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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유학, '서울↔지방' 유학보다 돈 적게 들까

[캠퍼스 옵저버 ⑥] 독일 유학생들에게 묻다, '등록금 없는 나라'는 어때요?

등록|2016.03.04 21:14 수정|2016.03.04 21:14
'유학생들에게 묻다' 시리즈는, 한국 대신 외국의 교육을 선택하고 떠난 유학생들(미국, 유럽, 아시아)의 목소리를 들어보는 기획입니다. - 기자 말

관련 기사 : ① 미국 유학생들에게 묻다, 당신은 왜 한국을 떠났나요?

#1. 미국인들은 독일로, 한국인들은 미국으로

한국인들은 미국을 좋아한다, 그리고 '너무' 좋아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한눈에 보는 교육 2015' 자료에 따르면, 2013년 한국인 유학생 5명 중 3명은(60.8%) 미국으로 떠났다. 같은 해 전 세계 유학생 중 5명 중 1명만(19%) 미국으로 떠난 걸 감안하면, 한국 교육의 '미국 의존성'은 보통 이상인 게 분명하다.

▲ ① 최신 통계년도(2013) 기준. ② 파란색 계통의 영미권이 전체 72.3%(캐나다는 영국에 포함). ③ 영미권의 등록금은 학사과정 기준 연평균 4113달러(약 505만 원)~2만1189달러(약 2605만 원) 수준임. ④ 단, 독일 박사급 교육과정 유학 인원은 제외됐고 프랑스 일부 대학 등록금은 영미권과 비슷함. ⓒ 하지율


한데 정작 미국인들은 '등록금 세계 1위 나라' 미국을 떠나고 있다. 지난 2월 17일 NBC 방송에 따르면 미국인들이 현재 '등록금 없는 나라' 독일의 고등교육기관에 등록한 건수는, 1년 전보다 9% 증가했으며 2008~2009년보다 25% 증가했다(국제교육협회).

독일인들은 한국인들처럼 '장학금을 누구에게(성적우수자냐 저소득층이냐), 얼마나 주느냐'의 문제로 싸우지 않는다. 이미 '등록금'이라는 프레임 자체를 넘어서, 등록금 자체를 없애기로 사회적 합의를 본 지 오래기 때문이다.

독일인들은 학생들의 '학업'이란 결국 독일 공동체의 발전에 기여하는 '노동'이라고 믿는다(그래서 매월 내국 학생들에게 '연구 보수'를 지급한다). 또한 빈부 격차가 '교육받을 기회'에 대한 차별로 이어지는 게, 정의롭지 못하다고 판단한다.

2013년 전 세계 유학생 5%도 '등록금 없는 나라' 독일을, 6%가 '등록금을 조금 받는 나라' 프랑스를 택했다. 한데 위 자료에서 보듯 같은 해 한국인의 유학은 독일행과(3.1%) 프랑스행을(1.7%) 합쳐도 5%에 못 미친다. 세계적 추세와 비교해도, 미국 못지 않은 '등록금 세계 2위' 한국인들이 독일 유학을 비교적 '저평가'한다는 건 독특한 현상이다.

#2. 독일 유학, '서울↔지방' 유학보다 돈 적게 들까

▲ ① 2016년 2월 23일 기준 '유로-원' 환율을 반영해 천 원 단위에서 반올림해 계산(환율 변동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 ② 주거비는 전기세, 수도세, 인터넷 이용요금 등이 모두 포함. ③ 기타 비용은 의료보험료, 교통비, 통신비, 취미생활비 등 나머지 비용. ⓒ 하지율


그렇다면 독일 유학은 저평가돼도 좋을까. 정보를 좀 더 얻고자, 유학생인 정란씨(밤베르크대 정치학사과정), 동민씨(하이델베르크대 독문학 박사과정), 주영·지현씨 부부(가명, 헤센 주에서 함께 음악 전공)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가장 먼저 깨진 건 '생활비가 많이 들지 않을까'하는 편견이었다.

위 사진처럼 이들의 한 달 평균 생활비 내역에 확인할 수 있듯, 독일 중소도시로 유학을 떠날 경우 1인당 73.5만(부부가 함께 살 경우)~111만 원이면 무난한 생활이 가능하다. 동민씨는 "한국인 유학생들은 보통 한 달에 약 96만~137만 원(700~1000유로) 정도 쓰는 편"이라고 본다. 이 비용을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는 경우와 비교해보자.

가령 아직 대학생인 기자는, 서울에서 주거비와 물가가 싼 편인 관악구 대학동에 산다. 한 달 생활비는 70만~80만 원 정도다. 여기서 결정적으로 하나 더 고려해야 하는 건, 한국 대학생들이 매 학기 수백만 원의 등록금을 내야 한다는 점이다.

반면에 독일은 등록금이 없으니, 동민씨는 "길게 보면 한국에서 지방에서 서울로, 혹은 그 반대로 학교에 다니는 것보다 돈이 적게 들 수도 있다"고 말한다. 주영씨 부부도 "저렴한 물가와 출산 비용까지 보장해주는 공공의료보험 덕분에 생활적으로 굉장히 만족"한다.

정란씨는 "독일 유학이 한국보다 돈이 덜 든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며 균형을 맞췄다. 가령 정란씨는 한국에서 대학을 다닐 때 부모님과 같이 살며 주거비를 아꼈지만, 매일 통학하느라 교통비가 많이 들었다. 반대로 독일에서는 주거비를 부담하고, 교통비를 아낀다. 결국 유학생 개개인의 생활 방식과 머무는 지역(대도시냐 중소도시냐), 성별, 계층 등에 따라, '서울↔지방' 유학보다 돈이 많이 들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3. 한국과 독일의 '답정너'는 어떻게 다를까

그렇다면 독일의 교육, 정치와 문화에 대해서, 유학생들은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우선 독일인들이 교육적으로나 일상적으로나, '성찰', '토론', '연대'를 중요하게 여긴다는 데 의견일치를 봤다. 독일인들의 성찰적 태도는 '힌터프라겐'(Hinterfragen)이라는 말로 집약된다. 힌터(Hinter)는 '뒤'라는 뜻이고 프라겐(fragen)은 '묻다'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 '어떠한 사안의 뒷배경(이면)에 대해서 질문한다'는 뜻이다. 한국의 교육이 '정답'을 권위적으로 주입한다면, 독일의 교육은 힌터프라겐을 통해 각자가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강조한다. 한국의 '답정너'가 '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하면 돼'라면, 독일의 '답정너'는 '답을 정하는 건 너(즉 학생)'에 가깝다(동민).

▲ 독일 하이델베르크대의 학생들. ⓒ 하이델베르크대 홈페이지


주체적인 사고를 통해 자신의 견해를 만들어내고, 조리 있게 표현할 방법을 가르치는 게 독일 대학교육의 목적이다. 학생이 좀 모자란 질문을 했거나 생각이 다르다고 무시당할 이유도 없다(정란). 교수와 학생이, 또 학생들 서로가 치열하게 토론하되 서로의 생각을 존중하는 가운데 상호 발전적인 관계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질문과 대답의 과정에서 교수도 많은 아이디어를 얻는다. 이 경우 교수는 출판물을 낼 때, 해당 학생에게서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사실을 명기한다(동민). 독일인들의 이러한 학문적 태도와 재생산 구조는 독일의 장점이자 원동력이다(정란). 또한 독일인들은 차별을 '성숙하지 못한 태도'라고 본다. 외국인의 말이 서툴러도 차별하지 않고 끝까지 기다리고, 자신이 말을 정확히 이해했는지 확인하고 되묻는 등 의사소통을 돕기도 한다(주영).

독일은 경쟁사회가 아니라 연대사회에 가깝다. 시험 기간에 도서관에 앉아있어도, 한국인들처럼 자꾸 옆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지 않는다. 비교하지 않으면 서로를 경쟁자로 보지도 않는다. 경쟁도 어느 정도 동기부여가 될 수 있겠지만, 한국처럼 지나친 경쟁은 오히려 독이다. 성적은 다른 사람보다 좋게 나올지 몰라도 마음은 행복하지 않다.

독일 학생들은 오히려 시험 기간에 인터넷 커뮤니티 등을 통해서 활발하게 정보를 공유한다. 누군가 '이 문제가 잘 이해가 안 간다'며 글을 올리면, 설명 글들이 올라온다. 한국인들이 '내가 남들에 비해 무슨 노력이 부족했나'를 의식한다면, 독일인들은 '내가 다른 사람보다 나은 점'을 키워나가고 실현하는 데 초점을 둔다. 그래서 각자의 자유로운 발전을 추구하면서도, 서로를 도울 수 있다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정란).

#4. 성숙한 시민이 탄생하는 조건, '교육'

하지만 독일 유학이 결코 만만한 건 아니다. 아래 자료와 같이 독일 대학생의 3명 중 1명은 학업을 중단한다. 입학은 쉬워도 졸업이 녹록지 않은 현실을 잘 보여준다. 한국 유학생들은, 적성에 맞는 공부 환경보다 '엘리트 대학 졸업장' 같은 사행적 가치를 노리고 오는 모습도 종종 보인다. 이런 학벌주의자들의 끝은 '쓴맛'을 보는 걸로 끝나기 십상이다(동민). 왜일까. 독일인들이 토론하는 습관이 배인 사람들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독일인들은 토론을 통해 서로 연대하는 가운데 각자의 생각을 발전시키고(동민, 정란), 공공의 관심사를 공유하는 데 자연스럽다. 가령 한국 청년들은 커피를 마시며 정치 이야기를 하면 낯설어하기 십상이지만, 독일 청년들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견해를 밝힌다. 또한 한국 노인들은 노인정에 모여 TV를 보지만 독일 노인들은 오페라를 감상하고 평을 나눈다(주영). 왜 정치와 문화에서, 이런 태도의 차이가 생길까.

▲ (자료=독일 교육부 산하 연구소 DZHW의 2014년 보고서) 동민씨의 도움으로 독일 학부생들의 학업중단율을 확인했다. 중국 유학생들의 학업중단율이 16%에 그친데 힘입어, 동아시아 유학생들의 학업중단율은 전체 평균보다 낮은 25% 정도였다. ⓒ 하지율


원인은 교육에 있다. 한국인들은 주입식 교육을 '12년 동안'이나 받고, 엘리트 대학 졸업장이라는 사행적 목표를 위해 '경쟁'하게끔 부추김 당한다. 그 피해자들이 어느 날 독일 유학을 간다고 해도 수업, 발표, 논문 작성, 일상 등에서 매일같이(심지어 독일어로) 반복되는 '관계 맺음'에 적응하기란 쉽지 않을 수밖에 없다.

20대의 투표율을 탓할 것이 아니라, 한국 사회가 독일에 비해 '한 사람이 어떻게 성숙한 시민으로 성장하는가'라는 문제를 너무 방치했던 게 아닌지 돌아볼 때가 아닐까(관련 기사 : "투표 좀 해" '꼰대질' 하기 전에 알아야 할 것들).

동민 : 독일의 학생회 선거는 지방의회 선거와 유사합니다. 후보자는 정당 소속(사민당, 기민당, 자민당, 녹색당, 좌파당 등)으로 입후보하며, 비례대표처럼 정당투표를 통해 학생의회 대표가 선출되죠. 독일 학생들이 한국 학생들보다 특별히 더 정치에 관심이 많은 것 같지는 않아요. 다만 '학교 교육을 통해' 민주주의 정치시스템을 아주 잘 이해하고 있고, 대부분의 경우 정치 문제에 대해 각자의 소신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주영(주영씨는 영주권 취득을 고민 중이다) : 한국에서는 현실적으로 아이를 키우기 힘들어요. 유치원비부터 비싸거든요. 그리고…. 제가 여기서 한글 학교를 운영하며 느낀 건 이곳 초등학교는 수학 구구단은 못 외워도 인명구조 자격증은 따게 한다는 점입니다.

정란 : 유학 생활이 항상 즐겁고 재미있지만은 않아요. 가족과 친구들이 보고 싶기도 하고 제대로 된 한국 음식이 그리울 때도 있어요. 하지만 독일에 온 뒤로 행복하다는 생각을 참 많이 해요. 여기 온 뒤로 밤하늘의 별을 보는 걸 좋아해요. 별이 한국보다 더 잘 보이는 것도 있지만 그만큼 마음에 여유가 많이 생겼단 거겠죠?

이들은 유학 전으로 돌아가도, 독일을 선택하겠냐는 질문에 모두 '그렇다'고 답했다.

(프랑스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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