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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푸대접 받던 상장, 친정에 들고 가보니...

[부모님의 뒷모습 17] 부모님께 나는 아직 성장을 멈추지 않은 나무

등록|2016.02.12 12:04 수정|2016.02.12 17:43

▲ 동네 백일장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 pixabay


수상 소식을 들은 건 하산 때였다. 전화가 걸려왔다.

"소식 들었어요? 정민씨 백일장 최우수상이라고 하던데."
"진짜요?"

작은도서관 관장이 수상 소식을 알려줬다. 백일장 수상자 명단을 확인하려고 누리집에 들어갔다가 내 이름을 본 사람이 있었던 모양이다.

한 달 전 동네에서 백일장이 열렸다. 백일장에 참가만 해도 참가 선물을 하나씩 준다는 말에 관심이 생겨서 초등학생 막내랑 함께 참가했다. 백일장에선 주최 측에서 시제를 알려주면 참가자들이 몇 시간 안에 글을 뚝딱 써야 한다. 백일장의 글쓰기 방식이 내 방식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래서 백일장에 참가는 해도 상은 받지 못할 거라 생각했다. 참가 선물인 필통 받는 걸로 만족해야지 생각했다.

당연히 수상자 발표날이 언제인지 관심을 두지 않았다. 수요일 오전이면 엄마들과 가까운 검단산으로 등반을 했다. 하산 길에 '백일장 수상' 전화를 받은 것이다. 연락을 받고 어안이 벙벙했다. 그러면서 좀 걱정이 됐다.

'그 글은 마무리는 똑바로 했나? 혹시 주술관계가 안 맞는 비문이 들어 있으면 어쩌지? 수상작은 문집으로 만들어서 발간한다고 했는데, 그럼 망신인데….'

백일장을 주최한 단체에서 연락이 왔다. 수상 소식을 알려주면서 가족들도 데려오고 꽃도 사 들고 오란다. 하지만 난 어색했다. 이 나이에 무슨 꽃까지 받나 싶었다.

상금·부상 없는 상, 푸대접

남편과 아이들에게 수상 소식을 알렸다. 식구들 반응은 한결같이 똑같았다.

"상금은? 부상은 뭐 없어?"
"응. 없어."

어디서 상금도 부상도 없는 상을 받아왔느냐는 표정들. 한 해 전 기사 쓰기 공모전에서 입상을 해 부상으로 가족여행권을 받은 후유증이 이렇게 오는구나 생각했다. 식구들 눈이 한껏 높아져 부상 없는 상은 눈에 차지 않는가 보다.

수상식은 우리 지역 '문학의 밤'에 열렸다. 막내와 함께 참석했다. 내가 받은 '최우수상'은 우리 동네 국회의원이 주는 상이었다. 부상은 없었지만, 상은 폼 나게 액자에 들어 있었다. 일반부보다 학생부 수상자가 훨씬 많았다. 상을 받은 학생 가족들은 꽃을 사 들고 와서 기뻐했다.

상을 받아 왔지만, 집에 걸어 둘 곳이 마땅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가 받아온 상을 걸겠다고 내가 손수 못질하는 게 영 이상했다. 결국, 국회의원 상장은 우리 집 거실에서 이리저리 굴러다니게 됐다. 만일 이 상의 주인공이 내가 아니라 우리 집 아이들이었다면 상이 이런 푸대접을 받았을 리는 없다. 당장 제일 좋은 위치에 못질해서 떡 하니 상을 걸었을 것이다. 그러면서 친정 부모님 생각이 났다. 어쩜 이 상을 제일 좋아할 사람은 친정의 부모님일 듯하다.

같은 상장인데, 친정에선 금쪽 같이 귀하네

친정에 걸린 국회의원상친정 거실에 걸린 국회의원상 ⓒ 강정민


친정에 가는 날, 상장을 가지고 갔다. 상을 부모님께 보여드렸더니 좋아하신다. 아버지가 물으신다.

"아이고 이게 누가 준 상이라고?"
"국회의원이."
"얼마나 잘 썼으면 국회의원이 상을 다 주냐?"
"백일장에 성인들은 별로 참가 안 하잖아? 경쟁률이 낮으니까 내가 상을 받은 거지."
"그래도 글을 잘 썼으니까 받지 아무나 받냐?"

아버지가 어디다 둘지 고민하신다. 식탁 위의 달력을 치우고 상을 건다. 상장 액자는 식탁 위 가장 좋은 자리에 떡하니 걸린다. 우리 집에서 찬밥 대우를 받던 상인데 친정에선 대접이 다르다. 이렇게 좋아하시는 모습을 보니 진작 저런 상을 받아올 걸 하는 후회가 든다.

하긴 학생 때 나는 글쓰기를 즐겨하지 않았다. 만일 내가 학생 때 백일장에 나가 국회의원상을 받아 왔다면, 아니 '입선'만 했더라도 동네방네에 자랑하고 다니셨을 거다. 그리고 내가 크면 작가가 될 거라며 부모님은 철석같이 믿으셨겠지. 마흔이 넘은 딸이 동네에서 받은 상을 뭘 이리 좋아하실까? 하긴 이 나이 먹도록 내가 오죽이나 한 일이 없으니 이렇게 좋아하시는 거겠지.

한 해 전, 남편이 승진했던 일이 생각났다. 남편은 회사에서 중요 업무를 담당하는 자리로 승진했다. 시댁과 친정 부모님께 전화해서 승진 소식을 알렸다. 그리고 며칠 뒤 친정 엄마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아버지가 아범 승진 축하한다고 양복을 해 입으라고 돈을 보내 주신다고 하시는데."

예상도 못한 일이었다. 나이 마흔이 넘은 자식이 부모님에게 옷값을 받는 게 정상은 아니다 싶었다. 친정 아버지는 남편의 승진에 감회가 남달랐던 모양이었다. 자식인 내가 승진한 것도 아닌데 사위가 승진한 게 뭐 그리 좋으실까. 사실 승진으로 남편이 바빠지기는 하지만 월급이 많이 오르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사위 승진을 이렇게 좋아하시는데 자식인 내가 사회에서 인정받는 성취를 이뤘다면 얼마나 기뻐하셨을까?

"넌 뭘 하든 다 잘 될 거야"라는 말

식탁 위에 떡 하니 걸려 있는 국회의원상을 사진으로 찍어 남편 카톡으로 보냈다.

"엄마랑 아버지가 국회의원상 받았다고 무척 좋아하신다."
"그러니까 빨리 책 내세요. 돌아가시기 전에 딸 이름으로 책 나오면 얼마나 좋아하시겠냐?"

상 받는 것도 이렇게 좋아하시는데 진짜 내 이름으로 된 책이라도 낸다면 얼마나 좋아하실까? 내가 여태 써 놓은 글을 모아 책을 내면 어떻겠냐는 말을 남편이 가끔 했다. 실력도 없는 내가 책을 낼 생각을 한다는 게 쑥스러웠다. 자비 출판이라면 내 돈이 아깝고 출판사에서 내준다 하더라도 출판사 돈이 아까운 건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이렇게 작은 상 하나에도 기뻐하시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니 생각이 달라졌다. 내 돈 들여 자비 출판하는 것도 효도로서 충분히 의미가 있겠다 싶었다. 만일 부모님 돌아가시고 나서 나중에 책이 나오면 '글 좀 부지런히 써서 책 조금만 일찍 낼걸…' 하고 후회할 게 뻔하다. 얼마 전 엄마가 해 준 말도 생각이 났다.

"너는 뭘 하든 다 잘 될 거야."
"왜?"
"이건 너희 아버지한테도 내가 말씀 안 드렸는데. 네 태몽이 진짜 좋았어.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엄마의 이야기 속엔 나에 대한 기대가 담뿍 담겨 있다. 엄마의 눈에 난 아직도 모든 가능성이 열린 청춘인가 보다.

세 아이의 엄마로 한 남자의 아내로 안주할 수 없는 이유가 생겼다. 내 작은 성취에도 기뻐하시는 팔순의 부모님이 살아계시기 때문이다. 부모님에게 나는 아직도 성장을 멈추지 않은 '푸른 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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