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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 안 당하려면 '한 팔 간격' 떨어져라?

집단 성범죄 발생한 독일 쾰른의 레커 시장 발언에 비판 여론 '부글부글'

등록|2016.01.08 07:53 수정|2016.01.08 08:01

▲ 성범죄 예방을 위해 여성이 먼저 행동을 조심하라는 취지의 발언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헨리에테 레커 독일 쾰른 시장을 비판하는 풍자 사진. ⓒ 트위터


새해 전야 도심 한복판에서 집단 성범죄가 발생한 독일 쾰른에서 여성 시장이 되레 '피해자 여성들이 스스로 몸가짐을 조심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면서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지난해 12월 31일 밤 새해맞이 축제를 즐기러 나온 사람들로 붐볐던 쾰른 중앙역 광장과 대성당 주변에서는 중동과 북아프리카 출신 이민자로 추정되는 남성들이 수백 명의 여성을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질렀다.

주로 15∼35세의 중동과 북아프리카 이민자로 추정되는 가해자들은 연말 축제로 도심에 사람이 붐비자 경찰 치안이 취약한 틈을 타서 무리를 지어 젊은 여성들을 성추행하고 금품을 강탈해 도주했다.

볼프강 알베르스 쾰른 경찰국장은 기자회견을 열고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차원의 범죄 행태"라며 "도심 한가운데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범죄가 대규모로 벌어졌다"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쾰른 시장 "여성이 먼저 행동규범 갖춰야"

▲ 새해 전야 독일 쾰른 도심에서 발생한 집단 성범죄 사건을 보도하는 <슈피겔> 인터넷판 갈무리. ⓒ 슈피겔


쾰른은 지난해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시리아 등에서 1만 명이 넘는 난민을 받아들여 독일에서 가장 다양한 인종이 살고 있다. 하지만 난민들로 인한 사건·사고도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헨리에테 레커 쾰른 시장은 지난 5일(현지 시각) 경찰 당국과 성범죄 예방책을 논의하면서 "여성이 먼저 행동규범을 갖춰야 한다, 낯선 사람들과 '한 팔 간격' 이상의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레커 시장은 이 밖에도 함께 나온 지인들과 떨어지지 않기, 주변 행인이나 목격자에게 도움 요청하기, 피해를 당할 경우 곧바로 경찰에 신고하기 등을 제안했지만 성난 여론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되고 말았다.

독일 시민들은 성범죄를 피해자인 여성 탓으로 돌리는 듯한 레커 시장의 발언을 강하게 비난했다. 소셜미디어에서는 '한 팔 간격(#einearmlänge)'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레커 시장의 발언을 조롱하는 패러디물도 유행하고 있다.

독일 누리꾼들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회담 사진에 "이 정도면 한 팔 간격인가?"라는 글귀를 넣었고, 앞으로 여성이 외출할 때는 사람들이 다가오지 못하게 버블 슈트를 입으라고 제안하기도 했다.

또한 레커 시장의 어깨에 "안전하다"라는 글귀와 소속 정당인 집권 기민당(CDU)이 적힌 경고판이 달린 사진도 나왔다. 사태가 악회되자 하이코 마스 독일 법무장관은 "성범죄 책임은 피해자가 아닌 범법자들에게 있다"라며 진화에 나섰다.

▲ 헨리에테 레커 독일 쾰른 시장의 발언을 풍자하는 사진으로 "이 정도면 한 팔 거리인가?"라는 글귀가 적혀있다. ⓒ 트위터


독일 <슈피겔>에 따르면 레커 시장은 6일 성명을 내고 "언론 보도를 거치면서 나의 발언이 왜곡됐다"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그는 "젊은 여성들을 위한 조언"이라고 거듭 강조해 비판 여론은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메르켈 총리의 난민 수용 정책을 지지하며 쾰른 시장 선거에 출마한 레커는 지난해 10월 유세 도중 인종주의 괴한에게 흉기 테러를 당했지만, 바로 다음 날 치러진 시장 선거에서 당선되며 시민들의 많은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이번 발언으로 논란의 중심에 오른 레커 시장은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메르켈 총리는 성명을 통해 "모든 가해자를 찾아내 출신 배경과 상관없이 엄격히 처벌할 것"이라고 강조하며 경찰 수사 확대를 지시했다.

그럼에도 독일에서는 난민 수용을 반대하는 항의 집회가 확산되고 있는 데다가 이번 사건을 신속하게 보도하지 않은 공영방송 ZDF가 공식 사과문을 발표하는 등 갈수록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 독일의 한 누리꾼이 성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버블 슈트를 입자고 제안하며 헨리에테 레커 쾰른 시장의 발언을 비판했다. ⓒ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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