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평생 봉사한 사람에게 봉사 명령 "박근혜는 설마 하는 걸 진짜 한다"

[인터뷰] 박래군 인권중심사람 소장

등록|2016.01.29 11:38 수정|2016.02.02 11:03

▲ '왕의 귀환'. 박래군 인권중심사람 소장은 권력자를 향한 비판에 사법의 칼날을 들이대는 현 정권의 모습을 이렇게 표현했다. ⓒ 남소연


"왕의 귀환이라고 생각한다. '유신의 귀환'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잘 모르더라고. 더군다나 젊은 친구한테는 정말 먼 이야기지. 그래서 왕의 귀환. 즉 민주주의 사회가 아니라 봉건 왕조로 (다시) 가고 있다고 이야기해. 남(한)과 북(한)이 그렇게 가고 있는 거 아니냐고."

박래군 인권중심사람 소장(55)은 권력자를 향한 비판에 사법의 칼날을 들이대는 현 정권을 이렇게 표현했다. 그리고 박 소장은 그 칼날 앞에 서있다.

그는 세월호 관련 집회 주도와 박근혜 대통령 명예훼손 혐의로 지난 22일 1심 재판에서 징역 3년, 집행 유예 4년, 사회봉사 160시간을 선고 받았다. 평생 사회에 봉사해 온 사람에게 법원이 또 다시 봉사명령을 내린 것이다. 사회봉사 시간을 채우려면 사실상 한 달 이상 활동이 어렵게 된다. 징역은 면했지만 결국 발목을 잡혔다.

"사회봉사라는 게 집회할 때 '사회'(진행)를 좀 보라고 하는 건가? 우리끼리 농담도 했어. 누구는 '가정에 봉사'나 좀 하라고 하고.(웃음)"

소리내 웃으며 말하긴 했지만, 박 소장의 얼굴은 그닥 밝아 보이지 않았다. 30년간 인권 운동가로 살아오면서 에바다 복지회 비리, 평택 미군 기지 이전, 용산 참사, 세월호 참사 등 역대 정권들의 민낯과 마주해 온 그였다.

박 소장은 특히 박근혜 정권이 인권 문제에 "이전 정부들에선 볼 수 없었던 행태를 많이 보여준다"라고 말했다. "'설마'하는 것을 진짜 한다"는 것이다. <오마이뉴스>는 28일 서울 마포구 성산동 인권재단 사람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대통령 비판 문제 삼는 것 자체가 문제"

- 이번 선고 결과에 어떤 생각이 들었나.
"결과보다 내용이 중요하다. 검찰은 계속 헌법에 보장된 '집회 시위 자유'를 인정하지 않았다. 공소장 전체가 다 그런 식이었다. 재판부도 사실상 그걸 그대로 수용했다. 집회와 시위가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정황들을 무시하고 법조문에 벗어나는 행위는 모두 유죄라고 판결했다. '집회 시위의 자유를 어떻게 보장한다'는 관점은 전혀 없었다. 시위는 아주 제한된 범위에서 이뤄져야한다는 관점만 있는 거다. 그 내용이 굉장히 심각했다."

- 이명박 정권 당시엔 용산 참사, 박근혜 정권에선 세월호 참사로 두 정권의 사법부를 경험해보셨다. 어떤 차이가 있나.
"(박근혜 정권에서) 더 악화되고 있다. 민주주의의 내용 중 중요한 하나가 사법부의 독립이다. 이게 민주화 이전으로 급격히 후퇴 된 거다. 공안 쪽이 비대해진다는 건 (사법부를) 권력의 시녀로 부린다는 뜻이다. 권력이 자기 맘대로 검찰의 힘을 부린다는 것. 그런 행태를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 약화시켜왔는데... 이명박, 박근혜 정권에서 정권을 위한 검찰로 만들어왔다. 사법부가 영장을 발부할 때 (집회 시위 결사의 자유) 이런  걸 걸러줘야 인권을 지키는 보루로 역할을 할 텐데, 그런 걸 기대하기 굉장히 어려운 상황이다."

- 박근혜 정부 들어서 권력을 향한 '표현의 자유'가 더 위축됐다는 비판도 많다. 대통령 명예 훼손으로 고발, 기소된 사례가 많아진 것도 그렇다. 피부로 느껴지나.
"느껴진다. 대통령한테 안 좋은 소리를 하면 어떻게든 추적해 뭔가를 걸어 버린다. 명예훼손도 그런 건데. 산케이신문(의 가토 다쓰야 전 서울지국장)도 결국 무죄를 받긴 했지만, 창피한 짓이다. 기사를 그렇게 쓰면 반론권을 제기한다든지 그러면 되는 거다. 언론인도 고발한다는 걸 보여주면서 (비판의지를) 위축시킨다.

민주주의 사회에선 통치자를 비판하는 것을 훨씬 더 허용해야 한다. 비판을 문제 삼는 것 자체가 문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표현의 자유는 그 사회에서 주류적인 것에 반대하는 걸 허용하는 것이다. 그 사회의 적도 말을 할 수 있게하는 거다. 제한할 때는 엄격한 기준에 의해서만 제한해야 한다. 인종 차별, 전쟁 선동 등, 우리는 그게 안 되잖아. 대통령부터 나서서 전쟁을 선동하고."

포승줄 묶인 인권운동가 박래군세월호 참사 추모집회를 주도한 혐의로 구속된 박래군 4·16연대 상임운영위원이 포승줄에 묶인 채 지난해 7월 22일 서울 종로경찰서를 나서 서울중앙지방검찰청으로 향하고 있다. ⓒ 남소연


- 지난해 7월 구속 당시 포승줄에 묶이지 않았나. 참혹할 만큼 표정이 안 좋더라.
"연기는 아니었다(웃음). 그때는 수갑 차는 게 너무 싫더라. 금속성 수갑을 하고 밧줄에 묶이는 게 너무 싫었다. 2006년 평택 대추리 (미군기지 이전 사건 당시) 당시 영장 심사를 받으러 갈땐 사람들 앞에서 수갑차고 '와아-' 웃어보이기도 했는데. (작년 구속 땐) 기분이 더럽더라.

또 건강 상태가 너무 안 좋았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이후로 국민대책위 만들어 오면서 몸 관리를 못하고 살아온 거다. 종로서 유치장에 있으니 잠만 오더라. 사람이 왜 기가 빠졌다고 하지 않나. 책 보다가 잠들어 버리고... (유치장에 있는) 일주일동안 그 상태가 거듭 됐다. 참혹이라기보단 지쳐있었던 거지."

"지쳤었다"라고 말하는 그의 눈두덩 위로 피로가 잠깐 내려 앉는듯했다. 하지만 용산 참사, 쌍용차 사태, 세월호 참사 등 아직 미결로 남은 그의 과제들을 이야기할 때 박 소장의 눈은 다시 커졌다. 용산 참사의 현장 '남일당' 건물을 남기지 못한 슬픔을 토로할 때도, 참사의 책임을 요구해왔던 김석기 전 서울경찰청장의 출마 소식에 분노할 때도 그랬다(관련 기사 : "용산 참사 해결 못해 세월호 희생 이어져").

- 용산참사가 일어난 지 벌써 7년째다. 옛 남일당 건물 자리는 주차장이었다가 이제 건물을 짓겠다고 공사에 들어갔다고 하더라.
"남일당 건물 터를 어떻게든 남겼어야 했는데 싶더라. 사실 그렇게 하기 위해 엄청 노력을 해왔는데, 그 터조차 없어지면 정말 사람들이 다 잊을까봐 걱정 된다. 그곳이 어떤 곳인데. 화염으로 사람을 태워죽인 곳인데. 가장 끔찍한 국가 폭력의 현장이잖아. 사람들이 죽어 내려오고나서, 356일 온갖 수모 겪으면서 그 현장을 지켜왔거든. 사람들은 누가 죽어내려왔다는 것만 기억하는데, 1년 가까이 거길 지켜낸 힘을 봤으면 좋겠다. 가난한 사람들의 연대. 이건 어쩌면 우리 사회에 마지막 희망같은 거다. 이런 것들이 거기 있었다. 그런 곳이 없어진다고 하니까 참담하다."

- 당시 서울경찰청장이었던 김석기 전 청장이 경주에 출마한다는 소식 봤을 거다. 용산 참사 유족들도 경주로 내려가 항의하기도 했고. 책임 당사자가 아직 반성이나 책임을 느끼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온다.
"(김석기 청장은) 진압 작전에도 사인하고 지시한 사람인데, 거기에 책임 없다는 것 자체가 무책임한 거다. 이걸 다 밑에 사람에게 (전가) 하는 거야. 세월호 문제와 같다. 결국 말단만 책임진다. 김석기 청장은 공권력만 강조하고 사과 한 번 제대로 안 했잖아. 해결된 게 없는 일인데. 경찰 한 명이 죽은 것에 대한 책임을 철거민한테 묻는 거야. 그럼 철거민 다섯명 죽은 건 뭔가. 아무리 불법 행위를 했더라도 패죽여서는 안되잖나. 분명히 사람들이 죽었는데, 여기에 대해 아무도 책임 지지 않는 거지. 책임지는 모습은커녕 정당한 공권력을 행사했다고, 되레 국민을 지켰다고 억지를 쓰고 있으니까. 유가족 속이 썩는 거다."

-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에게 복직의 길이 열렸다. 쌍차 투쟁, 잘 마무리 됐다고 보나.
"마무리라고 볼 순 없다. 노동 현안 중에서도 쌍차가 각별한 건 이명박 정부 때 용산참사와 비슷한 방식으로 (탄압한) 이미지가 있어서다. 컨테이너를 크레인으로 끌어 특공대가 잔인하게 진압하는. 당시 수배 중일 때였는데, 다 내려가자고 했어. 아는 신부님과 목사님한테도 부탁하고. 별 수 없으니까. 정말 안타까운 거야. 저 심정이 어떨까. 안에서 단전 단수된 노동자들, 당시 한상균 쌍차지부장은 용산처럼 (진압하니) '사람이 죽을 수 있다는 공포감이 이렇게 크구나' 느꼈다고 해.

그때 빚진 마음이 드는 거다. 용산 참사 때 제대로 (경찰 공권력 남용에) 브레이크를 걸었다면 저렇게 생각하지 않을 텐데. 용산에서 사과하지 않은 것처럼 쌍차에서도 마찬가지로 책임자가 사과하지 않았고. (경찰의 공권력이) 고삐풀린 망아지처럼 돼버린 거다. 그 상황이 백남기씨(사태)까지 온 거고. 용산 유가족들이 백남기씨 딸을 만나서 그때 자기들이 잘못해서 이런 일이 또 벌어졌다고,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피해자가 피해자를 위로하는 게 말이 되냐고.

쌍차는 공권력이 노동자를 어떻게 대하는지 보여준 적나라한 사례다. 이번에 (노노사 합의가 타결된 걸) 보면 아름다운 게 있다. 비정규직부터 복직하는 거다. 이걸 맨앞에다 내걸고 합의했다고 하더라. 비정규직 중 여섯 사람은 들어가서 정규직이 되는 거다. 하지만 쌍차 문제는 아직 안 끝났다. 기업 노조가 아닌 지금의 쌍차 노조가 회사 안에서 노조 사무실을 차리는 모습이 보고 싶다. 그때가 되면 날 초대해 달라고 했어(웃음). 그러면 끝났겠다 싶다."

"곁에 있어주는 것, 함께 손잡고 같이 분노하는 것"

▲ 박래군 소장은 인권 운동가로 살아오면서 에바다 복지회 비리, 평택 미군 기지 이전, 용산 참사, 세월호 참사 등 역대 정권들의 민낯과 마주해왔다. ⓒ 남소연


박래군 소장은 공권력 남용의 현장들을 목격하면서 '힐링' 보단 '곁에 있기'를 먼저 떠올렸다.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이 연이어 목숨을 끊을 때도, 마음의 상처를 단순히 치유하기보단 곁에서 '당신이 잘못한 것이 아니다, 당신의 행동은 정당하다, 공권력이 그것을 짓밟은 거다'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늘어나길 바랐다. 그 조건은 무엇보다도 구조의 변화였다. 박 소장은 돈만 우선하는 지금의 신자유주의 구조에선 완벽한 치유는 없다고 거듭 말했다.

- 공권력에 상처 받은 사람들, 이들을 위한 '치유'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힐링'이 갖고 있는 한계는 분명하다. (피해를 당한) 사람들이 제대로 힐링 되려면 자기들이 정당했다는 걸 확인하고 싸움에서 승리해야 한다. (치유) 전문가들이 오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완벽히 힐링은 못한다. 사회 시스템 전체가 변하고 열려야 한다. 신자유주의는 사람을 내몰아 내가 인간이길 포기하게 만든다. 먹고 사는 문제와 인간으로 사는 문제를 선택하게 한다. 구조를 바꾸지 않은채 '힐링'을 하면 잠시 살 수 있는 힘은 얻겠지만 궁극적인 변화는 이루지 못한다."

- 세월호 문제도 마찬가지 아닐까.
"트라우마 치유는 완치가 불가능하다. 딴 게 필요한 게 아니다. 곁에 있어주는 것. 그 사람들과 손을 잡고 같이 울어주고 분노하는 거다. 당신들의 잘못이 아니라고 계속 이야기해주는 거다. 이게 유일한 방법이다. 세월호 유가족에겐 서로 지지하고 기대는 내부 구조도 있지만, 바깥에서 응원하는 시민들도 있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사실 정말 고마운 사람들이다.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더 나아가 안전 사회를 만들자는 것까지, 자기들이 목표를 설정했다. 억울한 게 검찰이나 공안 당국은 내가 (세월호 유가족의) 배후라고 하는데, 아니다. 세월호 싸움엔 피해 당사자들이 그 중심에 서 있다. 그들이 제기하는 문제에 우리가 같이 하는 거다."

- 기아 사내 하청 노동자인 한규협과 최정명씨가 옛 국가인권위 건물에 올라간 지 벌써 200일이 훌쩍 넘었다. 노동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인권과도 맞닿아 있는데. 한국의 인권 상황, 전반적으로 평가한다면?
"심각하다. 계속 후퇴하고 있다. 그간 희망의 근거라고 만들어 온 것도 다 깨지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의 인권 현장에서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두 가지다. 불평등 심화와 차별에 의한 혐오. 앞에 것은 계속 심화돼 왔고, 차별에 의한 혐오는 이제 시작되고 있다.

신자유주의는 노동 시장을 유연화하면서 계속 서열화, 위계화할 거다. 개인과 개인이 싸우게 만들고, 결국엔 자기 자신과 싸우며 자해하게 만든다. 반대 편 사다리는 못 올라간다고 생각하게 된다. (갇힌) 우리 속에서 나보다 약자인 사람을 문제 삼는 거다. '네가 성소수잔데, 혹은 장애인인데 나랑 똑같이 대우 받겠다고?' 이런 식이다. 표현의 자유와 집회 시위의 자유도 보장받지 못하고. 결국 (한규협, 최정명씨의 경우처럼) 망루에 올라가는 거다."

- 그런 문제들을 정치로 풀어야한다고, 거리의 동지라 할 수 있는 권영국 변호사, 박주민 변호사도 정치에 참여하기 시작했다(관련 기사 : 노무현 닮은 거리의 변호사, "나를 보지 마세요").
"(정치로 풀어야 한다는 말에) 나도 동의한다. 기존 정당에 들어가 문제를 풀 수 있는 동력을 만들겠다는 건 좋은 것 같다. 하지만 박주민은 아닌데... 우리 손실이 너무 커. 대체 불가의 인물인데(웃음).

어쨌든 잘 돼야한다. 세월호 참사 이후 정말 정치에, 특히 야당에 환멸을 느꼈어. 어떻게 저렇게 무기력할 수 있을까 싶어서. 힘 없다고 이해해 달라는 야당 의원들 보면서 유가족들은 얼마나 성질이 났을까. 세월호 이후 전국 돌아다니면서 정치를 욕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비난도 많이하고. 그런데 결국 정치가 개판인만큼 정치를 복원해야 한다는 갈망도 큰 걸 확인했다. 힘있는 새로운 정당을 만드는 것도 중요한데, 잘 될지는 모르겠다."

"좋았던 날 별로 없지만, 그래도 이 일이 좋다"

▲ 박래군 소장은 공권력 남용의 현장들을 목격하면서 '힐링' 보단 '곁에 있기'를 먼저 떠올렸다.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이 연이어 목숨을 끊을 때도, 마음의 상처를 단순히 치유하기 보단 곁에서 '당신이 잘못한 것이 아니다, 당신의 행동은 정당하다, 공권력이 그것을 짓밟은 거다'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늘어나길 바랐다. ⓒ 남소연


"정치할 생각 없나"라는 말에 그는 "이게 내 정치하는 거다"라고 말했다. 인권 운동가로 살기 시작한 1980년 후반부터 지금까지, 박래군 소장이 주목해 온 한국 사회의 '참사' '사태' '사건' 속에서 고통받는 범주는 늘 한결 같았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내몰리고 쫓겨나고 매맞고 억울하고 어려운' 사람들이었다.

"좋았던 날이 있었나"라는 질문에 "별로 없다"고 고민 없이 답하는 그였다. 그는 인권 운동가의 삶을 고해 성사를 들어주는 신부의 삶에 비유했다. 그럼에도 박 소장은 그의 일이 "좋다"고 말했다. 이유는 설명할 방법이 없다면서. 그는 인터뷰 말미, 스스로 세운 '5개년 계획'도 들려줬다. 55세, 30년차 인권운동가 박래군이 주목한 한국 인권 운동의 변곡점은 역시 '세월호 참사'였다.

"세월호 참사가 정말 마지막 기회다. 이걸 놓치면 우리 사회는 더 타락한다. 이게 방파제 역할을 할 거다. 여기서 무너지면 더 지옥으로 가는 거다. 총선 때도 세월호 문제를 이슈화하려고 한다. 우리 힘이 약하니까, 그 힘을 어떻게 만들까 고민한다. 유동적인 정치 정세에 흔들리지 않고 우리가 주동적으로 만들 수 있어야 한다. '박근혜 정권 퇴진' 구호, 좋지만 이 구호는 소비되고 만다.

그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위협을 느낄 정도로 힘을 가지고 싸워야 한다고 본다. 정치적인 구호가 아니라 실제로 실행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다. 4.16연대를 전국적 네트워크로 만들고 지역 거점을 만들 계획이다. 우리 사회를 밑바닥에서부터 바꾸는 거다. 5년 동안 이 문제와 인권 운동의 전망도 찾아보려 한다. 인권운동가들, 정말 열악하다. 최저생계비도 못받고... 지속적인 운동의 조건을 만드는 게 앞으로의 내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