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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중간을 위한 인문학

[서평] 평균의 개념을 새로 정의하는 책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등록|2016.02.22 14:32 수정|2016.02.22 14:32
일전에 '대한민국 평균 임금 264만 원'을 못 받는 사람 몇몇이 모여 서로의 하소연을 들어주는 시간을 가졌다. 평균 임금도 못 받는 것들이 죄다 시간은 없어서 하소연도 하는 둥 마는 둥 하며 어수선하게 헤어졌다. 그날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을 읽었다.

▲ 지.대.넓.얕 ⓒ 이종미

'한국의 근로자 평균 월급이 264만 원'이라는 통계발표에 자괴감을 가진 게 나만은 아니었을 거다. 단순히 264만 원도 못 번다는 숫자적 열패감보다는 '평균'이라는 단어에서 오는 자괴감이 더 컸지 싶다.

'아! 나는 평균치에도 못 끼는 그런 사람이구나. 평균치를 까먹는 계급이구나....'

그 평균치의 이면에는 통계의 두 배 이상을 받는 고소득자의 임금이 포함된 것임을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언론들은 굳이, 자세히 밝히지 않았다. 실지로는 평균월급을 못 받는 사람들이 전체의 60%라고 한다.

그러니까 사실은 평균월급을 264만 원으로 올려준, 40%의 '고소득자'만 '평균소득자'이고 나머지 60%가 대다수라는 진실인 거다. 같은 60:40에 대한 해석과 발표를 어느 쪽에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이 '평균치'의 진실은 이렇게 큰 체감이 발생한다.

우리나라 최고의 재벌언론사, 1등 판매부수의 조선일보 기자들의 평균 월급이 저 정도 된다고 들은 것 같다. 거기 기자들은 저 월급이 작다는 불만을 토로했던 것 같은데, '조선일보'의 영향력과 브랜드네임을 볼 때 생각보다 작기는 했다.

'평균소득'은 밑바닥 치는 국민 인심을 얻고 싶은 정부의 대선전 홍보 문구였는지도 모른다. 결과는 '인심'대신 '원성'만 남았지만. 채사장은 저런 '평균치'와 '중간치'는 다르다고 말한다.(아래 기사 참고)​

'내신 5등급을 위한 인문학
<지대넓얕>은 사람들이 지적인 대화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에서 쓴 책인 셈이다. 기존 인문학 서적이 너무 '상향 평준화돼 있다'는 생각에 채사장은 책에서 개념어나 어려운 말을 최대한 배제하고 구어체로 이야기하듯 책을 썼다. "제 주변만 봐도 고등학교 때 친구들 상당수가 대학을 가지 않았어요. 어머니도 대학을 가지 않았고요. 이른바 '스카이'로 대표되는 상위권 대학을 가는 학생의 비율은 전국의 3%에 불과한데 미디어를 통해 접하는 사람들, TV에서 보는 사람들, 책에서 저자로 만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스카이 출신이에요. 그러나 사실 한국 사회를 구성하는 다수는 내신 5등급으로 지방대를 나오고 월100만~200만원을 버는 사람들이에요. 그들이 인문학을 향유하고 말하는 주체가 돼야죠." '얕은 지식'에 평등의 정신이 녹아 있다(<한겨레21> 평범한 이들을 위한 얕은 지식의 전당 중에서>'

​이렇게 '평균'은 '평균'이 아니고, 그 평균이라는 말속에는 위정자, 위선자들의 비겁한 포장술이 숨어 있는 것이다. 포장지가 알맹이를 기 죽이는 꼴이다. ​이 책은 가짜 평범인들이 보는 고색창연한 철학책이 아니라, 진짜 '평범한' 사람들이(도) 그 '인문학'이란 것을 실생활에서 가깝게 대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든 대중서이다.​

​시중에 있는 상식 문제집들을 공부 전혀 안 한 백지상태에서 펴 보면 자신이 얼마나 '상식도 없는' 무식자인지를 곧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상식책에 나오는 내용들이라는 게 채사장이 정의한 '평범한' 사람들에겐 실상 별 필요나 의미 없는 것들이 더 많다.​ 이 책은 그런 틈을 파고든 전략적 책이다.​ 채사장이 정의한 평범한 기준치에 드는 나같은 사람에게 저 책은 아주 재밌고 유용했다.

​원래는 '베스트셀러' 류를 잘 안 읽고, 읽어도 순위가 밑으로 한참 떨어진 다음에도 꾸준히 나가면 그때 읽지만 어쩌다 이 책은 비교적 판매 초기에 읽게 되었다. 모처럼 서점에 들러서 선 채로 이거저거 집어 읽다가 '제목에 대한 반감'으로 펴 본 거였다. 그리고 샀다.​

평소 신문기사나 뉴스를 볼 때 '경제' 기사를 가장 잘 안 보는 편이다. 전문용어가 많이 나와서 재미없기도 하지만, 주가니 하는 것도 나랑은 별 상관없고 경기부양정책, 주택정책이니 하는 것도 도통 와닿지 않아서 패스했다.​ 그런데 이 책은 나 같은 경제 무관심자나 무식자들도 흥미와 재미를 가지고 읽게 해주었다.

​쉽지 않은 주제들을 아주 쉽게 풀어 냈는데, 대학 때 하루에 한 권씩은 읽어서 졸업 때까지 천 권을 읽었다는 내공이 느껴졌다. 모르면서 아는 척 하긴 쉽고, 아는 걸 현학적으로 뽐내기도 쉽지만, '내가 이만큼 알고 있거든'이라는 지적 자만심을 소거하고 쉽게 쓰는 게 더 힘들 수도 있다. 쉽게 쓸 수 있을 만큼 알아야 하고, 모르는 사람들을 무시하지 않고 따뜻하게 대할 줄 아는 마음과 눈 높이가 있어야 하므로.

정치, 사회, 투표 혐오증의 예방에 도움 줄 책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중고등학교 교양서나 철학/사회책의 부교재로 쓰거나 집단 독서토론 과제물로 권장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생들이 후에 투표권으로 어떤 힘을 행사 할 수 있을 때, 공공의 선과 이익에 대해 판단하고 재고하는데도 좋은 도움이 될 것 같다.​

역사, 경제, 정치, 윤리, 사회의 기본 개념과 서로서로 어떻게 연결되고, 영향을 미치는지를 현실의 예와 쉬운 도표로 설명한다. 책 속에서 언론이 객관적이지 못하는 이유와 거기에 대중이 어떻게 이용되는지를 언급하기도 한다.

'미디어가 잃어버리고 주관적으로 편향될 수밖에 없는 것은 단적으로 수익 구조 때문이다.
이러한 미디어의 수익 구조의 특성은 한국에서 보수 정당이 지속적으로 승리할 수 있는 주요한 원인을 제공한다.'(216쪽)

쉽게 말해서 조선일보 같은 보수언론이 객관적이지 못해 보이는 것은 대기업의 광고에 의존한 수익구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정부에서 기업의 세금과 규제에 대한 정책을 발표하면, 자기들의 월급과 성과급을 결정하는 물주들의 이익에 반하는 정책이니 앞장서서 반대여론을 조성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대중은 생각보다 나약하고 무관심해서 자신의 이익과 권리가 무엇인지 스스로 판단하기 귀찮아한다. 미디어는 그 틈을 파고들어 대중이 봐야 할 곳을 친절하고 세련되게 가르쳐준다.'(217쪽)

일전에 본 <내부자>에서 백윤식이 하던 대중에 대한 대사와 기시감이 드는 문장이고, 가난한 노동자(들)이 보수를 선택하는 이해할 수 없는 이유를 쉽게 대답한 대목이기도 하다.
출판사의 책 홍보 밑에 달린 댓글 중에 이런 게 있었다.

'....지적 대화를 위한 얕은 지식을 알려주는 척하면서 자기 정치사상까지 상식이라는 듯이 집어넣은 모습이 교활하고 비겁해 보였다....'

책에 대한 감상이나 찬반은 개인 성향이나 취향에 따라 다른 것이니 나와 다른 감상이라 해서 옳다, 그르다 할 순 없을 것이다. 의문이 든 건 '자기 사상을 집어넣은....'이라는 문장이었다.

한 권의 책을 읽고, 거기에서 글쓴이의 어떤 사상을 전혀 느낄 수 없다면 그게 과연 제대로 된 책인가 싶다. 정치색이든, 개인 취향이든 저자의 어떤 사상과 심상이 전혀 드러나지 않은 책은 지식전파나 인용에 불과할 것이다.

남의 좋은 말만 옮겨 놓은 명언집, 격언/속담 집에도 작가의 사상은 들어가 있다. 어떤 문장을 더 많이 인용했는가에 따라서- 한 권을 다 읽었는데 저자의 사상이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면 그 책이 오히려 잘못됐거나 실패한 것이 아닐까? 성경, 불경, 논어같이 종교, 도덕적 계훈같기만 한 책도 입장에 따른 다른 정치해석이 나온다.

독자가 작가보다 표절에 더 너그러워지는 것은 자기와 다른 남의 생각을 대하기 불편하기 때문에, 그저 제 귀나 살살 간지럽혀 줄 쉽고 말랑한 글만 찾기 때문일 것이다. 표절은 부도덕한 작가와 어리석은 독자의 합작품이고, 헬조선은 뻔뻔한 정치가와 어리석은 유권자의 합작품이다. 저 감상자가 말한 '사상이 (전혀) 드러나지 않는' 책은 과연 어떤 책인지 모르겠다.

책 속 글대궁을 하나 더 옮기며 마친다.

세계에 대한 관점의 차이는 타인에 대한 평가를 다르게 한다. 세상이 그나마 안정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사회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문제의 원인이 개인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사회가 안정적인데 문제가 발생한 것이니, 그 문제는 사회의 잘못이 아니라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개인의 일탈행위라고 보는 것이다. 반대로 세상이 문제가 많고 불안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사회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문제의 원인을 개인이 아닌 사회에서 찾는다. 왜냐하면 사회가 이미 문제를 내포하고 있으므로, 정상적인 개인이라도 그 부조리한 상황 안에서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는 것이다. (192쪽)
덧붙이는 글 개인 블로그에도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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