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류준열 일기장 훔쳐보기

[visual & story] 1993년부터 2016년까지... "굿바이 정환! 나미비아에 널 두고 갈게"

등록|2016.03.14 11:28 수정|2016.03.28 18:43

▲ '류준열'. 분명 2015년과 2016년을 지나며 가장 뜨거운 이름 중 하나가 됐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 종영 이후 그를 만났다. 이제 막 서른을 넘긴 이 청년은 자신과 연기에 대한 생각이 깊은 사람이었다. ⓒ 이희훈


☞ 이 기사, 비주얼&스토리로 크게 보기

소년은 차 밑으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축구공이 바닥과 차 밑 사이에 끼어 꿈쩍이지 않았다. 발을 뻗어보지만 역부족이다. 동네 친구들과 아파트 단지 내 놀이터를 내달릴 때만큼은 '캡틴 박지성'이었건만, 괜히 멋쩍어진다. 이 소년은 커서 국가대표 축구선수가 아닌 2016년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뜨겁게 부상하는 배우 중 하나인 류준열(30)이 된다.

<응답하라1988>(아래 <응팔>) 정환의 사랑은 외사랑으로 결론 나며 수많은 '어남류'(어차피 남편은 류준열) 팬들의 마음을 울렸지만, 류준열만큼은 시청자 뇌리에 각인됐다. <응팔>의 신원호 PD가 드라마 시작 전부터 했던 "드라마의 성공 여부와 관계없이 너희들은 급변할 것이다"라는 말이 주술처럼 먹힌 것일까.

어렸을 때부터 써왔던 류준열의 일기장에 그 변화의 폭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엄마도 못 보는 것"이라며 살짝만 공개해달라는 요구에 그가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지난달 22일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그의 일기장을 몰래 훔쳐봤다. 진짜? 물론 아니다. 지금부터는 류준열의 구술을 기반으로 한 가상 일기장임을 미리 밝힌다.

[1993년, 7살] "난 커서 뭐가 될까?"

▲ 사람들은 흔히 '못매남'(못생겼지만 매력있는 남자)이라며 류준열을 꼽는다. 그의 장점이기도 하다. 다양한 표정과 감정 연기에 그만큼 최적화 돼 있는 얼굴이라는 뜻. ⓒ 이희훈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흙장난을 쳤다. 손톱에 때가 꼈다. 하얀 내 얼굴도 새까매졌다. 아, 축구도 했다. 차 밑에 공이 꼈는데 발이 안 닿는다. 엄마가 밥 먹으라고 불렀다. 어떡하지? 내 공이 아닌데. 친구가 짜증을 냈다. 다행히 막대기로 꺼낼 수 있었다. 내일도 축구를 하고 싶은데 피아노 학원과 미술 학원에 가야 한다. 바둑도 1급이나 땄는데... 엄마가 이것저것 많이 시킨다. 난 커서 뭐가 될까." - 1993년 5월 3일 날씨 맑음 (류준열 나이 7살)

류준열은 어린 시절을 꽤 또렷하게 기억했다. 이웃집과 때가 되면 음식을 나눠 먹고, 피아노를 치던 일 등을 열거하며 "<응팔>의 주제의식이었던 가족 간 사랑과 이웃 간 정이 전혀 낯설지 않았다"고 전했다.

다만 평소 성격은 정환과는 좀 다르다. 드라마를 촬영할 때야 실제 집에서도 "정환인듯 말도 없이 무뚝뚝하게 부모님을 대할 때도 있었다"지만 그보다는 "택이(박보검 분)에 가까운 살갑고 순종적인 성격"이다.

[1996년, 10살] "영화를 두 편이나 봤다" 19금도

▲ 배우이기 전에 류준열은 보통의 청년이다. 인터뷰 중에 그는 기자에게 "뭔가 통하는 것 같다"며 친근감을 숨기지 않았다. 그간 수없이 나온 <응팔> 얘기는 대부분 한쪽에 치워버렸기 때문. 자신을 가리며 준비된 말만 하는 일부 배우들과 차별된 지점이었다. ⓒ 이희훈


"설날이라 삼촌네 놀러 갔다. 날 보자마자 삼촌이 영화를 보자고 했다. 지난 번 추석 땐 하나만 봤는데 이번엔 두 편이나 봤다. <모험왕>이랑 <폴리스스토리4>를 봤다. 이연걸과 성룡이 주인공이었다. 재밌었다. 근데 난 무술보단 축구를 더 좋아한다. 한 밤 자고 집에 가는 날 삼촌이 또 영화를 보여주셨다. 만화 <아마겟돈>이었다. 오혜성의 목소리가 참 멋지다. 삼촌에게 물어보니 이병헌이 목소리 연기를 했다고 한다. TV에서 많이 봤던 사람인데!" - 1996년 2월 18일 날씨 흐렸다가 맑음 (류준열 나이 10살)

본인 스스로는 "잘 의식하지 못했다"고 말했지만 이때가 류준열이 배우라는 직업을 막연하게 생각하게 된 때가 아닐까.

초등학생 시절 그는 유독 비디오 가게에서 여러 영화를 빌려보곤 했다. "제가 봐도 집착일 정도였다"며 그가 설명을 시작했다. "집에 비디오 플레이어도 없었는데 테이프를 왕창 빌려서 이모집에 가서 보곤 했"다. 장르는 가리지 않았다. "희한하게 비디오 가게에서 19금 영화도 선뜻 빌려주시니 <사탄의 인형> 같은 공포물도 많이 봤"단다.

그런데 과연 19금 중 공포물만 봤을까? 또 다른 19금 영화 시청 여부는 나중에 밝히기로.

[2005년, 19살] "아무래도 이 길이 아닌 거 같다... 연기... 연기를 해볼까"

▲ 생각에 잠긴 류준열. 평소 그는 과묵한 편은 아니지만 철저히 자신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이다. 주변 사람들에게도 최대한 맞추려 하며 적을 만들지 않는다. 그 넓은 마음의 지금의 류준열을 있게 한 건 아닐까. ⓒ 이희훈


"오늘 또 졸았다. 심지어 서서 공부를 했는데도 졸았다. 재수 생활도 반년을 넘겼고, 수능이 코 앞인데 난 뭐하고 있는 걸까. 누군가를 가르치는 재능이 내게 있는지 의문이다. 아무래도 이 길이 아닌 거 같다. 연기... 연기를 해볼까. 창 밖에 핀 꽃이 바람에 흔들리는 게 참 자유로워 보인다. 내겐 시간이 없다. 어서 결정해야 한다." - 2005년 9월 30일 날씨 온종일 비 (류준열 나이 19살)

사범대 진학을 준비하다 자신이 조는 모습에 놀라 배우를 결심했다는 건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고작 재수인데 뭐 그리 포기가 빨랐냐고 물으니 "어? 정곡을 찔러주셨네?"라며 사람 좋게 그가 웃는다. "나름 신기한 경험이었고, 재밌는 에피소드라고 생각해서 매체에 말한 것"이라며 "예전부터 즐기며 봤던 영화가 자연스럽게 꿈으로 다가왔다"고 말했다.

이후 류준열은 수원대학교 연극영화과에 입학한다. 2학년 때까지 남들처럼 연극과 뮤지컬 무대를 경험했다. 그러면서도 따로 "개봉하는 한국 영화는 대부분 챙겨봤"다. 궁극적으론 영화를 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기 때문이다. "3학년 때부터 '영화의 역사' 같은 영화 관련 수업을 섭렵했"다. 이런 배움은 훗날 영화 현장에서 주요한 자양분이 된다.

[2012년, 26살] "오디션에서 또 떨어졌다"

▲ 류준열의 또 다른 다양한 표정들. 독감에 걸려 상태가 좋지 않았음에도 성실하게 그는 촬영에 임했다. ⓒ 이희훈


"오디션에서 또 떨어졌다. 역시 준비가 덜 된 탓일까. 마음처럼 기회가 주어지진 않는다. 그래도! 재밌다. 재밌게 하니 연기의 완성도도 올라간다. 누굴 탓할 수 있을까. 즐기면서 연기하는 마음, 그대로 간직해야겠다." - 2012년 8월 20일 장마 (류준열 나이 26살)

지금의 류준열을 있게 한 작품이 있으니 바로 <소셜포비아>다. 신원호 PD를 비롯해 <섬, 사라진 사람들>의 이지승 감독, <글로리데이> 최정열 감독 등이 <소셜포비아> 속 류준열을 주목했고 주요한 캐스팅 이유로 꼽기도 했다. 2012년 첫 단편 영화를 경험한 이후 <미드나잇 썬> <동心>의 단편을 거친 류준열 역시 <소셜포비아>를 인생의 작품으로 꼽았다.

그가 영화에서 맡았던 역할은 BJ 양게. 인터넷 방송 진행자다. 당시 오디션 영상을 보고 홍석제 감독에게 추천했던 한 PD는 "오디션 장소에서 류준열은 독보적이었다"고 기자에게 전했다. "양게 역에 꽂힌 류준열은 <아프리카TV> 방송을 섭렵해서 왔고, 현장에 마우스를 들고 와서 실제 중계를 하는 것처럼 오디션에 임했"단다. 속사포 같은 대사를 내뱉으며, 유쾌하게 엽기적인 사건들을 생중계하는 '류준열 표 양게'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설령 오디션에서 떨어진다 한들 류준열은 쉽게 낙담하지 않았다. 뒤늦게 흥행작을 만난 게 원망스럽진 않은지 묻자, 오히려 "왜 원망을 하죠?"라며 기자에게 되묻는다. "어렸을 때부터 가꿔온 인생의 자세"란다. 가령 이런 식이다. "떨어질 만하니 떨어진 거지 절대 분해하지 않는"다.

다만 "부족했던 점을 보완해 다음을 기약하자"고 다짐한다. 다소 늦은 데뷔였지만, 연기를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다. 2015년 초반까지 그는 한 초등학교에서 방과 후 교사로 연기를 가르쳤고, 직접 본인의 명함을 파서 관계자들을 만날 때마다 전하곤 했다. "잘 되면 남 덕, 안 되면 내 탓입니다!" 그가 시원하게 정리했다.

[2015년, 29살] "<응팔>, 내가 될 줄 상상도 못했다!"

▲ "캐릭터에 접근하는 법이요?" 그가 되물었다. "시나리오를 읽고 떠오르는 첫 인상을 중요시"한단다. 어떤 인물이든 첫 대면이 중요하다. 그 느낌을 바탕으로 그는 자신만의 캐릭터를 만들어 나가는 배우였다. ⓒ 이희훈


"세 번에 걸친 오디션 끝에 <응팔> 정환 역을 하게 됐다! 내가 될 줄 상상하지도 못했다. 첫 드라마인데 무조건 잘 해야 한다. 라미란 선배, 성동일 선배, 김성균 선배 등 기라성 같은 배우들과 함께 한다. 순발력 있게 잘 적응하자. 지금까지 재밌게 잘 준비해서 여기까지 왔잖나. 좋은 기회다. 순간을 즐기자! 가만, 현장에서 선배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지? 조금이라도 누를 끼치지 말자!!" - 2015년 7월 1일 날씨 맑음 (류준열 나이 29살)

<응팔>에 캐스팅 됐을 때 내심 짐작했다고 한다. 여러 배우들을 하마평에 올리는 수많은 기사들을 보며 그는 "분명 주목 받는 드라마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평소 적응력이 빠르고, 그만큼 주위에 폐 끼치는 걸 싫어하는 성격"인 그였지만 부담을 안 느낄 순 없었다.

첫 촬영 직전 신원호 PD가 젊은 배우들에게 한 마디를 던졌다. "드라마가 흥하든 망하든 너흰 이미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존재가 됐다. 흔들리지 말고 앞으로 잘 나아가라." 흥망이 아닌 작품을 임하는 자세에 대한 얘기였고, 이 말은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류준열이 즐기면서 임할 수 있게 한 좋은 자극이 됐다.

꾸준히 써온 그의 일기장은 <응팔> 방영 땐 잠시 촬영일지가 되기도 했다. "현장에서 배우는 점들, 정환이로서 느끼는 감정들을 차곡차곡 써내려갔"다. 대중적 인기를 안긴 작품이라 마냥 들떠있거나 인기에 취할만도 하지만, 오히려 그는 "예전에 안재홍(1986년생으로 류준열과 동갑)씨가 연출하는 독립영화 현장에 놀러갔다가 만난 고경표, 이동휘씨와 함께 사진을 찍었는데 신기하게도 사진 속 친구들이 다같이 <응팔>에 나오게 됐다"며 "너무 신기했고, 다들 각자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왔는데 잘 된 일"이라고 속 깊은 면모까지 보였다. 여러 독립영화로 실력을 인정받아 온 동료들과 '함께 뜬다는 것'에 대한 소회였다.

[2016년, 지금] "굿바이 정환! 난 다시 류준열로 살아갈게"

▲ 지난해 드라마로 쉼 없이 달려왔지만 본격적인 시작은 지금부터가 아닐까. 이제 대중들이 그에 대해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더욱 간절히 말이다. ⓒ 이희훈


"여기, 아프리카 나미비아다. 드라마가 끝나고 푸켓에서 모처럼 배우들과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이게 웬열? <꽃보다 청춘>팀에 납치당했다. 나영석 PD님 화면보다 실물이 더 낫다. 마치 연예인을 만난 기분이었다. 이제 또 다른 도전이다. 굿바이 정환! 그동안 고마웠어. 나미비아에 널 두고 난 다시 류준열로 최선을 다해 살아갈게." - 2016년 1월 31일 바람은 찼지만 화창했던 겨울 (지금 류준열)

<꽃청춘> 녹화를 마친 이후에야 류준열은 "정환이를 놓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다시 배우로서 가열차게 달려야 할 때. 다행히 그간 뿌린 씨앗이 많다. 당장 <섬, 사라진 사람들>이 개봉했고, <글로리데이>가 개봉을 앞두고 있으며, 한재림 감독의 신작 <더 킹>도 촬영 중이다.

류준열의 화양연화(花樣年華 :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가 이제 갓 막을 올리기 시작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