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의 보배로운 검' 꿈꾸는 박보검 소개서
[visual & story] 예의바름 뒤에 숨겨진 날카로움... 아차! 난 당했다
▲ tvN 금토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택이로 박보검은 큰 사랑을 받았다. 잠시 예능 <꽃보다 청춘-아프리카>로 숨을 고르는가 싶더니, 또 다른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으로 시청자들을 만날 예정이다. 이래저래 그의 새로운 모습을 기대하는 이들에게 반가운 소식이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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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의 첫 대면, 신발부터 쳐다봤다. "신발을 통해 상대를 알 수 있다고 들었다"며 평소 신을 깨끗이 관리한다는 글을 봤던 기억이 나서다. tvN <꽃보다 청춘-아프리카> 촬영을 마치고 귀국해서 가장 먼저 한 일이 "누렇게 변한 신발을 세탁소에 맡겼을 정도"라니, 자연스럽게 눈이 갔다. 신발은 깨끗했다.
그가 먼저 기자에게 "동그란 안경이 참 잘 어울리세요"라고 말을 건넸다. 예의 바르다 - 박보검(23)에 대한 첫인상이었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이 배우, 짧은 시간임에도 궁금증이 들면 그때그때 묻는다. 예를 들면 이런 것. <응답하라 1988>(이하 <응팔>)의 인연으로 만나게 됐다는 말에 대뜸 그는 "지금까지 <응팔> 배우들 누구누구 만나셨어요?"라고 물었다.
그래서 단순히 예의바름으로 설명할 수 없는 사람이 또한 박보검이다. 인터뷰어(interviewer : 인터뷰를 하는 사람)와 인터뷰이(interviewee : 인터뷰에 응하는 사람) 관계였지만, 그와는 대화를 했다. 아니, 그가 대화를 원하고 있었다. 끝나고 나서야 아차, 싶었지만 어쩌랴. 좀 더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어야 했는데 박보검에게 선수를 뺏겼다.
예의 속에 숨겨진 승부사의 기질이 흐르는 걸까. "임금이 꼭 필요할 때 뽑는 검이 보검이래요, 이름처럼 필요할 때 쓰임 받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라던 그의 말을 되새겨 본다.
검이 쓰이려면 결코 무뎌져서는 안되는 법.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의 날카로움을 소개한다. 박보검과의 문답을 통해 만들어본 '타인 소개서'다.
[장단점 및 특기] 잘 훔친다
▲ 온화해 보이는 얼굴과 달리 그는 주관이 뚜렷하고 자기 확신도 강한 편이다. 마음이 풀어질 때면 어김없이 돌아오는 "가족과 지인들의 따끔한 채찍질"을 그는 기꺼이 받아들며 "자신을 반성하곤 한"다. 쉽게 흔들리지 않는 연기에 대한 뚝심은 바로 이런 조언 덕이 아닐까. ⓒ 이희훈
박보검이 예의바르다고요? 사실 그는 잘 훔치는 사람입니다.
그가 작품을 대하는 3단계를 봅시다. "일단 대본을 깊이 여러 번 팝"니다. 그리고 "많이 묻"습니다. 그것도 부족하면? "평소에 담아두었던 선배들의 연기를 많이 봅"니다. 표현하려는 인물에 대한 일종의 참고자료를 쌓아놓는 셈!
예를 하나 들어볼까요. 영화 <명량> 때 그는 왜군에게 아버지를 잃은 수봉 역을 맡았습니다. 분량이 적었지만 대충하지 않았죠. 박보검은 감정에 몰입하기 위해 촬영 전 실제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고, "잘 해야 한다"며 "기도해주겠다"는 아버지 말에 눈물을 쏟은 채 연기했습니다.
<응팔>의 택이도 마찬가지입니다. 1980년대가 아닌 1990년대 후반에 유년 시절을 보냈기에 "잘 표현할 수 있을까 걱정"하던 차에 "가족들과 회사 식구들에게 물어가며 당시 감정을 그려"갔습니다. 이 정도면 박보검은 '훔칠 줄 아는' 배우입니다. 그것도 아주 잘. 그리고 '지킬 줄 아는' 배우입니다. 자신에 대한 믿음과 주어진 사명에 대해서 말이죠. 여기 그의 말을 덧붙입니다.
"제 스스로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자신을 믿는 편인데, 가족들과 친지들이 절 객관적으로 봐주세요. 무조건 칭찬하기보단 못 한 게 있으면 따끔하게 말씀해주시죠. <응팔> 때도 그랬어요. 그때마다 들은 조언들을 적어놓고 있어요. 시간이 지나 절 돌아볼 때마다 너무 부족함을 느껴요.
그럼에도 과거는 제가 가장 열정적으로 임했던 순간이었을 거예요. 순간마다 최선을 다하면 후회는 없죠. 내 자신에게 정직하고 분명하면 남에게 떳떳하고 당당할 수 있거든요. 늘 신중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려 하면서도 저에 대한 믿음은 흔들리지 않으려고 잡고 있어요."
[성장과정 ①] 욕구가 충만했던 아이
▲ 인터뷰 내내 그는 음악에 대한 애정을 표현했다. 직접 작곡하고 있는 곡을 언급하며 "언젠가 노래를 완성해 보고 싶다"는 소망도 내비쳤다. ⓒ 이희훈
그는 원래 가수를 꿈꿨습니다. "여섯 살 때부터 클래식 피아노를 쳤고,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는 교회에서 피아노 반주를 했"죠. 그러니까 멜로디 연주에서 코드(여러 음으로 구성된 화음을 기호화한 것) 연주로 전환한 건데, 이 무렵부터 틈틈이 그는 자신만의 곡을 만들어오고 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그룹 2AM의 '이 노래'를 연주하며 노래 부르는 모습을 녹화했고, 여러 기획사에 보냈다는 건 유명한 일화입니다.
고등학생 박보검은 마침 "신바람 나게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하던 때"였습니다. 사춘기를 겪으며 다들 장래 직업을 고민하잖아요. "피아노 치며 노래하길 좋아하고, 어려서부터 음악과 춤추는 것을 좋아했"기에 "막연하게 남 앞에 서는 방송 일을 상상하"곤 했습니다. 그의 영상을 본 여러 관계자들 중 지금 소속사 사람들이 가장 먼저 연락을 해서 인연을 잇고 있죠.
다행히 그의 가족들 역시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같이 기도하면서 힘을 보태주"었는데, 여기서 그에겐 가족이 남다른 특별한 존재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저 역시 교회에서 한 연주 좀 했는데, 이 말에 박보검이 감탄사를 내뱉기도 했습니다. 음악에 대한 그의 열정이 꺼지지 않았음을 느끼는 순간이었죠. "기성 가수 분들처럼 해박한 지식은 없"지만 박보검은 "그때그때 생각나는 멜로디나 코드 진행을 녹음해 놓고 있"습니다. 아직 완성곡은 없다는데 "혹시 만든 곡이 어디서 들어본 거 같으면 어쩌나 걱정"하고 있네요. 귀여운 고민이죠?
그런 그가 연기를 시작한 건 순전히 회사 사람들의 조언 때문입니다. 배우가 더 적합하다는 판단에 박보검을 설득했고, 고2 나이에 그는 영화 <블라인드> 오디션을 단번에 붙습니다. 데뷔의 순간! 그런데 막상 가수를 했다면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궁금해서 물었더니 이렇게 답하더군요.
"배우를 안 했다면요? 사실 저도 상상해본 적 있어요. 아마 선생님을 하지 않았을까요. 국어도 좋고 음악도 좋아요. 뭔가 가르치는 걸 좋아했는데, 피아노를 제가 계속 공부했다면 피아노 학과에 갔겠죠. 아, 스튜어드도 되고 싶었고, 글 쓰는 일도 하고 싶었어요. 작문 수업을 되게 재밌어 했거든요. 생각을 정리하는 게 참 쉽지 않아요. 기자들은 어떻게 한 시간의 이야기를 딱 한 장의 기사로 쓰시나요? 대단해요."
[성장과정 ②] 고통을 아는 사람
▲ "목사님이 지어주셨다"던 이름 박보검. 그는 이름대로 꼭 자신이 세상에서 크게 쓰일 날을 꿈꾸고 있었다.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큰 꿈을 품은 자는 빛나는 법이다. ⓒ 이희훈
마냥 잘 자란 바른 청년 같지만, 그에겐 두 종류의 고통이 있습니다. 우선 사적인 고통. 최근 언론을 통해 밝혀진 아버지의 3억 빚 연대 보증 일은 아픈 기억이겠지만, 동시에 그에겐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더욱 단단히 점검하는 계기이지 않았을까요. 그래서인지 박보검은 "힘든 일과 고민이 있을 때 끙끙 앓기 보단 가족과 먼저 이야기 하는 편"입니다. 게다가 "그럴 수 있다는 게 진짜 행복 같다"고 말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그의 모습에서 굵은 나이테 한 줄이 읽히네요.
또 하나의 고통은 바로 연기와 관련 있습니다. 2013년 드라마 <원더풀 마마>의 철부지 영준 역으로 "연기에 대한 즐거움을 깨달았"지만, 2년 후 영화 <차이나타운> 속 석현 역을 맡으며 "큰 벽을 경험"합니다. 두 캐릭터 모두 밝은 성격이었음에도 말이죠. 당시를 그는 이렇게 회상하고 있었습니다.
"이래서 연기가 어렵다고 다들 말씀하시는구나 깨달은 거죠. <차이나타운> 땐 제 대사에 확신이 생기지 않았어요. 석현이가 저와 비슷한 면이 많아 솔직히 자신 있었거든요. 근데 영화는 어두웠고 석현 혼자 한 줄기 빛 같은 인물인 거예요. 뭔가 하려고 하면 튀어 보이고, 안 하면 묻히는 것 같고..."
어두움을 알면 밝음의 소중함을 깨닫는 법. 그가 숱하게 보냈을 고민의 밤들이 지금의 박보검을 만들어내는데 기여했으리라 믿습니다. 의외라고요? 그 밝은 얼굴의 이면으로 박보검은 <응팔>의 택이를, <차이나타운>의 석현을, 드라마 <너를 기억해> 속 사이코 변호사 정선호 등을 담아냈다는 사실 기억하시길.
슬슬 소개서를 맺습니다. 어쩌면 우린 박보검의 일각만 바라보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어떻습니까? 심연 깊숙이 자리 잡은 그의 뿌리가 더 궁금해지지 않았나요.
▲ 길게 이어지는 촬영에도 그는 수줍은듯 그러면서도 과감하게 자신을 표현해냈다. ⓒ 이희훈
[추신] <블라인드> 안상훈 감독의 추천서
그리고 여기 안상훈 감독의 말을 덧붙인다. 영화 <블라인드>의 연출을 맡았고, 박보검을 영화에 데뷔시킨 인물이다. 안상훈 감독의 구술을 바탕으로 한 '가상 추천서'임을 밝힌다.
수신자 : 영화 및 드라마 관계자
발신자 : 안상훈 감독
날짜 : 2016년 3월 3일
존경하는 관계자 분들께
박보검씨는 지난 2011년 개봉한 영화 <블라인드>에서 극중 수아(김하늘 분)의 동생 동현 역할을 소화했습니다. 당시 18세의 나이로 오디션을 보러 온 그를 기억합니다. 여러 배우를 만나던 와중 박보검씨가 즉석에서 보인 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직접 준비한 춤이 있다면서 추기 시작하더군요. 그걸 보면서 제 몸까지 들썩거렸다는 건 '살짝' 비밀입니다.
기본적으로 성실한 친구인데다가 본래 가수를 준비하던 친구여서인지 끼도 있습니다. 제가 봤을 땐 노력파기도 하지만 다분히 재능을 갖춘 인물이라 생각합니다. 또한 인성 역시 좋아 주변 사람들에게 참 잘합니다. 어렸을 때 집안 사정이 안 좋았다고 알고 있습니다. 개인 일이라 상세히 밝힐 수는 없지만, 철이 일찍 들어있던 그의 모습이 생생합니다. 보면 항상 웃는 얼굴이고 배려심이 강합니다. 촬영장에서 배려는 중요한 덕목임을 잘 아실 겁니다.
첫 영화 출연임에도 박보검씨는 기대 이상의 활약을 했습니다. <블라인드>가 236만 명이라는 유의미한 흥행 기록을 세우는데 박보검씨 역시 크게 일조했음을 밝힙니다. 가까운 시일 내에 제발 출연해달라고 우리가 먼저 애원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전에 다양한 작품에서 그의 재능이 빛을 발하도록 잘 써주시기 바랍니다.
▲ 인터뷰 말미 그가 꺼낸 마지막 인사는 "다음에도 또 만나주셨으면 좋겠다"였다. 말 한 마디에서도 상대를 생각하는 그만의 배려가 묻어났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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