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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때문에 '밤샘알바', 청년들이 위험하다

[2015 청춘! 기자상] '불야성' 서울 지키는 청년들의 우울한 건강 진단서

등록|2016.01.03 13:50 수정|2016.01.04 11:51
서울의 새벽, 꿈꾸는 청년들의 시간

새벽 세 시. 혀 꼬인 소리로 해장 음료를 찾는 손님들도 슬슬 뜸해질 때다. 밤이 새까맣게 내려앉은 창밖과 대비되는 하얀 조명 아래서, 김민석(가명, 29)씨는 오늘도 시간을 죽이고 있다. 서울시내 편의점에서 주5일 야간 아르바이트로 일한 지 3개월째다. 시급이 높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주간근무는 일주일 내내 해도 100만~120만 원을 버는 게 고작이에요. 야간알바는 돈을 빨리 모을 수 있어 좋아요."

민석씨는 돈을 모으는 대로 고향으로 돌아가 고시준비를 다시 할 생각이다.    

서울은 청년들의 도시다. 천만 서울 인구 중 4분의 1(약 250만)을 20, 30대 청년들이 차지하고 있다. 서울의 새벽을 지키는 파수꾼 역할도 청년들의 몫이다. 모두가 잠든 시간에도, 수많은 민석씨들은 홀로 '노동의 새벽'을 맞는다.

'불야성' 서울은 청년을 필요로 한다. 단기 서비스직 업종이 대부분인 서울에서 청년 알바는 전 직종에 고루 걸쳐있다. '알바천국' 사이트에서 서울지역 새벽 시간 알바를 검색하면 174개 매장 정보가 뜬다. 서울 시내에서 당장 야간알바를 구할 수 있는 곳이 최소 100여 개 이상이라는 뜻이다.

이는 편의점은 물론이고 패스트푸드점과 프랜차이즈 커피숍들도 경쟁적으로 24시 영업을 시행하는 현실과 관련이 있다. 맥도날드 홈페이지에 따르면 113개 서울 매장 중 24시가 아닌 곳은 14곳에 불과하다.

롯데리아는 서울시내 200개 매장 중 86개 매장이, 버거킹은 84개 중 32개 매장이 24시간 영업한다. 커피숍 중에선 카페베네, 엔젤리너스, 탐앤탐스, 투썸플레이스, 할리스 커피, 이디야 커피 등이 24시간 영업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이 외에도 술집, PC방, 주유소 등 서울시내 24시간 영업 매장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밤새는 청년들, 건강은 안녕들 하십니까?

그러나 불야성을 헤매는 청년들이 좀처럼 모르는 사실이 있다. 야간알바가 건강에 치명적이라는 사실이다. 2007년 세계보건기구(WHO) 국제 암연구소는 심야노동을 2급 발암물질로 규정했다. 심장병, 돌연사, 유방암 등 각종 질병과 심야노동의 연관성에 대한 연구는 2000년대부터 꾸준히 발표돼왔다.

심야노동이 수면 패턴을 무너뜨리고, 소화기능에 문제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도 의학계에서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참고자료: '야간노동이 노동자들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과 대처방안'(임형준 한림대 산업의학과 교수, 노동사회, 2011))

현행 근로기준법에서는 원칙적으로 청소년의 야간근로를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성인 노동자의 야간근로에 대한 규제는 없다. 특히 비정규 근로가 대부분인 청년들의 심야노동은 실태 파악조차 되지 않을 만큼 사회적 관심의 사각지대에 있었다.

청년단체 '리빙액트'(대표 왕복근)는 서울시 관악구 청년들을 대상으로 '심야노동 실태조사'를 진행했다. 이를 단독으로 입수했다.

이번 조사는 비정규 심야노동이란 주제로는, 공공기관의 후원을 받아 진행된 첫 실태조사다. 서울시 노동권익센터가 후원하고, 노동건강연대의 자문을 받았다. 지난 6월부터 넉 달간 관악구내 사업장에서 야간알바 중인 20~30대 청년 141명이 응답했으며, 사업장을 방문해 설문지를 배부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조사 대상에는 편의점 54곳, 커피전문점 24곳, 음식점 14곳, PC방 33곳, 기타 21곳을 포함한 150개 사업장이 포함됐다.

▲ 자료출처:리빙액트 ⓒ 신혜연


▲ 자료출처:리빙액트 ⓒ 신혜연


▲ 자료출처:리빙액트 ⓒ 신혜연


▲ 자료출처:리빙액트 ⓒ 신혜연


▲ 자료출처:리빙액트 ⓒ 신혜연


자지도, 먹지도, 쉬지도 못하는 생활

설문조사 결과 곳곳에서 청년들의 건강 적신호가 감지됐다. 가장 큰 요인은 수면부족이다. 수면양상에 대한 만족도를 묻는 질문에서는 답변이 갈렸지만, 불규칙한 수면 패턴으로 인해 일상생활에 지장을 겪고 있는 점은 모두 비슷했다.

'수면장애가 낮 활동을 방해한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항목에서 '전혀 없다'고 답한 사람은 21.3%에 불과했고, 나머지는 '약간, 다소, 상당히, 매우' 등의 긍정적인 답변을 보였다. 

불규칙한 식습관도 관찰됐다. 야간알바를 하는 청년 중 하루 세끼를 다 먹는 사람은 18.4%로 다섯 명 중 한 명 꼴에 그친 반면, 한 끼만 먹는 사람은 31.9%였다. 식사시간이 규칙적인가를 묻는 질문에는 71.6%가 '아니오'라고 답했다.

건강과 직결되는 휴게시간 사용도 자유롭지 못했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사용자는 4시간 이상 근로에는 30분 이상, 8시간 이상 근로에는 1시간 이상의 휴게시간을 의무로 제공해야 한다.

그러나 절반 이상의(57.4%) 청년들은 휴게시간을 유동적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답했다. 홀로 근무하는 상황이 많은 야간알바의 특성상, '유동적인 휴게시간'은 사실상 근로 대기시간인 경우가 적지 않다.

3개월째 편의점에서 야간알바를 해온 이정수(가명, 24세)씨는 "휴게시간에도 편의점을 나가지는 못한다. 손님이 오면 근무 때와 똑같이 응대한다. 말이 휴식시간이고, 사실상 근무시간과 같다"고 설명했다. 휴게시간이 아예 없다는 응답도 19.9%에 달했다.

노동권 사각지대, 야간알바는 '을'이다

이번 설문조사를 진행한 청년단체 '리빙액트'는 이 같은 심야알바의 열악한 처우가 노동권에 대한 인식 부족에서 비롯됐다고 해석했다. 실제로 이번 조사에서 33.3%의 사업장은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고, 평균시급 역시 6천 원대 이하라는 답변이 절반 이상(68.1%)을 차지했다. 2015년 심야최저시급인 8370원에 훨씬 못 미치는 금액이다. 주휴수당을 받았다고 답한 사람도 34.8%에 그쳤다.

해당 설문조사에서 72%가 넘는 청년들은 급여지출의 가장 큰 부분이 '생활비'라고 답했다. 이처럼 생계형 야간알바가 적지 않은 상황에서, 낮은 임금은 장시간 야간노동을 부추기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대학생 오준일(22)씨는 작년 9월부터 12월까지 종로에 위치한 편의점에서 일했다. 제대 후 돈이 급해 시작한 야간알바였지만 시급은 당시 최저시급인 5580원이었다. 집세와 난방비, 전기세로만 다달이 45만 원이 나갔다. 도심 한복판에 위치한 붐비는 편의점에서 주 5일로 10시간씩 밤새 일했지만, 근무 시간을 줄일 여력은 없었다.

알바와 고용주 간 '갑을관계' 역시 심야알바의 건강을 해치는 요소 중 하나다. 이태원에 위치한 술집에서 4개월간 야간 서빙 아르바이트를 한 조수민(25)씨는 고용주의 편의에 따라 출근 일정을 조정해야 했다.

"방학 때 알바가 많아지면 마음에 안 드는 사람부터 자르곤 했다. 사장에게 밉보이지 않으려고 근무시간을 맞춰줄 수밖에 없었다."

학업과 병행하기 위해 시작한 야간알바였지만, 불안정한 근무시간 탓에 수면패턴이 불규칙해지면서 오히려 학업에 지장을 겪었다.

▲ 알바연대에서 서울시 내 야간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을 만나 노동권 관련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 알바연대


"야간노동, 음주 상태만큼 위험해"

이상윤(직업환경의학 전문의) 노동건강연대 공동대표는 "제일 좋은 것은 심야노동을 하지 않는 것"이라 잘라 말했다. 젊은 나이라고 해도 건강에 큰 영향을 줄 수 있어서다. 다만 어쩔 수 없이 해야 할 때는 잠자는 시간을 확보하고, 식습관에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수면부족에 따른 근무상 안전 문제 역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이 공동대표는 수면부족 상태가 "주의력 측면에서 음주 상태와 비슷하다"고 비유했다.

서울 대학가 PC방에서 주말 야간알바를 한 대학생 문정주(20)씨는 "새벽 5시쯤이면 멍한 기분이 들었고, 일을 해야겠다는 의지도 없이 무기력한 상태가 됐다"고 회상했다. 설문 응답자 5명 중 1명(19.9%)은 '심야노동 중 안전에 위험이 되는 요인'으로 '수면부족'을 꼽았다. '취객'(52.5%)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답변이다.

야간알바의 위험성에 비해 정부와 사회 차원의 대응은 여전히 미미한 상태다. 서울시는 2014년 4월에 '아르바이트 청년 권리보호 및 근로환경 개선 추진 계획'을 발표했다. '임금체불·부당대우·계약위반 없는 알바하기 좋은 서울 조성'을 목표로 내걸고, 알바 청년들의 열악한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정책 대응에 힘쓰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야간알바의 건강이나 근무 환경을 고려한 정책은 나오지 않고 있다.

이혜정 알바노조 비상대책위원장은 "밤샘알바는 노동자의 건강권 측면에서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청년들의 건강을 고려해 정부가 야간노동을 줄이려는 의지를 보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번 실태조사를 이끈 리빙액트의 왕복근 대표는 "개인의 건강 문제라 해도 제도적으로 보완할 부분이 있는데, 야간알바의 건강 문제에 사회가 너무 소홀한 것 같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왕 대표의 바람과는 무관하게 오늘도 청년들은 심야노동에 나선다. 청년의 젊음을 연료 삼아, 불야성 서울의 밤은 하얗게 빛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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