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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무서운 '아집', 국민하기 참 어렵다

[게릴라칼럼] '짜증'과 '다그침'이 난무했던 대국민담화

등록|2016.01.14 15:31 수정|2016.01.14 16:17
일신 일일신 우일신(日新 日日新 又日新)이라 했다. 날마다 새로워지라는 가르침이다. 그러나 작금의 이 나라에서는 성현의 가르침이 통하지 않는다. 일퇴(日退) 우일퇴(又日退), 뒷걸음, 또 뒷걸음이다. 차창 밖으로 어른거리던 군사 독재 시대의 풍경은 어느새 유신의 폭압 정치의 거리를 지나고 있다. '국가 비상사태' 다음에는 '비상계엄'이 아닐까 라는 농담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수많은 농담이 무서운 진실로 다가오는 시대다.

잘 알지도 못하는 요순의 태평성대를 원하는 건 아니다. 세종대왕과 같은 성군을 바라는 것도 아니다. 단지, 국민을 IS라 몰아세우고, 야당에게 전쟁터에서의 항복 같은 복종을 요구하고, 국회의장조차 의사봉 두드리는 허수아비로 생각하는 대통령의 진부한 국정 철학을 조금이라도 바꿔 달라는 것이 국민의 바람이었다.

그러나 윽박지름과 호통의 정치는 계속되었고, 대통령은 어둡고 용렬한 지도자의 이미지를 굳혔다. 혼용무도(昏庸無道). 교수사회는 2015년을 이렇게 표현했다.

내 탓은 없고 남 탓만

▲ 박근혜 대통령이 13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 브리핑룸에서 가진 대국민 담화 발표 및 기자회견에서 쟁점 법안이 통과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과 관련해 국민이 직접 나서 줄 것을 호소하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 연합뉴스


해가 바뀌어도 별반 달라진 건 없다. 13일 대통령의 대국민담화를 보고 드는 생각이다. 여전히 불통이고 여전히 얼굴에는 짜증이 묻어난다. 대통령을 거들고 나선 보수언론, 종편 방송에서야 '단호함의 표현', '결연한 의지'라고 추켜세우지만, 경제와 안보의 비상사태(?)에도 해법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불통은 아집이 원인이다. 자기만 옳고 상대는 그르다. 대화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13일 대통령의 대국민담화가 그렇다. 위안부 문제와 국정교과서, 경제와 안보 위기, 대통령이나 정부는 최선을 다했고 잘못한 것이 없다고 한다. 경제 위기는 노동법 통과를 가로막은 야당과 노동 단체의 책임이고, 위안부 문제·국정교과서는 정부의 노력과 주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국민의 탓이다. 대통령의 눈높이에서는 너무나 격이 떨어지는 야당이고 국민들인 셈이다.

대통령이 하는 일이니 토 달지 말고 따라오라는 식이다. 내 탓은 없고 남 탓만 있다. 보고 있기조차 민망한 대통령의 대국민담화. 그래서일까. 한나라당에서 한솥밥을 먹은 김성식 전 의원조차 '국민하기도 어려운 것 같다'고 토로했다.

안보와 경제의 위기. 먼저 진단이 틀렸다. 진단이 틀렸으니 해법이 없거나 어긋나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3년 내내 경제 위기의 진앙지조차 파악하고 있지 못한 듯하다. 이 정부는 3년 내내 수출과 대기업만 쳐다본다. 청년 실업자가 쏟아지고, 빚더미에 눌린 가장이 아이들과 연탄불을 피워놓고 생을 마감해도 노동개혁(?)이 답이라 한다.

당장 불을 꺼야할 곳이 기업이 아니라 국민의 삶, 서민경제다. 경제 위기의 가장 큰 뇌관이 가계 부채라는 건 이제 상식에 가까운 진실이다. 손쉬운 해고 저임금을 고착화하는 노동 관련법을 내놓고 경제 위기의 해법이라고 말하는 대통령. 서민의 살림살이와 국민의 삶을 고작 기업 성장을 위한 불쏘시개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노동에 상응하는 임금과 그 임금으로 유지될 수 있는 가정 경제와 손쉬운 해고로 지탱되고 저임금으로 번영하는 기업 경제, 대통령의 담화가 둘 중 무엇을 요구하는지는 그리 깊게 생각할 필요도 없다.

경제 위기의 진앙지는 가정 경제다. 수입이 줄어드니, 빚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소비가 줄어들고 삶의 질은 곤두박질친다. 소비가 극감하고 내수의 침체로 이어진다. 이 일련의 흐름을 보고도 정부는 여전히 기업이 잘되면 국민의 삶도 나아진다는 '낙숫물 효과' 타령이다.

그러나 '낙숫물 효과' 이론은 노동자와 서민의 인내만을 요구할 뿐 삶은 개선되지 않는다. 경제 민주화로 국민행복시대를 열겠다던 대통령. 임기 3년을 앞두고 후보 때 했던 국민들과의 약속과 정반대의 길을 너무나 고집스럽게 가고 있다.

경제 위기의 진앙지가 어딘지 알기나 하나

박근혜 대통령 대국민 담화 지켜보는 시민들13일 오전 서울 용산구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TV 모니터를 통해 박근혜 대통령 대국민담화 발표 생중계를 지켜보고 있다. 이날 박 대통령은 청와대 춘추관에서 대국민담화 및 기자회견을 열어 북한의 핵실험과 경제혁신, 노동개혁, 경제활성화 법안 국회 처리의 필요성을 국민들에게 호소했다. ⓒ 유성호


안보 위기 해법도 동의하기 어렵다. 북한의 4차 핵실험에 대해 아무런 예상도 하지 못한 국방부와 정보 당국이었다. 국정원장은 "이번엔 졌다", 국방부장관은 "분발할 부분이 있다"라며 경계의 실패를 인정했다. 국민들의 안보 불안은 북한 핵실험에서 생겨났지만 불안감을 증폭시킨 건 국방부와 정보 당국이다. 사과와 문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러나 어떤 사과나 대책도 없었다.

대북방송의 재개. 대통령은 오랜 시간을 할애해 이에 대한 정당성을 이야기했다. 북한의 '삐라' 살포 소식도 전해진다. 남북관계는 60~70년대의 대결구도로 가고 있다. 북한의 핵실험은 잘못되었다. 그러나 이 문제는 핵무기 개발의 억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 북한 도발과 국지전에 따른 휴전선 부근 주민의 안전 등을 고려해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대북방송 재개가 최고의 심리전이라는 대통령의 대책은 풍선을 날려 통일을 앞당긴다는 대북단체 통일론과 별반 다를 게 없다.

박 대통령은 또한 동물국회, 식물국회라며, 선진화법을 소화할 능력도 안 된다며 국회에 강한 불신을 드러냈다. 그러나 동물국회, 식물국회를 만든 장본인은 누가 뭐래도 대통령이다. 원내대표까지 쫒아내면서 여당을 줄서기 시킨 것이 대통령 본인 아닌가. 여야가 합의한 국회법을 거부한 당사자도 대통령이다. 동물국회, 식물국회 그 표현이 맞다면 원인은 삼권분립을 인정하는 않는 대통령의 무소불위의 권력 남용이다.   

'희망'이 안 보이는 담화문

대통령의 담화문에는 희망이 담겨 있지 않다. 질식할 정도의 가계 부채. 청년은 일자리가 없고 장년들을 노동을 해도 가정을 유지하기 벅차다. 이런 지경에서도 대통령은 신년 벽두부터 노동법 통과를 다그치며 야당과 국민을 몰아세우고 있다. 무서운 아집만 강조된 대통령의 신경질적인 담화문에 희망보다 절망감이 엄습한다.

태평성대를 원하는 것도 아니고 세종대왕과 같은 군주가 되어 달라는 것도 아니다. 단지 국민들을 소떼 몰듯 다그치지 말라는 것이다. 어제보다는 오늘이, 오늘보다는 내일이 더 나을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 달라는 거다. 어둡고 용렬한 지도자의 모습을 벗어나 한번쯤은 대통령이나 정부도 잘못되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 달라는 거다.

이조차도 국민의 과한 욕심일까? 24년 동안 위안부 할머니들을 돕던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에 수사착수 소식이 들린다. 일신 일일신(日新 日日新)하지 못하고 일퇴 우일퇴(日退 又日退), 뒷걸음의 연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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