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오늘, 몇 명의 '숨은 노동자'를 만났나요
[서평] 매일 만나는 노동자들의 이야기 <숨은노동찾기>
지난 설 연휴 기간 동안 내가 만난 숨은 노동자들을 생각해봤다. 시장에서 간단하게 장을 봤고, 택시를 타고 아이와 함께 부모님 댁에 다녀왔다. 긴 연휴 기간이어서 아이와 극장에도 갔었는데 커피숍에서 음료수를 시켜 먹었다. 편의점에도 들러 간단한 간식도 사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설 연휴 동안 마트나 백화점에서 부모님께 줄 선물을 골라, 고속버스를 타고 고향집에 다녀왔을 것이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화장실을 이용하고, 간단한 간식 거리를 사먹는다. 가족들과 함께 TV로 드라마를 보기도 하고 근처 식당에서 외식을 즐길 수도 있겠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몇 명의 노동자를 만났을까? 명절 때에는 마트에 더 많은 노동자들이 자신들이 판매하는 선물세트를 완판하기 위해 애쓴다. 고속도로의 톨게이트에는 끊임없이 들어오는 차량의 통행료를 수납하기 위한 수납원이 앉아 있다. 휴게소에는 멈출 줄 모르는 쓰레기를 계속 치워내는 청소노동자가 있다. 그리고 그 사이 사이에 만나는 아르바이트 노동자들. TV 속에서는 주인공이 아닌 셀 수도 없는 보조출연자들이 지나간다.
사실은, 우리는 일상에서 수많은 숨은 노동자들을 만난다.
다른 노동, 같은 처지, 보지 못했던 모습
우리 주변에는 수많은 숨은 노동자들이 있다. 매일 만나면서도 딱히 많이 신경쓰지 않는 사람들, 늘 곁에 있지만 신경 쓰지 않으면 지나치기 쉬운 사람들이다. <숨은 노동 찾기>는 이러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학교급식 조리원 노동자 김옥자씨, 알바 노동자 구교현·조윤·윤가현씨, 장례지도사 유준한씨, 콜센터 상담원 봉혜영씨, 대리운전 노동자 최장윤씨, 청주시노인전문병원 요양보호사 권옥자씨, 서울고속도로 톨게이트 수납원 한은미씨, 고려정업 청소 노동자 박봉순씨, 보조출연자 문계순씨, 대형마트 노동자 김진숙씨.
이 책에 실린 사람들이다. 언론과 사회적 관심에서 멀리있는 작은 현장, 지방의 노동 현장을 세 명의 르포작가가 찾았다. 그들은 어떻게 이 일을 시작한 것일까, 일을 하면서 어떤 점이 힘들고, 이 일을 하는 자부심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숨은 노동 찾기>에는 비정규 불안정 이야기를 놓치지 않고 들으려고 했던 작가들의 노력이 엿보인다.
정말 별별 친구들 많아요. 최저임금 못받은 친구도 있고, 임금 다 떼인 친구도 있고, 쌍욕 들은 친구도 있고, 안타까운 건 그냥 포기한다는 거예요. 그만두고 다른 일 구하는 거죠. '내가 대신 전화해줄까?' 그래도 '그 매니저가 나한테 잘해줬어' 그래요. 그런 걸 왜 생각해! - 58쪽,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할 '알바 노동'
간식 챙겨주고, 짬날 때마다 청결하게 하고, 말벗해드리고 무엇이 불편한지 알아보고. 이걸 계속 반복해서 해야 해요. 진짜 치매 환자는 계속 불러대고 이렇게 누이면 저렇게 뉘여달라, 저렇게 누이면 이렇게 해달라, 물 달라, 오줌 마렵다, 사람이 떨어지면 무서우니까 계속 부르는 거예요. - 149쪽, 청주시노인전문병원 요양보호사 권옥자씨
이 직업을 계속하면 왼쪽으로 허리가 휘게 되어 있어요. 척추측만이 오는 거죠. 직원들이 병원을 갔다 와서 이게 직업병이라는 걸 알았어요. 목 디스크, 허리 디스크가 많아요. 전에는 고개를 창문 밖으로 내놓고 있었거든요. 디스크로 3명이 수술을 했어요. 그때는 산재라는 말도 못 꺼냈죠. 산재가 뭔지도 몰랐으니까요. - 180쪽, 고속도로 위 마네킹처럼 앉아 있는 그녀들
"우리는 투명인간이 아닙니다"
분명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인데도 우리는 왜 그들의 노동을 크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일까. 일상의 일부라고 생각할수록 숨은 노동은 눈에 띄지 않아서이다.
동네 가로등이 전부 꺼져있는 것을 발견하고, 다산콜센터 120번으로 문자를 보냈던 지난 주말도 그랬다. 120번으로 문자를 보내자마자 회신이 왔다. 불편을 드려서 죄송하다는 문자와 함께 정확한 위치, 이름, 연락처, 처리 과정을 안내받겠냐는 동의 회신 요청 문자 등을 주고받았다. 접수가 완료되었다는 문자를 받고 '수고한다'는 메시지를 보내지 못한 것에 나는 마음이 무거워졌다. 문자 뒤에 있는 숨은 노동을 하고 있는 사람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숨은 노동 찾기>의 필자들도 모두 그랬나 보다. 각 르포마다 작가들은 자신들의 인터뷰 '후기'를 작성했는데, 인터뷰를 읽고 났을 때의 나의 마음과 작가의 마음을 비교해봤다. 그리고 내가 만난 노동, 노동자의 삶이 우리의 삶에 얼마나 숨어 있었는지, 나는 그들의 노동을 함부로 대하지 않았는지 반성하기도 했다.
그를 처음 만났을 때 가장 먼저 그의 오른손이 눈에 들어왔다. 손바닥엔 커다란 굳은 살이 박여 있고, 손가락 마디마디 역시 울퉁불퉁 갈라져 있었다. 죄 벌어지고 거무스름해진 손톱은 기형적으로 두꺼웠다. (…) 고된 노동이 손에 오롯이 박인 것이라고 생각했으면서도 한 자리에 앉은 청소 노동자 넷의 오른손 굳은살이, 손톱 색깔이 비슷한 것을 보았을 때 머리가 띵하고 얼떨떨했다. - 212~213쪽, 정윤영 작가의 후기
"우리는 투명인간이 아닙니다." 세상의 어떤 노동도 투명인간이 하지 않는다. 살아 숨쉬는, 감정을 가진, 뜨거운 심장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 해낸다. 진숙씨는 오늘도 거대한 대형마트 앞에서 이 평범한 진리를 세상에 외치고 있다. - 267쪽, 신정임 작가의 후기
송기역 기획자가 책의 서두에서 "연대한다는 것은 우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함을 깨닫게 하는 뜻풀이다"라며 "제대로 안다는 것은 연대의 출발"이라고 말한다. 세상에는 갑과 을이 존재하는 것일까? 을이라고 생각되었던 내가 언젠가 숨은 노동을 하고 있는 누군가에게 갑이 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니 늘 행동을 조심해야겠단 생각이 든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설 연휴 동안 마트나 백화점에서 부모님께 줄 선물을 골라, 고속버스를 타고 고향집에 다녀왔을 것이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화장실을 이용하고, 간단한 간식 거리를 사먹는다. 가족들과 함께 TV로 드라마를 보기도 하고 근처 식당에서 외식을 즐길 수도 있겠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몇 명의 노동자를 만났을까? 명절 때에는 마트에 더 많은 노동자들이 자신들이 판매하는 선물세트를 완판하기 위해 애쓴다. 고속도로의 톨게이트에는 끊임없이 들어오는 차량의 통행료를 수납하기 위한 수납원이 앉아 있다. 휴게소에는 멈출 줄 모르는 쓰레기를 계속 치워내는 청소노동자가 있다. 그리고 그 사이 사이에 만나는 아르바이트 노동자들. TV 속에서는 주인공이 아닌 셀 수도 없는 보조출연자들이 지나간다.
사실은, 우리는 일상에서 수많은 숨은 노동자들을 만난다.
다른 노동, 같은 처지, 보지 못했던 모습
▲ <숨은 노동 찾기> 책표지. ⓒ 오월의 봄
학교급식 조리원 노동자 김옥자씨, 알바 노동자 구교현·조윤·윤가현씨, 장례지도사 유준한씨, 콜센터 상담원 봉혜영씨, 대리운전 노동자 최장윤씨, 청주시노인전문병원 요양보호사 권옥자씨, 서울고속도로 톨게이트 수납원 한은미씨, 고려정업 청소 노동자 박봉순씨, 보조출연자 문계순씨, 대형마트 노동자 김진숙씨.
이 책에 실린 사람들이다. 언론과 사회적 관심에서 멀리있는 작은 현장, 지방의 노동 현장을 세 명의 르포작가가 찾았다. 그들은 어떻게 이 일을 시작한 것일까, 일을 하면서 어떤 점이 힘들고, 이 일을 하는 자부심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숨은 노동 찾기>에는 비정규 불안정 이야기를 놓치지 않고 들으려고 했던 작가들의 노력이 엿보인다.
정말 별별 친구들 많아요. 최저임금 못받은 친구도 있고, 임금 다 떼인 친구도 있고, 쌍욕 들은 친구도 있고, 안타까운 건 그냥 포기한다는 거예요. 그만두고 다른 일 구하는 거죠. '내가 대신 전화해줄까?' 그래도 '그 매니저가 나한테 잘해줬어' 그래요. 그런 걸 왜 생각해! - 58쪽,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할 '알바 노동'
간식 챙겨주고, 짬날 때마다 청결하게 하고, 말벗해드리고 무엇이 불편한지 알아보고. 이걸 계속 반복해서 해야 해요. 진짜 치매 환자는 계속 불러대고 이렇게 누이면 저렇게 뉘여달라, 저렇게 누이면 이렇게 해달라, 물 달라, 오줌 마렵다, 사람이 떨어지면 무서우니까 계속 부르는 거예요. - 149쪽, 청주시노인전문병원 요양보호사 권옥자씨
이 직업을 계속하면 왼쪽으로 허리가 휘게 되어 있어요. 척추측만이 오는 거죠. 직원들이 병원을 갔다 와서 이게 직업병이라는 걸 알았어요. 목 디스크, 허리 디스크가 많아요. 전에는 고개를 창문 밖으로 내놓고 있었거든요. 디스크로 3명이 수술을 했어요. 그때는 산재라는 말도 못 꺼냈죠. 산재가 뭔지도 몰랐으니까요. - 180쪽, 고속도로 위 마네킹처럼 앉아 있는 그녀들
"우리는 투명인간이 아닙니다"
분명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인데도 우리는 왜 그들의 노동을 크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일까. 일상의 일부라고 생각할수록 숨은 노동은 눈에 띄지 않아서이다.
동네 가로등이 전부 꺼져있는 것을 발견하고, 다산콜센터 120번으로 문자를 보냈던 지난 주말도 그랬다. 120번으로 문자를 보내자마자 회신이 왔다. 불편을 드려서 죄송하다는 문자와 함께 정확한 위치, 이름, 연락처, 처리 과정을 안내받겠냐는 동의 회신 요청 문자 등을 주고받았다. 접수가 완료되었다는 문자를 받고 '수고한다'는 메시지를 보내지 못한 것에 나는 마음이 무거워졌다. 문자 뒤에 있는 숨은 노동을 하고 있는 사람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숨은 노동 찾기>의 필자들도 모두 그랬나 보다. 각 르포마다 작가들은 자신들의 인터뷰 '후기'를 작성했는데, 인터뷰를 읽고 났을 때의 나의 마음과 작가의 마음을 비교해봤다. 그리고 내가 만난 노동, 노동자의 삶이 우리의 삶에 얼마나 숨어 있었는지, 나는 그들의 노동을 함부로 대하지 않았는지 반성하기도 했다.
그를 처음 만났을 때 가장 먼저 그의 오른손이 눈에 들어왔다. 손바닥엔 커다란 굳은 살이 박여 있고, 손가락 마디마디 역시 울퉁불퉁 갈라져 있었다. 죄 벌어지고 거무스름해진 손톱은 기형적으로 두꺼웠다. (…) 고된 노동이 손에 오롯이 박인 것이라고 생각했으면서도 한 자리에 앉은 청소 노동자 넷의 오른손 굳은살이, 손톱 색깔이 비슷한 것을 보았을 때 머리가 띵하고 얼떨떨했다. - 212~213쪽, 정윤영 작가의 후기
"우리는 투명인간이 아닙니다." 세상의 어떤 노동도 투명인간이 하지 않는다. 살아 숨쉬는, 감정을 가진, 뜨거운 심장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 해낸다. 진숙씨는 오늘도 거대한 대형마트 앞에서 이 평범한 진리를 세상에 외치고 있다. - 267쪽, 신정임 작가의 후기
송기역 기획자가 책의 서두에서 "연대한다는 것은 우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함을 깨닫게 하는 뜻풀이다"라며 "제대로 안다는 것은 연대의 출발"이라고 말한다. 세상에는 갑과 을이 존재하는 것일까? 을이라고 생각되었던 내가 언젠가 숨은 노동을 하고 있는 누군가에게 갑이 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니 늘 행동을 조심해야겠단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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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기역 기획 | 최규화, 정윤영, 신정임 지음 | 오월의봄 | 13,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