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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굿 한판, 제주도에 '꽂힌' 일본 사람들

[인터뷰] '제주도 연구회' 회원 고야노 요코씨

등록|2016.02.29 15:34 수정|2016.02.29 17:59
첫만남

고야노 요코(古谷野洋子)씨를 만난 것은 2015년 4월 우도의 영등굿 때였다. 그날 이른 아침 나는 동천진동의 배방선을 촬영하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저 멀리 중년을 넘긴 요코씨 일행이 마을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묻고 있었고 나는 그냥 무심히 지나쳤다. 그러다 한 순간 '저 정도의 연배면 오늘 하우목동에서 벌어질 영등굿에 대해 관심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다시 차를 돌려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차에서 내려, "혹시 오늘 우도를 관광할 예정이라면 오후 2시부터 영등굿이 있으니 꼭 보고 가라"고 했더니 "아, 우리도 영등굿을 보러 온 거에요"라고 답했는데, 발음이 조금 이상하다. 일본사람이었던 것이다. 요코씨와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됐다.

제주도의 민속학을 연구하는 일본 사람들

2015년 4월 3일 영등축제 마지막 마무리에서 영감놀이를 즐기는 고야노 요코(古谷野洋子)씨와 고야노 노보루(古谷野昇)부부 ⓒ 고성미


이번에 우도에 온 요코씨 일행의 4박 5일 일정은 빠듯했다. 심방, 해녀 그리고 스님과의 인터뷰가 줄줄이 있었고 틈틈이 시간을 내어 우도의 12신당과 돌탑을 돌아봤다. 그리고 모여 앉았다 하면 인터뷰한 내용을 검토하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그들의 학구열은 대단했으며 호기심 또한 그칠 줄 몰랐다.

이들은 왜 이렇게 제주도의 민속학에 대해 열심히 연구하는 것일까? 2016년 2월 22일부터 26일까지 우도에 다녀간 요코씨와의 인터뷰와 더불어 그들의 4박 5일 우도 취재기를 사진으로 남겨본다.  

- '제주도 연구회'를 만든 계기는 무엇인가요?
"2008년 3월 가나카와대학 역사민속자료학 연구과(神奈川大學 歷史民俗資料學 硏究科)의 세미나 활동의 하나로 영등굿을 견학하기 위해서 제주를 방문하고 나서부터입니다. 대단히 충격적이었고 인상적이었어요. 그래서 귀국하자마자 '제주도 연구회'를 만들었죠."

- '제주도 연구회'에선 어떤 내용을 연구하시나요?
"저는 제주도의 민속문화를 연구합니다. 제주도 민속문화의 연구, 특히 동아시아 속의 제주도라는 관점에서 제주도의 민속문화를 고찰합니다. 그래서 제주도를 중심으로 동아시아 민속문화에 대한 연구와 교류의 장으로 삼는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이를 위하여 '제주도 연구회'에서는 2~3개월에 한 번 연구회를 갖고요. <제주도 연구>(회보)를 매년 1권씩 내고 있습니다. 제주도에는 매년 1~2회 방문합니다."

- 올해 2016년까지 제주도 연구회는 8년이 됐는데요. 제주도의 민속학에 대해 연구하는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저는 오키나와의 민속문화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오키나와의 신앙과 신에게 드리는 행사, 장례식 등의 조사를 주로 하는데요. 제주도의 민속문화를 공부하면 할수록 오키나와의 민속문화에 대한 시야와 이해의 폭이 넓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 민속학자인 현용준 선생님(현 제주대 명예교수)과의 인터뷰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존경합니다. 현 선생님의 책을 읽고 제주도의 민속학 공부를 시작했어요. 현 선생님은 제주도의 민속학 연구자로서도 대단하지만 무엇보다 자신이 제주도 사람이라는 사실을 대단히 자랑스럽게 생각하셨습니다. 선생님은 일본사람인 우리가 제주도의 민속학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에 대해 기뻐하셨고 무엇이든 친절하게 가르쳐주셨습니다. 건강이 안 좋으신 상태에서도 기꺼이 우리들에게 많은 시간을 내주셨어요."

- 제주에서 포제는 대단히 엄격하다고 하는데 2010년 포제를 취재할 때 촬영에 어려움은 없었는지요.
"장소에 따라서 어려움이 있었어요. 하지만 2010년 납읍리 포제는 제주도 지정무형문화재의 행사였으므로 일반인도 촬영할 수 있었죠. 여자의 참관은 안된다고 하기는 했지만 멀리서 바라보는 것은 허락해줬어요."

"제주도 굿 문화를 일본에 소개하고 싶다"

- 2011년과 2012년 제주도의 큰굿 취재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당시의 큰굿은 제주시에서 주관하는 아주 큰 행사였어요. 그래서 2011년에는 KBS에서도 취재를 했었고요. 큰굿은 14일 동안 계속 됐는데 오전 7시에 숙소에서 나와 오후 10시에 들어 갈 정도로 강행군이었습니다. 하지만 고생한 만큼 보람도 있었어요. 제주도의 큰굿에 대해 잘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취재하는 사람들도 2주간이나 매일매일 만나게 되니까 서로 낯이 익기도 했고요."

- 올해 (부부 관계인) 고야노 노보루씨가 사진 전시회를 기획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아직 정해진 것은 없고요, 희망을 갖고 기획 중에 있습니다."

- 8년 동안 제주의 굿을 취재하며 느낀 점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무엇보다 큰굿 보존회가 만들어졌다는 점이 반갑고요, 또한 칠머리당의 영등굿이 2014년 부터 우도에서 영등할망을 보내는 송별굿을 한다는 점이 새롭습니다. 그리고 한림지역에서 중단됐던 굿이 다시 시작하는 것도 봤고요. 부디 제주도의 굿 문화가 잘 보존되기를 바랍니다.

한 가지, 일본의 경우 일반의 마을 축제경우에는 국가보조금 없이 마을 자체내에서 하므로 행사의 크기가 일정합니다. 그런데 제주도에서는 제주시청의 후원이 있으면 큰 행사가 됐다가 후원이 없으면 작은 행사가 되는 그러한 격차가 있다는 점이 일본과의 차이라고도 할 수 있어요."

- 앞으로의 계획을 알려주세요
"지금까지 연구해온 오키나와의 논문을 책으로 낼 예정입니다. 그리고 제주도의 굿에 대한 연구를 계속해서 제주도의 멋진 민속문화를 일본에 소개하고 싶다는 희망도 갖고 있답니다."

- 이 자리를 빌어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8년 동안 제주도에 와서 민속학을 공부하면서 공부 만큼이나 좋은 경험은 바로 제주도민과의 인터뷰였습니다. 정말 친절하게 대해주셨고 무엇이든 자세하게 알려주셨어요. 이 자리를 빌어 인터뷰해주셨던 많은 분들과 보도진 그리고 가르침을 주신 제주도 민속학자 분들에게도 진심으로 고개숙여 깊이 감사드립니다.

또한 제주도의 여성들 특히 할머니들의 강인한 정신력과 생활력에 감동하였다는 점도 꼭 전하고 싶습니다. 제주도민 여러분, 고맙수다."

고야노 요코씨의 우도 취재 스케치


2016년 2월 23일 우도에 살고 있는 고복찬 심방과의 인터뷰 ⓒ 고성미


2016년 2월 24일 우도 해녀와의 인터뷰 기념사진 <제주도 연구회>에서 제주도의 해녀에 대한 연구 담당은 오오하시 가츠미씨(오른 쪽 뒤)이다. 오오하시 가츠미 씨는 2009년 좌혜경 해녀 박물관장과의 인터뷰도 하였고 제주도 해녀들이 추운 겨울 어떻게 바다에 들어갈 수 있는지 기상청의 자료조사까지 파고 들며 연구논문을 발표할 정도로 적극적이다. ⓒ 고성미


2016년 2월 25일 우도의 금강사, 덕해 스님으로부터 천도재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취재하고 있는 고야노 요코 씨와 오오하시 가츠미씨 그리고 고야노 노보루 씨 ⓒ 고성미


2016년 2월 25일 우도의 금강사 천도재에 참가하여 부처님께 기도를 올리는 고야노 요코 씨 ⓒ 고성미


2016년 2월 25일 우도의 금강사 천도재를 마치고 스님들과 기념촬영 ⓒ 고성미


2016년 2월 25일 고야노 노보루 씨가 금강사에 천도재를 지내러 온 해녀들에게 우도의 서천진동에 있는 본향당의 사진을 확인하는 장면. 현재 서천진동의 본향당은 나무 숲에 가려 그 모습이 보이지 않는데 해녀 삼춘들이 용케 그 옛날의 모습을 기억해 주었다. 책은 <무신과의 향연/가토 게이>이다. ⓒ 고성미


마치며

2015년 영등굿 취재를 마치고 헤어지며 요코씨와 나는 두 가지를 서로 약속했다. 하나는 영등굿의 취재 기사를 서로 주고받아 자료집을 만들어두자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내가 우도의 신당에 대한 조사를 해놓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2016년 2월 22일 요코씨 일행이 우도를 방문하면서 우리는 거의 1년 만에 다시 만났다. 요코씨는 8년 동안 만들었던 '제주도 연구회' 자료집 다섯 권을 내게 전해줬고, 나 역시 우도에서 지내면서 매달 만들어뒀던 우도 포토 매거진 열한 권과 <우도의 12신당과 7군데의 돌탑>에 관한 자료집 한 권을 건네줬다.

지난 27일, 요코씨 일행이 일본으로 돌아가고 내 책상 위에는 그들이 놓고간 '제주도 연구회' 회보집 5권과 내가 만든 우도의 12신당과 돌탑 자료 그리고 각종 인터뷰 메모조각 등이 어지럽게 널려있다.

요우코 씨로 부터 받은 <제주도 연구> 회보집받은 지 닷새도 되지 않았지만 벌써 나달나달해져버렸다. <2015, 우도에서 본 영등신 송별의 두 가지 의례> 요코 씨가 작년에 보내준 영등굿 기사로 만든 자료집을 펼쳐놓아 보았다. 왼쪽에 내가 만든 우도의 돌탑과 신당이라는 제목의 자료집도 보인다. 1년 전 요코씨와의 약속을 우리 모두 지켜낸 것이다. ⓒ 고성미


영등할망의 선물, 우리의 만남

1년 만에 '제주도 연구회' 회원인 요코씨 일행을 다시 만나 회포를 풀면서, 지난해 우리의 첫만남은 분명 영등할망의 선물이었을 것이라며 자축했다.

그리고 4박 5일 동안 함께 지내며 나는 그들이 제주도에서 8년 동안 쌓아 온 정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앞의 인터뷰에서도 밝혔다시피 고야노 요코씨는 자신의 연구분야인 오키나와의 민속학을 더 폭 넓게 이해하기 위해서 제주도의 민속학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다. 다시 말해 주와 객이 분명해 제주도는 객의 입장으로 연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8년이라는 세월 속에서 학술적인 목적으로 다가섰던 제주도가 이제는 그들 속에 오롯하게 자리잡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이 진정으로 제주도를 사랑하는 마음이 그대로 전해져 왔기 때문이다. 제주도의 민속학을 연구하기 위해 꾸준히 한글을 공부해왔으며 그 어렵다는 큰굿의 본풀이를 알아듣기 위해 매일매일 녹화해둔 테이프를 들어가며 한글로 받아적고 그것을 다시 일본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고 한다.

고야노 요코씨는,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쌓아가면 언젠가는 제주도의 매력적인 굿 문화에 대해 일본 사람들에게 책으로 소개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며 환하게 웃는다. 그리고 작년에 그랬듯이 올해도 우도의 잠수굿에 관한 기사와 3월에 있을 영등굿에 대해 서로의 취재기사를 교환하자고 약속하며 우리는 헤어졌다.

올해는 또 어떤 내용으로 서로의 제주도의 민속 자료집이 채워질까. 벌써부터 기대감으로 가득하다.

열정이란 무엇일까?형식과 접근방법은 다르지만 한국과 일본의 국경을 넘어 우리가 서로 공유하는 것은 바로 제주도를 사랑하는 그 마음이 아닐까. ⓒ 고성미


덧붙이는 글 인터뷰에 응해주신 '제주도 연구회'의 요코씨에게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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