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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년 교직생활을 끝낸, 나는 행복한 교사입니다

남의 일 같던 정년이 오다... 가르치는 것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생각합니다

등록|2016.01.02 17:56 수정|2016.01.02 17:56
올 2월이 정년퇴임이다. 내가 벌써 정년이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남의 일만 같다. 29년의 세월이 한달음에 가버린 기분이다. 오는 2월에는 졸업식과 종업식을 포함하여 겨우 3일이 학사일정으로 잡혀 있다. 하여, 지난해 12월 31일 겨울방학을 선언하는 날, 약식 정년 퇴임식을 미리 했다. 그날 교장 선생님의 말씀이 고맙고 퍽 인상적이었다.

"우리 학교 35년의 역사에서 가장 행복한 교사를 꼽으라고 하면 저는 단연코 안준철 선생님을 꼽겠는데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만약 제 말에 동의하신다면 박수를 쳐주십시오."

가장 훌륭한 교사, 성실한 교사, 헌신적인 교사, 사랑이 많은 교사 등등으로 만약 나를 묘사했다면 겸손한 척하기 위해서라도 손사래를 쳤을 것이다. 하지만 행복한 교사라고 해서 나는 수긍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지난 29년 동안 참으로 행복했고, 내게 행복을 선사한 이들은 그동안 내가 만난 9백여 명의 담임반 학생들을 포함한 제자 아이들이었다.

그들에게 진실을 가르치는 일은 참으로 힘들고 고된 여정이었으나, 또한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진실을 얘기하는 것보다 더 황홀한 일도 없었다. 정년퇴임을 하게 되면서 그 일을 금지 당한다는 것이 못내 아쉽지만 홀가분하기도 하다. 이제는 가르치는 존재가 아닌 배움의 자리로 돌아가 나의 무지함을 세상의 진실과 진리의 말씀으로 즐겁게 채우고 싶기 때문이다.

그날 퇴임식에서 나는 7분짜리 PPT(파워포인트)로 퇴임 인사를 대신했다. 개인적인 퇴임의 소회와 함께 여전히 가르치는 존재로서 학교에 남아 학생들을 가르칠 후배 교사들에게 선배교사로서 마지막 당부를 말로 할 자신이 없어서였다. 퇴임 두 주 전까지만 해도 표정관리를 해야 할 만큼 마음이 가볍고 즐거웠는데 마지막 한 주를 남겨놓게 되자 상황이 달라진 것이다. 동료 선생님들의 얼굴만 봐도 자꾸만 마음이 울컥해지는 것이었다. 교장 선생님 말씀이 끝나자 드디어 마이크가 내게로 왔다.    

"지난 화요일에 마지막 수업을 하러 2학년 교실에 들어갔는데 요즘 교실 들어가면 세기말적 분위기인 거 아시잖아요. 그런데 '오늘 선생님 마지막 수업이야!' 그랬더니 떠들던 아이들이 삽시간에 조용해지더니 눈빛이 금세 달라지는 거예요. 아이들과 얘기 나누면서 제가 참 행복한 교사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준 사랑에 비해 몇 갑절은 더 사랑을 받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런데 막상 학교를 떠날 때가 되니 학생들보다는 동료 선생님들 생각에 마음이 먹먹해졌어요. 그동안 동료나 후배 선생님들께 나는 따뜻한 사람이었나, 이런 물음에 후한 점수를 줄 수가 없었어요. 작년과 올해 특히 교직 경력이 얼마 안 되는 새내기 선생님들께서 학생들과의 문제로 많이 힘드셨잖아요. 상처도 많이 받고 그러셨을 텐데 마음뿐이었고 선배 교사로서 도움을 드리지 못해서 그런 것들이 마음에 진한 아쉬움으로 남았나 봐요.

지난 주까지만 해도 괜찮았는데 이번 주는 선생님들 얼굴만 봐도 울컥해졌어요. 그래서 말로는 퇴임인사를 못하겠구나 싶어서 7분짜리 PPT 자료를 만들었는데 학생들 때문에 힘들어하시는 후배 선생님들을 위한 선배교사로서의 조언도 함께 담았어요. 오늘 제가 주인공이니까 잘 감상해주시기 바라요."

이런 장황한 설명의 배경에는 나의 소심함이 자리하고 있었다. 학생들에게 진실을 가르치는 일도 힘들지만 동료 교사 간에도 진실을 얘기하고 토론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퇴임식이 끝나고 마련된 송별연 자리에서 나는 확인할 수 있었다. 나의 우려는 나의 소심함에서 온 것이었을 뿐이라는 것을. 그래서 더 많이 아쉽고 그동안 나의 '용기 없음'이 많이 후회가 되었다. 상처받지 않으려고 노크조차 하지 못한 내가.

그날 12시 정각에 시작한 송별연은 오후 3시 반쯤이 되서야 끝이 났다. 열 명 넘게 줄을 서서 나의 마지막 포옹을 기다리는 선생님들 중 몇몇 여선생님들은 나보다도 더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그 중 한 분이 내게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이 주신 유산 잘 간직할게요."

교사가 된다는 것!29년의 교직생활을 마치면서 '교사가 된다는 것'에 대한 의미를 동료 선생님들과 함께 공유하고 싶었다. ⓒ 안준철


다음은 그날 퇴임식에서 말 대신 화면으로 보여 준 글이다. 참고로, 학교에서의 나의 마지막 보직은 '청소계'였다. 학교에는 학급 담임이나 학과 담임 말고도 자질구레한 여러 가지 보직이 있다. 나는 주로 학급 담임과 함께 학교 축제 업무를 담당하곤 했는데, 교직 마지막 해는 담임을 맡지 않고 청소계만 맡았다. 퇴임이 가까워오면서 나는 학교 업무 메일을 통해 동료 직원들과 소통하면서 '갈참 청소계'란 용어를 사용하곤 했었다.

아래 PPT글 전문이다.

안녕하세요! 갈참 청소계 안준철입니다. 이제 정말 갈 때가 되었네요. 29년의 세월이 한달음에 지나간 것만 같습니다. 11월까지만 해도 갈 날이 기다려졌는데 12월이 되니까 마음이 달라지는 거 있죠. 오랜 세월 함께 동고동락하며 한솥밥을 먹어온 동료선생님들의 곁을 떠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네요.

퇴임식날 사용한 PPT 자료 벌써 정년이라니? 29년의 세월이 한 달음에 지나간 것만 같다. ⓒ 안준철


학생부에 있다 보니 자주 못 뵈어 요즘 별 일도 없으면서 교무실을 들락날락 한 거 눈치 채신 분도 계실 거예요. 그 시간은 저에게 반성의 시간이기도 했답니다. 그 동안 제가 인간적으로 많이 미숙하여 선배나 동료 교사로서 많이 부족하지 않았나 싶어서요.

죄송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요즘 주변의 많은 교사들이 30년 넘게 몸 담아온 교직을 떠나면서 교직에 대한 뿌듯한 보람이나 재미있는 추억담보다는 교직에 대한 피로감과 쓸쓸함을 더 많이 호소하는 것 같아서 이런 현실이 못내 아쉽기도 하고 가슴이 아프기도 합니다.

퇴임식날 사용한 PPT 자료 교직에 대한 피로감과 쓸쓸함을 호소하는 교사들이 많다. ⓒ 안준철


사실은 저도 소중했던 인연을 생각하면서 따뜻한 밥 한 끼 같이 나누고 패티 김 누나 노래나 한 곡 부르고 바람처럼 떠날까도 생각했습니다만…. 올해 축제 때 교사중창단 선생님들과 함께 불렀던 인순이의 '거위의 꿈'이 가사가 이렇게 시작되지요. 

난 꿈이 있었죠.
버려지고 찢겨 남루하여도
내 가슴 깊숙이 보물과 같이
간직했던 꿈~

저에게도 꿈이 있었습니다. 한동안 버려지고 찢겨 남루해졌던 꿈이. 교사가 된다는 것!
교직에 들어오기 전 그것은 저에게는 하나의 꿈이었습니다. 그 버려진 꿈을 부둥켜안고
많이 울기도 했던 고통의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그 고통의 시간들은 철없고 힘든 아이들을 이해하고 사랑하는데 좋은 거름이 되어 주었지만요.

혹시 이 꽃 이름을 아시는지요?

퇴임식날 사용한 PPT 자료 괭이밥 ⓒ 안준철


괭이밥이랍니다. 너무 작아서 가까이 들여다보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는 보잘 것 없는 초라한 풀꽃이지요. 하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작지만, 아니 작아서 더 앙증하고 예쁜 이 풀꽃을 한참 정신을 잃고 바라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 후 저에게는 외견상 평범해 보이는 아이들도 경이로운 대상을 대하듯 찬찬히 들여다보는 습관 같은 것이 생겼지요. 그 후 거칠고 다소 진실성이 결여된 아이들에게도 보석처럼 빛나는 것들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로 인한 교사 상처도 차츰 치유되어 가기 시작했지요.

퇴임식날 사용한 PPT 자료 미움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 안준철


위기 때마다 저에게 도움을 주는 두 가지 생각이 있었습니다. 아이의 잘못된 행동이 그 아이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 미움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 그런 생각을 오랫동안 마음에 새기다보면 아이에 대한 미움을 비껴갈 수 있었습니다.

오늘 퇴임 인사는 그 동안에 쓴 850편의 교단 일기 중 한 꼭지를 소개해드리는 것으로
대신할까 합니다. 거칠고 힘든 아이들 이해하고 보듬어주는 데 작은 도움이라도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요. 밥보다도 진실이 고팠던 제자 이야기입니다. 교통사고를 세 번씩이나 당하면서도 그가 지키고자 했던 것이 무엇인지가 관전 포인트입니다.

밥보다도 진실이 고팠던 제자 이야기

졸업한 지 12년 만에 나를 찾아온 그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조금씩은 가지고 있을 법한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 능력이 사뭇 부족한 아이였다. 그는 자신이 해를 가한 상대방의 아픔이나 고통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이 당한 작은 손해만을 생각했다.

그 아이의 행동을 그가 지닌 거친 무기가 아닌 아픈 결핍으로 이해하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낫 놓고 기억 자를 가르치는 식으로 인간의 도리에 관한 기초적인 이야기를 그 해 내내 해주어야만 했다.

그는 여섯 살의 나이에 부모를 모두 잃었다. 병이나 사고로 인한 사별이 아니었다. 평소에도 사이가 좋지 않던 부모가 어느 날 말다툼 끝에 갑자기 종적을 감추어 버린 것이었다. 그와 두 살 터울의 동생과 병든 노모를 남겨둔 채.

부모 없이 자라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뜻밖에도 공부라고 했다. 집 안에는 까막눈인 할머니뿐이어서 아무도 그에게 도움을 줄 사랑이 없어 초등학교 때까지 글자를 제대로 읽지 못했다는 것이다. 상급생이 되어 글자도 못 읽는다고 혼을 낼 뿐 그런 처지를 이해하고, 자상하게 글자를 가르쳐 주는 친절한 선생님을 만나지 못했다.

중학생이 되면서부터는 아예 그런 자신의 약점을 숨기기 위해 아무에게도 내색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내가 담임을 맡았던 그 해 불미스러운 사고로 졸업을 불과 2개월 남겨두고 학교를 떠나야 했다. 그리고 그 다음 해 나를 찾아와 다시 학교를 다니고 싶다고 했고, 내가 다시 담임을 맡아 무난히 학교를 졸업하게 되었다.

그는 관광 나이트클럽에서 웨이터 생활을 하면서 술에 취한 손님에게 바가지를 씌우는 수법으로 돈을 벌었다고 했다. 그런 와중에 첫 번째 교통사고를 당하게 되고 문득 그것이 손님들에게 바가지를 씌운 것에 대한 벌일지도 모른 다는 생각에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는다.

그런데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문제였다. 양심을 지키려고 노력할수록 그들의 냉소와 비웃음은 커져만 갔다. 그는 어쩔 수없이 예전으로 모습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고 그런 와중에 두번째 교통사고를 당하게 된다.

그 사고로 그 동안 번 돈을 거의 다 까먹었지만 돈에 대한 애착보다는 그 사고로 인해 사람답게 살고 싶은 생각이 더 강해졌다고 했다. 늦었지만 공부를 다시 해서 떳떳한 직업으로 바꾸고도 싶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그런 자신의 진실한 속내를 털어놓을 친구가 없었다. 결국 너무도 큰 외로움에 다시 과거의 생활로 돌아갔고 그러다가 세 번째 교통사고를 당하게 된다.

"세 번씩이나 교통사고를 당했는데도 이상하게도 조금도 억울한 생각이 들지 않더란 말입니다. 정말 진실하고 보람되게 살고 싶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더란 말입니다. 그런데 선생님, 제가 마취에서 깨어나자 맨 먼저 떠오른 사람이 누군지 아십니까? 바로 선생님입니다. 선생님만은 제 진실을 이해해주실 거라는 생각이 퍼뜩 들더란 말입니다."

그는 방송통신대에 들어가고 싶다고 말하면서 나이가 서른 살인데 지금 시작해도 성공할 수 있겠느냐고 내게 물었다. 나는 유쾌한 심정으로 이렇게 말해주었다. "나도 교사가 되려고 네 나이 때 사범대에 들어가 다시 공부를 시작했어. 열심히 노력하면 분명 승산이 있을 거야. 그리고 넌 이미 성공했어. 돈보다도 진실을 선택했잖아. 그거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거든. 너처럼 교통사고를 세 번씩이나 당한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

<교단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한때는 옳고 그름에 대한 기본적인 판단조차 할 수 없었던 그가 끝내 지키고자 했던 것은 진실이었고 그것을 가르쳐준 이는 교사였습니다. 저는 오늘 교단을 떠나기에 이제 더 이상 교사가 아닙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의 소중함을 여러분께 유산으로 남기고 떠납니다.

퇴임식날 사용한 PPT 자료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의 소중함을 유산으로 남기고..... ⓒ 안준철


퇴임식날 사용한 PPT 자료 내가 교사로서 온전히 산다는 것은....... ⓒ 안준철


- 교사로서의 내 관심사는 아이들이 아침에 학교에 왔을 때보다 다만 조금이라도 더 자기 자신을 좋아하게 하여 오후에 집으로 보내는 것이다.

- 내가 교사로서 온전히 산다는 것은 곧 아이들을 자유롭게 해주는 것을 의미한다. 자유로운 인간만이 온전한 삶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퇴임식날 사용한 PPT 자료 마지막 생일시 한 구절......나를 행복하게 해준 건 나를 바라보는 아이들의 눈속이었다. ⓒ 안준철


넌 학교를 졸업하면
뷰티과에 진학할 거라고 했는데
어떤 아름다움이 진정한 아름다움인지
혹시라도 궁금해지거든
거울 앞에서 네 눈 속을 들여다 보거라.

그럼 알게 될 거야.
아름다움은 세상 밖이 아닌
바로 네 안에 있다는 걸 말이지.

그리고 너로 인해
내가 얼마나 행복했을 거라는 것도.

- 921번째로 써준 생일시 중에서

퇴임식날 사용한 PPT 자료 진실을 가르치는 교사로서의 행복한 삶을 누리시길...... ⓒ 안준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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