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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 전후 인도의 종교와 문화

[북인도 라자 문화기행 ③] 국립박물관 2

등록|2016.02.05 17:24 수정|2016.02.05 17:24

▲ 마우리아 왕조시대 조각 ⓒ 이상기


하라파 문명관을 지나면 자연스럽게 마우리아(Maurya) 전시관으로 연결된다. 이곳에는 기원전 321년부터 184년까지 번성했던 마우리아 제국의 문화유산이 전시되어 있다. 찬드라 굽타왕에 의해 성립되고 아쇼카왕 때 전성기를 이룬 마우리아 왕국은 타밀지역을 제외한 전 인도를 통치한 대제국이었다.

아쇼카왕은 기원전 269년에서 232년까지 인도를 통치하면서, 정복전쟁을 하고 또 평화와 비폭력을 실행하는 등 양면적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가 남긴 업적은 평화를 추구하고 종교를 존중하고 비폭력을 실천한 후반기에 두드러진다. 그는 260년경 불교에 귀의하면서 불교를 지원하고 통합하고 선교하는 작업을 했다.

▲ 정복전쟁을 위해 코끼리를 타고 가는 왕 ⓒ 이상기


가장 먼저 행한 것이 제3차 불전 결집이었다. 부처님의 말씀을 토론과 승인과정을 거쳐 정전(Canon)으로 만드는 작업을 불전 결집이라고 한다. 이때 경장(經藏)과 율장(律藏) 외에 논장(論藏)이 확립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보수파인 상좌부와 개혁파인 대중부로 분열되어 있던 불교계를 상좌부 중심으로 통일시켰다. 이 때문에 대중부는 소수파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는 또한 부처의 가르침을 전파하기 위해 불사리탑인 스투파를 세우게 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산치대탑이다. 이곳 국립박물관에는 산치대탑의 유물 일부 등 불교유산이 상당수 전시되어 있다. 산치대탑은 정방형의 기단 위에 종형 또는 반구형의 탑을 세우고, 그 위에 우산 형태의 원반을 얹어놓은 형태다. 그리고 탑 밖으로 보행로를 만들고, 사방에 토라나라는 탑문을 만들었다고 한다.

▲ 산치대탑 토라나 패널의 소용돌이 문양과 사자 ⓒ 이상기


이들 탑문에 있던 조각 일부가 현재 박물관에 있다. 토라나는 양쪽으로 두 개의 석주를 세우고, 가로로 세 개의 판형 패널을 댄 형태다. 그리고 이들 패널에 부처의 전생이야기를 조각해 놓았다. 이들 조각 중 유명한 것이 코끼리를 타고 가는 왕 부부, 말을 타고 가는 전사다. 그리고 토라나 패널 끝부분의 장식 소용돌이와 그 위에 앉은 사자가 유명하다. 이들 장식은 일부가 마모되어 있기는 하지만, 당시의 높은 예술 수준을 파악하기에는 충분하다.

그리고 붉은 사암으로 만든 테라코타 작품도 있다. 이들은 종교적이기도 하고 인간적이기도 하다. 종교적인 것으로는 약사(Yaksha)와 약시(Yakshi) 같은 정령신, 힌두교 신상이 있다. 그리고 인간적인 것으로는 비탄에 잠긴 여인, 브라만어를 배우는 아이, 남녀 두상 등이 있다. 남자는 턱을 든 자신만만한 인상이고, 여인의 경우는 머리를 풍만하게 틀어 올리고 있어 여유로워 보인다.

▲ 남자 두상 ⓒ 이상기


▲ 여자 두상 ⓒ 이상기


아쇼카왕은 또한 불교를 전 세계에 보급하기 위해 이웃나라에 대규모 선교단을 파견했다고 한다. 스리랑카에 왕자와 공주를 보내고, 카슈미르와 아프카니스탄 지역에는 유명한 고승들을 대거 보냈다. 그리고 동남아시와 중앙아시아, 네팔과 부탄, 중국과 몽골 지역에는 승려를 포함한 사신단을 파견했다. 더 멀리 그리스와 로마, 터키와 이집트에도 사신단을 파견했다고 한다.

간다라 양식의 불교 문화유산

▲ 간다라 양식의 두상 ⓒ 이상기


마우리아 왕국의 붕괴 후 인도를 다시 통일한 것이 쿠샨 왕조다. 기원 후 30년 경 아프카니스탄과 북인도 지역을 중심으로 성립되었고, 카니쉬카(Kanishka) 통치기인 127~140년 사이 전성기를 이뤘다. 그는 실크로드의 개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불교를 후원해 카슈미르 지역에서 제4차 불전 결집을 주도하기도 했다. 특히 쿠샨 왕조시대에는 간다라 양식의 불상이 많이 제작되었다.

간다라 미술은 쿠샨 왕조 때 파키스탄과 아프카니스탄 지역에서 발달해 6~7세기까지 영향을 미쳤다. 당시 이 지역은 헬레니즘 예술의 영향을 받아 서구적인 이목구비의 불상이 제작되었다. 곱슬머리에 움푹 들어간 눈, 높은 코가 특징이며, 이 불상이 연꽃과 법륜으로 표현된 불교의 상징을 대체하게 되었다.  

▲ 간다라 양식의 석불입상 ⓒ 이상기


정적이고 근엄한 간다라 불상은 이란에서 아프카니스탄까지 번창했던 페르시아적 헬레니즘 예술 기법과 쿠샨 왕조의 미학 원리를 결합해 탄생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간다라 양식은 헬레니즘적 요소, 페르시아적 요소, 인도적 요소가 결합된 세계적인 양식으로 볼 수 있다. 불상은 정면을 보고 서 있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은 보는 사람과 대등하게 오랫동안 소통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불상이 정면을 보고 있기 때문에, 참배자들은 160도 정도의 넓은 각도에서 불상을 경배할 수 있다.

그중 가장 전형적인 것이 2~3세기에 만들어진 석불입상이다. 검은색 편암으로 만들었으며, 두광과 기단까지 완전하게 남아 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위로 올린 오른손이 떨어져 나갔다. 이 상호는 아무리 봐도 그리스시대 아폴로 신상이다. 머리카락은 물결무늬 곱슬머리로, 소라 모양의 나발(螺髮)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이다. 머리 위 육계(肉髻)도 머리를 묶은 형태로 국내 불상과는 상당히 다르다. 이 불상이 간다라 양식의 전형이어서 그런지 바닥에 앉아 스케치 하는 사람도 있다.

▲ 보살상 ⓒ 이상기


검은색 편암으로 만든 삼존불 좌상도 눈에 띈다. 가운데 부처가, 수인으로 보아 비로자나불이다. 그렇다면 좌우의 부처는 석가모니불과 노사나불이 된다. 그리고 보살상도 보인다. 보살은 깨달음을 얻어 열반할 수 있으나, 고통 받는 중생들을 구원하기 위해 이승에서 무한한 사랑과 자비를 펼치고 있는 사람이다. 그는 관을 쓰고 V자 목걸이를 걸고 허리띠를 한 인간적인 모습이다.

이곳에는 또 간다라 양식의 두상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다. 이 두상들은 얼굴과 머리 모양이 다양하다. 이를 통해 당시 인종적 특징, 미용 방식 등을 파악할 수 있다. 이처럼 쿠샨시대에는 인간적인 부처와 보살 그리고 신들이 신앙의 대상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다시 힌두교로 돌아간 굽타 왕조 시대

▲ 부의 신 쿠베라 ⓒ 이상기


이곳에는 또한 힌두교와 자이나교 신상들도 보인다. 그중 시바신의 상징 링가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둥근 링가의 사방에 양각으로 4개의 두상이 새겨져 있다. 그리고 사각 기둥에 새겨진 사면불도 있다. 그렇다면 사면불은 힌두교로부터 불교에 수용되어진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힌두교 신상 중 특이한 것은 쿠베라(Kubera)로 불리는 부(Wealth)의 신이다.

중국의 포대화상을 닮아 배가 부르고, 땅땅한 모습이며, 다리가 셋이다. 전체적으로 기이하면서도 우스꽝스럽다. 그렇지만 콧수염으로 멋을 부렸고, 아주 만족스런 표정을 짓고 있다. 그런데 이곳의 쿠베라는 아주 초창기 모습이고, 불교에서는 비사문천 또는 다문천왕으로 변형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몇 가지 조각품에서는 코끼리와 사자를 볼 수 있다.

▲ 자이나교 조각판 ⓒ 이상기


▲ 비쉬누 신상 ⓒ 이상기


자이나교 유물로는 사원에 봉헌물로 바친 조각판이 있다. 가운데 깨달음을 통해 최고의 경지에 오른 자이나가 있고, 주변을 삼라만상이 감싸고 있다. 판을 자세히 살펴보니 코끼리, 물고기, 차크라 등이 보인다. 그림판 아래쪽에 자이나 교리와 관련된 문자도 보인다. 자이나교는 진리, 비폭력, 무소유를 추구하는 인도의 전통 종교다. 그래서 자이나상은 옷을 전혀 입지 않고 있다.     

굽타 왕조는 320년경 찬드라 굽타 1세에 의해 갠지스 강변 파트나를 수도로 성립되었다. 그 후 500년대 초반까지 약 200년 동안 문학과 예술, 과학 등에서 큰 업적과 많은 문화유산을 남겼다. 그중 시인 칼리다사(Kalidasa)의 문학이 가장 유명하다. 그는 힌두 고전을 토대로 산스크리트 시와 연극을 완성했다. 그리고 천문학자 아리아바타(Aryabhata)도 유명하다. 그는 수학을 천문학에 도입, 정확한 예측과 측정을 했다고 한다. 그가 도입한 수학적 개념이 0(Zero)과 π(Pi)다.
  
굽타 시대 종교는 다시 힌두교로 돌아갔다. 그것은 남아 있는 힌두교 문화유산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곳 국립박물관에 있는 유물도 힌두교 유산이 많다. 철퇴와 소라를 든 비쉬누상, 시바와 빠르바티 부부상, 대지의 여신, 여신 강가, 여신 야무나 등이 두드러진다. 그런데 이들 강의 여신은 물동이를 들고 있는 게 특징이다. 그리고 라마야나와 마하바라타 이야기를 담은 조각상도 눈에 띈다.

그러나 불교와 자이나교도 여전히 대중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그것은 예술적 완성도가 높은 불교 문화유산을 통해 알 수 있다. 이곳에 전시된 석불좌상, 불두, 코끼리상 등이 그것을 증명한다. 그러나 굽타시대 최고의 불상은 누가 뭐래도 사르나트 박물관에 있는 '선정에 든 부처'다. 선정에 든 부처는 여행 6일째 바라나시 북쪽 사르나트에서 만날 수 있었다. 이 시대에는 또한 상업과 무역도 발달해 동전의 소통이 활발했다. 굽타 시대 동전을 우리는 동전전시관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 물동이를 들고 있는 야무나 여신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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