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 없는 동굴탐방, 아이들은 당황했다
[사랑숲 마을학교 협동조합 겨울 들살이 - 상] 아이들, 이렇게 좀 키우면 어때서!
인내와 고통의 시간이었다. 감히 산고의 고통과 비교해도 모자람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공부했던 시간을 포함해 꼬박 1년, 그 마지막 2~3개월은 본업까지 내팽개칠 정도로 심혈을 기울였다. 나뿐만 아니라 다들 그랬다. 그렇게 해서 어느 시골 마을에 마을학교 협동조합 하나가 탄생했다.
'사랑숲 마을학교 협동조합'(경북 구미시 산동면 소재)은 입시와 공부의 노예가 된 우리 아이들을 마음껏 뛰어놀게 해주자는 취지 아래 만들어진 공동육아 겸 방과후학교 협동조합이다. 기존의 많은 방과 후 학교 협동조합과 다른 점이라면,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인 지역의 소외 계층 아이들과 더불어 함께 키워 나간다는 점이다(이에 대한 설명은 다른 기사에서 자세히 다루도록 한다).
마냥 즐거운 아이들
인근 시골의 쓰러져 가는 허름한 집을 임대했다. 여름 내내 탈진 상태까지 이르며 모든 조합원들이 주말을 쏟아부어, 어느 정도 집의 형태를 갖췄다. 2015년 8월 22일 개교식을 통해 학교가 문을 열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시간은 멈추지 않고 흘렀다. 그리고 첫 겨울방학을 맞았다. 아이들이 목을 빼고 기다리던 들살이(야영 혹은 캠핑)를 떠나는 날이 찾아온 것이다.
목적지는 문경의 한 시골에 위치한 공부방. 조합원 교육을 계기로 인연을 맺게 된 발도로프 교육의 대가, 남상대 선생(아래 남 선생님)이 운영하는 곳이다. 독일에서 5년간 발도로프 교육학을 공부하시고, 수많은 제안을 뿌리치고는 고향인 문경의 시골 마을에 공부방을 여셨다고 한다. 현재는 하늘씨 협동조합의 이사장님으로, 공동육아에 관심이 있어 하는 지역모임에서 강의를 하고 계신다.
짐을 풀자마자 아이들에게 주어진 임무는 마음껏 뛰어놀기나 한적한 시골길 산책이 아니었다. 잠잘 곳 청소하기를 시작으로 산양에게 먹일 콩깍지 주위오기, 저녁에 고기 구워 먹을 나무 해오기까지 노동(?)의 연속이었다. 허나, 아이들에게는 그 자체가 놀이이고, 큰 재미였다. 생전 처음 경운기를 타보는 아이들은 서로 타려고 욕심도 부리고, 경운기 뒤를 뛰어 쫓아가면서도 마냥 즐겁기만 했다.
땀 흘린 뒤 숯불에 구워먹는 고기만한 진미가 또 어디 있으랴. 남 선생님께서 손수 구워주신 삼겹살은 굽는 속도를 따라갈 수 없을 정도였다. 자신들이 구해 온 나뭇조각들로 직접 불을 지피다가 옷에 구멍이 나는 녀석, 장갑을 태우는 녀석도 있었지만, 그 정도 희생쯤은 감수하고도 남을 고기 맛이었다.
일기예보에도 없던 눈... 좋았던 건 딱 거기까지
어느 정도 배가 부른 아이들은 남은 잔불로 불장난을 하기도 하고, 하늘의 별자리를 따라 그려보기도 했다. 문경의 시골 밤하늘은 별들로 가득 차 있었고, 대기는 적당히 쌀쌀했으며, 아이들의 재잘거림 외에는 사방이 고요했다. 그렇게 첫날밤은 저물어 갔다. 낮 시간의 땀 흘림은 아이들을 저항 없이 꿈나라로 인도해주었다.
새벽 두시 반부터 울어대는 개념 없는 닭들과 코가 시릴 정도의 웃풍 때문에 밤잠을 설쳤다. 아이들 덮어주고 나니 이불이 부족해서 점퍼만 덮고 잤던 것이다. 밤새 추위에 떤 몸은 쉽게 녹지 않았다. 모닥불이라도 쬘 요량으로 새벽 여섯시에 밖으로 나왔다. 가느다란 눈발이 날리고 있었다. 일기예보에도 없던 눈이었다. 개 다음으로 눈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더없는 선물이었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생활형 모닥불이라는 게 캠프파이어처럼 어딘가에서 불덩이가 '슉' 날아와 한 방에 '훅'하고 불이 들어오는 게 아니라는 것은, 불 좀 지펴본 사람들은 잘 알 것이다. 신문지나 종이박스에 불을 붙여서, 나무로 옮겨 붙을 때까지 버텨내야 하는 데, 이것이 쉽지 않다. 나는 다시 눈발 속에서 30분을 떨었다. 그리고 마침내, 인류에게 불을 가져다 준 프로메테우스 보다 비장한 표정으로 요강단지 보다 좀 더 큰 사이즈의 모닥불 앞에 쪼그리고 앉을 수 있었다.
오전 7시가 지나자, 닭장 속 닭들은 알람이라도 맞춘 듯 떼를 지어 울기 시작했고(다음 방문 때는 그 중 가장 목청 좋은 녀석을 한 마리 잡아달라고 해야겠다), 큰 아이들부터 하나씩 눈을 부비며 밖으로 나온다. 눈발은 처음보다 조금 더 굵어졌고, 나 다음으로 눈을 좋아하는 아이들은 내가 피운 모닥불과 하얀 눈을 아침 선물로 받았다.
둘쨋날 아침 메뉴는 경상도식 죽 '갱시기'(갱생이죽)로 콩나물과 김치를 넣고 끓인 죽이다. 6.25 피난 때냐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그대들의 캠핑 다음날 아침을 생각해보시라. 기껏해야 라면에 즉석밥 아니었던가. 교장 선생님께서 화학 조미료 없이 최선을 다한 갱시기는 솔직히 기대했던 딱 그만큼의 맛이었지만, 처음 접해보는 나는 신선했다.
"너희끼리 찾아 떠나 보거라"
아침 식사를 정리하고 나서 다음 일정은 이번 들살이의 하이라이트인 '동굴체험'이었다. 목적지는 모산굴. 경북 문경시 가은읍에 위치한 이 동굴은 임진왜란 때 왜구의 습격을 피하기 위해 지역의 주민들이 피신했던 곳이라 한다. 현재는 종유석 보호를 위해 일반인들의 출입은 금지돼 있으며, 동굴 속에는 천연 기념물 452호인 황금박쥐도 서식한다고 했다. 그 박쥐를 관찰하러 가는 것이 동굴 체험의 가장 큰 목적이었다.
남 선생님의 동굴 체험 방식은 역시 독특했다. 아이들을 둥글게 모아놓고서 말씀으로 동굴의 위치를 한번 설명해주셨다. 그리고는 "너희들끼리 찾아나서 보거라, 지도는 따로 없고, 너희들이 들었던 내용들을 모아서 동굴을 찾아 떠나는 것이다"라고 이르셨다. 아이들은 잠깐 당황하는 듯했으나, 이내 천진함과 호기심을 무기로 저희끼리 속닥거리더니 길을 나섰다.
아이들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남 선생님은 아마('아빠엄마'의 줄임말)들과 교장 선생님에게 한 말씀 하신다.
"두루미라는 새는 무리지어 행동합니다. 먼 곳으로 날아갈 때는, 출발하기 전에 저희들끼리 두런두런 충분히 이야기를 나눈다고 해요. 삼각 편대 비행에서 누가 제일 앞에 서고, 누가 뒤에 서며, 어디까지 날아갈 것인지 모든 걸 결정하고 나서 이동한다고 합니다. 우리 아이들도 이런 탐험 과정을 거치면서 공동체와 협동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을 겁니다. 조용히 뒤를 따라가 봅시다."
우리는 선생님의 깊은 뜻을 마음으로 충분히 이해하였으나, 부모 된 입장으로 여전히 불안해하며 아이들의 뒤를 쫓았다.
(* 다음 글에 계속)
'사랑숲 마을학교 협동조합'(경북 구미시 산동면 소재)은 입시와 공부의 노예가 된 우리 아이들을 마음껏 뛰어놀게 해주자는 취지 아래 만들어진 공동육아 겸 방과후학교 협동조합이다. 기존의 많은 방과 후 학교 협동조합과 다른 점이라면,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인 지역의 소외 계층 아이들과 더불어 함께 키워 나간다는 점이다(이에 대한 설명은 다른 기사에서 자세히 다루도록 한다).
마냥 즐거운 아이들
▲ 사랑숲 마을 학교 협동조합 개교식 장면2015년 8월 22일 우여곡절 끝에 마을학교 협동조합을 출범하다. ⓒ 이정혁
▲ 문경 들살이 중간에 들른 아자개 장터집을 떠나 신나게 놀 생각으로 아이들의 표정이 무척 밝다. 장소는 견훤의 아버지인 아자개의 이름을 딴 장터 ⓒ 이정혁
인근 시골의 쓰러져 가는 허름한 집을 임대했다. 여름 내내 탈진 상태까지 이르며 모든 조합원들이 주말을 쏟아부어, 어느 정도 집의 형태를 갖췄다. 2015년 8월 22일 개교식을 통해 학교가 문을 열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시간은 멈추지 않고 흘렀다. 그리고 첫 겨울방학을 맞았다. 아이들이 목을 빼고 기다리던 들살이(야영 혹은 캠핑)를 떠나는 날이 찾아온 것이다.
목적지는 문경의 한 시골에 위치한 공부방. 조합원 교육을 계기로 인연을 맺게 된 발도로프 교육의 대가, 남상대 선생(아래 남 선생님)이 운영하는 곳이다. 독일에서 5년간 발도로프 교육학을 공부하시고, 수많은 제안을 뿌리치고는 고향인 문경의 시골 마을에 공부방을 여셨다고 한다. 현재는 하늘씨 협동조합의 이사장님으로, 공동육아에 관심이 있어 하는 지역모임에서 강의를 하고 계신다.
▲ 산양의 주 먹이인 콩깍지를 옮기는 작업아이들에게는 일 자체가 놀이가 된다.조금이라도 더 옮기려고 진지한 모습들 ⓒ 이정혁
짐을 풀자마자 아이들에게 주어진 임무는 마음껏 뛰어놀기나 한적한 시골길 산책이 아니었다. 잠잘 곳 청소하기를 시작으로 산양에게 먹일 콩깍지 주위오기, 저녁에 고기 구워 먹을 나무 해오기까지 노동(?)의 연속이었다. 허나, 아이들에게는 그 자체가 놀이이고, 큰 재미였다. 생전 처음 경운기를 타보는 아이들은 서로 타려고 욕심도 부리고, 경운기 뒤를 뛰어 쫓아가면서도 마냥 즐겁기만 했다.
땀 흘린 뒤 숯불에 구워먹는 고기만한 진미가 또 어디 있으랴. 남 선생님께서 손수 구워주신 삼겹살은 굽는 속도를 따라갈 수 없을 정도였다. 자신들이 구해 온 나뭇조각들로 직접 불을 지피다가 옷에 구멍이 나는 녀석, 장갑을 태우는 녀석도 있었지만, 그 정도 희생쯤은 감수하고도 남을 고기 맛이었다.
일기예보에도 없던 눈... 좋았던 건 딱 거기까지
▲ 반나절 만에 시골 아이로 변한 한 초코라는 별명의 아이낮일도 열심히 하고, 불앞에서 떠나지 않으며 불을 지키더니 결국 숯덩이가 되었다 ⓒ 이정혁
어느 정도 배가 부른 아이들은 남은 잔불로 불장난을 하기도 하고, 하늘의 별자리를 따라 그려보기도 했다. 문경의 시골 밤하늘은 별들로 가득 차 있었고, 대기는 적당히 쌀쌀했으며, 아이들의 재잘거림 외에는 사방이 고요했다. 그렇게 첫날밤은 저물어 갔다. 낮 시간의 땀 흘림은 아이들을 저항 없이 꿈나라로 인도해주었다.
새벽 두시 반부터 울어대는 개념 없는 닭들과 코가 시릴 정도의 웃풍 때문에 밤잠을 설쳤다. 아이들 덮어주고 나니 이불이 부족해서 점퍼만 덮고 잤던 것이다. 밤새 추위에 떤 몸은 쉽게 녹지 않았다. 모닥불이라도 쬘 요량으로 새벽 여섯시에 밖으로 나왔다. 가느다란 눈발이 날리고 있었다. 일기예보에도 없던 눈이었다. 개 다음으로 눈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더없는 선물이었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생활형 모닥불이라는 게 캠프파이어처럼 어딘가에서 불덩이가 '슉' 날아와 한 방에 '훅'하고 불이 들어오는 게 아니라는 것은, 불 좀 지펴본 사람들은 잘 알 것이다. 신문지나 종이박스에 불을 붙여서, 나무로 옮겨 붙을 때까지 버텨내야 하는 데, 이것이 쉽지 않다. 나는 다시 눈발 속에서 30분을 떨었다. 그리고 마침내, 인류에게 불을 가져다 준 프로메테우스 보다 비장한 표정으로 요강단지 보다 좀 더 큰 사이즈의 모닥불 앞에 쪼그리고 앉을 수 있었다.
▲ 이른 아침 아마와 아이일찍 잠에서 깬 아마와 아이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아마는 모든 아이들의 아빠엄마이며 아이들은 모든 아마를 부모처럼 여긴다. ⓒ 이정혁
▲ 경상도에서 갱시기라고 불리는 갱생이 죽먹기 전에 찍었어야 하는데, 배고픔을 견디지 못하고 허겁지겁 세 그릇 쯤 먹던 중에 사진 생각이 났다. 다소 볼품이 없어도 이해하시라. ⓒ 이정혁
오전 7시가 지나자, 닭장 속 닭들은 알람이라도 맞춘 듯 떼를 지어 울기 시작했고(다음 방문 때는 그 중 가장 목청 좋은 녀석을 한 마리 잡아달라고 해야겠다), 큰 아이들부터 하나씩 눈을 부비며 밖으로 나온다. 눈발은 처음보다 조금 더 굵어졌고, 나 다음으로 눈을 좋아하는 아이들은 내가 피운 모닥불과 하얀 눈을 아침 선물로 받았다.
둘쨋날 아침 메뉴는 경상도식 죽 '갱시기'(갱생이죽)로 콩나물과 김치를 넣고 끓인 죽이다. 6.25 피난 때냐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그대들의 캠핑 다음날 아침을 생각해보시라. 기껏해야 라면에 즉석밥 아니었던가. 교장 선생님께서 화학 조미료 없이 최선을 다한 갱시기는 솔직히 기대했던 딱 그만큼의 맛이었지만, 처음 접해보는 나는 신선했다.
"너희끼리 찾아 떠나 보거라"
▲ 동굴 위치를 설명 듣는 아이들동굴의 위치를 말로 설명해주고 직접 찾아나서게 하는 교육 방식이 발도로프 교육의 한 실천 방법이다. ⓒ 이정혁
아침 식사를 정리하고 나서 다음 일정은 이번 들살이의 하이라이트인 '동굴체험'이었다. 목적지는 모산굴. 경북 문경시 가은읍에 위치한 이 동굴은 임진왜란 때 왜구의 습격을 피하기 위해 지역의 주민들이 피신했던 곳이라 한다. 현재는 종유석 보호를 위해 일반인들의 출입은 금지돼 있으며, 동굴 속에는 천연 기념물 452호인 황금박쥐도 서식한다고 했다. 그 박쥐를 관찰하러 가는 것이 동굴 체험의 가장 큰 목적이었다.
남 선생님의 동굴 체험 방식은 역시 독특했다. 아이들을 둥글게 모아놓고서 말씀으로 동굴의 위치를 한번 설명해주셨다. 그리고는 "너희들끼리 찾아나서 보거라, 지도는 따로 없고, 너희들이 들었던 내용들을 모아서 동굴을 찾아 떠나는 것이다"라고 이르셨다. 아이들은 잠깐 당황하는 듯했으나, 이내 천진함과 호기심을 무기로 저희끼리 속닥거리더니 길을 나섰다.
아이들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남 선생님은 아마('아빠엄마'의 줄임말)들과 교장 선생님에게 한 말씀 하신다.
"두루미라는 새는 무리지어 행동합니다. 먼 곳으로 날아갈 때는, 출발하기 전에 저희들끼리 두런두런 충분히 이야기를 나눈다고 해요. 삼각 편대 비행에서 누가 제일 앞에 서고, 누가 뒤에 서며, 어디까지 날아갈 것인지 모든 걸 결정하고 나서 이동한다고 합니다. 우리 아이들도 이런 탐험 과정을 거치면서 공동체와 협동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을 겁니다. 조용히 뒤를 따라가 봅시다."
우리는 선생님의 깊은 뜻을 마음으로 충분히 이해하였으나, 부모 된 입장으로 여전히 불안해하며 아이들의 뒤를 쫓았다.
(* 다음 글에 계속)
▲ 아침 운동을 위해 식사전에 뒷산에 오른 아이들어제의 피로가 채 가시지 않은 표정이다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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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발도르프 교육은 전세계적으로 이뤄지고 있는데, 그 모습은 각기 다르다. 슈타이너가 원리에 대한 충분한 인식 없이 구체적인 실천 방법만을 수용하는 것에 반대했기 때문이다.그럼에도 발도르프교육의 기본적인 이념은 공통적이기 때문에 모두 발도르프 학교라는 명칭을 사용한다.<출처. 위키 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