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백남준 10주기 추모전, 책 100권보다 낫다

'백남준, 서울에서' 갤러리현대에서 4월 3일까지

등록|2016.02.03 10:06 수정|2016.02.03 11:57

▲ '보이스추모굿' 장면이 대형화면으로 설치된 갤러리현대 입구 ⓒ 김형순


국립미술관도 못하는 대규모 전시

이번 백남준 10주기 추모전은 1990년 그의 생일 7월 20일에 갤러리현대 뒷마당에서 펼친 '보이스 추모굿'과 7월 30일부터 8월 20일까지 개최된 '늑대의 걸음으로 서울에서 부다페스트까지'를 재현한 것으로 갤러리현대(신관)과 현대화랑(본관) 2곳에서 60일간 열린다.

백남준과 갤러리현대의 인연은 1983년 프랑스 김창열 화백의 아틀리에에서 시작되었다. 백남준과 김창열은 친구였고 박명자 갤러리현대 회장이 거기에 갔다가 백남준을 만나 그에게 함께 일할 것을 제안해 성사된 것이다. 개막식에 바이올린을 부수는 김창열 퍼포먼스가 열린 이유이기도 하다.

▲ 백남준 I '잡동사니 벽(Junk)' 복합매체 1995 ⓒ 김형순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갤러리현대(신관) 2층에서 볼 수 있는 '잡동사니 벽'다. 백남준이 쓰러지기 1년 전인 1995년에 독일 '폴프스버그(Wolfsburg)미술관'에 전시된 작품으로 우리나라에서 이번에 처음으로 소개되었다.

백남준 10주기 국제심포지엄 참가 차 입국한 독일의 백남준 조수이자 물리학을 하고 뒤셀도르프미대를 졸업한 백남준 제자였던 '요헨 자우에라커'가 직접 설치했단다.

그 스케일과 기묘한 배치를 직접 보면 놀랄 것이다. 우리나라 가마나 자동차나 코끼리도 보인다. 동서양 이동수단의 역사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 백남준의 평생 주제인 '유통, 교통수단, 네트워크, 커뮤니케이션' 등 소통과 관련이 있음을 바로 알 수 있다.

백남준의 전자굿, 뉴 샤머니즘

▲ 백남준이 쳘친 1990년 '보이스추모굿'의 한 장면. 기존굿과 다른 점은 피아노와 TV가 등장한다는 점이다 ⓒ 갤러리현대


백남준의 굿은 그냥 굿이 아니고 선사시대로 부터 내려오는 전통과 포스트모던, 첨단과학의 정신을 융합한 계보가 있는 '신문명 굿'이다. 선시시대와 첨단문명은 사실 거리는 멀지만 결국은 생명의 원천을 찾아가는 긴 여정이라는 면에서 보면 같은 것이다.

21세기에 굿이 필요한 것은 바로 하이테크가 할 수 없는 굿이 가지고 있는 '원시적 생명력' 그리고 산 자와 죽은 자도 만나게 하는 미디어의 극치인 '신통'의 세계를 열어주기 때문이다. 신통이란 신(神)마저도 통한다는 뜻으로 영어로는 'meta communication'라고 번역할 수 있을 것이다.

백남준의 굿이 기존의 굿과 다른 점은 전자기술의 산물인 TV가 들어온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전자굿'이 된다. 그런데 여기서 또한 TV는 독불장군 같이 일방소통방식을 뜻할 수 있도 있다. 그런 방식을 해체시키겠다는 의도가 그 속에 담겨 있다.

그리고 서구 중산층 교양의 상징인 피아노도 들어와 있는데 그게 쓰려져 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이건 우리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서구적 근대성 숭배를 파괴하는 속셈이리라.

백남준은 보이스 추모굿을 벌리기 전에 무지막지하게 생긴 관상수 커터기로 처마에 있는 뭔가를 자르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건 백남준의 '단(斷)의 철학' 즉 익숙하고 낡은 것과의 이별이나 차단을 뜻한다. 이런 예로 백남준은 독일에서 이미 권위적인 구음악(Alte Musik)을 거부하고 몸으로 연주하는 신음악(Neue Musik)을 시도한 바 있다.

백남준의 굿은 이처럼 전통굿을 현대화하고 세계화한 '뉴 샤머니즘'이다. 백남준이 쓴 갓과 보이스가 쓴 중절모자, 동양의 요강과 서양의 피아노가 절묘하게 만나게 된다. 노이즈에 가까운 격렬한 사운드와 움직임으로 시공간을 압도한다. 카오스와 코스모스, 원시와 문명이 그 경계를 넘어 천지인이 하나 되는 세상을 연다.

▲ 백남준 굿은 TV가 들어간다. 'TV촛불'도 보인다. 소멸의 미학을 보여준다 ⓒ 김형순


백남준의 비디오아트는 위 TV촛불에서 보듯 소멸의 미학이다. 촛불이 꺼지면 다시 불을 붙여줘야 한다. 백남준 작품을 끝도 없이 관객의 참여를 요구한다. 끝까지 수리를 해주고 보살피고 부속품을 갈아주고 관심과 애정을 주지 않으면 소멸해버린다. 그런 면에서 비디오는 회화와 다르게 참으로 까다로운 애인 같은 예술이다.

백남준의 추모굿 제목으로 '늑대걸음'이 들어가는 건 그의 야심찬 말 "짐은 황화[黃禍]다"와 같은 문맥이다. 늑대걸음으로 살살 서구예술계를 쳐들어가 그들은 다 쓸어버리겠다. "돈 한 푼 없이 세계를 뒤엎어놓았으니 얼마나 재미있냐!"라고 한 그의 말이 딱 맞아떨어진다.

이런 굿을 보면 "예술은 페스티벌, 잔치야. 왜 우리의 굿 있잖아. 나는 굿쟁이고 여러 사람이 소리를 지르고 춤을 추도록 부추기는 광대나 다름없지. 내 예술철학은 이렇게 관념을 무너뜨리는 거지. 수직이 아닌 귀납, 획일성을 막기 위해 자유스런 작업을 하는 민중이 춤을 추도록 대중 속으로 파고들어 가는 거지"라고 한 백남준 말이 생각난다.

장 폴 파르지에 영상, '백(남준)의 마술'

▲ 백남준 삶과 예술을 조명한 영상 '백남준의 마술(Play It Again Nam)'을 보고 있는 이우환화백.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 백남준과 이우환, 누가 우월하고 열등하고를 떠나 이우환에게 백남준은 너무 큰 작가이다 ⓒ 김형순


이번 전시의 2번째 하이라이트는 갤러리현대 2층에 선보이는 '장 폴 파르지에'가 연출한 '백남준의 마술(Play It Again Nam)'이다. 여기에는1990년에 찍은 보이스 추모굿을 중심으로 하고 있지만 백남준의 가계도부터 그의 비디오아트의 생성되기까지의 정보가 다 담겨 있다.

이 영상은 백남준아트센터 등에서도 소개된 적은 있지만 이 영상을 찍은 바로 그 현장인 갤러리현대에서 다시 보게 된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이 작품을 만든 '장 폴 파르지에(Jean Paul Fargier)'는 프랑스 영상작가이고 백남준 전문가이고 오랫동안 파리 제8대학에서 백남준 '비디오론'을 강의해 왔다. 그 이전에도 한국에 여러 번 초대받아왔지만 이번에 백남준 작고 10주기를 맞아 갤러리현대로부터 초대받은 것이다.

백남준의 연기력을 최대로 끌어올린 이 영상은 백남준 책 100권(?) 읽은 것보다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백남준은 이 영상을 보고 파르지에에게 너무 마음에 든다고 말했고 이건 내 얘기라기 보단 당신이 만든 픽션 같은 예술품이라고 평가했단다.

"백남준은 당신에게 어떤 존재냐?"고 물었더니 그는 나에게 "백남준은 천재이다. 그리고 나의 어머니(Ma mère)다"라고 해 놀랐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인터뷰를 보면 바로 이해가 된다.

▲ 백남준 I '샬럿 무어먼' 1990 ⓒ 김형순


현대화랑(본관)에서는 백남준의 'TV로봇'과 '조각시리즈'(1986-1999)를 선보인다. 백남준은 인간과 기계를 한 가족으로 본다. 1964년 아베와 함께 처음으로 만든 '로봇 K_456'를 봐도 그렇다. 이 로봇은 오페라도 부르고 로봇 몸에 콩을 넣어 인간처럼 배설도 한다. 백남준은 이렇듯 TV에 호흡과 생명을 불어넣듯 로봇도 그런 개념으로 만들었다.

또 '로봇가족'의 우두머리 격인 그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볼 수 있고, 그의 가족만 아니라 그에게 너무 중요한 인물로서 멘토 역할을 한 '존 케이지'와 하늘이 내린 백남준의 영원한 예술 파트너 '샬럿 무어먼'을 로봇으로 변형시킨 작품도 볼 수 있다.

장 폴 파르지에는 백남준의 예술에서 샬럿 무어먼의 역할을 크게 평가한다. 이 미(美)의 여신이 없었다면 백남준의 비디오아트는 성공 불가능했다고 봤다. 샬럿은 줄리아드 출신의 재원이나 첼로를 연주할 때 악기로 하는 게 아니라 '브라TV'에서 보듯 백남준 의도에 따라 누드를 한 채 몸을 던져 연주한다. 그래서 이걸 '신체음악'이라고도 한다.

백남준 작고 10주기 다양한 추모행사

▲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백남준 국제심포지엄 1부(위 사진) 국제심포지움 2부로 백남준 워크숍하는 모습(아래 사진) 아래 왼쪽부터 독일에서 조수를 한 요헨 샤유어라커(유럽담당),미국 신시내티에서 '백남준 공장' 작업한 마크 파스팔마크교수(TV공학), 폴 게린 작가(비디오편집), 한국 아트마스터대표 이정성(전자공학), 백남준 레이저 작업에 협업한 노만 발라드(레이저) ⓒ 김형순


백남준 작고 10주기 맞아 '백남준문화재단'과 '백남준아트센터'에서 행사가 있었다.

우선 백남준문화재단 주최로 지난달 27일 오후 1시 반부터 5시 반까지 서울시립미술관 SeMA에서 국제심포지엄을 열렸다. 제목은 '백남준 테크니션 3인에게 듣는다/묻는다'이고 부제는 '백남준 비디오조각 보전과 뉴미디어아트의 미래'였다.

이번 국제심포지엄으로 30년간 백남준 조수로 국제적 협조자로 일한 테크니션 5인이 다 모였다. 한국 '이정성' 아트마스터대표(전자공학), 미국 신시내티에서 '백남준 공장' 작업한 '마크 파스팔마크' 교수(TV공학), '폴 게린' 작가(비디오편집), 독일에서 조수였던 '요헨 샤유어라커'(유럽담당), 백남준 레이저 작업에 협업한 '노만 발라드'(레이저)가 그들이다.

백남준 라이프스타일 중 빼놓을 수 없는 게 '신의를 바탕으로 한 우정의 철학'인데 백남준은 생존 시 이 국제적 조수와 함께 30년간 동고동락했다. 백남준이 작고한 지 10년이 지난 지금 이들은 '백남준 가족'이 되었고 그의 작품 보존을 위한 위해 정보 교환을 물론 기술과 노하우를 공유하면서 국제적 협력시스템을 구축해 그 대안을 찾고 있다.

그리고 다음날 28일오후 2시부터는 재능문화센터(JCC)에서 워크숍이 있었다. 여기엔 국립현대미술관 관계자, 백남준 작품을 소장갤러리 관계자, 컬렉터, 애호가, 작가, 학생이 모여 백남준의 작품의 보전을 위한 열띤 토론이 있었다.

비디오작품은 언제나 고장이 나게 되어 있어 부품은 계속 교체돼야 한다는 걸 전제하다면 여기서 중요한 건 우리가 좀 더 장기적 보전방식을 고민해야 하고 백남준 작품의 창의성과 그 아이디어에 주목해야 한다고 한 '요헨 자우에라커' 의견에 거의 동의했다. 다만 작품에 따라 처리방식이 달라야(case by case)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여기서 주목할 만 것은 백남준은 이런 비디오아트의 문제점을 알았기에 미리 하드웨어 교체가능, 호환가능, 골조제작 등 '매뉴얼(NJP Declaration)'을 마련해 조수에게 전달했다. 그걸 받은 사람은 백남준이 80년대 말 칼 솔웨이(Carl Solway) 갤러리와 인연을 맺고 백남준 팩터리(Paik's Factory)에서 같이 조수로 있했던 '파스팔마크' 교수다.

그날 워크숍에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다다익선 담당자가 왔고 잦은 고장과 과다한 유지비로 어려움이 겪는다는 정보교환도 있었다. 이 대안으로 전기료를 75% 줄이는 방안을 폴 게린 작가가 제시했다. 또 매해 500억을 쓰는 국립미술관에서 백남준이 작고한 지 10년이 되도록 도록 한 권, 전시 한 번 없었다는 건 문제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 백남준연구가 '장 폴 파르지에' 백남준사진 앞에서 코믹한 포즈를 취하다 ⓒ 김형순


- 백남준은 언제 처음 만났나?"
"1978년 12월 파리 미국문화센터에서 처음 만나고 1979년 4월에 백남준 사진을 표지로 시네마수첩(Cahiers du Cinéma 1951년 창간된 권위 있는 영화·영상잡지) 백남준 글을 기고했다. 그걸 기초로 1989년 아르 프레스(ART PRESS) 출판사에서 <백남준>이라는 책이 나왔다. 올 7월에 그 증보완결판이 나올 예정이다."

- 당신에게 백남준은 어떤 존재인가?
"그는 천재였고 모성이 강한 나의 어머니였다. 왜냐하면 내가 그에 대한 책을 쓸 때 지혜의 여신처럼 자상하게 돌봐주고 이끌어줬다. 백남준은 언제나 페미니스트들이 좋아하는 방식을 취했다."

- 백남준은 왜 서구에게 유명한가?
"그는 풍부한 상상력과 서구인을 압도하는 지성과 기상천외한 유머로 서구인을 웃겼기 때문이다."

- 당신은 파리8대학에서 '백남준 비디오론'을 강의해 왔다. 지금도 계속하는가?
"이젠 은퇴해 다른 젊은 교수가 나를 대신하고 백남준 비디오론을 강의하고 있다."

- 당신은 영상에서 그의 에로티시즘과 맑시즘도 언급했는데?
"백남준은 그의 작곡에 누드 도입을 좋아했다. 샬럿 무어만은 이 퍼포먼스를 파리와 뉴욕에서 능수능란하게 소화했다. 백남준은 비디오의 컬러(色)를 섹스의 기능으로 봤다(색즉시공). 백남준이 TV코뮌을 중시한 건 모든 사람이 정보와 지식을 공유할 때 소외가 없고 인간해방이 온다고 본 것 같다."

▲ 현대화랑(본관)에는 피터 무어가 찍은 백남준 관련사진을 전시하고 있다. 그 중 샬럿 무어먼이 비닐옷을 입고 연주하는 모습. 뒤로 백남준이 보인다 ⓒ Peter Moore


- 야생적 사유를 강조한 '레비-스트로스"와 백남준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
"레비-스토로스는 야생적 사고를 이론으로 펼쳤지만 백남준은 그것은 온몸으로 실천했다."

- 백남준 굿이 기존의 굿과 다른 점은 뭔가?
"백남준은 전통적 비주얼 개념을 넘는 상징적 오브제를 통해 현대미술을 변화시키려 했다. 그리고 피아노와 수십 대 TV모니터도 활용했다. 그리고 그는 굿에서 모든 종류의 음악 즉 쇼팽, 모차르트, 쇤베르크, 한국 전통음악 도입했다. 모든 음악을 이미지로 바꾸는 귀재였다. 그런 걸 촉발시키고 재결함해 하나로 융합했다."

- 백남준이나 보들레르, 다 견자(voyant)였다. 백남준도 그의 영향이 있었다?
"보들레르가 상징적 언어로 자연을 소재로 해서 색채와 소리와 향기를 넣었다면 백남준은 문명을 소재로 해서 전자이미지(images électroniques)로 색채와 소리와 향기를 넣었다."

- 미래학자 '자크 아탈리'와 백남준 또한 어떤 관계인가?
"'자크 아탈리(J. Attali)'의 '디지털 노마드'론이 종잡을 수 없을 정도로 왔다 갔다 했지만 백남준은 일관성 있게(contuinité) 시공간을 뛰어넘어 유비쿼터스한 유목적 삶을 구체적으로 실천했다."

- 백남준은 절칠한 친구인 '보이스 추모굿'을 벌렸다. 두 예술가의 차이는?
"내가 볼 때 백남준과 보이스의 예술가투쟁에서 백남준이 이겼다. 왜냐하면 백남준은 마이너스 셔먼이고, 보이스는 플러스 셔먼인데 백남준이 더 파워풀했다. 백남준은 동서의 문제를 고민했지만 보이스는 서양의 문제만 고민했다. 그런 면에서 백남준은 한 수 위다."

- 백남준은 "내일은 아름다울 것이다"라고 말했는데 마무리 발언 한 마디 한다면?
"백남준은 미디어의 농간에 놀아나지 않는 미디어역할을 하는 예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

덧붙이는 글 서울시 종로구 삼청로 14번지 갤러리현대(02-2287-3500) www.galleryhyundai.com 입장무료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