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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복권 사셨습니까? 이번에도 전 꽝입니다

[주장] 삶이 버거운 서민들, 믿을 곳은 복권명당뿐

등록|2016.02.10 10:06 수정|2016.02.10 10:06
한 해의 시작을 알리는 첫 명절, 설날이다. 많은 사람이 서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늘 건강하세요' 같은 덕담을 웃으며 주고받지만, 사람들의 얼굴은 예전만큼 밝지 못하다. 오랜만에 가족과 만나 웃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어딘가 모르게 모두 그늘진 모습을 손쉽게 엿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가계부채는 사상 최대를 기록하고 있으며, 빚 없이 사는 사람을 찾는 일은 모래사막에서 사금을 찾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다. 중·소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설날을 앞두고 서로 '오늘은 꼭 밀린 돈의 조금이라도 주세요'라며 독촉한다. 모두 어려운 것을 알면서도 돈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렇다.

회사에서 일하는 직원들에게 설날 보너스를 챙겨줘야 하고, 오랜만에 고향으로 내려가 뵙게 되는 노 부모님께 작은 용돈을 챙겨드려야 한다. 더욱이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졸업하여 새로운 상위 학교 입학을 앞둔 친인척 자녀들에게 용돈까지 챙겨줘야 하니 부담이 이만저만 아니다.

모두 그렇게 돈이 없어서 아등바등하지만, 이때까지 항상 했던 일을 멈출 수 없어 사람들은 처참한 심정을 웃는 얼굴 뒤로 감추고 있다. 그래서 로또복권 판매율은 갈수록 더 높아졌다. 도저히 목돈이 생겨날 구멍을 찾지 못해서 복권 명당에 길게 줄을 서서 복권을 구매하는 거다.

목돈 생겨날 구멍 없는 서민들, 복권 명당에 줄 선다

실제로, 부산 범일동 유명 복권 판매점에서는 복권을 구매하기 위해서 1시간 가까이 기다려야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내가 복권을 구매하는 김해의 몇 명당 또한 10분은 줄을 서서 기다려야 복권을 구매할 수 있다. 한결 같이 길게 줄을 늘어서서 복권을 구매하는 모습은 보면 참 슬픈 웃음이 지어진다.

설날 연휴가 시작한 토요일에도 복권을 구매하러 갔을 때, 많은 사람이 열심히 검정 사인펜으로 번호를 체크하고 있었다. 아마 꿈에서 본 번호를 체크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생일과 핸드폰 번호, 자동차 번호를 가지고 체크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다들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 번호를 좋아하니까.

하지만 꾸준히 복권을 구매해본 사람의 입장에서는 자동으로 구매해도 괜찮았다. 괜히 광고를 통해서 복권 사이트에 가입해서 번호를 받아 구매해도 100% 운에 따르는 게 복권이다. 복권을 사는 사람마다 저마다 방식이 있는데, 그냥 그 방식 그대로 매주 꾸준히 구매하는 게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나도 이번에 4장의 로또 복권과 2장의 연금 복권, 1장의 즉석 복권을 구매했다. 지갑에 있는 돈을 모두 탈탈 털어서 산 것인데, 어머니가 복권을 꼭 사라며 돈을 챙겨주셨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이번에도 모든 거래 업체에 대금을 챙겨주지 못하면서 더 깊은 한숨을 쉬며 복권을 사셨다.

▲ 로또 복권 ⓒ 노지현


박근혜 정부는 말할지도 모른다. 많은 시민이 엄동설한에 고생하면서 줄을 서서 복권을 구매하는 이유가 어쩌면 대통령이 주장한 노동 개혁을 추진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그런 의견에 나는 '어불성설'이라고 답하고 싶다. 생계가 불안정할 때마다 복권 판매는 증가한다. 그만큼 힘들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기간을 늘리는 개혁이 어떻게 시민들의 삶을 안정시킬 수 있겠는가. 박근혜 대통령은 민생을 신경 써야 한다면서 재계 주도의 서명 운동을 독촉했다. 밑바닥에 있는 서민이 아니라 측근의 이야기만 들으면서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고 있다. MB 정부에서 현 정부 동안 민생은 파탄에 이르렀다.

그런데도 정부가 하는 말과 제도는 바뀌지 않았다. 빚을 부추기고, 대기업 위주의 정책으로 먹고살기 어려운 시민들을 더 어렵게 하고 있다. 내뱉은 말은 모두 거짓말과 허세가 섞여 진실을 똑바로 보지도 못하고 있다. 도대체 어디에 반값등록금이 실현되었으며, 어디가 살 만해졌다는 걸까?

시민의 복지를 향상하기 위해서 추진하는 시에는 '포퓰리즘은 나라를 어렵게 한다'면서 갖은 태클을 걸면서 반대를 하고 있다. 이런 게 과연 똑바른 정치라고 말할 수 있을까? 먹고살 희망이 옅어진 사람들이 복권 명당으로 발걸음을 하는 것은 아주 당연한,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복권이라는, 지푸라기 같은 희망을 잡으려는 사람들을 향해 '노오오오력을 하지 않는다'고 비판하지 말자. 복권을 사는 우리에게 '젊은 녀석이 고생도 안 하려고 한다'고 말해도 신경 쓰지 말자. 우리는 모두 똑같은 입장이다. 먹고살기 위해서, 조금이라도 사람답게 살아보고 싶어서 이러는 것이다.

부끄러워하지 말자. 복권을 사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입술에 침도 바르지 않은 채, 민생이 살아날 수 있다면서 갖은 거짓말을 하는 그들이 부끄러워해야 한다. 나는 오늘 이 글을 마치면서, 글을 읽는 당신에게 묻고 싶다. 복이 가득하다는 첫 명절 설날, 당신은 몇 장의 복권을 사셨나요? 당첨 좀 되셨습니까? 전 꽝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노지현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노지의 소박한 이야기>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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