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이장님이 하는 일, 도시인은 모르는 세계
[사진책 읽기] 김지연, <우리동네 이장님은 출근중>
시에는 시장이 있듯이, 읍에는 읍장이 있고, 면에는 면장이 있습니다. '리'로 끊어지는 시골마을에는 이장이 있습니다. 2015년부터 주소 얼거리가 바뀌어 이제 '리'로 끝나는 마을 이름이 사라집니다. 그렇지만 시골마을은 예나 이제나 똑같이 있습니다. 행정을 맡은 이들한테는 '마을(리)'이 사라졌다고 할 테지만, 마을에서 사는 이들한테는 예나 이제나 똑같이 '마을'이 있고, 마을을 대표하는 분을 가리키는 '이장'도 똑같이 있습니다.
다만, '마을지기'라고 할 수 있는 '이장'이라는 이름과 자리가 생긴 발자국은 매우 짧습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같은 이장은 행정과 사회 얼거리에서 생긴 이름이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지난날에는 이장이 아닌 '마을 어른'이 있었거든요.
전북 전주에서 2013년부터 서학동사진관을 꾸리는 김지연 님이 지난날 전북 진안에서 '계남정미소 공동체박물관'을 꾸리던 무렵에 선보인 사진책 <우리동네 이장님은 출근중>(아카이브북스, 2008)이 있습니다.
김지연 님은 전북 진안이라는 시골마을에 들어와서 계남정미소라는 곳을 '공동체박물관'으로 고쳐서 꾸리고 나서야 비로소 이장이라고 하는 자리가 보였다고 합니다. 옳은 말씀입니다. 도시살이만 헤아린다면 '이장'이라고 하는 자리가 보일 수 없습니다. 거꾸로 시골살이만 헤아린다면 '동장'이나 '통·반장'이라고 하는 자리가 보일 수 없을 테지요.
내가 시골에 들어가기 전에는 생활 주변에 있는 회사나 관청의 직책 즉 회장, 사장, 전무, 부장, 과장 등 아니면 높으신 국회의원이나 도지사, 변호사, 의사 등이 관심 있게 눈에 들어왔고 또 그것이 사회를 형성하는 중요한 직책인 줄 알았다. 이장이라니! 아직도 그런 직함이 있었던가 싶었다. 그런데 시골로 들어오면서 이장이 하는 일이 참으로 놀라웠다. (머리말)
김지연 님은 전북 진안에서 전북 전주로 '사진을 이야기하는 무대'를 옮겼지만 전라북도에서 시골마을을 돌면서 사진을 찍는 일을 그대로 잇습니다.
2015년에는 <빈 방에 서다>(사월의눈)라는 사진책도 선보였습니다. <빈 방에 서다>라는 사진책을 살펴보면 김지연 님이 시골을 무대로 사진을 찍기에 시골마을에서 조용히 사는 할머니하고 할아버지를 이웃으로 만날 수 있는 숨결이 고이 흐릅니다.
지난 2014년에는 <삼천 원의 식사>(눈빛)라는 사진책도 나왔어요. <삼천 원의 식사>를 살펴보면 김지연 님이 이곳저곳 바삐 돌아다니다가 밥 한 끼니를 먹던 식당에서 만난 수수한 사람들 이야기를 사진으로 보여줍니다.
먼 나라 사람이 아니라 바로 김지연 님하고 가까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사진으로 찍힙니다. 멀디 먼 곳에 있느라 거의 안 보이거나 감추어진 사람들이 아니라, 언제나 김지연 님 둘레에서 조용히 삶을 짓는 사람들이 김지연 님 사진으로 찬찬히 드러납니다. 그러니까, 김지연 님이 선보이는 사진책은 김지연 님이 스스로 일구는 삶에 따라서 마주하는 이웃을 사진으로 담은 책입니다.
사진책 <우리동네 이장님은 출근중>은 '이장'이라는 자리에 있는 시골사람을 마주하면서 '시골은 어떤 곳인가?' 하는 수수께끼를 풀려고 합니다. 비율로 치면 시골에 사는 사람은 10퍼센트조차 안 될 뿐 아니라, 막상 농사일(농업)을 하는 사람은 5퍼센트 안팎입니다.
90퍼센트가 넘는 사람이 도시에 살고, 농사일 아닌 일을 하는 사람이 95퍼센트라고 할 만합니다. 그러니 신문이나 방송뿐 아니라 사회와 학교에서 '시골에 살거나 흙을 만지는 사람' 이야기나 움직임은 거의 안 드러날 만합니다. 아예 안 보이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어요.
다시 말하자면, 사진책 <우리동네 이장님은 출근중>은 이제껏 한국 사회에서 '안 보이'거나 '안 드러난' 자리에 있던 시골사람 이야기와 움직임을 '이장'이라고 하는 이름을 얻은 시골지기 모습으로 밝혀서 드러내려고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좀처럼 시골사람을 이웃으로 마주하지 않은 채 사진을 찍었다면 <우리동네 이장님은 출근중>이라는 사진책은 시골마을 이장님을 바로 '내 이웃'이요 '우리 이웃'이라는 눈길로 마주하면서 찍은 사진을 그러모은 이야기꾸러미라고 하겠습니다.
일부러 멋있게 보이는 모습으로 찍지 않습니다. 시골을 지키는 듬직해 보이는 모습으로 찍지 않습니다. 현대 사회와 동떨어지게 끝까지 시골을 붙잡는 모습으로 찍지 않습니다. 늙고 구부정한 모습으로 찍지 않습니다. 이런 편견이나 저런 선입관이 없이 시골사람을 이웃으로 가만히 바라보는 이야기가 사진 한 장으로 흐릅니다.
"이곳이 좋아요. 이곳에서 낳고 이곳에서 자랐는데 도시에 나가서 무얼 합니까." 그 말 속에는 젊은 시절 큰 도시로 나가고 싶었던 꿈까지 부정하기에는 많은 여운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분명히 지금은 자기 고향에 많은 애착이 남아 있을 뿐 아니라, 이제는 떠날 꿈도 꾸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미 버릴 수 없는 땅과 가족과 친지와 자연이 있다. (머리말)
시골에서는 신문을 읽는 사람이 매우 적어요. 방송에서 흐르는 이야기에 눈길을 두는 사람도 무척 적습니다. 대통령 움직임이라든지 국회의원이나 시장이나 의사나 변호가나 사장 같은 사람들이 무엇을 하는가를 놓고 눈길을 두는 일이 거의 없다고 할 만합니다. 도시에서라면 이처럼 '사회를 이루는 높다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 이야기나 움직임이 신문이나 방송에 자주 오르내려요. 이러면서 이런 사람들 이야기나 움직임이 여느 사람들 머릿속으로 스며듭니다.
이와 달리 시골에서는 '사회를 이루는 높다는 자리'뿐 아니라 '사회를 이루는 낮다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 이야기나 움직임조차 머릿속으로 스며들 겨를이 거의 없습니다. 그러면, 시골사람한테는 어떤 이야기나 움직임이 머릿속으로 스며들까요? 바로 '땅'이나 '하늘'이나 '숲' 이야기나 움직임이 머릿속으로 스며듭니다. 소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누지요. 풀하고 나무 이야기를 두런두런 나누지요. 논이랑 밭 이야기를 가만가만 나누지요.
사진책 <우리동네 이장님은 출근중>을 읽으면, 소나 풀이나 나무나 논이나 밭 이야기가 나란히 흐르지는 않습니다. 이 사진책은 시골마을로 한 걸음 더 깊이 들어가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시골마을에서 흙을 만지면서 삶을 짓는 이웃을 바라보는 손길로 엮은 이야기가 흐릅니다.
시골에 있는 이웃을 살가이 마주하는 손길이 드러나고, 시골에 있는 이웃이 저마다 즐겁게 짓는 살림이 얼마나 푸근한가 하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젊은이나 어린이가 자취를 감추는 시골이라 하더라도 이장이라고 하는 자리를 씩씩하게 맡으면서 예나 오늘이나 이 작은 마을에서 오붓한 잔치가 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을 사진으로 넌지시 보여줍니다.
나즈막한 산으로 둘러싸인 산골마을이다. 본래 이름은 '갈우소니'라 불리웠다고 한다. 산의 형태가 소가 가로누워 있는 형상이라고 해서 그렇게 불리웠으나 일제강점기 때 새로 개간한 밭이 많다고 해서 신전이라고 했는데 지금도 동네 어른들은 '갈우소니'라 부른단다. 6만여 평의 밭에서는 대한민국에서 최고의 당도를 자랑하는 호박고구마를 생산한다고 이장님이 자랑을 한다. 상수리를 말려서 겨울에는 상수리묵도 해먹는다고 한다. (207쪽)
사람이 사는 시골이고, 이웃이 살림하는 시골입니다. 흙을 일구어 삶을 짓는 시골이며, 흙에서 거둔 먹을거리로 사랑을 나누는 시골입니다. 허리가 굽어 지팡이를 짚지 않고는 걸음을 옮기지 못하는 할매가 밭을 일구어 거둔 남새를 찬찬히 상자에 담아 우체국까지 짊어지고 가거나 경운기에 싣고 가서 도시에 있는 아이들한테 부칩니다.
돈으로 치면 얼마가 될는지 모르나, 땀방울이 알알이 밴 곡식이랑 남새랑 열매에는 흙내음이 서립니다. 시골사람은 스스로 즐겁게 땅을 일군 뒤, 스스로 기쁘게 이웃(거의 도시이웃)한테 베푸는 살림을 짓는다고 할 만해요.
<우리동네 이장님은 출근중>이라는 사진책에는 이런 모습이나 얼거리가 사진으로 드러나지는 않습니다만, 바로 이런 살림을 조용히 가꾸면서 예나 이제나 고요히 마을을 돌보는 할매랑 할배한테 둘러싸인 이장님이 사진기를 바라보는 모습이 차근차근 나와요. 이장님은 저마다 이녁 마을이 얼마나 예쁘고 멋진가 하는 이야기를 사진가한테 자랑합니다.
사진가는 조용히 사진을 찍으면서 조용히 이웃이 됩니다. 한 번 들렀다가 다시 안 오는 뜨내기나 구경꾼이 아니라, 한 번 들른 뒤에 기쁘게 다시 찾아오는 손님이 되고, 손님에서 어느덧 이웃으로 자리를 옮깁니다. '좋은 사진을 얻으려'고 자꾸 찾아오는 손님이 아니라, '반가운 사이가 되어 이야기를 나누는' 이웃으로서 여러 시골마을을 찾아갑니다.
이 투박한 사진책에 실린 여러 마을 이장님 얼굴을 바라보다가 우리 마을 이장님 모습을 가만히 떠올립니다. 한겨울에도 한여름에도 어김없이 새벽 네 시나 다섯 시에 마을방송을 하고, 궂은 일도 기쁜 일도 도맡으면서 씩씩하고 기운찬 우리 마을 이장님 모습을 곰곰이 그려 봅니다.
다만, '마을지기'라고 할 수 있는 '이장'이라는 이름과 자리가 생긴 발자국은 매우 짧습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같은 이장은 행정과 사회 얼거리에서 생긴 이름이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지난날에는 이장이 아닌 '마을 어른'이 있었거든요.
전북 전주에서 2013년부터 서학동사진관을 꾸리는 김지연 님이 지난날 전북 진안에서 '계남정미소 공동체박물관'을 꾸리던 무렵에 선보인 사진책 <우리동네 이장님은 출근중>(아카이브북스, 2008)이 있습니다.
김지연 님은 전북 진안이라는 시골마을에 들어와서 계남정미소라는 곳을 '공동체박물관'으로 고쳐서 꾸리고 나서야 비로소 이장이라고 하는 자리가 보였다고 합니다. 옳은 말씀입니다. 도시살이만 헤아린다면 '이장'이라고 하는 자리가 보일 수 없습니다. 거꾸로 시골살이만 헤아린다면 '동장'이나 '통·반장'이라고 하는 자리가 보일 수 없을 테지요.
▲ 겉그림 ⓒ 아카이브북스
김지연 님은 전북 진안에서 전북 전주로 '사진을 이야기하는 무대'를 옮겼지만 전라북도에서 시골마을을 돌면서 사진을 찍는 일을 그대로 잇습니다.
2015년에는 <빈 방에 서다>(사월의눈)라는 사진책도 선보였습니다. <빈 방에 서다>라는 사진책을 살펴보면 김지연 님이 시골을 무대로 사진을 찍기에 시골마을에서 조용히 사는 할머니하고 할아버지를 이웃으로 만날 수 있는 숨결이 고이 흐릅니다.
지난 2014년에는 <삼천 원의 식사>(눈빛)라는 사진책도 나왔어요. <삼천 원의 식사>를 살펴보면 김지연 님이 이곳저곳 바삐 돌아다니다가 밥 한 끼니를 먹던 식당에서 만난 수수한 사람들 이야기를 사진으로 보여줍니다.
먼 나라 사람이 아니라 바로 김지연 님하고 가까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사진으로 찍힙니다. 멀디 먼 곳에 있느라 거의 안 보이거나 감추어진 사람들이 아니라, 언제나 김지연 님 둘레에서 조용히 삶을 짓는 사람들이 김지연 님 사진으로 찬찬히 드러납니다. 그러니까, 김지연 님이 선보이는 사진책은 김지연 님이 스스로 일구는 삶에 따라서 마주하는 이웃을 사진으로 담은 책입니다.
사진책 <우리동네 이장님은 출근중>은 '이장'이라는 자리에 있는 시골사람을 마주하면서 '시골은 어떤 곳인가?' 하는 수수께끼를 풀려고 합니다. 비율로 치면 시골에 사는 사람은 10퍼센트조차 안 될 뿐 아니라, 막상 농사일(농업)을 하는 사람은 5퍼센트 안팎입니다.
90퍼센트가 넘는 사람이 도시에 살고, 농사일 아닌 일을 하는 사람이 95퍼센트라고 할 만합니다. 그러니 신문이나 방송뿐 아니라 사회와 학교에서 '시골에 살거나 흙을 만지는 사람' 이야기나 움직임은 거의 안 드러날 만합니다. 아예 안 보이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어요.
다시 말하자면, 사진책 <우리동네 이장님은 출근중>은 이제껏 한국 사회에서 '안 보이'거나 '안 드러난' 자리에 있던 시골사람 이야기와 움직임을 '이장'이라고 하는 이름을 얻은 시골지기 모습으로 밝혀서 드러내려고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좀처럼 시골사람을 이웃으로 마주하지 않은 채 사진을 찍었다면 <우리동네 이장님은 출근중>이라는 사진책은 시골마을 이장님을 바로 '내 이웃'이요 '우리 이웃'이라는 눈길로 마주하면서 찍은 사진을 그러모은 이야기꾸러미라고 하겠습니다.
일부러 멋있게 보이는 모습으로 찍지 않습니다. 시골을 지키는 듬직해 보이는 모습으로 찍지 않습니다. 현대 사회와 동떨어지게 끝까지 시골을 붙잡는 모습으로 찍지 않습니다. 늙고 구부정한 모습으로 찍지 않습니다. 이런 편견이나 저런 선입관이 없이 시골사람을 이웃으로 가만히 바라보는 이야기가 사진 한 장으로 흐릅니다.
▲ 속그림. ⓒ 김지연
"이곳이 좋아요. 이곳에서 낳고 이곳에서 자랐는데 도시에 나가서 무얼 합니까." 그 말 속에는 젊은 시절 큰 도시로 나가고 싶었던 꿈까지 부정하기에는 많은 여운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분명히 지금은 자기 고향에 많은 애착이 남아 있을 뿐 아니라, 이제는 떠날 꿈도 꾸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미 버릴 수 없는 땅과 가족과 친지와 자연이 있다. (머리말)
시골에서는 신문을 읽는 사람이 매우 적어요. 방송에서 흐르는 이야기에 눈길을 두는 사람도 무척 적습니다. 대통령 움직임이라든지 국회의원이나 시장이나 의사나 변호가나 사장 같은 사람들이 무엇을 하는가를 놓고 눈길을 두는 일이 거의 없다고 할 만합니다. 도시에서라면 이처럼 '사회를 이루는 높다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 이야기나 움직임이 신문이나 방송에 자주 오르내려요. 이러면서 이런 사람들 이야기나 움직임이 여느 사람들 머릿속으로 스며듭니다.
이와 달리 시골에서는 '사회를 이루는 높다는 자리'뿐 아니라 '사회를 이루는 낮다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 이야기나 움직임조차 머릿속으로 스며들 겨를이 거의 없습니다. 그러면, 시골사람한테는 어떤 이야기나 움직임이 머릿속으로 스며들까요? 바로 '땅'이나 '하늘'이나 '숲' 이야기나 움직임이 머릿속으로 스며듭니다. 소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누지요. 풀하고 나무 이야기를 두런두런 나누지요. 논이랑 밭 이야기를 가만가만 나누지요.
사진책 <우리동네 이장님은 출근중>을 읽으면, 소나 풀이나 나무나 논이나 밭 이야기가 나란히 흐르지는 않습니다. 이 사진책은 시골마을로 한 걸음 더 깊이 들어가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시골마을에서 흙을 만지면서 삶을 짓는 이웃을 바라보는 손길로 엮은 이야기가 흐릅니다.
시골에 있는 이웃을 살가이 마주하는 손길이 드러나고, 시골에 있는 이웃이 저마다 즐겁게 짓는 살림이 얼마나 푸근한가 하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젊은이나 어린이가 자취를 감추는 시골이라 하더라도 이장이라고 하는 자리를 씩씩하게 맡으면서 예나 오늘이나 이 작은 마을에서 오붓한 잔치가 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을 사진으로 넌지시 보여줍니다.
▲ 속그림 ⓒ 김지연
나즈막한 산으로 둘러싸인 산골마을이다. 본래 이름은 '갈우소니'라 불리웠다고 한다. 산의 형태가 소가 가로누워 있는 형상이라고 해서 그렇게 불리웠으나 일제강점기 때 새로 개간한 밭이 많다고 해서 신전이라고 했는데 지금도 동네 어른들은 '갈우소니'라 부른단다. 6만여 평의 밭에서는 대한민국에서 최고의 당도를 자랑하는 호박고구마를 생산한다고 이장님이 자랑을 한다. 상수리를 말려서 겨울에는 상수리묵도 해먹는다고 한다. (207쪽)
사람이 사는 시골이고, 이웃이 살림하는 시골입니다. 흙을 일구어 삶을 짓는 시골이며, 흙에서 거둔 먹을거리로 사랑을 나누는 시골입니다. 허리가 굽어 지팡이를 짚지 않고는 걸음을 옮기지 못하는 할매가 밭을 일구어 거둔 남새를 찬찬히 상자에 담아 우체국까지 짊어지고 가거나 경운기에 싣고 가서 도시에 있는 아이들한테 부칩니다.
돈으로 치면 얼마가 될는지 모르나, 땀방울이 알알이 밴 곡식이랑 남새랑 열매에는 흙내음이 서립니다. 시골사람은 스스로 즐겁게 땅을 일군 뒤, 스스로 기쁘게 이웃(거의 도시이웃)한테 베푸는 살림을 짓는다고 할 만해요.
<우리동네 이장님은 출근중>이라는 사진책에는 이런 모습이나 얼거리가 사진으로 드러나지는 않습니다만, 바로 이런 살림을 조용히 가꾸면서 예나 이제나 고요히 마을을 돌보는 할매랑 할배한테 둘러싸인 이장님이 사진기를 바라보는 모습이 차근차근 나와요. 이장님은 저마다 이녁 마을이 얼마나 예쁘고 멋진가 하는 이야기를 사진가한테 자랑합니다.
사진가는 조용히 사진을 찍으면서 조용히 이웃이 됩니다. 한 번 들렀다가 다시 안 오는 뜨내기나 구경꾼이 아니라, 한 번 들른 뒤에 기쁘게 다시 찾아오는 손님이 되고, 손님에서 어느덧 이웃으로 자리를 옮깁니다. '좋은 사진을 얻으려'고 자꾸 찾아오는 손님이 아니라, '반가운 사이가 되어 이야기를 나누는' 이웃으로서 여러 시골마을을 찾아갑니다.
이 투박한 사진책에 실린 여러 마을 이장님 얼굴을 바라보다가 우리 마을 이장님 모습을 가만히 떠올립니다. 한겨울에도 한여름에도 어김없이 새벽 네 시나 다섯 시에 마을방송을 하고, 궂은 일도 기쁜 일도 도맡으면서 씩씩하고 기운찬 우리 마을 이장님 모습을 곰곰이 그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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