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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한 가족범죄, 박근혜 정부의 '정책살인'

[게릴라칼럼] 죽음의 행렬에도 '쉬운 해고'와 '저임금' 강요하는 대통령

등록|2016.01.25 15:27 수정|2016.01.25 15:27

▲ '부천 초등학생 시신 훼손사건' 피의자인 부모 중 아버지가 포승줄에 묶이고 마스크와 모자로 얼굴을 가린 채 지난 21일 오전 전 거주지인 부천시 원미구 한 빌라에서 현장검증을 마친 뒤 나오고 있다. ⓒ 권우성


"뉴스 보기가 겁나, 하루하루가 생지옥이야. 어떻게 제 자식을 저럴 수 있냐고?"

밥상머리에서 뉴스를 보던 아내가 화들짝 놀라며 급하게 TV를 끈다. 경기도 광주에서 40대 가장이 아들과 딸, 아내를 둔기로 때려 숨지게 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 우울증이 원인이란다. 숟가락을 들던 아이와 눈을 마주쳤다. 말없이 서로의 시선을 피한다. 고등학생인 딸은 저 뉴스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침 밥상머리에 찾아든 침묵. 가장인 나는 우울한 침묵을 어떻게 깨야할지 고민스럽다.

온 나라가 우울증에 걸렸다, 하루가 멀다않고 터져 나오는 잔악한 가족 범죄와 수많은 자살, 노인들의 고독사. 그 때마다 우울증이라는 진단이 처방전처럼 따라 붙는다. 그러나 뉴스는 매번 여기까지다.

우울증의 원인이 무엇인지 밝히려 하지 않는다. 이들의 죽음을 연결하려고도, 공통의 분모가 무엇인지도 관심 밖이다. 자살과 가족 잔혹사. 매일이다시피 일어나지만 그때마다 개별적이다. 작은 나뭇가지 하나 부러져 나간 것 이상의 의미를 두지 않는다. 뿌리가 썩고 기둥이 무너질 전조라고 말하지 않는다. 모르는 게 아니라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온 나라가 우울증에 걸렸다

끔찍한 가족 잔혹 범죄가 발생하면 수많은 언론과 경찰 당국은 피해자와 가해자가 뒤엉킨 가정사를 파헤치기 시작한다. 채무를 뒤지고 약봉지를 추적해서 병력을 쫒는다. 과다한 채무는 개인의 일탈로 돌려버린다. 2014년 11월 아이를 포함한 일가족 사망사건이 대표적이다.

9억 원이 넘는 빚은 가장의 경매과욕이 불러온 참극이라고 경찰과 언론이 입을 모았다. 그러나 '집사서 부자 돼라'는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참극의 공범이라는 건 누구도 말하지 않는다. 신병비관, 우울증, 불면증. 가족 범죄와 자살의 또 다른 원인으로 지목된다. 그러나 이 역시도 개인의 일탈로 다뤄질 뿐 사회적 병폐에서 원인을 찾는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하루에 38번씩이나 일어나는 자살과 수시로 되풀이되는 가족 범죄. 대부분을 개인의 문제로 치부해 버렸으니 제대로 된 정치·사회적 대책도 있을 리 없다. 그러나 일탈, 우울증, 불면증, 신병비관의 개인사 아래에는 건강하지 못한 사회가 오물처럼 고여 있다. 

노동으로 지탱할 수 없는 가정경제. 희망보다는 절망이 엄습한 미래. 흙수저와 금수저의 경계가 점점 더 높아지는 현실. 이런 사회적 환경에 발 담그고 살 수밖에 없기에 일탈과 불면증·우울증·개인비관이 늘어가는 것이고, 11년째 OECD 자살률 1위를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가정에서 벌어진 잔혹한 사건은 건강하지 못한 사회의 투영이다. 

자살이나 가정에서 벌어진 잔혹한 사건을 두둔할 생각은 없다. 정치·사회적 문제와 상관없는 범죄나 죽음들도 있다. 하지만 헬조선으로 대표되는 경제적 고립과 사회적 소외 등이 자살을 부추기고 가정 범죄의 원인이 된 것도 사실이다.

먹고 살기 힘들고, 아무런 희망도 안겨주지 못하는 사회. 정부는 이 점에서 만큼은 가해자다. 대통령을 위시한 정치인들을 일방적으로 살인자라 불러서는 안 된다. 하지만 그들의 편협하고 일방적인 정치적 판단으로 많은 국민들이 일탈, 신병비관, 우울증, 불면증을 겪고 있다면, '정책 살인'이라는 비난은 유효하다.

두 대통령 신년 담화, 너무 달랐다

▲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새해 첫 주례연설 생중계 갈무리. ⓒ 백악관


대통령이 직접 나선 민생구하기 서명 운동. 국무총리가 온라인 서명을 하고 정관계 인사들이 줄줄이 가판대에 서는 모습을 보면서, 이들이 구하고자 하는 '민생'이 뭔지 알고 싶었다. 경제 살리기, 개혁, 일자리 창출 등 숱한 미사여구를 동원했어도 근본은 손쉬운 해고와 저렴한 노동력 확보가 목적이다.

민생구하기 서명 운동도 마찬가지다. 민생구하기가 아니라 재벌구하기이고, 기업살리기다. 빚더미에 신음하는 민초들. 헬조선을 벗어나는 수많은 죽음의 행렬이 이어지는데, 쉬운 해고와 저임금 유지로 민생을 구한다니, 궤변도 이런 궤변이 없다.

"동일 노동에 대한 동일 임금, 유급 휴가, 최저 임금 인상. 이 모든 것들은 부지런하게 일하는 모든 가족들에게 여전히 중요한 문제다."

"지금 우리가 할 일은 기업을 살리고 실업자들이 취업을 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입니다."

지난 13일 미국 오바마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 신년 연설(담화)의 일부다. 가정 경제를 중심에 놓고 (기업에게) 최저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오바마 대통령. 기업을 살리면 경제에 활력이 생겨 실업자들이 취업할 수 있는 토대가 만들어진다는 박근혜 대통령.

지금까지 일자리 창출과 부의 분배를 두고 비교해보더라도 박근혜 대통령이 틀렸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국민들에게 희생을 강요하고 노동자를 다그치는 경제 정책이 아니라, 부자와 기업에게 경제적 정의를 요구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한 것이다.

국민행복 시대를 열겠다는 박근혜 대통령은 경제 성장이라는 미명 아래 끝도 없이 노동자의 희생과 국민의 인내를 요구하고 있다. 떡 한 개만 주면 안 잡아먹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설화 속 호랑이처럼 잔혹하고 끈질기다.

비정규직 제도가 만들어질 때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노동자의 희생과 양보가 있었지만 국민의 삶의 질이 나아졌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성장의 과실은 대주주와 기업들의 몫으로 돌아갔고, 노동자와 국민들은 노동으로 삶을 영위하기도 벅찼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나라를 헬조선이라 부르고, 난파선에 탄 것처럼 항상 탈출을 꿈꾸는 것이다.

뉴스 보기가 무섭다

▲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8일 경기도 성남시 판교테크노밸리 판교역 광장에서 민생구하기 입법촉구 천만서명운동본부가 추진하는 경제활성화법 처리를 촉구하는 서명을 하고 나서 박용후 성남상공회의소 회장과 대화하고 있다. 오른쪽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 ⓒ 연합뉴스


우울증·불면증·신병비관 때문에 발생한 범죄의 바탕에는 노동으로 삶을 영위할 수 없는 절망이 있다. 또, 그 절망은 저렴한 노동을 성장의 땔감으로 쓰고자 하는 박근혜 정부의 노동정책과도 맞닿아 있다. 가판대에서 서명까지 해가며 또다시 쉬운 해고와 저임금 노동 정책을 강요하는 박근혜 정부. 그래서 정책 살인이라는 비난을 여전히 유효하다.

뉴스 보기가 무섭다. 가장이 처자식을 죽이고 아파트에서 뛰어 내린다. 얼굴도 모르는 젊은이들이 가상공간에서 죽음을 모의하고, 동반 자살을 위해 여행처럼 떠난다. 노인은 죽은 지 6개월이 지나 반백골로 발견되고, 1년간 공무원으로 거짓 출근을 해온 30대 취업준비생이 목숨을 끊었다.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는 기아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체감온도가 영하 25도까지 떨어진 광고탑에서 목숨을 부지하고 있다.

그러나 더 무서운 것은 이런 죽음의 행렬에도 아랑곳없이 쉬운 해고와 저임금을 강요하는 대통령의 다그침이다. 230일째(25일 기준) 고공에서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는 노동자의 외침은 외면한 채, 서명운동에 나선 대통령을 두고 "오죽하면"을 남발하는 언론도 무섭기는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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