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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연민이란, 타인의 눈물을 모른체 하지 않는 것

[한국 소설이 건네는 이야기 13] 조해진의 <로기완을 만났다>

등록|2016.03.02 17:47 수정|2016.03.02 17:47

▲ 책 표지 ⓒ 창비

'나를 브뤼셀로 이끈 것은 바로 그 이니셜 L의 문장이었다.' - <로기완을 만났다> 중에서

'나'가 우연히 보게 된 잡지에선, 벨기에를 떠도는 탈북인들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었습니다. 기자가 인터뷰한 탈북인 중 한 명이었던 이니셜 L. '나'는 L이 기자에게 한 한 문장의 고백에 이끌려 벨기에 브뤼셀로 옵니다. 브뤼셀에서 찾은 L의 일기장을 따라 3년 전 L의 자취를 더듬습니다.

2007년 12월 4일 화요일 오전 6시. L은 하얀색 유로라인 버스에서 내립니다. L의 이름은 로기완. 스무 살. 159센티미터의 키에 47킬로그램의 몸무게. 태어난 곳은 함경북도 온성군 세선리. 엄마와 함께 탈북했고, 엄마는 죽었음. 살기 위해 브뤼셀로 온 로기완은 버스에서 내린 그 순간 그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할 유령 같은 존재, 이방인, 불법체류자가 됩니다.

로의 일기장을 따라 '나'는 로의 자취와 감정을 좇고, 독자는 그런 '나'를 따라 로와 '나'의 자취와 감정을 좇습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사람입니다. 서로 다른 사람인 우리는 서로를 얼마만큼 이해하고 연민할 수 있을까요.

버스에서 내린 로는 한 호스텔에서 신경질적인 리셉션 여직원을 만나 쩔쩔맨 끝에 1인용 방이 아닌 2인용 방을 예약해야 했고, 방수포에 싸인 650유로 중 40유로를 건네야 했고, 방으로 갑자기 쳐들어온 청소부의 험악한 태도가 자신이 피던 담배 때문인 줄은 꿈에도 모르고 총살 직전의 사형수처럼 두려움에 떨다 도망치듯 밖으로 나와야 했고, 밖으로 나와선 이곳에서의 삶이 반복되는 무시와 경멸의 연속일 거라는 예감을 해야 했습니다.

손에 쥔 로의 생명줄은 겨우 600유로 남짓. 이 돈이 다 사라지기 전에 로는 살 방편을 마련해야 합니다. 로기완이 이곳에서 살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은 난민이 되는 것. 로는 한국대사관을 찾아가 난민신청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마지막 희망이 꺾일 게 두려운 나머지 로는 차마 대사관으로 향하지 못합니다.

'나'는 로의 방수포 안에 싸여있던 650유로를 생각하며 가슴에 묵직한 통증을 느낍니다. 어머니의 시신을 내준 대가였던 650유로. '헬로우'도 '봉주르'도 할 줄 몰랐던 로는 어머니의 말없는 유언을 따라 살아남기 위해 이곳으로 왔습니다.

미루고 미루던 끝에 한국 대사관을 찾아간 로. 내처진 로. 비틀거리다 주저앉은 로. 어느 골목으로 들어가 끄억끄억 울던 로. '나'는 그런 로를 바라봅니다. 로의 슬픔이 '나'의 가슴에 들어옵니다.

'연민이란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어떻게 만들어져서 어떻게 진보하다가 어떤 방식으로 소멸되는 것인가. 태생적으로 타인과의 관계에서 생성되는 그 감정이 거짓 없는 진심이 되려면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이 포기되어야 하는 것일까.' - <로기완을 만났다> 중에서

연민의 무책임함

브뤼셀로 오기 전, '나'는 방송작가였습니다. 형편이 딱한 사람들의 사연을 방송으로 내보내고, 방송 도중 ARS로 후원을 받는 다큐의 메인 작가였습니다. 같은 프로그램의 피디였던 재이는 연민을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연민이란 자신의 현재를 위로받기 위해 타인의 불행을 대상화하는, 철저하게 자기만족적인 감정"이라고.

'나'는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타인을 연민한다는 것은, 결국 타인과 다를 바 없는 나의 가엾음을 깨닫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연민의 감정은, 이 불우한 땅 위 모든 존재들의 가엾음을 인식하기 위한 열쇠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고요.

하지만 '나'의 연민에 대한 이런 생각은 열일곱 살 소녀 윤주로 인해 산산조각 납니다. '나'의 연민으로 인해, 방송을 통해 만난 윤주는 고통에 빠집니다. 타인과 완벽히 일치될 수 없기에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고통을 감내해야 할 사람은 본인 한 사람뿐이지요.

'타인의 고통이란 실체를 모르기에 짐작만 할 수 있는, 늘 결핍된 대상이다. (…) 그들의 고통이 어디에서 시작되고 어느 지점에서 고조되고 어디로 흘러가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 삶 속으로 유입되어 그들의 깨어 있는 시간을 아프게 점령하는 것인지, 나는 영원히 정확하게 알아내지 못할 것이다.' - <로기완을 만났다> 중에서

윤주가 고통받는 모습을 보며 '나'는 죄책감을 느낍니다.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겠습니다. 연민의 무책임함에 절망하던 이 시기, 이니셜 L의 문장을 만난 겁니다.

'어머니는 저 때문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살아야 했습니다.' - <로기완을 만났다> 중에서

한 사람이 나 때문에 죽거나 죽을 만큼 불행해졌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게 고작 사는 것뿐인지, 그것이 알고 싶어 '나'는 위의 한 문장을 좇아 브뤼셀로 온 것이죠.

책은 브뤼셀로 온 '나'가 탈북자 로기완의 3년 전을 더듬어가는 모습을 통해, 그리고 그 과정에서의 깨달음을 통해, 우리에게 연민이란 감정을 직시하게 합니다. 섣부른 연민과 진짜 연민 사이에서 애타게 방황하는 '나'의 모습을 보며 우리는 타인을 진정으로 공감한다는 것, 연민한다는 것, 그리고 완벽하진 않더라도 타인의 고통을 바라본다는 것의 의미를 되새겨보게 됩니다.

저자의 탈북자 로기완을 향한 깊고 공감 어린 시선은 탈북자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도 바꾸게 합니다. 정치적 가림막, 사상적 가림막을 걷어내자 우리는 비로소 우리와 마찬가지인 가엾고 쓸쓸한 한 인간을 마주 보게 됩니다. 누군가 내게 그래 주길 바라듯, 우리는 로의 어깨를 토닥거려 줍니다.

저자의 시선은 로기완뿐만 아니라, 나라를 잃고 타지를 떠도는 수많은 난민들뿐 아니라, 우리까지도 치유해주는 듯합니다. 누군가의 따뜻한 시선은 넓고 따스한 엄마 품만 같습니다. 그 품 안에서 우리는 결국 받아들여질 겁니다. 그 품 안에선, 유령도, 이방인도, 불법체류자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이 책을 읽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타인과 완벽히 하나가 될 순 없겠지만, 이렇듯 따뜻한 시선 속에서나마, 우리는 서로 타인으로만 남지 않을 수 있을 거라구요. 완벽한 연민은 불가능할 겁니다. 하지만, 진짜 연민은 가능합니다. 진짜 연민이란, 기어코 그 사람의 눈물을 모른채 하지 않겠다는 의지 아닐까요.
덧붙이는 글 <로기완을 만났다<(조해진 /창비/2011년 04월 30일/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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