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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는 보수주의의 적이다

사이비 보수주의자들에 대한 고찰

등록|2016.01.20 09:27 수정|2016.01.20 09:27

▲ 박정희 박근혜 부녀 ⓒ 지요하


한국현대사에서 권력을 장악한 것은 대체로 보수주의를 표방하는 세력이었다. 반세기가 훨씬 넘도록 보수 세력이 정치권의 주류를 이루었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정작 보수주의가 무엇인지에 대한 진지한 검토가 드물었다. 보수주의를 막연히 변화를 거부하고 기득권을 고수하려는 태도를 의미하는 것으로 여기면 곤란하다. 과거에 대한 맹목적 집착은 '수구'라고 표현하는 것이 훨씬 어울린다. 보수주의는 과거에 대한 막연한 집착이 아니라, 특유의 가치관을 지닌 하나의 '정치철학'이기 때문이다.

보수주의의 원조 에드먼드 버크


정치철학으로서의 보수주의를 창시한 인물은 영국의 에드먼드 버크(1729~1797)다. 버크가 1790년에 쓴 <프랑스혁명에 관한 성찰>에서 프랑스혁명에 대한 비판을 제기함으로써 비로소 보수주의가 탄생했다. 버크 이후 오늘날까지 보수주의 정치사상은 버크의 사상을 세련되게 다듬고 확대한 것에 불과하다. 근대 이데올로기들 가운데 보수주의만큼 한 사람의 사상에 의존한 정치사상도 없다. 마르크스를 모르는 사회주의자가 있을 수 없다면, 버크를 모르는 보수주의자는 더더욱 있을 수 없다는 말이다.

버크의 보수주의는 18세기 계몽주의의 과도한 이성주의에 대한 반발로 출발했다. 버크의 사상이 '18세기에 대한 반란'으로 불리는 것은 이런 까닭에서다. 그는 수많은 세대를 거치면서 농축된 인간 경험인 관행(관습), 전통, 편견이 한 세대나 한 개인의 추상적 이성보다 훨씬 깊은 지혜와 통찰력을 가진다고 믿었다. 그가 프랑스혁명을 반대한 것도 혁명 세력이 인민주권이라고 하는 '추상적 권리'를 앞세웠기 때문이다.

버크가 프랑스혁명을 반대했다고 해서 인간의 자유와 권리를 덮어놓고 반대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버크는 '전통 속에서 구체화된 자유'에 대해서는 전폭적인 지지를 표명했다. 예컨대 버크는 1215년의 마그나 카르타와 1688년의 명예혁명의 정당성을 인정했다. 뿐만 아니라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의 필연성을 받아들였다. 버크는 종교개혁의 성과를 논하면서, 때때로 혁명적인 방법에 의하지 않고는 제거할 수 없는 악과 폐해가 과거에 있었음을, 종교개혁의 혁명적인 과정이 역사 발전의 위대한 순간이었음을 인정했다.

▲ 보수주의? 보스주의! ⓒ atopy


박정희, 전두환은 보수주의의 적

미국 독립혁명에 관한 버크의 태도는 보수주의에 대한 우리의 막연한 선입견을 산산조각 내버린다. 그는 반란을 일으킨 자는 아메리카 식민지인이 아니라 '영국 정부'라고 주장했다. 영국 정부는 영국인의 전통에 입각한 합당한 자유('대표 없이는 과세도 없다'는 원리로 구현된 자유)를 배반했고, 아메리카 식민지인은 영국인의 후예로서 자유를 사랑하는 영국인의 기질을 이어받았으므로 당연히 영국적인 권리를 가진다는 것이다.

다른 나라 이야기 제아무리 해봐야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면, 정치학자 강정인 교수(서강대)의 설명에 귀를 기울여보기로 하자. 강 교수는 <에드먼드 버크와 보수주의>(문학과 지성사, 1997)에서 에드먼드 버크가 한국현대사를 본다면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를 시뮬레이션으로 보여준다. 만일 5·16 쿠데타에 의해 성립된 3공화국에 대해 어떤 세력이 혁명을 시도한다면 그 세력을 버크는 어떻게 평가할까? 10월 유신을 통해 성립된 유신정권에 대항하는 혁명은 어떻게 평가할까? 12·12 쿠데타를 통해 집권한 5공화국을 혁명으로 전복하려는 세력에 대해서 버크는 어떻게 평가할까?

강정인 교수가 제시한 답은 이렇다. 버크는 3, 4, 5공화국의 정권 타도를 주장하는 혁명 세력의 정당성을 인정해 주리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세 공화국에서 집권 세력이야말로 '헌정 질서를 폭력에 의해 전복한 반도(叛徒)'이며, 그에 대항하는 세력은 '기존의 헌정 질서를 회복하고자 하는 보수적이며 방어적인 세력'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요컨대 박정희, 전두환은 '보수주의의 적'이라는 말이다.

보수의 지적 게으름

<프랑스혁명에 관한 성찰>은 보수주의의 '경전'에 해당하는 문헌이지만 광복 이후 60여 년 동안 우리말 번역이 없었다. 비유하자면 그동안 한국의 보수 세력은 '한글 성경 없는 그리스도교'였던 셈이다. 2008년에 '진보 성향'의 서양사학자인 이태숙 교수가 국내 최초로 이 책을 번역, 출간했다(한길사). 굳이 비유하자면 불교 승려가 기독교 성경을 번역해준 셈이라고나 할까? 우리 사회의 척박한 지식 인프라와 보수의 지적 게으름을 동시에 확인해준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이웃 나라 일본에서는 메이지유신 직후인 1881년에 번역됐다. 우리와는 127년 격차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는 평생 버크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얼치기들이 보수의 탈을 쓰고 목청을 높였던 셈이다. 정통 보수의 목소리가 간간이 들리기는 하지만 아쉽게도 사이비들이 외쳐대는 함성 속에 파묻히기 일쑤다. 강남 귤이 강북에 오면 탱자 된다는 중국 고사 그대로다.

덧붙이는 글 이글을 쓴 박상익님은 우석대 역사교육과 교수입니다. <나의 서양사편력 1·2>, <번역은 반역인가>, <밀턴 평전> 등의 저서와 <호메로스에서 돈키호테까지>, <뉴턴에서 조지 오웰까지>, <새로운 서양문명의 역사> 등 다수의 저서와 번역서를 통해 서양사를 우리 현실과의 관련 속에서 이해하는 데 힘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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