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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버스터 운명의 26일, 야당의 깊어진 고민

[이슈분석] 선거법 합의 통과 약속 눈앞에, 처리 못하면 김무성도 '곤란'

등록|2016.02.25 21:56 수정|2016.02.25 21:56
태러방지법 직권상정에 맞선 야당 국회의원들의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 의사 진행 지연)이 만 이틀을 넘긴 가운데 국회는 오는 26일 향후 정국의 중대 갈림길을 맞게 됐다.

당초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4·13 총선 선거구 획정안을 담은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26일 본회의에서 처리하기로 약속했다. 약속대로 선거법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필리버스터를 중단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야당이 스스로 중단하거나, 새누리당이 야당의 요구를 수용해 테러방지법 독소조항을 수정하는 방법 두 가지가 있다.

양측이 모두 물러서지 않는다면 선거법 처리는 요원해진다. 그럴 경우 양 대표의 합의가 깨지고 그 책임 공방과 선거법 처리 무산에 따른 후폭풍이 예상된다. 선거법 개정이 무산됨에 따라 선거구획정, 상향식 공천을 위한 안심번호 도입 등이 지연돼 여야의 공천 일정에 차질이 불가피해진다. 40여 일 앞으로 다가온 총선도 정상적으로 치룰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계속 갈 수도, 멈출 수도 없는 야당

신경민 '국회의장 직권상정 안하겠다더니...'더불어민주당 신경민 의원이 25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테러방지법 직권상정에 반대해 무제한토론(필리버스터)를 하고 있다. ⓒ 이희훈


상황은 야당에게 불리하다. 필리버스터를 통해 테러방지법에 대한 여론의 관심을 일으키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법안이 직권상정된 이상 필리버스터만으로는 통과를 막을 수 없다. 필리버스터는 말 그대로 법안 통과를 지연시키는 것이지, 그것 자체로 법안에 영향을 끼칠 수는 없다. 시간을 지연시키면서 법안을 부결시킬 방법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가능성이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야당에서 지적하는 테러방지법의 독소조항을 빼거나 수정해 법안을 통과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현재 상정돼 표결을 기다리는 테러방지법 수정안(주호영 의원 제안)을 변경할 의사가 전혀 없다. 최대 쟁점은 국정원의 대테러 조사 및 위험인물 추적권을 규정한 법안 제9조와 이를 위해 도·감청 및 특정 금융정보 제공을 허용한 부칙 제2조다.

새누리당은 이 두 조항에 대한 보완책으로 국정원이 조사·추적권을 행사할 경우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국가테러대책위원회에 사전 또는 사후 보고하고, 대책위 소속 인권보호관이 이를 감시·견제한다는 내용을 수정안에 담았다. 그러나 더민주는 이 역시 사후보고에 한계가 있고, 현재 국회에서도 감시가 어려운 국정원을 어떤 권한도 없는 인권보호관이 감시할 수 없다며 반발하는 상황이다.

여기서 더불어민주당의 고민이 깊어진다. 필리버스터로 시간 끌기에는 성공했지만 그 사이 협상을 할 대상을 움직일 방법이 요원하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를 질타한 상황에서 원유철 원내대표 등 친박 인사들은 복지부동한 상태다. 그렇다고 필리버스터를 2월 임시국회 기한인 3월 10일까지 이어가는 것 또한 쉽지 않다.

더민주는 지난 24일 현역 의원 10명 컷오프를 발표하며 본격적인 공천 과정에 돌입했다. 문제는 경선이다. 더민주는 안심번호 도입을 통한 상향식공천룰을 실시해야 한다. 안심번호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선거법 개정이 꼭 필요하다. 경선일정을 늦춰 필리버스터를 회기 끝까지 진행한다 해도, 국회법상 다음 본회의에서 곧바로 테러방지법 투표를 해야 한다.

그러니까 선거법을 통과시키려면 무조건 테러방지법을 처리해야 하는 외통수와 같은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이에 대해 더민주 핵심 당직자는 "필리버스터 이후 전략이 잘 보이지 않는다"라며 "현재로서는 국민 여론을 모아 새누리당을 압박하는 방법밖에 없다, 또 선거법 처리를 위해서는 정의화 국회의장이 결단을 내려 새누리당을 적극 설득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26일 선거법 처리가 꼭 필요한 한 사람, 김무성

▲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25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피곤한 듯 눈가를 만지고 있다. ⓒ 남소연


이런 상황에서 새누리당에도 한 가지 불안요인이 감지된다. 바로 김무성 대표다. 김 대표는 지난 24일 더민주가 필리버스터에 들어가자 "룰이니 지켜야 한다"라면서도 "26일에는 중단하고 선거법 처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필리버스터에 강하게 반발한 다른 지도부들보다 온도가 낮다. 그는 필리버스터가 총선에서 야당에게 "'마이너스' 영향을 줄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김 대표가 이런 저자세를 취하는 것은 그 역시 누구보다 26일 선거법 처리가 간절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은 현재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과 김 대표의 갈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이 위원장이 김 대표가 '정치적 생명'처럼 여겨온 상향식 공천에 딴지를 걸었기 때문이다. 이는 친박계와 비박계의 갈등으로 확산되며 김 대표와 서청원 최고위원이 공식석상에서 충돌하는 일도 벌어졌다.

만약 야당이 필리버스터를 멈추지 않고 선거법 처리가 무산된다면 역시 안심번호를 통한 상향식 공천을 준비해 온 김 대표의 구상에도 균열이 갈 수밖에 없다. 친박계 쪽에서 보면 야당을 '테러에 손 놓은 세력'으로 몰아가며 당내 공천에서도 김 대표의 입김을 제거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김 대표 입장에서 보면 어떻게든 야당이 필리버스터를 중단하고 선거법 처리에 나서게 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정의화 국회의장은 "내일(26일) 오전 중으로 (필리버스터가) 다 끝나기를 기도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지금처럼 이런 식으로 (필리버스터를) 해서는 조금 육체적으로 낭비적이라는 문제도 있는 것 같다"라면서도 "많은 것을 배우고, 많은 것을 느끼고 있다, 선진 의회 민주주의 국가로 발전하는 데는 좋은 경험이 되지 않나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정 의장은 여야의 법안 협상과 관련해 "(테러방지법에 대한) 반대쪽에서 생각하는 의견도 전달하고, 그렇게 해서 우리나라의 의견들을 하나로 합쳐가는 그런 좋은 계기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라며 "국회 법제실에서 몇 가지 아이디어를 내서 전달했다, 국민의당도 아이디어를 내고, 그래서 그런 것을 가지고 양당 교섭단체 대표들이 논의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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