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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연을 통해 보는 오늘의 정치

[서평] 난세에 읽는 정치학 <율곡의 경연일기>

등록|2016.02.16 20:09 수정|2016.02.16 20:10

▲ 오천원권에 인쇄된 율곡이 율곡의 모습을 그려낸 초상이라면 책에서 읽을 수 있는 내용들은 율곡이 자화상을 그리듯 정치적으로 남긴 흔적이며 가치입니다. ⓒ 한국은행


적지 않는 사람들이 개인의 삶과 정치는 별 상관없다고 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조금만 진지하게 생각해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는 걸 아주 뼈저리게 절감할 수 있는 게 작금의 우리 사회에서 겪을 수 있는 현실 아닌가 생각됩니다.

정치는 밥줄입니다. 삶의 공간을 메우고 있는 환경입니다. 가족들 분위기에 조차 스며드는 바람 같은 존재입니다. 경제는 물론 사회적 질서, 문화적 가치조차 달리하게 하는 시대적 가늠자가 됩니다. 정치는 인류가 군집생활을 하면서 자연스레 형성 된 질서이자 흐름입니다. 역사적으로 어떤 정치는 옳고 좋았고, 어떤 정치는 잘못되고 나빴습니다.

때로는 어떤 말 한 마디가 열 번 후려치는 매보다 따끔할 때가 있습니다. 좋은 글 한 줄 역시 청천벽력 같은 꾸지람보다 정신을 퍼뜩 차리게 하는 좋은 질책이 될 때가 있습니다.

율곡이 17년 동안 기록한 <율곡의 경연일기>

▲ <율곡의 경연일기>(지은이 율곡 이이 / 옮긴이 오항녕 / 펴낸곳 너머북스 / 2016년 1월 30일 / 값 29,000원> ⓒ 너머북스

<율곡의 경연일기>(지은이 율곡 이이, 옮긴이 오항녕, 펴낸곳 너머북스)는 율곡 이이이(李珥, 1537.1.7~1584.2.27.)가 30세 때인 1565년(명종 20) 7월부터 46세가 되던 1581년(선조 14)까지, 약 17년에 걸쳐 기록한 내용입니다.

율곡의 생은 47년으로 그리 길지 않습니다. 하지만 율곡이 남긴 흔적은 화석으로 새겨진 공룡 발자국만큼이나 크고, 진하고, 강하고, 또렷합니다. 어머니인 신사임당은 5만 원 권 지폐를 상징하는 인물로 인쇄돼 있고, 율곡 자신은 5천원 권을 상징하는 지폐 인물로 인쇄 돼 있으니 이들 모자가 현실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구석구석 엄청납니다. 

5천원 권에 인쇄된 율곡이 율곡의 모습을 그려낸 초상이라면 책에서 읽을 수 있는 내용들은 율곡이 자화상을 그리듯 정치적으로 남긴 흔적이며 가치입니다. '정치'는 '통치자나 정치가가 사회 구성원들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거나 통제하고 국가의 정책과 목적을 실현시키는 일'입니다.

율곡 생각 임금은 그 고귀함이 이미 극에 이르렀다. 따라서 신하된 이가 떠받들기만 하는 것을 공격이라 생각하지 말고, 좋은 일을 실행하도록 간하는 것으로 공손을 삼아야 한다. -<율곡의 경연일기> 135쪽

얼마 전, 청와대에서 개최된 국무회의에 참석했다 나오는 어느 단체장에게 어느 비서관이 창피할 정도의 고성을 질렀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짐이 곧 국가이던 왕정 하에서도 승정원에 근무하는 신하들이 그러지는 않았을 거라 생각됩니다. 진즉부터 '심기경호'라는 말이 회자되더니 이젠 '심기보좌'라는 말이 등장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죽음을 무릅쓰고 간언을 서슴지 않던 충신 모습과 듣기 좋아 할 말만 일삼던 간신의 모습이 이리저리 겹쳐 연상되는 묘한 순간이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이 하는 게 정치입니다. 방법과 형식 등은 조금씩 달라질 수 있지만 본질적으로 달라지지 않는 게 사람들 관계이고 정치입니다. 그 옛날, 백성들이 좋아하던 정치라면 후대를 사는 현대인들도 분명 좋아할 정치가 될 거라 생각됩니다.

율곡 생각 조정에서는 식견이 중요하다. 식견이 없으면 현인이라도 일을 그르친다. 지금 사류의 싸움은 모두 사안을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나왔다. 첫 번째 이해하지 못하는 사안은, 김성일이 일의 발단이라는 것이고, 두 번째 이해하지 못한 사안은, 김계휘가 사류의 노여움을 격동시켜 놓은 것이며, 세 번째 이해하지 못한 사안은 이발이 3윤 일가의 숨은 죄를 허실도 알아보지 않고 추하게 헐뜯은 것이고, 네 번째 이해하지 못한 사안은 정철과 이발이 틀어져서 동.서가 합할 가망이 영영 끊어져 버린 것이다. - <율곡의 경연일기> 458쪽

동·서인으로 갈려 당파싸움이 멈추지 않던 당시, 정치의 한복판에 있던 율곡은 눈앞에서 펼쳐지는 정치를 보며 생각하고, 분석하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답하고 있습니다.

경연, 국왕과 신하가 소통하는 시간, 교류하는 공간

생각과 이념이 다르고, 입장과 이해를 달리하는 사람들이 위정자들입니다. 그런 위정자들 가운데 선 국왕이 당대의 정치를 지혜롭게 이끌어 나갈 수 있었던 수단이자 도구는 경연이었습니다. 경연은 갈등을 해소하는 매개, 분란을 봉합하는 계기, 국왕과 신하가 교류하는 시간이자 소통을 견인해 가는 공간이었습니다.

"왕의 신하 중에 자기 처자식을 친구에게 맡기고 초나라에 다니러 간 사람이 있었다고 합시다. 돌아와 보니 친구가 처자식을 추운 데서 굶주리게 하였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절교하지요."
"장교가 군사를 지휘하지 못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파면하지요."
"나라가 다스려지지 않으면 어찌 하시겠습니까?" - <율곡의 경연일기> 379쪽

율곡이 기록으로 남긴 경연을 통해 들여다보는 선조 대 조선 정치의 진면목은 오늘날 정치를 되돌아보게 하는 오목반사경이고 볼록거울입니다.

현실정치에 대고 똑같은 취지의 질문, "나라가 다스려지지 않으면 어찌 하시겠습니까?" 하는 질문을 자꾸 묻고 싶어지는 건, 경연을 통해서 읽을 수 있는 어떤 글들이 청천벽력 같은 꾸지람보다 훨씬 더 정신을 퍼뜩 차리게 하는 질책처럼 읽힐 정치적 키워드 묘수가 될 거라 기대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덧붙이는 글 <율곡의 경연일기>(지은이 율곡 이이 / 옮긴이 오항녕 / 펴낸곳 너머북스 / 2016년 1월 30일 / 값 2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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