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1984년 훈련소 식당 그리고 2016년 7공수여단 식당

'큰맘할매순대국', 설 맞아 7공수여단 전 장병에 한 끼 식사 제공

등록|2016.02.07 15:11 수정|2016.02.07 15:11
1984년 2월 4일 이 날은 설날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이중과세를 방지한다는 차원에서 1월 1일을 공휴일로 지정한 반면 설날은 공휴일이 아니었습니다.

저의 입대날은 공교롭게도 설날인 바로 이날이었습니다. 전주 35사단에 오전 11시에 입소했는데 중식은 경황이 없어 그냥 건너뛰면서 이날 곡기라고는 석식이 처음이었습니다.

배식을 받고 나니 황당했습니다. 취사병이 건네는 밥은 한 숟가락 정도였고 대신해 이날 반찬으로 양미리를 밀가루로 묻혀 튀겼는데 그 남은 튀김 부스러기만 가득 담아줬기 때문입니다. 이날 배식을 담당한 취사병이 업무에 익숙하지 않아 앞에서 밥을 많이 퍼주는 바람에 뒤쪽에는 밥이 부족하자 이렇게 배식을 했던 것입니다.

당시 식판은 두툼한 플라스틱 재질로 밥 국 그리고 반찬 세 가지 정도를 담을 수 있게 돼 있었습니다. 식사가 끝난 후 식판을 닦는 일도 작은 일이 아니었습니다. 당시에는 병사의 개인 식판은 개인이 닦아야 했고, 내무반 개인침상 위에 보관되어 있는 식판과 숟가락과 포크를 들고 배식을 받으러 가야 했기 때문입니다.

2월 한파가 남아있는 가운데 세제도 없이 그것도 찬물로 기름기가 묻어 있는 식판을 닦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제거되지 않는 기름기는 주변의 모래 등으로 어떻게든 닦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 일석점호에서 식판 검사를 하는데 앞에만 깨끗하게 닦았더니 뒤쪽을 검사한 후 지저분하다며 구타가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또 한 번은 동기생 중 하나가 남은 찬과 밥을 잔반통에 넣다가 숟가락을 빠트리면서 '군용물품 분실'이라는 엄청난 죄를 뒤집어 썼습니다. 그는 동기생들이 원산폭격을 하는 가운데 반 넘어 차 있는 드럼통으로 만든 잔반통을 맨손으로 뒤적거려 군용물품을 회수하는 성과(?)를 올려야만 했습니다.

제 개인에게 32년이 훌쩍 지났지만 여전히 육군 35사단 훈련소 식당은 무자비한 구타와 가혹한 기합으로 얼룩진 그런 참혹했던 기억으로 씁쓸하게 남아 있을 뿐입니다.

▲ 2월 5일 중식시간을 맞이해 7공수 여단 간부식당에서 장병들이 식사를 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 추광규


32년이 흐른 2016년 군부대... 장교들이 이용하는 식당의 모습은

지난 5일 7공수특전여단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날 한 순댓국체인업체에서 설날을 맞이하여 이 부대 전 장병에게 순댓국으로 따뜻한 한 끼 식사를 든든하게 먹게 하겠다며 봉사활동을 펼쳤기 때문입니다. 또 이를 공식적으로 취재할 기회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행사시작은 오전 11시 반 부터였지만 급식인원이 상당한 관계로 이 업체의 관계자 4명은 전날 부대가 소재한 전북 익산으로 내려와 음식 준비를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저희 일행 또한 일찌감치 서울을 출발해 이날 오전 9시 30분경 부대정문에 도착한 후 방문절차를 마치고 식당으로 향했습니다.

7공수여단은 특수부대이다 보니 80%가 직업군인으로 구성돼 있다고 했습니다. 지원병으로 채워지는 일반병사들은 20%에 불과해 전체적인 분위기는 상당히 자유로워 보였습니다,

여단장 등 이 부대 고위 간부들이 이용하는 귀빈실을 비롯해 사관급 이상 직업 군인들이 이용하는 간부식당 또한 예전에 제가 기억하는 병사 식당과는 상당히 달랐습니다.

여단장이 이용한 귀빈 식당의 테이블은 원형으로 20여 명이 넉넉하게 앉을 수 있게끔 되어 있었습니다. 또 테이블 한 가운데에는 꽃이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귀빈식당에서는 11시 30분부터 시작될 점심을 위해 취사병들이 각종 식기류와 기본 반찬들을 하나둘 차리고 있었습니다.

또 헤드 테이블인 이곳에는 이날 참석자들의 명패가 하나씩 놓여 있었습니다. 여단장 부여단장 등등 이 부대 지휘관급의 명패였습니다.

▲ 귀빈식당에서는 취사병이 점심식사를 위한 상차림에 한창이었습니다 ⓒ 추광규


취사실 안의 분위기는... 취사병이 '꽃보직'?

취사실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겨 보니 민간인 여성 2명이 조리원으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병으로 구성된 취사병은 10명이었습니다. 주임 원사를 수장으로 하는 이들이 전체 직업군인들의 식사를 책임지고 있었습니다.

10년째 조리원으로 일을 하신다는 이미정(55)씨는 일에 대한 자부심으로 가득 차 있더군요. 이미정씨는 "얘들하고 같이 하면서 식사를 책임진다는데 보람을 느낀다"면서 "힘들게 훈련을 마치고 돌아온 얘들이 맛있게 먹을 때 참으로 기분이 좋다"라면서 환한 웃음을 지었습니다.

조리원 이미정씨에게 취사반원들은 스스럼없이 '이모'라고 부르면서 매우 친근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곳에는 전날 배식지원을 나온 순댓국 회사 직원 4명이 순대를 썰고 국물을 데우는 등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또 눈에 띄었던 것은 취사병들의 피곤에 찌든 모습이었습니다. 혹시 '힘들어서 그러느냐'는 질문에 한 취사병은 '오늘 새벽까지 야간행군을 하고 와서 그렇다'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취사병은 각종 훈련에서 제외되면서 군대내 '꽃 보직'이라고 알고 있던 저의 인식을 바꾸는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알고 보니 취사병이라고 해도 훈련에는 열외가 없다는 방침에 따라 최근부터 일반병이 받는 훈련을 똑 같이 소화해 내고 있다고 했습니다. 취사병도 이제는 더 이상 꽃보직이 아니라는 생각에 미소가 지어지기도 했습니다.

▲ 취사실 내부 모습입니다 ⓒ 추광규


군 간부들이 영내에서 먹고 싶은 음식은 무엇일까?

식당을 이리저리 둘러보는 가운데 간부식당 입구의 화이트보드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드시고 싶은 메뉴 혹은 애로 건의사항이 있으시면 적어주세요'라는 건의사항에는 먹고 싶은 다양한 음식이 적혀 있었습니다.

'버터 필요합니다!', '계란 많이 좀 ㅠ-ㅠ', '아침에 소고기 무국 좀주세요', '스시', '막창 볶음', '떡볶이' 등등 상상을 초월하는 음식타령에 제 얼굴에는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 건의사항이 적혀있는 화이트 보드 입니다. ⓒ 추광규


간부들의 식사비용은 아침과 저녁은 2100원 점심은 3000원이라고 했습니다. 급여에 식대가 포함되어 지급되고 한 달 동안 먹은 식사 값을 사후 정산하는 방식으로 비용 정산이 이루어진다고 했습니다.

이날 귀빈식당 점심 메뉴는 '마시는 요거트/김치' '할매 순대국', 단무지 무침', '부추초 무침' 추가 반찬으로 도토리묵/ 김치해물두부전 이었습니다. 간부식당은 추가 반찬이 빠진 나머지가 똑 같이 제공되었습니다. 순댓국을 뺀다고 해도 가격대비 상당히 푸짐한 상차림 이었습니다.

오전 11시 30분이 되자 잠겨 있던 문을 열자 곧 바로 군인들이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원래 금요일 중식은 면류가 제공되는데 이날은 우동이 제공될 예정이었답니다.

하지만 이날 특식으로 순댓국이 제공되면서 군인들의 만족도는 상당했습니다. 거기에 자율배식을 하고 있었기에 원하는 만큼 머릿고기와 순대를 식판에 담아가면서 말 그대로 푸짐한 식사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 이날 새벽까지 야간행군을 하고 온 장병들은 따듯한 한 끼 식사로 순댓국을 푸짐하게 즐기고 있었습니다. ⓒ 추광규


여단장과 부여단장 대대장등 고위급 지휘관들과 그리고 고참 원사들이 이용하는 귀빈식당은 꽤 깔끔했습니다. 여느 고급식당에 견주어도 인테리어 등에서 뒤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귀빈식당에는 서빙을 담당하는 취사병이 호텔리어 복장을 하고 있었기에 한순간 이곳이 부대 내 식당이라는 사실을 잊기에 충분했습니다.

식사가 끝난 후 여단장 박우영 준장은 "설 명절을 맞아 큰맘할매순대국에서 저희 장병들에게 한 끼를 제공해 주는 것에 대해 감사를 느낀다"라면서 "국민과 함께 하는 최강의 특수부대가 되겠다"고 감사를 표했습니다.

이날 식사를 제공한 (주)보강엔터프라이즈의 권익현 대표는 "따뜻한 한 끼를 우리 소중한 장병들에게 대접하게 되어서 오히려 감사하다"면서, "최정예 7공수 장병 여러분들이 국토방위에 전념하는 것에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그 노고에 감사드린다"고 화답했습니다.

▲ 포토존에서 기념촬영이 있었습니다. 좌측 네번째가 박우영 준장, 다섯번째가 권익현 대표, 여섯번째가 박광덕 회장 등의 순입니다. ⓒ 추광규


▲ 귀빈 식당에서도 기념촬영이 있었습니다. ⓒ 추광규


'큰맘할매순대국'의 사회공헌 활동이 설날을 맞이한 7공수 여단의 식당을 훈훈하게 만든 순간이었습니다.

식사가 끝난 군인들은 잔반통에 남은 음식을 쏟아 붓고 식판을 한쪽에 쌓아놓고 있었습니다. 식당 안에서는 취사반원들이 수증기가 나오는 뜨거운 물로 식기를 세척하고 있었습니다.

32년 전 전주 35사단의 육군 훈련소에서 처럼 식사가 끝난 후 찬물로 식판을 닦아내던 옛날 군대의 그 모습은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일반 식당에 견주에도 뒤지지 않는 시설과 장비로 수많은 장병들의 식사를 척척 해내고 있는 모습이 격세지감을 일으켰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