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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금 싼 프랑스, 운동권이 강했다

[캠퍼스 옵저버 ⑦] 프랑스 유학생들에게 묻다, 그곳은 '자유'롭습니까?

등록|2016.03.13 12:03 수정|2016.03.21 08:01
① 미국 유학생들에게 묻다, 당신은 왜 한국을 떠났나요?
② 독일 유학생들에게 묻다, '등록금 없는 나라'는 어때요?

'유학생들에게 묻다' 시리즈는, 한국 대신 외국의 교육을 선택하고 떠난 유학생들(미국, 유럽, 아시아)의 목소리를 들어보는 기획입니다. - 기자 말

#1. 한국 '17.7년' 스펙 쌓고 '5.6년' 근속, 프랑스는?

한국의 젊은이들은 대개 초·중·고 12년과 대학교 4년, 도합 16년에 걸쳐 공부한다. '청년=대학생' 식으로 생각해서는 안 되지만, 여전히 고졸자 10명 중 7명꼴은(70.8%) 대학에 진학한다.(한국교육개발원 2015 '교육기본 통계')

졸업까지는 3년제 이하 전문대생은 평균 34개월, 4년제 대학생은 60개월이 걸리며(한국고용정보원 2015 '청년층 대학 졸업 소요기간'), 졸업 후 취직까지 전문대생 평균 6.8개월, 4년제대생 8.8개월이 걸린다.(11회 한국교육고용패널 학술대회, 숙명여대 이영민 연구팀) 정리하면, 초등학교 입학 후 첫 직장을 구하기까지 약 15.4~17.7년이 걸린다.

▲ 한국 대학생 '교육기간 + 미취업기간' 대 임금노동자 평균 근속 연수. ⓒ 하지율


하지만 '단군 이래 최고의 스펙'을 쌓은 대학생들의 미래는 밝지 않다. 덴마크와 달리 한국에서는 노동자가 실직했을 때,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게끔 받쳐주는 안전장치(충분한 실업급여와 재취업 교육이)가 불충분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노동시장 유연성'은 곧 '고용 불안정성'이란 말과 같다. 이를 가늠할 수 있는 지표가 바로 '임금노동자 평균 근속 연수'다.

지난해 11월 고용노동부 발표에 따르면(2014년 기준), OECD 비교 대상 25개국의 임금노동자 평균 근속 연수가 9.5년일 때 한국은 5.6년으로 가장 짧다. 임시직(비정규직) 노동자의 비중도 비교 대상 29개국 평균은 13.9%에 그칠 때 한국은 다섯째로 높은 21.7%다('통계로 보는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모습'). 한편 한국 정부의 고등교육 재정 지원은 낮고 사립대 비율이 높아, 등록금이 OECD 2위 수준을 유지하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즉 고비용(시간과 돈)에 비해 일자리는 불안하다. 이와 대조적으로 프랑스의 평균 근속 연수는 11.4년이다. 대학입학률은 매년 근소한 차이는 있지만 10명 중 4명꼴을 유지한다. 대학 기간 자체도 한국보다 1년 짧아, 프랑스 국립대는 '3년제'이며 등록금은 200~300유로(27만~40만 원) 안팎이다. 왜 이런 차이가 날까.

#2. 프랑스의 낮은 '대학진학률', 왜?

우선 사람들이 혼동하기 쉬운 것부터 짚고 넘어가자. 한국의 '높은 대학진학률', '높은 등록금', '낮은 근속 연수'라는 증상과 그 증상의 원인은 다르다. 증상과 원인을 분리해 생각하지 못하면, 고비용(시간과 돈)을 투자해 고학력자가 되고도 회사에서 금방 쫓겨나는 걸 '개인 탓'으로 손쉽게 책임을 돌리는 경우도 생긴다('누가 대학 가랬냐'라는 식의 훈계들).

이때 정작 ① '무엇이 대학 졸업장에 목매게 만드나' ② '대학 등록금은 왜 높은가' ③ '임금노동자 근속 연수는 왜 낮은가'와 같은, '구조적인 원인'에 관한 질문들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다. 이 질문들을 늘 염두에 두면서 프랑스와 한국 교육을 비교해봤다. 우선 프랑스 유학생들의 목소리를 들어보기로 했다.

▲ 비오는 파리의 거리. ⓒ 신유준


프랑스에서 10년 넘게 체류한 상미(리옹 2대학·인지과학 석사 1)씨는 "한국인의 생각이 스펙트럼 4~6 정도에 몰려있고 양 끝에 소수가 있다면, 프랑스인은 1~10까지 고루 퍼져"있다고 했다. 프랑스인은 공부가 정말 하고픈 사람만 대학에 가고, 이후에도 길이 아닌 거 같으면 과감히 전공을 바꾸고 그만둔다. 진로에 관해서 자유롭고, 다양한 생각을 하는 것이다.

전진(파리 어학연수생·파리대학 철학과 신입학 준비 중)씨는 한국 고등학생 시절을 "집행유예"로 떠올린다. 자아실현을 위해 방송·강연 참여, 청소년 토론회 기획, 학생대표 등 다양한 활동을 했지만, 수험생 신분인 한 "도망치듯 꿈을 꾸는 것"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때 절망에 빠진 전진씨를 일으켜 세운 게 인문학이었다.

인문학적 앎은 머리로만 아는 '지식'이 아니라 가슴, 체험, 직관, 예술, 종교로 다가가는 앎이다. 정해진 '지식'을 주입하는 한국에서는 이를 기대하기 힘들다. 그래서 그는 프랑스를 선택했다. 전진씨는 자신을 유토피아를 찾아 나선 '도망자'가 아닌 '자유인'으로 소개한다. "스스로 자신의 결정에 대해 타인의 납득과 동정심을 구걸"해서는 안 되며, 그저 "스스로를 더 잘 발견하거나 아니거나"일 뿐이고 프랑스도 그런 선택 중 하나라는 뜻이다.

이와 달리, 한국에선 대학생이 기성세대로부터 '좋은 대학에 들어가 안정적인 직장을 구하면 된다'(≒'노력만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획일화된 유토피아를 주입받는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고학력 대학생들이 자기계발론에 빠지며 자기 파괴적·공동체 파괴적이 되어가는 건 낯선 광경이 아니다(관련 기사 : 수시충, 편입충, 분캠충... '벌레의 전쟁' 벌이는 20대).

한국 사회가 학생의 개성과 능력을 펼칠 수 있는 다양한 길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 학력과 간판에 따라 '차별'을 받게 된다는 것. 이러한 부조리들이 '무엇이 대학 졸업장에 목매게 만드나'라는 첫 번째 질문의 답이, '사회적 무시'에 있다는 걸 환기한다.

#3. '낮은 등록금', '높은 근속 연수'의 이유

상미씨가 보여준 프랑스 고등교육 연구부 자료에 따르면, 프랑스 정부는 2012년에 총 287억 유로(약 38조513억 원)를 고등교육에 지출했다. 이는 고등교육 비용의 70%를 충당하는 규모이며, 지난 30년간 50%가 향상되는 추세다. 프랑스 학생들은 물론이고, 학생 비자를 받은 외국인 학생에게는 주택 보조금도 지급한다.

아영(파리 2대학·경영경제 학사 1)씨도 등록금을 1년에 한국 돈 25만 원 정도만 내고, 생활비는 방값을 포함해 월 100만 원을 쓴다. 프랑스어를 잘하면(결코 쉽지는 않다) 아르바이트도 구할 수 있다. 외국인 학생들은 연간 1000시간에 조금 못 미치는 노동이 법적으로 허용된다. 최저 시급이 10유로(약 1만3629원) 안팎이므로 스스로 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다. 상미씨도 주당 16시간 일하며 550유로(약 73만 원) 안팎의 월급을 받았다.

▲ 프랑스의 거리, '자유'라고 써져 있다. ⓒ 신유준


상미씨는 "프랑스도 학업과 알바를 병행하기 힘들어 학교를 그만두는 학생들이 많다"며 균형을 맞췄다. 아영씨는 한국 대학이 수업을 최대 한 학기 24학점을 듣는다면, 프랑스 대학은 기본 30학점을 듣게끔 공부에 집중하게 한다고 했다. 시험은 학기 중 3번을 보는데, 가장 큰 시험은 한 학기에 배운 내용 모두를 정리하는 시험이라 프랑스 학생들도 버겁다고 한다.

지난 1월 한국 통계청이 발표한 '고용 동향'에 따르면, 한국의 청년실업률은 9.5%지만 프랑스는 26.5%에 달한다. 그렇다고 한국이 프랑스보다 나쁜 고용 불안의 이미지를 극적으로 만회하는 건 아니다. 프랑스 청년들은 대학에 많이 가지도 않고, 대학 기간 자체도 4년이 아닌 3년으로 짧다. 즉 상대적으로 사회 진출이 빠른 편이다. 반면 한국 청년들은 대학진학률이 높고 군 복무를 하는 등, 한국은 실업률 통계가 잡힐 때 '빠져나갈 구멍'이 많다.

그럼 프랑스의 '낮은 등록금'과 '높은 근속 연수'의 이유는 뭘까. '투표'보다는 거리의 시민들의 '조직적 운동' 때문이 아닐까. 지금의 프랑스 노인들은, 1968년 당시 유럽을 뒤흔든 '68혁명'을 일으킨 청년들이었다. 68혁명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지만, 적어도 '주입식 교육' '학벌주의', '등록금', '권위주의', '불안정한 고용' 등, 거칠게 요약해 '모든 억압에 대한 저항'이었다고 봐도 무리가 없다. 그 성과 중 하나가 등록금 부담을 크게 낮춘 것이다.

한편 2006년 당시 중도 우파인 도미니크 빌팽 총리는 프랑스판 '쉬운 해고'쯤 되는 CPE(최초노동계약법)이란 걸 추진했다. '노동시장 유연화'를 추구하면서도 안전장치를 약화하는 제도였다. 이때 프랑스 학생조합(UNEF)과 노동계(CGT)가 극렬히 반발하며 전국적인 파업을 했다. 결국 프랑스 정부는 CPE를 폐기했다. 이렇게 세대를 '관통'하며 '조직적 운동'의 맥락이 끊기지 않은 게 프랑스의 특징이다.

이와 비교해보면 한국의 '등록금은 왜 높은가', '노동자의 근속 연수는 왜 낮은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건 쉬워진다. 운동권 조직들이 많이 와해된 게 첫 번째요. 청년들이 그 조직에 '선수'가 된다는 걸 상상조차 할 수 없게끔 하는 자기계발론과 1997년식 무한경쟁 체제가 두 번째다. '왜 청년들은 분노할 줄 모르느냐'는 훈계가 핀트에 맞지 않는 이유다.

#4. 프랑스도 '부조리' 있다, 단 '좋은 질문'을 던진다

▲ 파리 거리에서 시위대를 지켜보는 프랑스 경찰. ⓒ 신유준


아영씨는 한국 대학을 그만두고 유학왔는데, 한국과 비교해 프랑스 수업이 엄청 혁신적인 건 아니라고 느꼈다. 다만 같은 수업이어도 방법이 다양하고(대강당, 소규모 그룹 등), 공부에 집중하게 만든다고(튜터 수업 등) 느꼈다. 또한 프랑스 학생들이 토론할 때, 날카로운 질문들을 서로 많이 하고 다른 나라들의 정치 상황에 대해 많이 아는 데 놀랐다. 다양한 인종으로 이루어진 만큼 의견도 다양했다. 충분히 그럴 만한 일이다.

프랑스 고등학교 졸업시험 '바칼로레아' 철학 시험 문항을 보면, '폭력은 어떤 상황에서도 정당화될 수 없는가?'(1989),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고도 도덕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가?'(2013) 등 한국 수능에서 상상할 수 없는 문항 하나에, 학생이 자기 생각과 느낌을 펼치게 한다. 그래서일까. 프랑스인들은 '남의 생각을 베끼는 것'에도 엄격하다. 상미씨는 대학에서 커닝, 표절에 관한 엄격한 연구 윤리를 꾸준히 목격했다.

전진씨는 다른 의견도 제시했다. 한국이 정치·사회적으로 비판이 자유롭지 못한 게 문제라면, 역설적이게도 프랑스는 정부와 열린 체제가 '만들어준 놀이터에서 노는 느낌'이라는 것이다. 모든 의견에 대한 소화력을 자랑스러워하지만, 정작 비판이 체제에 울림을 주지 못하고 무력감을 주는 상황이라고 한다. 또한 대내외적으로 많은 부침을 겪고 있다.

지난해 수많은 사상자를 낸 파리 테러를 두 차례 겪은 후, 프랑스는 보복으로 시리아 내 IS 군사기지를 공습했다. 거리에서는 이민자 반대 시위가 일어난다. 또한 극우 정당인 국민전선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유럽연합(EU)이 결성될 때 수많은 나라의 경제적 차이를 외면하고 뭉뚱그린 탓에, 가난한 나라들이 줄 도산했다. 제레미 리프킨의 <유러피언 드림>이나 유럽연합(EU) 헌법에 묘사된 유럽적 가치, 즉 '연대'나 '인본주의' 같은 말들로 포장하기엔 부조리한 상황이다.

그럼 프랑스인들은 영영 길을 잃었을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그런 가치들은 목표로 두고 이뤄내기보다, 일상적으로 녹여낸 태도에서 또 마음속에서 배어 나오는 것이리라. 다양성에 대한 인정과 좋은 질문을 던지는 자세. 그것이 여전히 프랑스인들의 가능성이고, 또 한국인들이 배워야 할 점은 아닐까. 물론 유학생들이 기자에게 누차 강조했듯, 그런 프랑스인들과 소통하려면 그들 수준의(!) '언어 능력'을 조급하지 않게 쌓아야 한다.

"저는 영화 <올드보이>(박찬욱 감독)의 이우진의(유지태 분) 대사를 좋아해요. "당신의 진짜 실수는 대답을 못 찾은 게 아냐. 자꾸 틀린 질문만 하니까 맞는 대답이 나올 리가 없잖아"라고 하죠. 한국 교육은 '당신은 무엇을 아는가' 한 가지만 물어요. 하지만 프랑스 교육은 '당신을 무엇을 생각하는가', '당신은 무엇을 느끼는가' 두 가지를 더 물어요.

정해진 답이 아니라 내가 생각하고 느끼는 바를 말할 수 있다는 것, 이게 당연한 권리란 걸 깨달았습니다. 더 자유롭게 생각하고 느끼는 능력은 이 질문들에서 시작되는 게 아닐까요. 한국은 질문을 바꾸어야 해요. 틀린 질문은 풍요로운 답을 이끌어내지 못 하니까요." (전진씨)
덧붙이는 글 이제까지 내용은 프랑스 국립대를 다룬 것이다. 사립대, 순수 미술 학교, 건축학교, 요리학교·의상학교 등과는 차이가 있다. 가령, 사립대는 등록금이 비싸며 연간 4천~2만 유로 등 다양하다. 국립대는 대부분 이론을 가르치고 후에 과학자나 연구원 혹은 교수가 되려는 사람들이 끝까지 남지만, 사립대는 실무 위주로 가르치고 또 다양한 인턴쉽 프로그램 덕에 구직으로 바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상미씨는 "프랑스는 워낙 사람들이 다양하고 일반적으로 하나로 정립하기 힘든 다양한 방법이 존재하는 곳"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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