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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살아생전에 함께 영화 보기, 성공했습니다

[부모님의 뒷모습 18] <국제시장> 윤제균 감독님, 고마워요

등록|2016.02.26 16:34 수정|2016.02.26 16:34
엄마와 영화를 보러 가야겠다는 생각이 든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매일 가던 건강체험관에도 못 가는 팔순 엄마를 보자 마음이 안 좋아졌다. 턱없이 비싼 물건을 사더라도 엄마가 어디든 다닐 수 있을 때가 좋은 거였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만 있다가는 엄마 몸이 더 나빠질 게 뻔했다. 어떤 여가 생활을 권해야 할지 막막했다. 노인정도 노인복지관도 마땅치 않았다.

생각해 보니 엄마와 함께 영화관에 갔던 기억이 별로 없었다. 엄마와 영화를 처음 본 것은 2010년 설 명절이었다. 언니가 가족끼리 영화를 보러 가자고 했다. 근처 극장에 가서 영화<하모니>를 봤다. 영화 <하모니>의 주인공은 교도소에서 아기를 키우는 엄마였다. 젊은 엄마는 아기가 18개월이 되면 아기를 교도소 밖으로 보내야 했다. 아기와 엄마에게 이별 전 하루 외박을 선물하기 위해 여러 수감자가 마음을 모아 합창한다.

안 그래도 눈물 많은 엄마는 눈물 콧물을 다 빼고 울었다. 물론 나도 옆에서 울었다. 부모님과 같은 영화를 보고, 함께 눈물을 흘리며 감정을 공유하는 경험이 색다르고 좋았다. 다음에 기회가 오면 또 와야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 후 실천에 옮기지는 못했다.

엄마와 영화 보기, 첫 번째 시도

▲ 엄마와 함께 해야 할 것들을 적어보자. ⓒ pixabay


그리고 엄마 거동이 불편해 지면서 나중에 해야지 하면서 항상 뒷전에 미뤄뒀던 일들이 생각났다. 마침 친구가 '부모님 생전에 꼭 해야 할 일 리스트'를 메일로 보내줬다. 그 리스트를 읽으며 할 수 있는 일을 꼽아봤다(관련 기사 : 엄마 돌아가시기 전 '버킷리스트', 눈물 나네).

엄마 파마할 때 미장원 같이 가기. 극장에 같이 가기. 노래방 가서 부모님 좋아하는 노래 같이 불러 드리기, 가까운 계곡에 도시락 싸서 다녀오기, 연극이나 뮤지컬 공연 보러 가기, 엄마가 다녔던 학교 모시고 다녀오기, 내가 어릴 때 살았던 동네 가보기, 생신에 생신상 차려 드리고 편지 쓰기 등이 있었다. 그중 제일 먼저 '극장에 같이 가기'를 하기로 결정했다.

먼저 부모님과 함께 볼 영화를 골라야 했다. 막상 부모님을 모시고 극장에 가려 하니 볼만한 영화가 별로 없었다. 마침 영화 <변호인>이 개봉했을 때였다. 엄마도 돌아가신 노무현 대통령을 좋아하시니 영화를 보러 가겠다고 할 것 같았다.

"엄마, 노무현 대통령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 게 요즘 인기 많대. 엄마 그 영화 보고 싶지 않아?"
"아이고, 그거 무슨 고문하는 장면 나오고 그러는 거 아니야? 엄마는 그런 거 무서워서 못 봐."

결국, 영화 <변호인>을 엄마와 함께 보는 건 실패로 끝났다.

그다음에 부모님과 볼만한 영화로 내가 찾은 건 <수상한 그녀>였다. 영화가 개봉됐을 때 나는 쾌재를 불렀다. 무엇보다 할머니를 주인공으로 삼는 영화가 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할머니가 주인공이니 엄마도 영화에 공감하기 쉬울 듯했다. 게다가 주인공을 맡은 배우도 엄마가 좋아하는 연기자였다.

"엄마, <수상한 그녀>라고 새로 나온 영화가 있는데 요즘 사람들이 많이 보나 봐. 엄마 우리 그 영화 보러 갈까?"
"정민아, 엄마는 극장처럼 그렇게 답답하고 공기 안 좋은 곳엔 이제 못 가."

한숨이 나왔다. 아, 그렇다. 우리 엄마는 공기 안 좋은 걸 못 참는다.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도 엄마는 병실 공기가 답답하다면서 병실에 있지 못했다. 환자는 병실에 있는데 비상계단에 가서 앉아 있었던 분이 우리 엄마다. 이러니 엄마와 여행가기는커녕 극장 가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겠다. 몸이 더 건강하실 때 여기저기 모시고 다녔어야 했는데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결국, 난 엄마와 영화관 가는 걸 포기했다.

엄마는 '생생한 고통'을 보자고 하셨다

▲ 영화 <국제시장>의 한 장면. ⓒ CJ E&M


그런데 지난해 초 엄마가 내게 영화 이야기를 꺼냈다.

"정민아, 요즘 <국제시장>인가 그 영화가 그렇게 인기가 좋다며? TV에 나오던데?"
"응. 국제시장? 그거 아버지랑 같이 가서 보세요."

나는 엄마와 영화 보기 버킷리스트가 있었던 것도 그새 까먹고 무심히 답을 했다.

"너희 아버지는 버~얼써 보고 오셨어. <명량>도 혼자 보셨다고 하고. 너희 아버지는 혼자서 잘 돌아다녀."

나는 웃음이 나왔다. 아버지는 웬만해선 집에 붙여 계시지 않는 분이다.

"엄마도 피난 갈 때 식구들이랑 떨어져서 고생 많이 했어."

1932년생인 엄마는 한국전쟁이 터졌을 때 열아홉이었다. 그리고 전쟁에서 오빠를 잃었다. 어느새 이야기하는 엄마 목소리가 촉촉해진다. 옛 상처를 영화를 통해 기억해내고 영화를 통해서 전쟁 속 그 시절 당신을 위로하고픈 간절한 마음이 엄마의 말 속에서 느껴졌다. 벌써 60년도 더 지난 일이었지만 엄마에게 한국전쟁은 어제 일처럼 팔딱거리는 생생한 고통이었다. 엄마를 위로하기 위해서라도 내가 엄마와 영화를 같이 보러 가야 한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다행히 나도 <국제시장> 영화를 보기 전이었다.

"엄마, 내가 예매를 할 테니까 같이 봐요. 집에 가서 전화 드릴게."
"그래 줄래? 네가 같이 가주면 엄마야 좋지. 엄마는 표 살 줄도 모르잖아."

친정에서 가까운 영화관으로 오전 9시 40분 영화를 예매했다. 그러다 문득 기억났다. 몇 해 전 부모님 생전에 할 버킷리스트 중 하나로 영화관 가기를 추진하다가 포기했던 일이. 결국 영화 <국제시장> 덕분에 그 일이 성공하겠구나 싶었다.

▲ 영화 예매에 성공! ⓒ 강정민


'참 잘했어요' 도장 쾅!

영화를 보기로 한 날, 고등학생 첫째는 학교에 보내고 방학이라 늦잠 자는 둘째와 막내는 깨우지도 못하고 오전 8시 40분에 집을 나섰다. 친정에 가서 엄마를 모시고 부랴부랴 극장으로 갔다. 상영관에 도착하니 다행히 영화 상영 전이었다.

영화는 첫 장면부터 피난길이다. 어마어마하게 큰 배와 그 배에 오르는 벌떼같이 조그마한 사람들, 배에 오르다가 바다로 떨어지는 수많은 사람들. 큰 화면 가득 펼쳐진 광경을 바라보며 처음으로 전쟁의 본질에 압도당한 느낌을 받았다.

전쟁 앞에 무수한 개인들이 느꼈을 처참한 무력감을 난 아주 조금 느꼈다. 시작부터 눈물이 흘러내렸다. 옆에 앉은 엄마도 계속 울었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지금 영화관의 화면 너머로 과거 당신의 전쟁을 당신의 고통을 소환하고 있겠구나.

영화가 끝이 나고 엄마와 난 통통 부은 눈으로 극장에서 나왔다. 환한 곳에 나오자 너무 부은 우리 모녀의 눈이 창피했다.

"오늘 엄마 영화 보여주느라 고생 많이 했어. 어떻게 애들 아침은 먹이고 나온 거야?"

엄마는 내 얼굴을 올려다보며 고마운 마음을 표현했다.

"일어나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아침을 먹여? 지들이 배고프면 일어나서 다 찾아 먹으니까 그런 걱정은 하지도 마세요."

엄마가 보길 원했던 영화를 보여 드려 기분이 좋았다. 이렇게 과거 상처를 위로 할 수 있는 영화가 상영되고 또 자식과 함께 영화를 봐서 그런지 엄마의 상처도 한결 가벼워진 듯 하다. 무엇보다 엄마와 극장 가기 버킷리스트를 이루는 데 도움을 준 <국제시장> 윤제균 감독이 고맙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참 잘했어요' 도장으로 포도알 채우듯이 엄마와 버킷리스트도 하나하나 채워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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