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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드 비치에 갔지만 옷은 벗지 못했다

[호주 시골 생활 이야기] 부티부티 국립공원(Booti Booti National Park)

등록|2016.02.18 17:59 수정|2016.02.18 17:59

▲ 웅장함보다 초라함을 강조하는 노천 교회 ⓒ 이강진


오늘은 결혼기념일이다. 35년을 같이 살았다. 이혼 경험이 있는 호주 친구가 농담 삼아 묻는다. 오랫동안 함께 살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이냐고, 물론 특별한 대답을 기대하는 눈치는 아니다.

이유가 무엇일까. 사랑하기 때문에, 자식을 비롯해 이런저런 피치 못할 이유로, 아니면 주위의 시선 때문에, 아마도 이 모든 것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하여간 오래 함께 사는 것을 부러워하는 친구에게 여유 있는 웃음을 보여줄 수 있어 좋다.

호주에서, 그리고 외딴 시골에 결혼기념일을 축하해 줄 사람은 없다. 그래도 모른 척 하고 지나가기는 아쉽다. 무엇을 할까?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이 외식이다. 그렇다고 외식만 하기에도 그렇다. 일단 집을 나선다.

장을 보거나 낚시할 때 자주 들리는 포스터(Forster)를 지나 더 남쪽으로 내려가 본다. 왼쪽은 바다, 오른쪽으로는 넓은 호수가 있는 경치 좋은 곳이다. 이곳에 특이한 교회가 있다며 아내가 한 번 들러보자고 한다. 

시원하게 뚫린 도로를 따라 내려가니 오른쪽으로 캠핑장이 나온다. 그리고 캠핑장 끝자락에 교회 푯말이 있다. 그러나 흔히 유명한 교회라면 상상하게 되는 웅장한 건물은 보이지 않는다. 교회 입구의 좁은 오솔길을 따라가니 통나무로 투박하게 만든 의자가 야외에 있을 뿐이다. 앞에 있는 십자가도 초라하기 짝이 없다. 손질하지 않은 흔한 나뭇가지 두 개를 엮어 세웠을 뿐이다. 건물 자체가 없는 교회다.

설교하는 강대상 뒤는 넓디넓은 호수가 있다. 예배드리는 장소는 울창한 야자나무로 둘러싸여 있어 포근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천장은 없다. 비가 오면 그대로 맞을 수밖에 없다. 아마도 비가 오는 날은 우산으로 비를 피하며 예배에 참석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초라하게 보이기까지 하는 통나무 의자에 앉아본다. 일요일에는 교인이 모일 것이다. 수수한 옷차림으로 통나무에 걸터앉아 인사를 나눌 것이다. 호수를 배경으로 하는 설교도 들을 것이다. 호수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함께 간단한 다과도 나누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그려진다.

꾸미지 않은 노천 교회, 흔히 대형교회에서 볼 수 있는 권위 있는 가운을 걸치고 있는 목사의 모습을 상상하기 어렵다. 양복을 차려입은 교인의 모습도 주위 환경과 어울리지 않는다. 오히려 격의 없이 제자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예수님의 모습이 주위 환경에 더 어울릴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초라한 들판에서 메시지를 전하며 소외된 이웃과 마음을 주고받는 예수님의 모습이.

강대상 뒤로 펼쳐진 너른 호수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오솔길을 따라 교회를 나선다. 나가는 길목에 나무 막대가 하나 세워져 있다. 육각형으로 만든 막대에 여섯 나라의 말로 번역된 글이 쓰여 있다. '이 세상에 평화가 가득하기를, May Peace Prevail On Earth'. 교회에서 흔히 들어왔던 천당, 구원, 복 등의 단어는 찾아볼 수 없다. 세상에 평화가 임하기를 원하는 예수님의 기도 한 구절만 있을 뿐이다.

▲ 강대상 뒤로 보이는 호수(Wallis Lake)가 노천 교회의 모습과 잘 어울린다. ⓒ 이강진


옷을 벗은 모습이 더 자연스러운 누드 비치

색다른 교회를 경험하고 더 남쪽으로 운전한다. 부메랑 해변(Boomerang Beach)이라는 푯말이 있다. 오래전 시드니에 살 때 한 번 들렀던 곳이다. 멋있는 해변으로 기억되어 들렀는데 산책하는 사람 몇 명만 보이고 바다를 즐기는 사람은 없다. 해변도 생각했던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다시 길을 떠나는데 도로변에 차들이 즐비하게 주차해 있다. 우리도 차를 세우고 둘러보니 해변으로 가는 길이 나온다. 산책할 겸 바다도 볼 겸 천천히 걷는다. 산등성이에 오르니 비취빛 바다가 펼쳐진다. 파도 한 점 없는 바다 색깔이 유난히 예쁘다. 해변에 도착했다. 깨끗한 바다와 주위 환경이 물놀이 하기에 최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분위기가 이상하다. 바다에서 물놀이하는 대여섯 사람이 옷을 입고 있지 않다. 모래사장에도 누드로 일광욕하는 사람이 많다. 누드 비치에 온 것이다. 물론 수영복을 입은 사람도 있다. 오른쪽 바위 근처에서 잠수복을 입고 작살로 고기를 잡는 사람도 보인다. 옷을 벗고 있는 사람과 옷을 입고 있는 사람들이 거리낌 없이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있다. 옷을 벗고 있는 사람이 더 자연스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수영복은 가지고 오지 않았으나 산책하느라 땀에 옷이 젖어 있어 수영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옷을 벗지는 못하고 발만 물에 담그며 해변을 걷는다. 이러한 환경에 익숙하지 않아서일까, 마음은 누드로 일광욕 하는 사람을 향하고 있으면서도 발걸음은 옷 입은 사람 쪽으로 향한다.

결혼기념일, 포스터 바닷가에 있는 그럴 듯한 식당에 앉아 식사한다. 조금 전에 보았던 노천 교회와 누드 비치가 화제에 오른다. 자연과 어우러져 기존 관념을 깨는 노천 교회, 거리낌 없이 옷을 벗으며 자신들의 삶을 만끽하는 모습, 자그마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세상이 원하는 대로 살 것인가, 아니면 우리의 삶을 살 것인가. 인간은 자연에 있을 때 가장 인간답다는 말이 생각난다. 자연을 가까이 하며 우리만의 삶을 살아보자는 이야기를 나눈다. 저물어가는 바다를 배회하는 바닷새의 모습이 정겹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호주 동포 신문 '한호일보'에도 연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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