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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아, 술버릇에도 '등급'이 있단다

[허시명의 술 생각 ⑩] 스무살의 술 그리고 술을 좋아한다는 것

등록|2016.01.21 11:54 수정|2016.01.21 11:55
아들이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갓 스무 살을 넘겼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여덟 살에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고3 수능시험을 보고 난 뒤에 맞이하는, 만 열아홉 살 되는 해의 1월 1일부터 술을 마실 수 있다. 대학이 결정됐겠다, 생에 처음 맞이하는 해방의 순간처럼 하루하루를 즐기는 아들 녀석이 밤이면 불그레한 얼굴로 들어온다.

"오늘은 몇 잔을 마셨냐?"
"모르겠어요. 친구 네 명이서 소주 다섯 병을 마셨어요."
"오늘은 무슨 술을 마셨냐?"
"맥주요, 아, 처음에는 소주를 마셨고요."

소주와 맥주의 이름이 교차한다.

"괜찮냐?"
"안 괜찮아요. 머리에 뭐가 가득 찬 것 같아요. 친구들은 머리에 심장이 들어있다고 말해요."
"하하하, 술을 마시면 혈관이 팽창한단다. 그래서 머리가 아플 거야."

▲ 술을 좋아한다는 것을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 허시명


지난 19일 나는 스무 살 때 만났던 친구들을 만나 술을 한잔 했다. 나 또한 스무살 때에 무슨 술이 보였겠는가? 고등학교 때에 명문대 기숙사반에 함께 든 친구 중에, 이미 됫병 술을 마셨던 친구들이 있었다. 저녁 식사를 하고 기숙사로 들어올 때 술 몇 잔에 불콰해진 얼굴을 가리려고, 신나게 운동장을 가로지르며 달렸던 기억이 있다. 물론 나는 겁많은 구경꾼이었지만, 그때의 호기로움와 사내다움을 기억한다.

대학에 들어와서 담배와 술은 내가 성인이 됐다는 상징 기호였다. 뻐끔 담배를 피우고, 주량도 모르면서 술을 마셨다. 친구들과 함께 드나들었던 학교 앞 주점 일미집과 녹두집이 눈에 선하다.

시위가 있던 날엔 방방 가득 '학우'들이 있었고, 자리를 못 잡은 이들은 바닥에 퍼질러 앉아 술잔이 부족하면 구두에 술을 받아마시기도 했다. 술은 또 다른 해방구로 향하는 신비로운 물약이었다. 취하고, 소리치고 울분을 토하기도 했지만, 위액까지 토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술 얘기를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내게 '술이란 무엇이다' '술을 어떻게 마셔야 한다'는 말을 해준 이는 없다. 있었겠지만, 내 기억에 남아있지 않다. '술을 마시지 마라' '적게 마셔라' '아버지도 술에 취하면 잠이 드니 너도 조심해라' 그 정도의 말만 들었다. 그 말은 내게 새겨지는 말이 아니었다. 그렇게 젊은 날을 건너왔다. 그리고 지금 술 이야기를 하고 있다.

나는 아들에게 어떻게 술을 마시라고 말해야 할 것인가? 아들과 비슷한 또래, 수능이 끝난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음주 교육을 한 적이 있다. 그때 드는 느낌은, 이교도들에게 전도를 하는 기분이었다. 청중들은 결론을 다 아는데, 강연자만 결론을 모르고 이야기하는 듯했다.

한국의 청소년들에게 술은 금기의 대상이다. 하지만 처음 술을 접한 나이를 물어보면 '중학교 2학년 때'라는 답이 가장 많이 돌아온다. 중학교 2학년 때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수학여행 때에 생수병에 술을 담아오면서 벌어진 일일까? 이렇게 교육청에 일하는 친구에게 물었더니, "아냐 지금은 생수병이 아냐, 그냥 가져와"라고 답한다. 그러면서….

"청소년들에게 금연 교육은 아주 철저히 하면서도, 술 이야기는 어디서 풀어낼지 해법을 못 찾고 있어. 그저 꺼내지 않는 것이 상책이라고 여기지. 그런데 사실 술은 교사들도 문제야."

▲ 금주 기호가 새겨진 술병 쿠션. ⓒ 허시명


이렇게 되면 나의 대답도 "아, 그렇구나 할 말이 없구나"가 되고 만다. 하지만 해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교사들부터 하면 된다. 그러면 학생들과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출구를 일러줄 것이다. 

"아들아, 술 한잔 하자!" 아들이 선뜻 좋아할 이유가 없다. 밥은 당연히 함께 먹지만, 술은 어른과 함께 마시면 어색하고 편하지 않다. 옛말에 세상에 가장 맛없는 술이 임금님 앞에서 마신 술이라지 않았던가. 그렇지만 나는 요즘 아들과 술 마시기를 적극 시도하고 있다. 술을 가르치는 방법은 우선 술을 함께 마시는 것이다. 그리고 함께 술자리를 마치면 음주 교육의 한 장이 완성된다. 술자리를 화기애애하게 끝내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음주 교육이 된다.

'술버릇'이란 말이 있다. 술은 자주 반복해서 마시다 보니 버릇이 생긴다. 가장 고약한 술버릇을 가진 이는, 술판의 끝에 판을 뒤엎어버리는 이들이다. 나쁜 술버릇은 다른 사람의 말은 듣지 않고 제 말만 하거나, 시비를 걸어 싸우거나, 술잔을 거듭해서 돌려 모두를 취하게 만들거나, 취하기 전에는 절대 집에 들어가려 하지 않는 유형들이다. 이는 아마도 술을 독학했거나, 편한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다 보니 생겨난 버릇 들일 것이다.

아버지와 함께 술을 마시기 시작하고, 어른에게 술을 배웠다고 하는 이들이라면 이런 경우는 적을 것이다. 취하지 않은 채로 아주 가볍게 술자리를 접을 줄 아는 것, 이것이 술을 마시지 않는 것 다음으로 좋은 술버릇이다. 그래서 술을 어떻게 마시라고 말하지 않더라도, 취하지 않은 채로 함께 술자리를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아들에게 충분한 교육이 이뤄졌다고 나는 생각한다.

독일의 청소년 음주 기준, 흥미롭다

▲ '술 마실 때는 형제가 1000명이지만, 위급할 때는 한 명도 없더라.' 1950년대에 보해양조를 운영했던 이훈동씨의 글이다. ⓒ 허시명


독일에는 흥미로운 청소년 음주 기준이 있다. 우리보다 훨씬 일찍부터 술을 마실 수 있다. 우리 청소년보다 육체적인 성장이 더 빠르기 때문일 텐데, 맥주와 와인 같은 낮은 도수의 술은 16세부터 마실 수 있다. 그런데 그보다 두 살 어린 14살부터 15살까지는 어른과 동반할 때 주점에 들어가 맥주와 와인을 마실 수 있다.

14살의 어린 청소년들이 생일 파티에서 술을 마시다니, 혼란스럽다. 이때 어른이 동반한다는 것은 술을 마시면 떨어지기 쉬운 절제력을 지켜주기 위한 장치다. 독일은 사회적으로 술을 배우고, 익히는 과도기를 두고 있는 셈이다.

과음은 과속과 같다. 자동차가 시속 180km까지 달릴 수 있다지만, 그렇게까지 속도를 내면 사고 나기 십상이다. 도로가 제한하는 80km나 110km가 있고, 그 속도를 지킬 때 안정성이 더 확보된다. 술도 마찬가지다. 독작(獨酌)의 경지에 오른 이들이 아니고서는, 흔히 관계 때문에 여럿이 무리지어 술을 마신다. 이때 절제의 미학이 필요한데, 젊은이들이 어찌 한순간에 절제의 미학을 터득할 수 있겠는가. 그 이야기를 해주고 공유할 수 있는 친구나 시스템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런 도덕률만으로는 에탄올이라는 1급 발암 물질이자, 사람을 홀리는 '바람 물질'을 방어하기 쉽지 않다. 그래서 나는 몇 가지 술 마시는 기법을 아들에게 부단히 일러준다.

"술 한 잔에 물 한 잔을 마셔라. 특히 소주와 같은 독주를 마실 때는 그 약속을 꼭 지켜라. 그래야 몸이 상하지 않고 오래도록 술을 즐길 수 있다. 술을 마시고 집에 들면 칫솔질을 하고, 술이 깬 뒤에 잠들어라. 술 취해서 잠들면, 내 몸의 장기들이 모두 술에 절어 있다고 여겨라. 그리고 술을 억세게 권하는 친구와 함께하거든, 그 친구가 술잔을 비우자마자 술을 따라줘라. 그렇지 않으면 그 술잔이 돌고 돌다가 너의 술잔이 될 테고, 그의 질병은 너의 질병이 되고 말 것이다."

▲ 술을 어떻게 함께할 것인가? 막걸리유랑단 행사장에서 정준하씨가 막걸리를 소개하고 있는 모습. ⓒ 허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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