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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아들 군 면제, 이거 다 '주작'인 거 아시죠?

[인터뷰] 페이스북 페이지 '여혐주작, 어디까지 봤니' 운영자 차각씨

등록|2016.02.22 14:18 수정|2016.02.22 14:18
최근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한 엘리베이터 사진이 논란이 됐다. 이 엘리베이터에는 '여성전용', '남성은 절대 탑승금지'라는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남성을 역차별 하는 엘리베이터"라는 비난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사진의 원본이 공개되면서 상황은 급반전됐다. 해당 엘리베이터는 인천에 있는 한 스파 시설에 설치된, 여탕 전용 엘리베이터였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여탕으로만 연결되어 있다'는 문구와 스파 시설임을 알 수 있는 내용을 지우고 사진 화질을 낮춘 것이다. 누리꾼 사이에선 "조작이 없으면 여혐(여성 혐오)을 못 한다"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역차별 엘리베이터? 여탕 전용 엘리베이터!최근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에 실린 한 엘리베이터 사진. 해당 엘리베이터는 인천에 있는 한 스파 시설에 설치된, 여탕 전용 엘리베이터였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여탕으로만 연결되어있다'는 문구와 스파 시설임을 알 수 있는 내용을 지우고, 화질도 낮췄다. ⓒ 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여성 혐오 조작 사례는 수없이 많다. '여성가족부가 특정 과자와 자동차 모양이 성기와 닮아있다는 이유로 판매 금지를 요청했다'는 건 약과다. 여성가족부 등 여성 단체를 비롯해 개인에 대한 혐오 조작 사례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여성가족부 전 장관의 업적에 대한 소문이나 연인 간의 카카오톡 대화를 조작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여성에 대한 전형적인 편견을 기반으로 한 소문은 편견을 재생산하며 여성 혐오를 더욱 공고하게 한다.

지난해 11월 12일, 이 고리를 끊기 위해 여성 혐오 조작 게시물을 검증하는 페이스북 페이지가 생겼다. '여혐주작, 어디까지 봤니?'(아래 여혐주작)다. '여혐주작'은 컷툰을 통해 인터넷 공간을 떠도는 여성 혐오 조작 게시물의 팩트를 확인한다. 19일, 이메일을 통해 '여혐주작'의 운영자 차각(활동명)씨와 이야기를 나눴다.

여혐주작, 어디까지 봤니?페이스북 페이지 '여혐주작, 어디까지 봤니?'는 컷툰을 통해 다양한 여성 혐오 조작 사례를 검증한다. ⓒ 차각


매번 반복되는 조작, '몸에서 사리 나올 거 같다'

"여성 혐오를 조장하는 게시물에서 이게 왜 사실이 아닌지 설명하는 분의 댓글을 봤어요. '매번 비슷한 조작 자료를 가지고 오니, 몸에서 사리가 나온다'는 한탄을 듣고, 위키(공동 문서를 만들거나 사용자들이 내용을 추가할 수 있는 페이지)를 하나 만들까 잠깐 고민했습니다. 그러다 카드 뉴스 혹은 컷툰처럼 만드는 게 편리할 것 같아 후자를 택했습니다. 간단하게 '짤'을 던져서 조작 검증 완료, 정말로 편리하잖아요."

차각씨 또한 SNS를 통해 여성 혐오 조작 게시물을 자주 접했다. 여성전용 시설에 관련한 각종 루머부터 모자, 연인 간의 카카오톡 대화를 조작해 여성에 대한 비난을 이끌어내는 게시물까지. 그는 "'내가 총대를 멜테니, 조작 자료만 주면 팩트로 박살내겠다'는 마음으로 페이지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구상기간은 약 일주일 정도.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페이지인데, 생각보다 반응이 폭발적이다.

'여혐주작' 페이지는 운영한 지 세 달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좋아요'를 누른 이들이 2,351명(2월21일 기준)에 이른다. 게시물 공유나 댓글 반응도 뜨겁다. 지금껏 들어온 제보도 약 30건에 이른다. 그만큼 이런 검증에 목말랐던 이들이 많다는 증거다. 제보 창구가 허전해지면 웹서핑을 하며 소재를 찾지만, 그런 일은 거의 없다.

여성가족부를 향한 조작 사례는 너무 많아 '특집'으로 풀어내는 중이다. 예를 들어 여성가족부 특집 1편에선 김금래 전 여성가족부 장관을 둘러싼 소문을 파헤쳤다. 김 전 장관의 자녀는 딸만 둘인데, 온라인 커뮤니티에 떠돌아다니는 소문 때문에 '아들이 군 면제를 받았다'는 오해를 받았다.

딸만 둘인데 아들 군 면제?여성가족부 특집 1편에선 김금래 전 여성가족부 장관을 둘러싼 소문을 파헤쳤다. 김 전 장관의 자녀는 딸만 둘인데, 온라인 커뮤니티에 떠돌아다니는 소문 때문에 '아들이 군 면제를 받았다'는 오해를 받았다. ⓒ 차각


이처럼 대부분의 여성 혐오 조작 사례는 허술하고 단순하다. 하지만 차각씨는 "아직도 '여성부 업적'이라는 '고전짤'이 인터넷에서 떠돌아다닐 정도로 조작 자료를 맹신하는 모습을 종종 목격한다"며, "여성 혐오가 누군가에겐 커다란 위협이 되지만, 어떤 이들에겐 유희이고 놀잇감이기 때문이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여성 혐오는) 여성에게만 해당되는 사회현상으로 보이지만 그렇지 않아요. 남성 또한 맨 박스(manbox, '남자다움'을 강요하는 것) 안에 가둬놔요. 남성이 손 놓고 있는 한 이 문제는 결코 해소되지 않아요. 여성과 남성,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해결해야 할 협력과제라고 생각해요."

"여성 혐오 문제, 함께 풀어가야 할 협력 과제"  

차각씨는 "(여성 혐오 문제가) 공기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다가 수면 위로 떠올랐을 때부터 관심을 가지게 됐다"며, "최근에 (여성 혐오와 관련한) 서적들을 읽어가며 공부하고 있는 중"이라고 덧붙였다. 그래서 그는 "페미니즘의 가치를 기반으로 '여혐주작' 페이지를 만들긴 했지만, 독자들에게 페미니즘을 공부하라고 강권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다만, "페이지를 통해 '당신은 지금 허수아비를 공격하고 있으니, 제대로 알고 비판하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고 설명했다.

"(최근 여성 혐오 문제가 활발히 이야기 되면서) 이 사회가 누군가를 억압하고, 내리찍고, 희생시켜서 굴러갔다는 걸 보다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었어요. 그리고 이것을 '불편하다'고 말했을 때 '예민하다'고 손가락질 당하는 게 아니라, 그에 공감하고 동조하는 사람들이 생기고 있고요. 대중의 가치관은 변화해 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눈에 띄지 않을 만큼 느릴지라도."

여혐 조작 제보 받습니다 ‘여혐주작’ 페이지는 운영한지 세 달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좋아요’를 누른 이들이 2,351명(2월21일 기준)에 이른다. 게시물 공유나 댓글 반응도 뜨겁다. 지금껏 들어온 제보도 약 30건에 이른다. 그만큼 이런 검증에 목말랐던 이들이 많다는 증거다. 제보 창구가 허전해지면 웹서핑을 하며 소재를 찾지만, 그런 일은 거의 없다. ⓒ 차각


본업이 있는 그는 "앞으로 월 2회로 연재를 조정해, 제보 받은 여성 혐오 조작 사례를 바탕으로 컷툰을 올릴 예정"이라고 했다. 여성가족부 이외에 다른 특집을 기획하고 있는 것은 아직 없다. 여유가 된다면 '여혐주작' 페이지 운영과 함께 창작 만화를 그리고 싶단다.

"페미니즘이라는 빨간 약을 먹은 사람이 불편하지 않게 볼 수 있는 만화나, 성차별 경험에 공감하고 그 아픔에 위로하는 만화를 그리고 싶어요."

영화 <매트릭스>의 주인공 네오는 '빨간약'을 먹고 세상의 '진실'을 본다. 낯선 광경을 본 네오는 혼란스러워하지만,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페미니즘을 아는 것 또한 그렇다. 여성 혐오를 인식하는 것 또한, 그럴 것이다. 누군가를 차별하고, 외면하며, 소외시켜온 역사를 마주하는 것은 아프고 괴롭다. '여혐주작'의 컷툰과 그가 그려나갈 만화가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소독하고 어루만지는, 또 다른 '빨간약'이 될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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