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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생활 미치겠다면? 미련 없이 사표 쓰는 법

[할많하않?할많하! ⑧] <퇴사 권하는 여자> 저자 호밀밭의 사기꾼씨

등록|2016.02.09 20:32 수정|2016.02.09 20:32
N포세대, 헬조선, 흙수저에 이르기까지... 청년세대의 절망을 표현하는 단어들이 넘쳐납니다. 청년들이 참 할 말 많은 세상입니다. 하지만 '어린 것이 뭘 아느냐', '사회문제에 신경 끄고 네 앞가림이나 해라'라는 '꼰대'의 말에 하고 싶은 말을 삼킬 때가 많습니다. '할많하않', 이 신조어는 '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겠다'의 줄임말입니다. '할많하않'이 아닌, 할 말이 많으니 하겠다는 청년들을 만나봤습니다. [편집자말]

퇴사 권하는 여자 지난 1월 30일,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호밀밭의 사기꾼(필명, 36)을 마주했다. 브런치 연재 화면을 보고 있는 호밀밭의 사기꾼씨. ⓒ 김예지


누구나 가슴에 사표 하나씩을 품고 산다. 그뿐이다. '쿨'하게 사표를 꺼내 놓고 회사를 떠나는 일, 쉽지 않다. 학자금 대출 상환, 내 집 마련, 자녀 양육 등 포기하기 쉽지 않은 것들이 회사에, 정확히 말하면 '월급'에 묶여있다.

또, 오랜 고민 끝에 퇴사를 결심한다 해도 눈에 밟히는 것이 있다. 퇴사로 생겨난 빈자리를 메우느라 고생할 동료와 상사가, 남겨둔 업무가 그렇다. 그래서 퇴사는 늘 현실에 발목 잡힌 꿈에 그친다. 그런데 이 고민의 과정에서 누군가 이렇게 말해준다면 어떨까.

"여러 번 반복한다. 진짜 강조한다. 절대 기억하라. 회사나 상사를 이해해주지 말고, 사정을 봐주지 말고, 남은 일 걱정하지 말고, 뒤도 돌아보지 말고 떠나라."(<퇴사 권하는 여자> 중)

<퇴사 권하는 여자>는 호밀밭의 사기꾼(필명, 36)씨가 포털사이트 다음의 글쓰기 플랫폼, '브런치'에 올린 연재 제목이다. 그는 지난해 8월부터 다섯 번의 퇴사 경험을 녹인 13편의 글을 연재했다. 이 연재로 그해 12월엔 다음카카오의 책 출간 지원 공모전 '브런치 북 프로젝트'에서 은상을 받았다. 올 4월, <퇴사 권하는 여자> 전자책 출간을 앞두고 있다. 지난 1월 30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호밀밭의 사기꾼씨를 마주했다.

퇴사의 SWOT호밀밭의 사기꾼씨가 분석한 퇴사의 SWOT ⓒ 호밀밭의 사기꾼


"어차피 결정한 퇴사, 마음 편히 하자"

"사실 퇴사할 때가 됐다는 건, 본인이 제일 잘 알죠. 일에 대한 에너지가 떨어졌든, 상사나 연봉이 마음에 안 들든. 본인이 잘 알고 있고, 결정만 하면 되는 문제인데 결정을 못 해서 조마조마하거나 퇴사 과정에서 너무 힘들어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글을 썼어요. 그게 저였으니까요. 이 글은 전반적으로 저에게 하는 말이에요. '마음을 편하게 먹자'고요. 퇴사가 무슨 중죄를 짓는 건 아니잖아요."

호밀밭의 사기꾼씨는 작년 초, 개인 블로그에 퇴사에 대한 고민을 남겼다. 한창 "퇴사 욕구가 불타오르던" 시기였다. 당시 다니던 회사의 상황이 좋지 않았고, 주변에 퇴사를 고민하는 친구들도 많았다. 방문자가 몇 되지 않는 블로그에 일기처럼 글을 쓰며 답답함을 풀었다. 퇴사를 마음먹은 후, 블로그의 글을 다듬어 브런치에 옮긴 것이 <퇴사 권하는 여자>다.

제목은 퇴사를 '권'하고 있지만, 이 연재의 목표는 "멀쩡하게 회사 잘 다니는 사람 퇴사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기왕 퇴사를 생각하게 됐다면 마음 편히 하자"는 것이 핵심 메시지다. 그래서 <퇴사 권하는 여자>는 "퇴사의 순간만큼은 누구보다 이기적인 사람이 되어도 좋다"고 말한다.

한편으론, 퇴사보다 더 골치 아픈 퇴사 후의 삶에 대해서도 가감 없이 전한다. 월급 없는 생활, 퇴사한 회사가 아름다워 보이는 현상, 마땅한 이직처가 없어 겪는 '멘붕'까지. 그렇다고 겁을 주는 건 아니다. <퇴사 권하는 여자>는 혼란스러울 때마다 "왜 퇴사할 수밖에 없었는지 생각해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닥친 문제를 해결할 때 너무 많은 고민을 해요. 자신의 문제를 결정할 때는 그 중심에 자기가 있어야 하는데, 항상 외부의 문제에 대해 고민하죠. 회피하고 싶은 거예요. 너무 어려우니까. 이 상황을 자꾸 반복하게 되면 자신을 보지 못해요. 그 외부의 요소를 하나씩 쳐내고, 자신에게 집중해야 해요."

남 걱정 말고!호밀밭의 사기꾼씨가 그린 그림. 정리해고에 앞장 선 상사를 이해하려 하는 친구에게 한마디하는 내용이다. ⓒ 호밀밭의 사기꾼


5번의 퇴직 경험, 중요한 건 나 자신

물론 그도 처음부터 마음 편히 퇴사했던 건 아니다. 그의 첫 직장은 인터넷 신문사. 전공을 얼추 살릴 수 있는 일이었지만, 회사 생활이 녹록지 않았다. 하지만 '1년도 견디지 못하고 회사를 그만두면 사람들이 어떻게 볼까', '이것도 참지 못하면 앞으로 어떤 일도 할 수 없을 거야'라는 생각에 꾸역꾸역 1년을 참았다. 본인이 생각한 '마지노선'인 1년을 견디고 나서야 사표를 낼 수 있었다. 그 후 네 번의 퇴사를 더 경험했다.

"기간도 짧고, 직종 바뀌고 하니 인내심 없는 무능력한 아이로 보일까봐 고민을 했는데, 어느 순간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냥 '내가 재미를 느끼고 행복하게 살면 안 되나'하는 생각이 앞지르기 시작했어요."

물론, 내가 마음을 고쳐먹었다고 세상이 달라지는 건 아니다. 호밀밭의 사기꾼씨는 "(사람들이) '이직'이라는 단어를 '볼드모트'처럼 생각한다"라고 했다.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했던 호밀밭의 사기꾼씨는 지인들과 함께 출판업계 종사자의 이야기를 담은 팟캐스트 <뫼비우스의 띠지>를 제작하고 있다. <뫼비우스의 띠지>에 '이직의 제왕'이라는 코너가 처음 생겨났을 당시, 누군가는 '이직이 대놓고 할 수 있는 이야기 할 수 있는 주제이냐'고 말하기도 했다.

"정말 이해가 안 됐어요. '어떻게 하면 취업을 잘할 수 있을까'는 잘 말하면서, 이직은 왜 금기시 되는 걸까요. 퇴사하고 새로운 회사로 이직하는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생존자 아닐까요."

다행히도, 퇴사와 이직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는 이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호밀밭의 사기꾼씨는 "처음에 브런치를 시작할 때만 해도 퇴사를 주제로 한 글들이 없었는데, 요즘에는 브런치에서 퇴사 관련한 글을 자주 본다"라고 했다.

"요즘 나오는 퇴사에 대한 이야기에는, '나는 왜 사표를 냈을까? 이대로는 행복하지 않아서', '왜 행복하지 않지? 일에 종속된 삶은 행복한 삶이 아니어서'라는 흐름이 공통으로 있는 거 같아요. 일에 대한 고민과 퇴사에 대한 고민이 맞물려 있는 거죠."

같은 '브런치 북 프로젝트' 수상작 중에서도 퇴사를 다룬 글이 있다. <초일류 사원, 삼성을 떠나다>는 브런치 북 프로젝트에서 대상을 수상하고 단행본으로 출간됐다. 이밖에도 <사표의 이유> <사표사용설명서>, 독립출판물 <월간 사표> <두 번째 퇴사> 등 퇴사를 주제 삼은 책은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보다 근본적으로, 노동자의 입장에서 직장생활의 애환을 풀어낸 책도 많다. <사축일기> <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 독립출판물 <일개미자서전> 등이 대표적이다. 호밀밭의 사기꾼씨는 "그런 목소리들이 많이 나올수록 좋다"고 말했다.

"만약 이런 흐름이 커지다 보면, 무조건 이익을 위해 달려가며 노동자를 소외시켰던 회사도 변화하겠죠. 노동자들의 선택 폭이 넓어지고, 자유로워지고, 회사도 좋은 인재를 잡기 위해 노력하고. 회사의 목적은 어차피 이익 창출이겠지만, 이를 위한 방법은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요?

팟캐스트 <뫼비우스의 띠지>도, '사장님이 아닌, 우리 이야기를 하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어요. 노동자의 입장에서 이야기한다는 것은, 삶의 가치나 행복을 일이나 회사에 의존하지 말고 본인의 행복으로, 관점을 돌리는 거예요."

말없이 담배를 피우는 동료들호밀밭의 사기꾼씨가 그린 그림. 그는 "한창 회사에서 정리해고가 진행될 때 말없이 담배만 피우던 회사 사람들의 모습을 그려본 것"이라고 했다. ⓒ 호밀밭의 사기꾼


사장님이 아닌, 우리의 이야기

호밀밭의 사기꾼씨는 현재 프리랜서로 활동하며 4월에 나올 <퇴사 권하는 여자> 전자책을 집필하고 있다. 브런치에서 기존에 연재했던 내용을 보충하는 과정이다. 대안을 제시할 수는 없지만, 퇴직 이후의 삶에 대한 내용도 구상 중이란다.

그의 표현대로, '사장님이 아닌 우리의 이야기'가 "연중 품고만 사는 사표를 생각하며 출근길 지옥철 안에서 갈팡질팡할 때, 상사에게 무참히 깨지고 자리로 돌아와 당장이라도 컴퓨터 모니터를 깨버리고 싶을 때,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통장은 가벼워져만 갈 때" 작은 오아시스가 되길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김예지 기자는 오마이뉴스 22기 대학생 인턴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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