국 도시의 기호들은 그 도시 거주자들의 욕망을 드러낸다. 대치동을 대표하는 기호는 '부동산·학원·패스트푸드점·병원(+약국)'이다. 강남을 구성하는 욕망의 원체험은 앞서 말한 '부동산'이며, 학원과 패스트푸드점의 기막힌 동거는 욕망의 끊임없는 대물림을 의미한다. 이 맥락에서 '병원'이 등장하는 이유는, 그 욕망을 재생산해야 할 예비 청년들이 무리하게 공부를 하다가 컨디션이라도 나빠져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다른 업종들도 있지만, 이 네 가지 기호가 압도적으로 많다. 부모가 가진 경제 자본이 자식의 문화 자본(학력·문화적 취향 등)으로 '환전'되는, 대표적 예가 바로 사교육이다. 대치동 학원가는 사교육을 수행할 공간이다. 과거보다 이 재생산 구조는 더 촘촘한 기호들로 드러나고 있으며, 올해 논란이 됐던 '새끼학원'(명문대에 입학하기 위한 명문고에 입학하기 위한 학원에 입학하기 위한 학원) 등장은 그 확실한 증거이다.

물론 입시에는 개인의 노력이 반영된다. 하지만 노력 외적인 상당한 변수들이 포함된다는 것을 대치동은 보여준다. '집-학원-(패스트푸드-병원)-다시 집'이라는 생산 공정을 매일같이 밟아가며, 예비 청년들은 서로를 밀어내는 법을 체화한다. 여기에 공존은 없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성의 결핍이다. 강남은 탈출의 기호로 출발했다.

하지만 강남이 여기에 머문 이들의 인간성을 잠식한다는 점에서, 강남은 오히려 탈출해야 할 곳이 됐다. 이것이 강남 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한 번쯤 익숙한 환경이 어떤 말을 걸어오는지, 기호들을 유심히 살펴보라. 섬찟한 사실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리지 않으면 안 된다. / 난 진정, 내 안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그것을 살아 보려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 아무튼 요즘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혼란스러워져 버렸다. 단 한 번뿐인 귀한 사람의 목숨을 무더기로 쏘아 죽이기도 한다." - 헤르만 헤세 <데미안> 중에서

▲ 더 클래식 출판사의 <데미안>이다. 주인공 에밀 싱클레어가 자신의 내념에 밝은 세계와 어두운 세계가 공존한다는 것을 느끼고, 혼란스러워하며 자아를 탐구하고 치열하게 성장해가는 내용이다. ⓒ 더 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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