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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들이 논에서 이 돌을 치우지 않은 까닭

경남 진주시 이반성면 선돌을 찾아

등록|2016.01.29 16:59 수정|2016.01.29 16:59
해 바뀌고 벌써 한달이 쏜살같이 지나간다.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을 연어처럼 거슬러 올라가고 싶었다. 느린 숨으로 시간을 멈춰 세워 잠시 숨고르고 싶은 마음은 1월 27일, 밤 근무를 끝내고 시간의 들판에서 머무르다 왔다. 몇 천 년의 시간이 빚어낸 바위를 만나 '바위처럼 살아가보자' 다짐도 하고 강추위에 움츠러든 몸과 마음을 푸근하게 맡겼다.

▲ 경남 진주에서 옛 마산으로 가는 4차선 국도를 시원하게 따라 가다 경남수목원을 지나 이반성교차로에 못미쳐 대천리에서 빠져나오면 선사시대의 선돌 2개를 만날 수 있다. ⓒ 김종신


경남 진주에서 옛 마산으로 가는 4차선 국도를 시원하게 따라 가다 경남수목원을 지나 이반성교차로에 못미쳐 대천리에서 빠졌다. 굴다리 아래를 지나면 가을걷이 끝난 들에서 숨은 그림 찾기 하듯 서 있는 돌 2개를 발견할 수 있다.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177호인 선돌이다. 시멘트 농로를 사이에 두고 약 70m 간격을 둔 두 개의 바위는 국도 가까운 쪽이 여자 바위고 건너가 남자 바위다. 여자 바위는 밑바닥이 넓고 남자 바위는 키가 크다.

▲ 경남 진주시 이반성면 대천리 들판에서 숨은 그림 찾기 하듯 서 있는 돌 2개를 발견할 수 있다. ⓒ 김종신


차를 굴다리 근처 한쪽에 세워두고 들판 속으로 걸었다. 오른편 논에는 파릇한 보리들이 싹을 틔웠다. 초록빛이 좋다. 공룡알처럼 생긴 '생볏짚 원형 곤포 사일리지'가 들판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다. 볏짚 곤포사료는 소 사료로 사용할 볏짚을 말아 올린 것들이다. 우리의 김장 김치처럼 소가 겨우내 먹을 볏짚 김치인 셈이다. 시멘트 농로에는 소똥과 흙이 드문드문 붙어 있다.

▲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177호인 선돌이다. 시멘트 농로를 사이에 두고 약 70m 간격을 둔 두 개의 바위는 국도 가까운 쪽이 여자 바위고 건너가 남자 바위다. 여자 바위는 밑바닥이 넓고 남자 바위는 키가 크다. ⓒ 김종신


농기계가 논에서 작업하기 쉽게 만든 경사 진입로에 마치 트랙터처럼 육중하게 논으로 걸어 들어갔다. 수확도 끝난 들에 우뚝 서 있는 돌이 나왔다. 땅속에서 대지를 뚫고 나온 듯이 돌은 보는 위치에 따라 날카로운 칼 모양새이기도 하고 오동통한 고구마같기도 했다. 또한, 마치 하늘에서 툭하고 던진 게 60도로 박혀 있는 형상이다. 돌은 줄 그은 듯한 움푹 패인 흔적이 여럿있고 검버섯같은 시간의 훈장들이 붙어 있다.

▲ 선돌은 땅속에서 대지를 뚫고 나온 듯이 돌은 보는 위치에 따라 날카로운 칼 모양새이기도 하고 오동통한 고구마같기도 했다. 또한, 하늘에서 마치 하늘에서 툭하고 던진 게 60도로 박혀 있는 형상이다. ⓒ 김종신


11시 방향, 떠오른 태양을 바라보자 바위는 두 손 모아 간절히 기도하는 합장이 되기도 했다. 돌의 표면은 거무튀튀하면서도 말라버린 이끼들이 엉겨있어 돌 본연의 질감은 보이지 않았다. 돌 아래는 벼를 수확한 트랙터가 에둘러 지나간 흔적만 남아있다.

이렇게 드넓은 들판을 바둑판처럼 경지 정리를 하면서도 돌을 치우지 않았다. 무병장수를 비는 영험함이 깃든 이 돌은 마을의 풍년을 기원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석기와 청동기 시대 권력자의 무덤이기도 한 고인돌과 같은 큰돌 문화의 하나인 선돌(立石)은 묘의 영역을 나타내기도 하고 마을 입구에 세워 귀신을 막거나 경계로 삼았다고 한다.

▲ 11시 방향, 떠오른 태양을 바라보자 바위는 두 손 모아 간절히 기도하는 합장이 되기도 했다. ⓒ 김종신


가로의 들판에 전봇대가 세로 좌표를 그리고 있다. 좌표 사이로 돌이 서 있는 꼴이다. 선돌 뒤로 진주에서 창원(구 마산)으로 가는 4차선 국도가 보이고 그 뒤로 멋진 나무 한그루가 내려다본다.

여자 바위에서 남자 바위쪽으로 걸음을 옮겨 걸었다. 걸음 옮기는 동안 나도 모르게 노래패 꽃다지의 <바위처럼>을 흥얼거렸다. '바위처럼 살아가보자 모진 비 바람이 몰아친대도~.' 가을걷이 끝난 논이지만 초록빛 생명력을 틔우려는 몸부림이 이랑을 연두빛으로 물들였다. 결국 '~바위처럼 살자꾸나'를 몇 번이나 되뇌이고 끝냈다.

▲ 남자 바위 뒤로는 반성천(川)이 흐르는데 둑 여기저기에는 봄을 기다리는 봄까치꽃 무리를 만날 수 있다. 봄까치꽃들은 하얀 서리를 예쁘게 두르고 있다. ⓒ 김종신


남자 바위 뒤로는 반성천(川)이 흐르는데 둑 여기저기에는 봄을 기다리는 봄까치꽃 무리를 만날 수 있다. 봄까치꽃들은 하얀 서리를 예쁘게 두르고 있다. 하천은 꽝꽝 얼어붙었다. 갈대가 바람에 살랑살랑 몸 흔들자 저만치 들 한가운데 까마귀들이 먹이를 발견했는지 까악까악 소리를 내며 검은 색으로 덮었다.

▲ 남자 바위에서 여자 바위를 바라보자 마치 멋진 나무 한 그루와 삼각 관계를 만든다. 이룰 수 없는 사랑 이야기라도 들려줄 듯 햇살이 부드럽다. ⓒ 김종신


하천 둑에서 남자 바위를 바라보면 뒤편으로 높다란 고압전기 철탑이 키 재려는 듯 함께한다. 남자바위는 얼핏 직삼각형 자를 닮았고 한편으로는 주걱을 닮았다. 바위 위에는 지나가는 새들이 하얗게 배설한 흔적이 뚝뚝 묻어있다. 바위 위에서 삼각형 모양이 아래로 내려오다 가운데쯤에서 다시 엇갈린 삼각형이 이어붙은 듯 한몸이다.

▲ 바람이 쉬어가고 머나먼 세월이 굳세게 서있는 선돌을 품은 들판에서 푸근하게 머문 하루다. ⓒ 김종신


남자 바위에서 여자 바위를 바라보자 멋진 나무 한 그루와 삼각 관계를 만든다. 이룰 수 없는 사랑 이야기라도 들려줄 듯 햇살이 부드럽다. 햇살은 사랑이야기 대신 '고려 중기 때 두 개의 커다란 돌이 대동마을과 하촌마을 쪽으로 다음 도읍지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는데, 부엌에서 밥을 짓던 처녀가 이를 보고 막대기로 마당을 치자 돌이 멈추어 우뚝 서버렸다'는 전설을 들려준다.

바람이 쉬어가고 머나먼 세월이 굳세게 서 있는 선돌을 품은 들판에서 푸근하게 머문 하루다.
덧붙이는 글 경상남도 인터넷뉴스 <경남이야기>
진주지역 인터넷언론 <단디뉴스>
개인블로그 <해찬솔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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