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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로봇, 소리> 공존의 감정을 논하다

[리뷰] 로봇과 한 가장의 성장 스토리가 전한 감동

등록|2016.02.21 22:28 수정|2016.02.21 22:28

<로봇, 소리> 스틸컷딸 유주의 행방을 찾기 위해 로봇 '소리'와 함께 길을 떠나는 해관. 분홍색 후드집업에 안전벨트까지 맨 앙증맞은 '소리'의 모습이 눈에 띈다. ⓒ 이은주


감정을 느끼는 로봇을 상상해본 적 있는가. 이 로봇은 인간처럼 사고하며 심지어는 가벼운 농담을 건네거나 화를 내기도 한다. 허무맹랑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인공지능(AI)로봇이 주인공인 영화 <로봇, 소리>의 이야기다.

스마트폰 하나로 신문도 보고 영화도 보고, 은행업무도 보고, 심지어는 자동차를 움직이게 할 수도 있게 된 2015년. 자고 일어나면 기술혁신이 이루어지는 초고속 성장시대에 휴대폰 연락처가 '016'으로 시작하고, 2000년대 초반 대유행을 휩쓸고 지나갔던 폴더폰을 아직도 쓰고 있는 한 남자가 있다.

촌스러운 폴더폰을 붙들고, 해관(이성민 분)은 오늘도 기다리고 있다. 이 휴대폰은 10년여 전 실종된 딸과의 마지막 연결고리다. 번호를 바꾸지 않는 이유도 혹여나 딸에게 연락이 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서다.

그 시각, 지구 위를 돌고 있던 미국의 인공위성이 서해 앞바다에 불시착한다. 마침 서해 굴업도에 와서 딸을 찾아다니던 해관은 정체불명의 로봇이 떨어져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이 로봇은 사람의 목소리만 들으면 이름과 나이 등의 신상정보를 알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심지어는 마지막 발신 통화 장소까지도 알아낼 수 있다. 해관은 이 로봇을 이용해 딸을 찾는 데 마지막 힘을 다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날부로 해관과 로봇은 동고동락하며 전국 곳곳을 오가면서 고군분투 하게 된다.

사람과 사람이 나누는 대화가 대부분인 일반 영화와 달리 <로봇, 소리>에서는 사람과 로봇이 대화한다. 어색한 듯 어색하지 않게 이어지는 휴먼과 로봇의 '케미'는 이 영화를 유쾌하게 만들어주는 윤활유의 역할을 한다.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

<로봇, 소리> 포스터"미친 소리 같겠지만, 이 녀석이 제 딸을 찾아줄 것 같습니다". 영화 <로봇, 소리>는 어느 날 우연히 만나게 된 로봇과 함께 좌충우돌 이야기를 겪게 되는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 이은주


'I NEED TO FIND HER'

해관이 모래사장에서 로봇을 발견했을 때 로봇이 처음으로 내보인 문자였다. 로봇은 아프가니스탄의 민간지역 폭격으로 위험에 빠진 소녀의 통화를 듣고 나서 그녀를 찾고 있었다. 딸을 찾고 싶어 하는 해관과 같은 생각이다. 해관은 이 로봇을 '운명공동체'라고 생각했다. 로봇을 조수석에 태우고, 휠체어로 끌고 다니며 딸 유주의 목소리가 있는 공간을 추적한다.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보는 바람에 후드 집업도 입혀주었다.

해관은 로봇에게 '소리'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이름의 뜻처럼 이 세상 모든 소리를 기억한다는 것. 해관이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단지 알파벳과 숫자로 조합된 '제품명'에 불과했던 소리는 비로소 하나의 존재로 규정된다. 김춘수 시인의 <꽃>의 구절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꽃>의 한 구절)

소리는 해관에게 딸과의 관계를 자각할 수 있게 도움을 준다. 여느 평범한 가정처럼 그는 엄격한 아버지였고 유주는 자유롭고 싶은 딸이었다. 해관은 유주가 험난한 길 대신 꽃길만 걷길 바랐다. 착하고 얌전한 딸, 유주였으니까. 그러나 딸이 자신의 바람을 거역하고 남몰래 기타 치는 양아치 무리들과 어울리는 것을 알고 불같이 화를 낼 수밖에 없었다. 그 날로 해관은 유주를 대구로 무작정 끌고 오고 꿈을 접도록 했다. 유주는 "자신의 말을 들어주려고 하긴 했냐"며 눈물을 흘렸지만 해관은 "그러는 너는 내 말을 들었냐. 아빠 말만 들으라고 했잖아"라고 받아쳤다. 두 사람은 차 안에서 고함을 치며 서로에게 상처를 입혔다. 해관은 홧김에 길 한 가운데 차를 세우고 유주에게 내리라고 했다. 그것이 두 사람의 마지막이었다.

해관은 소리의 도움으로 그 당시 유주를 가장 잘 알고 있던 사람들을 찾아갈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딸의 진심을 들었다. 딸의 진짜 꿈, 속마음, 아빠를 향한 애정까지…. 유주는 노래를 하고 싶어 했다. 세상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노래를 들려주는 것이 유일한 꿈이었다. 해관은 딸의 목소리를 듣지 않았던 자신을 원망했다. 하지만 해관이 마음의 '소리'를 듣게 되었을 때에는 이미 늦었다. 유주는 2003년 2월 18일, 대구지하철에 있었다. 몸이 타들어갈 것 같은 화염의 고통 속에서도 유주가 마지막 통화를 건 것은 바로 아빠였다. "사랑한다고, 미안하다고…" 딸의 소리를 너무 늦게 알아버린 아빠는 사고가 있었던 희생자 추모 철도에서 12년 뒤에야 그 말을 할 수 있었다.

해관은 더 늦기 전에 소리가 찾고 있는 그녀에게 소리를 보내주기로 한다. 소리가 없어진 것을 알게 된 미국 NASA와 소리를 중간에서 차지해 고급정보를 빼내려는 한국의 국정원의 공작 속에서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해관은 소리를 지키기 위한 최후의 사투를 벌인다. 로봇, 소리는 과연 아프가니스탄 소녀의 '소리'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인가. 소리의 마지막 여정을 그리며 영화는 끝이 난다.

로봇과 인간은 공존할 수 있을까

<로봇, 소리> 스틸컷해관과 '소리'는 어느새 서로를 의지하게 되며, '공존'하는 자세를 보인다. ⓒ 이은주


영화 <로봇, 소리>에서 나오는 인간은 두 종류로 나뉜다. 로봇을 자신의 명령에 따르게 하고 자신의 이익에 따라 굴복시키는 것이 하나고, 반대로 동료와 친구로서 로봇과 함께 공생해나가는 것이 또 하나다.

그렇다면 로봇과 인간은 상하관계가 아닌, 수평적인 관계로써 공존할 수 있을까. <인터스텔라>나 <아이, 로봇>과 같은 다른 영화에서 그려진 로봇의 개념은 바로 인간의 조력자이자 소유물이라는 것이었다. 심지어 미래 인공지능로봇의 힘으로 인간의 모든 생활을 할 수 있다고 가정한 영화 <아이, 로봇>에서는 로봇이 지켜야 할 법칙 3가지를 내세우며 로봇을 인간의 노예로 완전히 귀속시켰다.

<로봇, 소리>에서 등장한 소리의 역할 역시 해관의 조력자라는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해관이 소리라는 정체성을 명명하고, 핑크색 옷을 입히고, 소리의 머리를 쓰다듬고, 목숨 걸고 자신을 도와준 소리에게 진정으로 "고맙다"고 말하는 눈물겨운 장면들은 로봇과 인간이라는 신분을 넘어서는 인간성, 그리고 '공존'의 가치를 보여준다.

최근 구글 알파고와 바둑 세계 최고수인 이세돌 9단의 대결 때문에 세간이 시끌시끌하다. 언론에서는 '로봇 대 인간'이라는 구도에만 집중하고 있다. '미래에는 로봇 때문에 일자리가 50%가 사라질 지도 모른다'라는 말도 있다. 영화 속 소리도 '딥 러닝(컴퓨터가 사람처럼 생각하고 배울 수 있도록 하는 인공지능기술)' 기술을 장착한 인간보다 더 인간 같은 로봇이다. 어쩌면 한 영화에서처럼 자칫하면 인간을 지배하려는 로봇이 등장한다면 둘 중 한 쪽은 궤멸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언젠가는 인간이 그들을 신뢰하고 협력해야 하는 날이 올 것이다. 그런 면에서 영화 <로봇, 소리>가 보여준 인간과 로봇의 감동적인 공존은 깊은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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