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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대통령' 선거에서 5표, 그러나 '좌절'은 없다

[인터뷰] 농협중앙회장 선거 김순재 후보, 농민회 출신 첫 도전

등록|2016.01.16 19:47 수정|2016.01.16 19:47
마냥 웃었다. 이야기 나누는 내내 밝은 표정이다. 그러면서 과수원 단감나무 가지치기에 여념이 없다. 옆에서 말을 붙이기가 부담이 될 정도다.

14일 오후 경남 창원 의창구 동읍 한 과수원에서 만난 김순재(51) 전 창원동읍농협 조합장의 이야기다. 그는 지난 12일 농협중앙회 대강당에서 치러진 농협중앙회장 선거에 나섰다가 '투표 대의원' 291명 가운데 5표를 얻는데 그쳤다. 그래도 그는 표정이 밝다.

이번 선거에서는 나주 출신 김병원 후보가 결선투표에서 당선되었다. '농민 대통령'으로 불리는 농협중앙회 회장에 처음으로 호남 출신이 된 것이다.

▲ 농협중앙회 회장 선거에 나섰다가 낙선한 김순재 전 창원동읍농협 조합장이 14일 자신의 과수원에서 감나무를 손질하면서 웃고 있다. ⓒ 윤성효


김순재 전 조합장은 역대 농협중앙회장 선거에서 농민회 출신 가운데는 첫 출마였다. 경상대를 나온 그는 노태우정권 때 학내 집회를 주도한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대학 졸업 뒤 고향인 창원 동읍 판신마을로 돌아와 농사를 지었다.

창원농민회 활동을 시작한 그는 전국농민회총연맹 경남도연맹 사무처장, 대외협력국장, 창원농민회 사무국장 등을 지냈다. 농민회 활동하던 그는 집회와 시위로 걸핏하면 기소되어 재판을 받았고, 벌금도 적잖이 물었다.

그는 2010년 2월 창원동읍농협 조합장 선거에 나서 당선되었다. 당시만 해도 전국에서 농민회 출신이 지역농협 조합장에 당선되기는 매우 드물었다. 주변에서 한 번 더 하라는 권유도 있었지만, 그는 조합장을 한번만 하고 말았다.

이번 농협중앙회장 선거를 앞두고 조합원 직선제 요구가 있었지만, 조합장 대의원 291명한테만 투표권이 주어졌다. 전국 지역농협 조합장 1136명 가운데 투표권은 291명한테만 주어졌다. 전국 지역농협 조합원은 253만명으로, 투표권을 가진 사람을 비율로 따지면 0.0001%다. 이명박정부 때인 2009년부터 이같은 제도가 되었는데, 이를 '간접적 선거'라 한다.

"붙어 볼만한 싸움이라 생각했고, 출발은 대단했는데"

김순재 후보는 '조합원 직선제'가 되지 않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 했다. 선거에 나서 떨어지고 그것도 5표를 얻는데 그쳤지만, 그는 밝은 표정으로 정성들여 가꾸면 알알이 맺힐 감을 생각하며 나무 손질에 여념이 없었다. 다음은 김순재 후보와 나눈 대화다.

- 농협중앙회장 선거 출마는 처음에 어떻게 생각하게 되었는지?
"농촌에서 농사짓다가 지역농협 조합장을 했다. 창원 동읍농협의 경우 한 해 운영 총액이 4000억 원 정도다. 농협중앙회는 750조 규모로 알고 있다. 어마어마한 돈이다. 그 운영을 잘하면 농민한테 도움이 될 것이다. 언론에 농협 기사가 나더라도 좋은 소식보다 잘하지 못해서 나오는 사례가 많다. 바르게 할 수 있도록, 바로 잡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농협 규모가 엄청나다. 그런 조직을 똑바로 운영하면 농민뿐만 아니라 국민 전체에도 도움이 된다. 금융사업은 60% 정도가 비농민이다. 소시민들이 농협 금융을 쓴다는 말이다. 민족자본으로 구성된 돈이 제대로 운영만 되면 우리한테 많은 도움이 된다. 지역농협을 운영해본 경험을 살려 농협중앙회도 해볼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붙어 볼만한 싸움이라 생각했고, 출발은 대단했는데 …."

- 농민회 활동을 한 농민 중에는 첫 회장 선거 출마였다고 하던데.
"역대 농협중앙회장 선거에 보면 농협과 관계된 사람들이 출마를 했다. 저는 과거 농민회 활동을 했다. 농민회 활동을 앞에 내세운 것은 아니었다. 떨어진 사람이 농협에 대해 이야기를 자꾸 하면 누워서 침 뱉는 꼴이다. 제가 부족해서 떨어진 것이다."

- 농협중앙회 회장 선거를 직선제로 해야 한다는 요구가 있는데.
"직선제를 논의하거나 쟁점이 된다는 것 자체가 우습다. 직선제를 하지 않는다는 게 말이 안된다. 전국 농협 조합원은 230만 명이고, 지역농협 조합장만 해도 1136명이다. 그렇다고 전국 조합장들이 다 투표권을 가지는 것도 아니다. 전국 조합장 중에 291명만 투표권을 가진 것인데, 비용 등 여러 가지 사항을 고려하더라도 문제가 많다. 이런 것 자체가 이 조직이 민주적이지 않다는 증거다. 직선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보니까 솔직히 부끄럽다."

- 선거운동 하면서 보람 있었던 일은?
"지역농협 직원들이다. 그들은 투표권이 없는데도 저한테 엄청나게 지원을 해주었던 것 같다. 아마도 직원들의 지원을 그렇게 많이 받은 후보가 없었을 것이다. 5년 전 동읍농협 조합장에 당선되었을 때, 처음에는 다들 당선되지 않을 것이라 했다. 당선되고 나서 처음에는 직원들도 불편하고 부담이 되었을 것이다. 처음에 문제가 있는 직원 몇 명을 징계했다. 그랬더니 징계 대상자들은 반발했지만 다른 직원들은 아무도 반발하지 않았다. 어느 조직이건, 부당하거나 잘못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그대로 두면 안된다. 그러나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보호를 해주어야 한다. 그런 모습들이 다른 지역농협 직원들한테도 소문이 났는지, 이번 선거에서 많이 지원해 주었다."

- 당선자한테 바라는 점은?
"1차 투표하고 나서 결선투표를 앞두고 후보자 대기실에 있었다. 당선자가 그 때 한 후보와 이야기를 나누는 광경을 보았다. 제가 보기에는 서로 지원을 말하는 것 같더라. 그래서 제가 당선자 측근한테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결선 투표에 오르지 못한 후보와 절대 손을 잡지 말라고 했다. 당선자가 결선투표를 앞두고 다른 후보와 이합집산 내지 합종연횡을 했다면 그 후보 측과는 절대 단절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제가 당선되지 않는다면 출마한 후보 가운데 이번 당선자가 제일 나은 편이라 생각했다. 제가 무어라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잘 할 것이라 본다. 당선자는 후보 중에서 협동조합 정신에는 제일 나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제가 당선되지 않으면 그 사람이 당선되는 게 제일 낫다는 생각을 했다."

- 농협중앙회 운영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은.
"떨어진 사람이 무슨 말을 하겠나? 지금 농협중앙회는 정상적인 협동조합 조직이 아니다. 농협중앙회는 기형이다. 중앙회는 연합회로 가야 한다. 그리고 중앙회가 권한을 많이 가지면 안된다. 중앙회는 지역농협과 경쟁하면 안된다. 지역농협이 할 수 없는 일을 중앙회가 해야 한다. 지금은 중앙회 자회사가 지역농협을 '핸들링'하고 있을 정도이니 문제다."

- 5표를 얻었는데.
"누가 그 표를 찍어 주었는지 모르겠다. 계산하면 안 되는데... 선거운동 하면서 만나고, 확실하게 찍어준다고 확답한 대의원이 40명은 되었다. 그런데 5표만 나왔다. 8명 중에 7명이 찍지 않았다. 5명이 누구였는지 알려고도 하지 않을 것이다. 쪽 팔려서 까먹으려고 하는 게 아니다. 이야기 하면 안되니까 그런 것이다."

"조합장 한 번 더 하게 되면 관성적으로 갈 것 같았다"

▲ 농협중앙회 회장 선거에 나섰다가 낙선한 김순재 전 창원동읍농협 조합장이 14일 자신의 과수원에서 감나무를 손질하고 있다. ⓒ 윤성효


- 동읍농협 조합장을 한 번 더 했어야 하는 거 아니었는지?
"전국에 농민회 출신 조합장이 몇 명 있다. 조합장을 한 번 더 하라는 권유를 받기도 했다. 선거는 사람을 휘어지게 만든다. 선거를 하면 표를 의식하게 된다. 저는 조합장 임기가 4년인데 법이 바뀌어 1년을 더 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5년 동안 다 했다고 본다. 한 번 더 하게 되면 관성적으로 갈 것 같았다.

흔히 진보진영 인사들을 보면 내가 아니면 안된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한 번 더 하면 당선도 쉽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것은 개인을 위해서도, 사회나 조직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진짜 진보라면 내가 해야 할 일을 찾아가야 한다. 다른 분들은 조합장 선거에서 탈락해서 집에 갔는데 저는 제 발로 집에 왔다. 한 번 한 자리를 계속 하는 게 무슨 진보냐. 일부 언론에서 중앙회장 선거 출마하려고 동읍농협 조합장을 한 번 더 하지 않았다고 하던데,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처음부터 조합장은 한번만 한다는 생각을 했다."

- 요즘 농민, 농촌이 어렵다고 한다. 지역농협을 운영해 본 입장에서 하고 싶은 말은?
"농협이 농민을 위해 그 역할을 하지 않는다는 말은 맞다. 그러나 국가나 농협이 농민을 잘 살게 하는 것은 아니다.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 저는 26년째 농사를 짓고 있고, 두 아들도 농사를 짓는다. 진보 사람이건, 덜 수구적인 사람이건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농업문제가 쉬운 것은 아니다. 농민 책임이 크다는 말을 하고 싶다. 단결하지 않고 노력하지 않으면 안된다. 가령 배추가 많이 생산되어 값이 떨어질 경우, 농민들은 자기 밭에 있는 배추부터 일정 비율로 갈아엎어 출하량을 조절해야 한다. 적정량이 되면 자연적으로 값이 올라갈 것이다. 쌀은 좀 다르지만, 감이나 다른 농산물도 마찬가지다. 방에 늙은이 둘이 있으면 서로 죽기를 바라듯이 하면 안된다. 농산물의 생산량 책임은 농민들이 더 크다."

- 박근혜 대통령이 쌀 등 농업 관련 공약을 지키지 않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는지?
"지금 대통령이 지키지 않은 공약이 너무 많다. 쌀 공약만이 아니다. 그런데 무슨 할 말이 있겠나. 공약은 자기가 해놓고 자기가 지키지 않은 것이다. 선거에서 떨어진 사람이 말을 많이 하면 안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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