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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포도, 미국 체리... 국내 포도농가 얼마나 당했나

걱정되는 농업의 미래... TPP 가입부터 막아야

등록|2016.01.27 10:53 수정|2016.01.27 10:53
지난 20년간 한국의 농업정책은 큰 틀에서 보자면 변화가 없었다. 대외적으로는 농산물 시장개방을 확대하는 정책이 일종의 상수처럼 작용하였고, 대내적으로는 시장개방의 확대에 편승하여 농업을 구조조정 하는 정책이 일관되게 추진되었다. 시장개방과 구조조정을 핵심으로 하는 농업정책의 골격은 김영삼 정부에서 박근혜 정부에 이르기까지 시기별로 세부 내용에서 약간의 변화는 있었지만 그 기조는 그대로 유지되어 왔다. 이러한 농정의 기조를 일반적으로 '신자유주의 개방농정'이라고 명명하고 있다.

농업과 농민에 미치는 영향력의 작동방식을 보면 구조조정보다는 시장개방이 더 우선순위의 규정력을 갖고 있다. 즉, 우선적으로는 시장개방의 확대에 따라 농업과 농민에 미치는 환경의 변화가 발생하며, 구조조정은 이와 같은 대외적 환경변화에 수동적으로 적응하기 위한 대내적 농업정책인 것이다. 초국적 자본과 국내 재벌·대기업 그리고 정부(수출주도형 성장전략)의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지점이 시장개방이며, 이것이 지금까지 농업을 포함한 경제정책의 일관된 상수로 작용했다.

그리고 농업의 구조조정은 정부에 의해 선택받은 소수의 정예 농가를 대상으로 경쟁력과 규모화 및 시설집약화를 지원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선택받지 못한 대다수의 중소규모 가족농은 퇴출의 대상이 되어 몰락의 길로 강제로 유도되었다. 다만 몰락의 속도를 조절하는 차원에서 직접지불제도, 제한적인 가격안정 정책, 각종 농가부담 경감 대책 등이 연착륙의 수단으로 도입되었다.

박근혜 정부는 2015년 쌀시장을 관세화로 전면 개방함으로써 쌀도 수입자유화가 이루어졌다. 그동안 유일하게 수입자유화의 대상에서 제외되었던 쌀마저 수입자유화가 이루어지면서 한국의 농산물 시장은 100% 수입자유화가 이루어졌다. 여기에 2015년에는 중국, 호주, 캐나다 등 농산물수출 강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도 잇따라 발효되거나 비준됨으로써 시장개방의 폭과 속도가 훨씬 더 가속화되었다. 그리고 정부는 다자간 자유무역협정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신규 가입을 사실상 내부적으로 결정한 상태에 있고, 조만간 공식 선언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명박 정부 이후 박근혜 정부에 이르기까지 정부는 농업 구조조정을 통한 집중 지원의 대상을 소수의 개별 전업농가로부터 점차 더욱 규모화된 극소수의 기업농으로 옮겨가면서, 수출농업과 ICT 융복합 스마트팜, 자본집약적인 시설농업으로 정책의 무게중심이 이동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식량자급률, 농가소득보전, 농산물가격안정 등과 같이 농업정책의 중심이 되어야 할 영역은 갈수록 그 중요성이 약화되고 있다.

시장개방과 구조조정을 핵심으로 하는 농업정책에서 농업·농촌·농민은 지속 불가능하다는 사실은 역사적으로, 경험적으로, 이론적으로 이미 현실에서 증명되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농업과 농민의 지속가능성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시장개방의 수레바퀴를 멈춰라

주지하다시피 한국은 지난 2002년 칠레와의 FTA를 시작으로 미국, EU, 중국,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등 주요 농산물 수출 강국들과 잇따라 FTA를 체결하였다. 그리고 지금 TPP 신규 가입을 추진하고 있다.

FTA의 수레바퀴를 멈추는 가장 우선순위는 TPP 가입을 막는데 있다. 일본과 미국의 의견대립으로 지지부진했던 TPP 협상이 2015년에 완전히 타결되었다. 현재 기존 12개 회원국은 자국 의회의 비준을 받은 후 2017년 1월 1일부터 협정문을 발효시킨다는 계획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부가 어느 시점에서 TPP 가입을 공식 선언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올해 내에 TPP 가입을 위한 공식절차를 '통상절차법'에 따라 진행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이 신규 회원국으로 TPP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협정문을 그대로 수용해야 한다. 농산물의 관세철폐 및 감축에 관한 사항은 미국 등과 맺은 FTA와 비슷한 수준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비관세장벽으로서 수입위생검역조건, GMO 등과 같은 사항에 대해서는 종전의 FTA 보다 더 높은 개방수준을 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서 TPP 가입에 따른 추가적인 농산물 시장개방 확대가 이루어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런데 TPP 협정문에 따른 시장개방 확대보다 더욱 심각한 위협은 소위 가입비(입장료)라고 불리는 것이다. 한국이 TPP에 신규 가입하기 위해서는 기존 12개국과 각각 양자협의를 거쳐 동의를 얻어야 하는데, 상대방 국가의 동의를 얻는 대가로 입장료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입장료 가운데 가장 우려되는 부분이 미국에 지불해야 할 쌀의 추가개방이며, 이외에 쇠고기의 추가개방, GMO에 대한 규제완화 등이 포함될 가능성도 매우 높다. 그리고 일본산 방사능 수산물 수입금지 조치 해제, 칠레산 391개 농수산물 품목 추가개방, 호주 및 베트남의 추가적인 쌀 개방 등도 포함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렇기 때문에 현 시점에서 FTA 수레바퀴를 멈추기 위한 최우선 순위는 TPP 신규 가입을 막는데 있다.

FTA에 대한 종합적인 피해영향 분석 요구

또 하나의 대응책으로 FTA에 대한 종합적인 피해영향 분석을 요구하는 것이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FTA를 체결한 나라이지만 FTA로 인한 농업분야의 종합적인 피해영향 분석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기껏해야 국회비준 과정에서 정부가 제시하는 개별 대책밖에 없다. 그러나 동시다발적 FTA 체결 및 발효 국면에서 개별 대책은 피해에 대한 정확한 진단도 아니고, 실효성 있는 대책도 될 수 없다.

예를 들면 FTA로 피해를 입은 대표적 품목 가운데 하나가 포도이다. 칠레와의 FTA로 인해 칠레산 포도 수입이 증가하면서 국내 포도생산 농가들이 피해를 입었고, 여기에 미국과의 FTA 발효 이후 미국산 체리 수입이 급격히 증가하여 포도 소비를 대체함으로써 국내 포도생산 농가들이 피해를 당했다. 즉 칠레와의 FTA로 인한 포도 수입 증가와 미국과의 FTA로 인한 체리 수입 증가로 인해 국내 포도생산 농가들이 피해를 당한 것이다. 그러나 그 피해가 어느 정도인지에 대해서는 그 어떠한 연구와 조사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미 수많은 FTA가 발효되어 동시에 적용되고 있고, 앞으로 시간이 경과할수록 기존 관세감축 대상 농산물의 관세 감축 폭이 더 커지고, 보다 더 민감한 주요 품목들도 점차 관세감축 및 철폐 대상에 포함되도록 되어 있다. 동시다발적 FTA로 인한 관세감축 및 철폐 대상 품목도 확대되고, 관세도 대폭 낮아지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동시에 작용하면서 국내 농업에 직접적인 피해와 연쇄적인 간접피해가 발생한다.

따라서 FTA로 인한 국내 피해에 대해서는 지금까지처럼 개별 FTA에 대한 피해분석으로는 이미 현실성이 결여되어 있고, 피해대책 역시 비현실적이기는 마찬가지이다. 모든 동시다발적 FTA를 포괄하는 종합적인 피해영향 분석이 필요하고, 그에 따른 피해대책 역시 종합적이며 입체적으로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의 장경호 이사입니다. 장경호 이사는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부소장이자 현재 건국대학교 경영경제학교 겸임교수입니다. 이 기사는 새사연 홈페이지(http://saesayon.org)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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