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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만5천원짜리 건강식품, 어떻게 49만원에 팔렸나

[추적] 홍보관 통해 노년층 대상으로 사기상술, 피해자들 집단소송 예정

등록|2016.02.02 20:58 수정|2016.02.04 19:30
인천에 사는 60대 주부 김아무개(61)씨는 지난 2013년 한 홍보관에서 홍경천골드(아래 '홍경천') 10상자를 구입했다. 구입가가 총 490만 원(10상자×49만 원)에 이르는 고가 건강기능식품이지만 이것을 산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평소 공황장애를 앓고 있었고, 변을 잘 보지 못했고, 연탄가스를 많이 마셔 쓰러진 적이 있었던 김씨는 홍경천 유통·판매업자인 황선옥 N&S 대표와 개별상담했다. 스님처럼 옷을 입은 황 대표는 상담하러 온 김씨에게 "연탄가스를 많이 마셔서 치매가 올 수가 있다", "장이 좋지 않다", "공황장애가 있다" 등 족집게 같은 말들을 늘어놓았다.

이어 황 대표는 "홍경천을 복용하면 치매, 공황장애, 장 등이 좋아질 수 있다"라며 "다른 사람과 달리 연탄가스를 많이 마셨기 때문에 홍경천을 많이 먹어야 한다"라고 홍경천 구입을 권했다. 족집게처럼 자신의 질환을 정확하게 알아맞춘다고 생각한 김씨는 "남편이 당뇨, 고혈압, 고지혈증 등이 있다"라고 털어놓았고, 황 대표는 "홍경천을 꼭 많이 먹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족집게' 같은 말에 이끌려 자신과 남편이 먹기 위해 홍경천 10상자를 490만 원에 구입했다. 이후 김씨 부부가 같이 홍경천을 복용했지만 질환이 호전될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들에게 남은 것은 갚아나가야 할 수백만 원의 물품대금뿐이었다. 특히 황 대표가 김씨의 질환을 족집게처럼 알아맞춘 것도 사전에 홍보관으로부터 관련정보를 제공받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 황선옥 대표가 판매.유통시킨 홍경천 골드. ⓒ 홍경천골드 홈페이지


2만4397 상자 팔아 18억여 원 이익 추정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지난해 6개월 동안 '특판업 최대 사기사건'을 수사했다. 일명 '떳다방'이나 '지하방'으로 불리는 홍보관에서 노년층을 상대로 건강기능식품을 팔아 100억 원 대의 사기피해를 입혔다는 혐의를 잡고 황선옥 대표와 그가 회장으로 있는 한국특설판매상공인협회(특판협) 사무실 압수수색, 홍보관 점장 소환조사 등을 벌였다.

결국 서울중앙지검은 지난해 11월 16일 홍경천을 유통·판매해온 황선옥 대표를 사기와 건강기능식품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황 대표는 홍보관에서 노년층을 상대로 홍경천을 팔아 약 1억1700만 원의 사기피해를 입혔다는 혐의를 받았다. 경찰이 추정한 119억 원의 사기피해 금액이 검찰에서는 1억 원 대로 크게 줄어들긴 했지만, 홍보관과 노년층을 고리로 한 특판업체의 사기행위는 변함이 없었다.

관련기사 : '떳다방'서 건강식품 팔아 121억 사기 친 업자 구속

최근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검찰의 공소장과 수사기록에 따르면, 황 대표는 지난 1986년 대학을 졸업한 후 약 10년간 미술학원 강사로 일했다. 지난 1997년 홍보관 유통업자인 이아무개씨를 만나 결혼하면서 유통업에 뛰어들었다. 이후 건우유통, 동국디톡스, 에코놀, N&S 등을 설립해 건강기능식품, 주방용품, 생활용품, 잡화 등을 유통·판매했다.

황 대표는 지난 2009년부터 심황단과 홍경천 등 건강기능식품을 유통·판매했다. 홍경천은 홍경천이라는 돌나물과의 풀에서 추출한 원료로 만든 건강기능식품으로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는 '스트레스로 인한 피로개선'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인정받았다. 경쟁업체가 없어서 황 대표는 홍경천 판매를 통해 상당한 성공을 거둔 것으로 알려졌다.

홍경천은 지난 2011년부터 2014년까지 홍보관에서 2만4397상자가 팔렸다. 42병들이 한 상자의 공급단가는 3만5750원이었지만, 홍보관 판매가는 49만 원이었다. 판매가가 공급단가에 비해 무려 약 14배나 비싸게 책정된 것이다. 여기에는 '홍보관'이라는 판매장소의 특수성이 작용했다. 황 대표도 "(홍보관 등 특설판매라는) 업계 구조상 49만 원으로 책정되어야만 운영이 가능하다"라고 주장했다. 

홍보관은 '판매할 제품의 성격에 적합한 대상지역을 설정하여 합법적 상가 건물 내에서 사업자 등록을 필한 후 제품을 전시·판매하는 곳'이다. 3개월, 6개월간 단위로 제품을 팔다가 매출이 부진하면 다른 곳으로 영업장을 옮기는 특수성 때문에 '떳다방', '메뚜기방'으로도 불린다. 홍보관의 잦은 이동으로 인해 구매를 취소하거나 반품하기가 어렵다는 문제점이 있다.

홍보관의 주요 고객은 60-70대 노년층, 특히 할머니들이다. 이들을 유인하기 위해 계란, 휴지, 냄비 등을 '특가세일'(시중가격보다 80-90% 싼 가격에 제공)해서 제공하거나, 유명가수나 탤런트 등을 초대해 공연하고, 즉석 복권이나 경품 추첨 행사를 벌인다.

황 대표는 홍보관들을 관리하는 '라인장'(홍보관 점장들의 상급 관리자)들에게 홍경천 1상자당 2만 원의 라인비를 지급했다. 홍경천 1상자(42병들이)를 49만 원에 팔 경우 황 대표는 홍보관 점장들로부터 13만 원을 물품대금으로 받았다. 13만 원 가운데 라인비 2만 원을 빼면 황 대표가 홍경천 1상자를 팔아 올리는 매출액은 11만 원이다.

황 대표가 이렇게 홍보관을 통해 판 홍경천이 2만4397상자라는 사실을 헤아리면 총 26억8367만 원(11만 원×2만4397상자)의 매출을 올린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에서 공급단가(약 8억7220만 원)를 빼면 황 대표가 얻은 이익은 18억여 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검찰은 수사과정에서 확인된 '피해자 67명의 1억1700만 원'만 사기피해 금액으로 인정했다. 그런 점에서 피해자들이 더 확인될 경우 사기피해 금액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 인천의 한 홍보관. 홍보관의 주요 고객은 60-70대 할머니들이다. ⓒ 한국노년복지연합 제공


홍보관에서 재력가 VIP 명단 받아 개별상담      

또한 황 대표가 홍경천을 성공적으로 판매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홍보관과의 유착관계가 있었다. 황 대표는 홍보관 점장실 등에서 홍보관 고객과 개별면담하기 전 홍보관으로부터 고객의 건강상태(질환 등), 재력상태, 집안사정 등의 정보를 입수했다. 고객들과 수시로 접촉해온 홍보관의 팀장들이 황 대표 등에게 관련정보를 제공하고, 황 대표는 개별면담에서 이를 적극 활용한 것이다.

"피해자는 홍경천 구입하기 2-3일 전에 (홍보관의) 팀장이었던 이아무개와 점심을 먹었을 때 '왜 매운 것으로 못먹느냐?'고 물어 '위가 좋지 않다'고 답변한 것과 자리에 앉은 후 일어서다가 주저앉았을 때 이아무개가 물어와서 허리수술을 두 번 했다는 이야기를 한 사실이 있었다고 진술한다.

(중략) 피해자는 당시 상담받을 때 상담실에 앉아 있던 황선옥이 자신의 생년월일을 물어보아 73세, 뱀띠, 2월 24일생이라고 하자, 먼저 혀를 내밀어 보라고 하여 시키는대로 혀를 내벌었더니 '당신은 77세 생일달에 큰 병 걸려서 죽을 수다, 그래서 위도 안좋고, 허리도 안좋은 것이다'고 하여 (중략) 위장질환과 허리가 좋지 않은 점을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어떻게 알았나 신기하였지만 (중략) 홍경천을 108일 동안 먹으면 예방된다고 하므로 홍경천 2상자를 더 구매하였다..."(검찰 공소장 중에서)

경찰의 압수수색을 통해 고객들의 질환 등이 적힌 문서가 황 대표의 책상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홍보관 점장 배아무개씨는 경찰조사에서 "홍보관의 팀장들이 부녀자들이 신상정보를 파악한 것은 사실이고, 다른 업체에서 부녀자들의 신상을 파악해 신상정보를 적은 종이를 황선옥 등에게 건넨다는 소문은 많이 들었다"라고 진술했다. 특히 돈이 많은 고객(VIP) 명단을 황 대표에게 제공했다는 증언들도 나왔다.

"황선옥이 강의가 끝나고 상담에 들어가기 전 부녀자들의 재력상태 등을 파악하여 구두로 알려주었다."(홍보관 점장 김○○)
"매장에 설치된 CCTV 영상을 통해 재력있는 부녀자들을 특정해주었다."(홍보관 점장 김△△△)
"황선옥이 VIP 고객 명단 등을 각각 요구하여 부녀자들의 나이, 건강상태 등 개별 물품 구입 노트를 참조하여 특정해주었다. 재력상태가 좋은 VIP 고객명단을 알려줄 경우 홍경천이 많이 판매될 것으로 예상하여 제공해주었다."(홍보관 점장 송□□)

하지만 황 대표는 "강의하기 전에 매장 관계자들과 미팅하였지만 부녀자들의 질환 등 특이시항 등을 매장 관계자들에게 부탁한 사실이 없고, 관련자료를 건네받은 사실도 없다"라고 부인했다.

특히 황 대표의 '개별면담'이 홍경천 판매를 크게 늘린 요인으로 지적된다. 홍보관 점장 송아무개씨는 "(황선옥 등에게) 상담받은 부녀자들의 50%가 홍경천을 추가구매했고, 상담 후에는 홍경천이 더 팔린다는 사실을 사전에 알고 점장실을 상담장소로 제공했다"라고 진술했다. 또다른 홍보관 점장인 배씨도 "강의가 끝나고 상담해야만 홍경천 판매율이 높아진다"라고 전했다.

여기에는 황 대표의 독특한 면담방식이 크게 작용했다. 황 대표는 홍보관으로부터 제공받은 고객정보를 적극 활용해 '족집게'로 행세했고, 생년월일을 받아서 고객의 사주팔자를 봐주거나 혀, 눈, 손을 통해 몸상태를 진단했다. 혀나 관상을 보고 고객의 질환을 파악하는 '설진법'과 '망진법'이 황 대표의 상담기법이었다. 그래서 홍경천 구매자한테서는 "아주 유능한 한의학을 공부한 사람처럼 보였다", "마치 역술가나 무당처럼 보였다", "무당과 스님이 반반 조합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등의 평가가 나왔다.

"황선옥은 사전파악된 부녀자들의 특정질환 등을 활용하여 부녀자들이 일대일 개별상담할 때 마치 무당이나 역술인처럼 사주팔자를 봐주고, 한의사처럼 진맥을 짚는 등의 행위를 하면서 미리 파악해놓은 노인의 병력과 건강상태를 말하며 부녀나들에게 자신을 마치 무당, 역술인, 한의사처럼 신통력있는 사람으로 인식시킨 다음 상담받는 부녀자들에게 홍경천을 복용하지 않을 경우 중병에 걸릴 것처럼 말하는 등 거짓말로 현혹하여 (후략)."(검찰 공소장 중에서)

검찰은 "황선옥은 홍경천을 유통하기 전 심황단을 판매할 때부터 이미 상담을 통한 판매방법이 판매율을 높인다는 학습효과를 거친 상태였다"라며 "판매장소였던 홍경천의 주 고객층인 50-70대 노년층 부녀자들이 저학력자들로 미신 등을 맹신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어서 홍경천을 판매할 때에도 부녀자들의 사주풀이, 역학 등을 접목시켜 마케팅 판매기법으로 활용했다"라고 분석했다.

홍경천 구매 피해자들, 2월 중순께 집단소송 제기 예정

경찰과 검찰이 파악한 피해자들은 60-70대 할머니들이 다수를 차지했다. 이들은 '스트레스로 인한 피로 개선'의 효과만 인정받은 홍경천이 노인성 질환(치매, 중풍, 당뇨, 파킨슨병, 위장질환, 관절 등)에 좋다는 말에 속아 홍경천을 적게는 49만 원어치에서 많게는 1274만 원어치까지 구입했다. 하지만 홍보하거나 의도했던 효과는 거의 없었다.

피해자 임아무개씨는 "홍경천을 먹으면 당뇨에 특효가 있다고 해서 26상자의 홍경천을 구매하여 2상자를 먹었지만 전혀 효과가 없어 나머지는 방치해두었다고 자식들에게 혼만 났다"라고 진술했다. 또다른 피해자 임아무개씨는 "6상자를 구매해 먹었지만 당뇨가 더 심해지고 몸에 반점도 생기는 등 부작용이 있어 마시지 않은 4박스는 싱크대에 쏟아버렸다"라며 "(홍경천을 구입한 홍보관은) 폐업하고 없어 홍경천을 반품하지도 못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황 대표는 검찰조사에서 "홍경천을 복용하면 스트레스로 인해 올 수 있는 간, 급성혈압, 대장증상, 위장병 등의 질환을 예방할 수 있다고 설명하긴 했지만, 홍경천을 의약품이나 만병통치약처럼 강의하고 상담한 적은 없다"라고 부인했다.

애초 경찰은 사기피해 금액을 119억 원으로 추정해 사건을 검찰로 송치했다. 하지만 검찰은 확인된 피해자 67명의 1억1700만 원'만 인정해 황 대표 등을 기소했다. 검찰이 추가수사를 벌이지 않은 채 사기피해 금액만 축소해 기소하고, 황 대표의 사기상술에 적극 협조한 33명의 홍보관 점장들을 불기소한 것을 두고 부실수사라는 지적이 나온다.

시민단체에서는 황 대표 구속기소를 계기로 홍보관 등에서 노년층을 상대로 벌어지는 사기상술을 뿌리뽑아야 한다고 보고 있다. 홍경천건을 경찰에 제보했던 한국노년복지연합의 한 관계자는 "노년층이 건강을 걱정하는 것을 미끼로 효과를 과장해서 제품을 비싸게 판매하는 것은 시정되어야 한다"라며 "이러한 피해가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는 엄정한 법의 심판이 뒤따라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노년층을 대상으로 하는 사기상술이 점점 지능화되고 있고 있기 때문에 나중에라도 피해를 보상받기 위해서는 핸드폰 등으로 판매현장을 녹취해야 한다"라고 당부했다.

현재 홍경천 구매 피해자들은 황 대표 등을 상대로 집단소송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한철 변호사(법무법인 인본)는 2일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1차로 피해자 8명이 2월 중순께 민사소송(손해배상)을 제기한다"라며 "피해자들이 상당히 많기 때문에 추가로 소송인단을 모집해서 소송을 진행하려고 한다"라고 전했다. 정 변호사는 "검찰에서 확인한 피해자 외에도 피해자들이 많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차후에 형사고소도 검토할 계획이다"라고 덧붙였다.

한편 구속기소된 황 대표는 지난 2000년부터 2013년까지 축산물가공처리법 위반, 식품위생법 위반, 건강기능식품에 관한 법률 위반 등으로 여러 차례 벌금형을 받은 바 있다. 지난해 10월에도 건강기능식품에 관한 법률을 위반해 벌금 600만 원으로 기소돼 재판받고 있다.

황 대표는 지난 2006년 출범한 특판협의 제7대 회장을 맡고 있다. 특판협은 홍보관을 운영하는 운영자와 홍보관에 물건을 대는 유통업자들이 참여하고 있다. 지난 2012년에는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장을 지낸 강계령씨를 사무총장으로 영입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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