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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가 망원경 부순 이유, 어이없다

[서평] 조선의 서양 문물 수용사 <조선에 온 서양 물건들>

등록|2016.01.05 14:19 수정|2016.01.05 21:29
요즘은 아주 흔한 물건입니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 살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장난감으로 취급을 할 만큼 흔한 물건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비싸지도 않을 겁니다. 하지만 그때는 아주 귀한 물건이었습니다.

돈이 있다고 해서 살 수 있는 물건도 아니었습니다. 조선에는 그런 물건이 없었습니다. 어디에 쓰는 물건인지도 제대로 몰랐고, 사용법도 잘 몰랐습니다. 아주 귀하게 구해온 그것을 영조는 부숴버렸습니다. 그것은 바로 망원경입니다.

지금의 눈높이에서 보면 영조가 그것을 부순 이유는 참으로 어이없습니다. 규일영(窺日影)이라고 하는 이 망원경은 관상감 김태서가 북경에서 구입해 온 것입니다. 공금을 들여 사온 것도 아니고 사비를 들여 사온 것입니다. 규일영은 태양을 관측할 수 있도록 빛을 차단하는 효과가 있는 렌즈(?)로 제작된 천리경이었습니다.

그 후 어느 날, 영조는 영의정 김재로에게 상을 줄 만한 사람이 있으면 아뢰라고 합니다. 영의정 김재로는 귀한 물건을 가져온 김태서를 추천해 상을 받게 됩니다. 1년 뒤인 1745년 5월 21일, 영의정 김재로는 관상감 김태서가 가져온 책자와 망원경 등을 임금에게 올렸습니다. 이는 나중에 관상감 교육 자료로 되돌려 받아야 하는 것들인데 영조는 이를 다시 되돌려주지 않았습니다.

이에 영의정 김재로가 물건들을 돌려달라 말을 하니, 영조는 그것들을 부숴버렸다고 말합니다. 지금의 과학적 상식으로 보면 어리석기 그지없는 이유이지만 그때는 그랬습니다. 영조는 그것이 임금의 마음을 훔쳐보려는 불경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영조는 태양을 곧바로 쳐다보는 것이 매우 불경한 일이라고 말한다. 왜냐? 태양은 곧 임금을 상징하는 것이 아닌가. 또 '규일窺日'의 '규窺'는 원래 '엿본다'는 의미가 있다. 즉 규일이라는 말에는 임금의 의도를 엿본다는 뜻이 있다는 의미가 있다. 관상감 관원들이 규일영을 구입해와 바친 것이 임금에게 상을 바라는 마음, 즉 임금의 의도를 엿본 것이기에 불쾌한 나머지 그것을 부수어버렸다는 것이다. - <조선에 온 서양 물건들> 105쪽

안경, 망원경, 유리거울 등 조선에 온 서양 물건들

▲ <조선에 온 서양 물건들> (지은이 강명관 / 펴낸곳 ㈜휴머니스트출판그룹 / 2015년 12월 21일 / 값 18,000원> ⓒ ㈜휴머니스트출판그룹


<조선에 온 서양 물건들>(지은이 강명관, 펴낸곳 ㈜휴머니스트출판그룹)은 서양에서 만들어진 문건들이 조선에 들어오게 된 시대적 배경과 사회적 상황 등을 두루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책에서는 안경, 망원경, 유리거울, 자명종, 앙금 이렇게 5종이 조선시대에 들어온 서양물건들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조선시대에 들어온 서양 물건들은 책에서 읽을 수 있는 것 외에도 여러 종류가 있을 겁니다. 조선시대에 들어온 물건들 중에는 전문지식이나 기술이 있어야만 사용할 수 있는 물건들도 분명 있을 겁니다.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물건들은 일상에서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생필품이거나 생소하지 않은 물건들입니다. 그동안 없었던 물건이 들어온다는 건 단지 물건 하나가 들어오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일상이 바뀌고, 기술이 달라지고, 문화까지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안경은 침침했던 눈을 유리알처럼 밝게 해줍니다. 조선시대 최초로 안경을 쓴 왕은 숙종일 것이라고 합니다. 젊은 사람은 눈이 나빠도 안경을 쓰고서는 어른 앞에 나서지 못하는 예절도 생겼습니다. 젊은이와 사회적 지위가 낮은 사람이 안경을 걸치고 존귀한 사람을 보는 것이 건방지게 보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지금의 가치로 봐서는 말도 안 되는 이유이지만 그때는 그게 예절이고 통념이었습니다.

망원경은 너무 멀리 있어 형체를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가물가물한 것도 바로 코앞에 있는 것처럼 또렷하게 볼 수 있게 해줍니다. 흐릿하고 뿌옇게 보이던 청동거울 대신에 사용하게 된 유리거울은 여성들의 화장술이나 자화상 제작에 기여합니다.

자명종이 조선으로 처음 건너온 것은 1631년 정두원에 의해서라고 합니다. 자명종이 들어오기 전까지는 국가가 시계를 만들었습니다. 조선시대, 시간을 재기위해 만들었던 자격루는 국가가 아니면 제작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합니다. 정확한 시간을 안다는 것은 권력의 상징일 수도 있고 백성들을 위해 지도가 꼭 지녀야 할 능력이었습니다.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다섯 가지는 지금은 흔하디 흔한 물건들입니다. 하지만 이 물건들이 처음 들어오던 그때는 조선사회에서는 보는 것조차도 희귀할 정도로 아주 특별한 것들이었습니다.

그토록 희귀하고 특별한 것들, 조선 사람들에겐 생소하기만 한 다섯 가지 서양물건들이 그 시절 조선사회에 들어와 어떤 풍파를 일으키며 정착해 가고, 어떤 영향을 끼치며 발전해 오늘에 이르게 됐는지 이 책은 일러줍니다. '조선의 서양 문물 수용사'를 아주 흥미롭게 가늠해 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거라 기대합니다.
덧붙이는 글 <조선에 온 서양 물건들> (지은이 강명관 / 펴낸곳 ㈜휴머니스트출판그룹 / 2015년 12월 21일 / 값 1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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